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294화 (294/413)

294화. 일이 많으신가 봐요.

신도하의 작업실에 왔다.

정말 언제 와도 깔끔한 공간이었다.

그게 상당히 신도하답기도 하고.

“작년에도 그랬지만, 항상 선물을 한 해 지나서 주는 것 같네.”

“괜찮습니다.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아무래도 연말에는 바쁘잖아. 그렇다 보니 시간을 좀 쟀어. 이왕이면 여유로울 때 만나서 주고 싶었거든.”

그대로 신도하가 내 앞으로 컵 하나를 내려놓았다. 지난번과 같게 이번에도 핫초코다.

그간 몇 번 마셔서 그런가, 먹다 보니 이제는 좀 익숙해진 상태였다. 여전히 달긴 하지만.

‘근데 나야 이전에 비해 스케줄이 좀 괜찮아진 상태지만, 신도하는 아니지 않나.’

기사를 봤다.

신도하가 한창 앨범 작업 중이라는 기사.

신도하는 올 연초를 목표로 새로운 솔로 앨범을 작업하고 있었다. 그러니 여유롭진 않을 텐데.

‘그러고 보니 평상시보다 좀 피곤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는 말이나 표정은 이전과 별로 다를 게 없지만, 얼굴에 묘하게 피곤한 기색이 있었다.

“많이 궁금해?”

“예?”

“선물. 궁금해하는 얼굴이길래.”

그 말이었냐.

궁금하다면 궁금하긴 하지.

“뭐였으면 좋겠어?”

“···전 아무거나 다 좋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작년 머그컵은?”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숙소에서.”

그러자 신도하가 그대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몇 번 끄덕임과 동시에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도 잘 보관했으면 좋겠네.”

그 말과 동시에 신도하가 들고 있던 컵을 내려놓은 채로 어디론가 이동했다. 이어서 뭔가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가지고 온 물건을 이내 내 앞에 있는 테이블 위로 조심스럽게 올려뒀다.

“이건······.”

“내가 주는 생일 선물.”

아. 이건 정말 예상 밖의 선물이었다.

화분.

다름 아닌 화분이었다.

깔끔한 분홍색 화분.

“···선배님, 원래 식물 좋아하셨나요?”

“좋아한다기보단 그냥 관심이 좀 있어. 그래서 집에서 몇 개 키우고 있거든.”

이건 또 새로운 사실이었다.

신도하가 집에서 식물을 키우고 있을 줄은 몰랐네. 단순히 이미지만 놓고 본다면 어울리는 편이긴 하다만.

“그런 의미에서 너한테도 항상 하나 선물해주고 싶었거든.”

신도하가 웃으며 말했다.

신도하가 준 화분은 그렇게 크지 않은, 가볍게 들기 좋은 사이즈의 화분이었다.

여기에 화분 안에는 초록잎과 분홍색 잎을 품고 있는 식물이 하나 심어져 있었는데, 마치 하나의 벚꽃 나무와 같은 모습이었다.

처음 보는 식물이었다.

처음엔 초록 잎사귀 사이로 분홍색 꽃 같은 게 있길래 꽃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마찬가지로 그것도 잎이었다. 분홍색 잎.

“감사합니다. 예쁘네요.”

“그렇지?”

“네. 근데 이건 이름이 뭔가요?”

“핑크 아악무. 다육 식물의 일종이지. 다육 식물이 키우기 편할 것 같아서 말이야. 물을 많이 안 줘도 되거든.”

안 그래도 물 주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던 차였다. 아무래도 스케줄 때문에 숙소를 비우는 일이 많으니까.

그나저나 핑크 아악무란 이름이었군.

“여기 이건 꽃이 아니라 잎이죠?”

“맞아. 분홍색 잎이지.”

다시 봐도 예쁜 화분이었다.

이 핑크 아악무.

식물 선물은 처음 받아보는 거라 그런지 조금 신선했다. 하지만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았다.

“왠지 세현이 니가 떠올라서 말이야.”

“예?”

“아, 그리고 물은 최대한 적게 주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햇빛을 주기적으로 보게 하는 게 좋아.”

“아, 네.”

그렇게 신도하는 주의해야 할 사항 같은 걸 덧붙여 일러주었다. 하지만 앞선 말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못 했다. 어느 부분에서 떠올랐다는 거지.

“사실 다른 후보로 향수를 줄까도 했었거든.”

“향수요?”

“응. 맨날 같은 것만 뿌리니까.”

아, 그건 가지고 있는 향수가 그것밖에 없어서인데. 작년에 형에게서 받은 생일 선물. 그 향수였다.

근데 사실 이제는 그 향에 익숙해져서 다른 걸 살 생각을 안 한 것도 있다.

“그래서, 요즘 투어는 어때?”

“정신이 좀 없긴 한데, 그래도 재밌어서 좋아요.”

“원래 처음엔 다 그렇지. 나도 첫 투어 땐 다른 것보다 재밌어서 좋았어. 일단 여러 나라에서 공연을 할 수 있으니까.”

투어는 아직까지 진행 중이었다. 연말 무대가 끝나자마자 다시 시작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투어와 연말 무대가 겹치긴 했지만, 특별히 힘든 건 없었다.

오히려 노래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노래만 많이 할 수 있다면, 무대에 많이 오를 수만 있다면 힘든 건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한번 신도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다시 한번 나를 향해 웃어 보인다.

‘근데 신도하, 정말 괜찮은 거 맞나.’

처음부터 신경이 쓰였지만, 아무래도 영 표정이 좋지가 않다. 물론 대화하는 것에는 아무 무리가 없어 보이고, 또 이전보단 나아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낯빛이 어두운 건 여전했다. 그게 상당히 신경 쓰였다.

아니, 누구든 앞에서 죽을상을 하고 있는데 신경 쓰이는 게 당연하지만.

“요즘 일이 많으신가 봐요.”

“어?”

“그냥 안색이 조금 안 좋아 보여서요.”

그러자 신도하가 조금 놀란 듯한 눈을 하고 쳐다봤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별로 놀라 만한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잠시 그대로 말이 없다.

정말로 대화가 일순간에 뚝 끊겼다.

‘괜한 걸 물었나.’

쓸데없는 참견이었다는 생각도 어느 정도 있긴 했지만, 정말 그저 단순하게 물었을 뿐이었다.

“정말 너는 통찰력이 좋네.”

“예?”

“피곤···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피곤해서 그런 게 아니야. 그것보단 요즘 음반 작업 때문에 좀 복잡했거든.”

역시 앨범과 관련된 일이었나 보군.

그와 동시에 신도하가 들고 있던 컵을 그대로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모니터 앞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런 의미에서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부탁이요?”

“응. 아주 간단한 부탁.”

간단한 부탁.

진짜로 간단한 부탁일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치는 와중에 신도하가 한번 더 덧붙이듯 말했다.

“세현이 네가 도와준다면, 좀 수월하게 해결되지 않을까 싶어서. 지금은 조금···복잡한 심경이거든.”

신도하가 그렇게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그렇게 다 죽어가는 얼굴로 말하니 마냥 외면하기도 뭐 했다.

딱히 신도하에게 정이 있거나 한 건 아니지만, 간단한 부탁이라고 하니 일단 말이라도 들어보고자 했다.

“뭔데요? 부탁이.”

“들어줄 거야?”

와중에 다시 한번 대답을 확인한다. 당장의 결정을 종용하는 말이었다. 귀찮게 굴긴.

“예, 뭐. 제가 가능한 범위라면요.”

“좋아.”

그리고 만족스러운 얼굴의 신도하는 이내 의자를 돌려 그대로 데스크탑의 마우스를 몇 번 터치했다. 더불어 키보드도 몇 번 두드리고.

마치 뭔가를 준비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뒤이어 그 준비가 끝나기라도 한 건지 신도하가 그대로 내게로 다시 시선을 맞춰왔다.

“지금부터 앞으로 발매될 내 신곡을 들려줄 거야.”

“네?”

잠깐, 뭐라고?

뭘 들려줘?

“어, 그걸 왜······.”

“들려주고 싶으니까. 듣고 싶지 않아?”

아니, 그렇게 말하면 당연히 듣고 싶긴 한데···그걸 왜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 말하고 있는 건지? 그것보다 들어도 되는 거냐.

“그게 선배님이 앞서 말씀하신 부탁인가요?”

“응. 네가 들어줬으면 해서.”

그런 신도하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꽤나 진지했다. 앞서 말 한대로 정말로 간단한 부탁이긴 했다.

그냥 듣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듣고 싶은 건 맞다. 사실 안 그래도 발매가 되면 들어볼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괜찮으시면, 들어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바로 재생하도록 할게.”

신도하가 다시금 몸을 돌렸다. 그러자 얼마 안 가 나오는 잔잔한 멜로디의 인트로. 그 위로 은은한 피아노 건반의 사운드가 겹쳤다.

‘···멜로디 좋네.’

가끔씩 시작부터 느낌이 좋은 곡들이 있다. 지금 듣는 신도하의 곡이 그랬다. 듣기 편하고, 거기에 감성이 살짝 담긴 발라드곡.

계절에 맞는, 겨울에 듣기 좋은 곡이라 느껴졌다.

[The end of Winter]

[겨울의 끝에서]

[하얀 비를 맞으며]

[순간을 기다릴게요]

특히나 중간 부분에 있던 가성이 좋았다. 잔잔함 속에서도 한 귀에 꽂힐 만큼 두드러진 목소리였다.

[하얀 하늘 아래서]

[회색의 우산을 들고]

[이곳에 서 있을게요]

[My love]

감성은 후반부에 이를수록 더욱 치달았는데, 그 흐름이 좋았다. 찬찬히 감정을 쌓아 올린 듯한 느낌이 들어서.

과잉도 결핍도 아닌 완벽한 감정 조절이었다. 여기에 기술적으로도 흠잡을 곳이 없었다.

가사도 당연히 좋았다.

평소 신도하만의 가사를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이 곡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한창 집중하고 있으려니 곡이 어느새 금방 끝나버렸다.

들려오던 곡이 끝나자, 신도하가 그대로 다시 마우스를 한번 클릭했다. 그리고 잠시 말이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좋네요.”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건 나였다.

당연히 곡이 끝나자마자 의견을 물어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오는 말이 없었다.

애초에 곡을 들려준단 건, 의견을 묻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앞서 곡에 관해 여러모로 생각이 많은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내 말에도 신도하는 그저 말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좋은 곡이었다.

물론 개인마다 취향은 다르겠지만, 처음 내 느낌은 그랬다.

“선배님, 곡 좋아요.”

그러자 신도하가 그대로 나를 잠시 응시하더니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갑작스럽게 고개를 떨군다.

“아, 미안. 긴장이 풀려서.”

그리고 다시 웃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긴장할 게 뭐가 있지.

“그래, 고마워. 좋구나. 다행이다.”

“이거 선배님이 작곡하신 거죠?”

“맞아. 한번에 알아보네?”

그거야 많이 들었으니까.

내가 지금까지 들은 니 곡이 한두 개인 줄 아냐.

“아무래도 걱정이 좀 됐거든. 오랜만의 솔로곡이기도 하고 해서. 근데 좋다니 안심이네.”

그 말을 하는 신도하의 표정은 이전보다 훨씬 편안했다. 정말로 안심이라는 듯이. 그리고 정말로 안심하고 있었다, 신도하는.

‘너무 맹신하는 거 아닌가.’

곡이 좋기는 했지만, 아까보다 말했듯 사람마다 취향이 갈릴 수 있었다. 아, 물론 대중적으로 먹힐 것 같긴 했다.

결국 곡이 좋은 건 맞다.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이거 다음에 내가 사례를 해야겠는걸.”

“아뇨. 정말 그냥 간단한 거였는데요.”

“감평도 해줬잖아. 그러니 내 맘대로 할게.”

그렇게 신도하가 턱을 괸 채로 웃었다. 다른 것보다 본인 마음대로 한다는 게 제일 걸리는 말이었다.

사실 감평이랄 것도 없었다.

그냥 좋다고 말한 게 다인데.

근데 정말 곡이 좋긴 하다.

이거 나오면 바로 다시 들어봐야겠다.

그나저나 정규려나, 미니려나.

이왕이면 정규였으면 했다.

그래야 곡이 많아지니까.

그렇게 다시 한번 앞에 있던 핫초코를 마셨다. 그러자 앞에 있던 신도하 역시 다시금 조용히 컵을 들었다.

어째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 같아 보이는 건 내 착각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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