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인사했어요?
차선빈의 허리 염좌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일단 활동기가 아닌 게 컸다. 무리하게 연습하거나 움직일 일이 그나마 적으니까.
투어가 있긴 해도 예정된 일정이 3주 정도 뒤에 있던 터라 차선빈은 그때까지 어떻게서든 낫겠다며 노력했다.
“무대에서 빠지는 게 가장 싫으니까.”
그 말을 하던 차선빈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사실 그러한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싶은 건 나, 아니, 멤버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6명이 아닌 무대는, 생각해본 적도 없다.
언젠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6명이 아닌 무대를 하게 될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게 지금은 아니었으면 했다.
언제나 아니길 바랐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 끝에 차선빈은 약 7일 만에 회복에 성공했다. 그 사실을 안 순간, 멤버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싱글벙글이었다.
“아, 선빈이 형 나았다니까 이제야 좀 뭔가 안심이 되네요.”
“앞으로 허리 조심해. 한번 다친 이상 계속 꾸준히 관리해야 할 거야.”
“관리는 원래도 하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원래 좋지 않은 부위이니 회복에 성공했다고 해도 한동안은 조심해야만 했다. 그래도 무사히 회복해서 다행이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
“응. 무리 안 해.”
역시 더 잘 먹여야겠다.
아플 때는 역시 체력이 떨어지니.
“그동안 식탁도 꽤 화려했는데?”
“세현이가 손을 많이 써줬지.”
“와중에 다 맛있었어요!”
차선빈이 아픈 기간 동안 밥 먹을 때가 되면 뭔가를 좀 만들긴 했다. 원래 아플 땐 집밥 같은 거 먹으면 좋으니까.
당연히 멤버들도 같이 먹이고.
“형 덕에 우리도 호강했잖아요. 식탁이 나날이 화려해져 가는 그 모습!”
“파는 또 내가 썰었다.”
“양파는 제가 깠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애들도 이제 재료 손질에는 차차 도가 트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말 파도 잘 썰고 양파도 잘 깐다. 괜히 흐뭇하다.
“우세현, 이거 좀 자란 것 같은데?”
백은찬이 창가 근처에 있던 화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도하에게 받았던 그 화분.
통풍이 잘되고 직사광선이 들지 않은 곳에 놓은 덕분인지 다행히 아직까지 예쁘게 잎이 피어 있었다.
“근데 이거 엄청 예쁘긴 하다. 핑크핑크해.”
“예쁘지.”
“이름이 뭐라고 했지? 핑크?”
“핑크 아악무.”
“줄여서 핑무?”
“그래, 줄여서 핑무.”
백은찬 멋대로 줄인 거긴 하지만, 핑무라고 불러도 별로 상관없을 것 같았다. 이름이 아직 없어서.
그리고 걱정과 달리 핑무, 아니 핑크 아악무는 잘 자라고 있었다.
“너무 뚫어져라 보는 거 아니냐?”
백은찬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 그런가. 나도 모르게 그만.
이윽고 화분으로부터 눈을 뗐다.
확실히 핑크 아악무는 잘 자라고 있었다.
여기에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형이 새로운 작품에 들어간다는 소식이었다.
“못 보던 옷이네.”
“아, 이거 협찬.”
“KUCCI? 잘 어울리네.”
형이 내 가디건을 보며 말했다.
“화보도 찍었다고 했지? 언제 나와?”
“봄에나 나올 거야. 그것보다 김정현 감독 작품이라고?”
“어, 맞아.”
하지만 이번에 형이 들어갈 작품은 드라마가 아닌 영화였다.
그것도 꽤 유명 감독의 작품.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정도에.
“시나리오가 괜찮았던 거야?”
“응. 다른 것보다 그게 마음에 들어서.”
형이 괜찮다고 하면 진짜 괜찮은 건데. 이렇게 들으니 어떤 영화일지가 더 궁금해졌다. 이번에도 잘 돼야 할 텐데.
“나중에 시사회 같은 것도 할 테니까 그때 되면 와.”
“어, 나도 가도 되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너 연예인이잖아.”
그렇지. 연예인이지.
그런데 막상 시사회라고 하니 되게 관련 없는 느낌이 들어서.
그간 기사를 통해서만 봐서 그런가. 시사회 같은 건 정말로 유명 연예인들만 참석하는 그런 곳 같았다.
“너도 유명 연예인이잖아.”
“···아직 그렇게 유명까지 붙일 정도는 아니지.”
“충분히 붙이고도 남는데. 요즘 어딜가든 들려오는 게 윈썸 얘기잖아.”
그래도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아직까진 개개인 인지도도 부족하고.
아마 들려오는 소리도 젊은 층 한정일 거다.
“너무 박한 거 아니냐. 근데 난 사실 니가 그렇게 유명해지는 게···.”
“유명해지는 게?”
“아니. 어쨌건 유명하다고.”
형이 그렇게 말을 얼버무렸다.
뭐야, 왜 말을 하다 말아.
“그때 되면 초대할 거니까 멋있게 하고 와.”
“그건 당연하지.”
“그래, 누구 동생인데.”
그 순간, 형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냥 시사회도 아니고 형 시사회인데 신경 쓰는 건 당연하지.
형의 말대로 정말로 유명이라는 이름이 내게 조금이라도 붙을 수 있다면, 그게 형을 조금이라도 도와줬으면 했다.
사실 굳이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이미 형 자체로 끝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형이 더 잘 됐으면 좋겠다.
물론 지금 상황만 보면 형보다 내가 훨씬 더 열심히 해야 할 처지긴 하지만.
* * *
“그러고 보니 내일 세현이 형이랑 지호 형 촬영날이죠?”
“응. 아마 4시쯤에 숙소에서 출발할 것 같아.”
“새벽 4시? 와, 빡세네.”
이를 들은 백은찬이 그대로 고개를 몇 번 내 저었다.
내일은 SBC 설날 특집 방송의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특집 방송의 제목은 <설 특집 : 복주머니를 찾아라!>.
설 특집 방송다운 타이틀이었다.
그리고 해당 방송엔 나와 안지호 둘이 출연하게 되었다. 여기에 출연자로 몇몇 다른 아이돌이 더 나올 예정이었고.
“근데 설날 특집치고는 내용이 너무 생뚱맞은 거 아니냐?”
“음. 설날에 서바이벌이라니. 예상 못한 전개이긴 하죠.”
신하람이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앞서 말했듯이 이번 방송은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방송이었다. 무대 경쟁 이런 것이 아닌 진짜 서바이벌 게임.
총을 쥔 채 생존을 기반으로 하는 그 서바이벌 게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이 서바이벌 게임을 하며 숨겨진 복주머니를 찾는 프로였다.
“지호가 잘할 것 같아.”
“아, 맞아. 안지호 사격신이었지?”
“사격신은 무슨 사격신.”
“그때 지호 백발백중 아니었나?”
“거의 그랬을 거예요.”
이전에 다 같이 사격 게임을 했을 때. 그때 내 기억으론 거의 백발백중이었다.
‘결국 나만 잘하면 된다는 얘긴데.’
사격이나 서바이벌 게임 같은 건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못 하는 것도 못 하는 거지만, 적어도 방해는 안 돼야 할 텐데.
그리고 다음 날 새벽 4시.
예정대로 숙소를 나서 그대로 벤을 타고 촬영 장소인 가평으로 향했다.
“우세현. 이거.”
안지호가 그대로 내게 바나나와 초코 우유를 건넸다. 어째 가방이 좀 묵직하다 싶더니 이런 게 들어있었군.
“애들이 넣은 건가?”
“그럴걸. 아니면 누가 넣겠냐.”
그러고 보니 어제 말했었지. 서바이벌은 게임은 체력이 제일 중요하다면서 아침 먹고 가라고.
당연히 아침은 먹지 못했다.
하지만 그럴 줄 알았는지 모르는 사이 멤버들이 이것저것 넣어둔 모양이다.
“바나나만 줘.”
“둘 다 가져가.”
그리고선 다시 내게 초코 우유를 들이밀었다. 바나나만으로도 충분한데.
새벽이라 그런지 입맛은 그닥이었지만, 받을 때까지 줄 기세라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다.
“근데 너도 초코 우유야?”
“어. 애초에 초코 우유밖에 없었어.”
숙소에 초코 우유밖에 없었나.
다른 것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대로 바나나와 초코 우유를 한 입씩 했다. 단 게 들어오니 이전보다 눈이 좀 뜨이는 느낌이었다.
“야, 빵도 먹어.”
옆에선 자꾸 안지호가 먹을 걸 권했다.
그보다 너도 좀 먹어라.
그렇게 장장 몇 시간에 걸쳐 도착하고 나니 눈앞으로 울창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숲이 보였다. 오늘의 촬영 장소였다.
그 밖에 나무들 사이에도 장애물이나 기름통 같은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전형적인 서바이벌 게임의 풍경이다.
“출연자 대기실은 저쪽이래.”
매니저 형이 건너편에 있던 건물 하나를 가리켰다. 오늘 촬영은 실외 촬영이었지만, 대기실은 실내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오른쪽이에요, 왼쪽이에요?”
“어, 오른쪽 건물.”
준비된 대기실은 2개였다.
아무래도 출연자가 한둘이 아니다 보니 적당히 연차를 기준으로 나누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오른쪽 대기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문이 열림과 동시에 내부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
그리고 어찌된 건지 그 시야 안엔 익숙한 얼굴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 익숙하기보단 걸리적거리는 얼굴이다.
“윈썸, 왔어요?”
바로 티어로브의 신윤우였다.
* * *
티어로브의 신윤우 역시 이번 <설 특집 : 복주머니를 찾아라!>에 출연하게 되었다. 같은 출연진으로.
“생각보다 좀 늦었네요. 윈썸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신윤우는 그렇게 여유롭게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 채 나와 안지호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신윤우와 만나는 건 작년, 그러니까 얼마 전에 있던 시상식 이래로 처음이었다. 사실 그때도 간단한 인사만 오간 채로 별 대화를 하지 않았고.
사실 대화가 그렇게 오가지 않았던 건 매번 티어로브의 테이블과 떨어져 있었기 때문도 있었다. 티어로브는 무려 9년 차니까.
한국 활동을 중지한 채 공작실을 차린 중국인 멤버를 제외하고 티어로브는 모두 재계약에 성공했다.
하지만 팬덤도 그대로 탄탄하게 유지된 건 아니었다. 예상했던 바와 같이 완전체가 아닌 부분에서 유출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으니까.
그렇지만 아직까지 1군 아이돌이란 타이틀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한번 올린 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오랜만이네요. 윈썸. 특히 세현 씨.”
신윤우가 그대로 내 이름을 강조했다.
오랜만은 무슨 오랜만. 몇 주 전에 본 거 잊었나.
“이렇게 대화를 하는 건 오랜만인 것 같아요. 전에는 그래도 꽤 했었는데. 그렇죠?”
말하는 대화가 언제가 마지막인지도 잊을 만큼 희미한 기억이었다. 저 X끼랑 언제 마지막으로 대화했더라.
근데 기억해서 뭘 하겠는가.
어차피 의미 없는 대화였을 텐데.
하지만 신윤우 역시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앉아 있던 자리에서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였다.
대기실 안엔 아직까지 신윤우 이외에 도착한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들어올 때 본 대기실 명단표를 봤을 때, 그 안에 신윤우는 없었다.
그리고 이번 대기실은 앞서 예상한 대로 철저하게 연차 순이었다.
같은 대기실을 쓸 것으로 예정된 아이돌들은 모두 연차가 그다지 높지 않았으니.
물론 그 중에서도 가장 연차가 낮은 것은 단연코 우리였다.
그런 의미에서 같은 대기실도 아닌 저 새X가 왜 여기에 있는가는 상당히 의문이었다. 분명 배정받은 건 옆 대기실일 텐데.
[“생각보다 빨리 마주쳤네. 일부러 이 대기실까지 온 보람이 있었군.”]
시비 걸러 온 거군.
“내가 원래 후배님들하고 얘기하는 걸 워낙 좋아해서요. 촬영 전에 인사도 나눌 겸 왔어요.”
신윤우가 그렇게 웃으며 말했다.
혹은 또 뭔가 재밌는 건수 없나 싶어 온 거겠지. 여기에 시비는 덤이고.
평소 소문, 루머 등을 파고들기 좋아하는 놈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겠고.
‘아무래도 피곤하겠군.’
오늘 촬영.
벌써부터 피곤한 느낌이다.
그리고 이대로 계속 서 있을 순 없으니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으려 움직였다.
이어서 그대로 신윤우가 있는 곳을 지나쳐 적당히 비어 있는 장소를 찾아 그곳에 앉으려고 하는데,
“아, 잠깐만.”
그때, 신윤우에게 갑작스럽게 불려졌다.
그리고 그 말에 안지호와 난 그대로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기억이 잘 안 나서 말인데요.”
그리고선 그대로 나를 응시한다.
“인사했어요?”
그러더니 뜬금없이 인사를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본인에게 인사했냐고 묻는 건가.
“긴가민가해서요. 인사는 아무래도 기본이잖아요. 내가 또 기본은 꼭 해야 한다는 주의라서요.”
동시에 신윤우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대로 대기실엔 곧 침묵이 감돌았다.
인사라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앞서 본인에게 인사를 했다는 건 신윤우 역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일 테니.
그 시각, 신윤우는 그대로 나와 안지호를 향해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래서 윈썸. 인사, 했어요?”
여전히 입꼬리를 올린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