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300화 (300/413)

300화. 인사 안 한 것 같은데.

“그래서 윈썸. 인사, 했어요?”

신윤우가 그렇게 나와 안지호를 향해 또박또박한 말투로 물었다. 그 순간, 대기실 안으로 정적이 흘렀다.

‘이 새X, 또 시비냐.’

별 같잖지도 않은 걸로 괜한 꼬투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신윤우가 나에게 원하는 행동은 명확했다.

허리 숙여 다시 인사하라는 거다.

자신을 향해서.

사실 인사 자체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통상적일 때를 의미하는 거다. 지금과 같을 때가 아니고.

그리고 짧은 순간이지만, 그 사이 다시 신윤우와 시선이 마주했다. 이렇게 X 같을 수가 없었다.

‘와중에 안지호는 왜 묶는 거냐.’

차라리 나에게만 요구했다면, 그나마 덜 짜증 났을 거다. 그런데 와중에 친절하게 윈썸이라고 묶어 말하고 있었다. 더 X 같게.

“윈썸, 인사는요?”

그렇게 신윤우가 한 번 더 말을 반복했다. 마주한 시선은 마치 나를 재촉하는 듯했다.

여전히 대기실은 소음 하나 없이 고요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올 답은 결국 하나였다. 답은 인사였다.

─똑똑!

그때였다.

누군가 대기실의 문을 노크했다.

상당히 차분한 움직임으로.

그와 동시에 누구랄 것도 없이 나를 포함한 안지호, 그리고 신윤우의 시선 또한 그곳으로 향했다.

끼익!

그리고 문이 열렸다.

이윽고 방금 전 문을 두드렸던 이의 모습이 보였다. 이에 순간적으로 조금 놀랐다.

아는 얼굴이었기에.

“아, 여기가 다른 대기실인가 보네요.”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신도하였다.

“안녕하세요, 후배님들.”

그 순간, 신도하가 미소 지었다.

* * *

신도하는 이번 <설 특집 : 복주머니를 찾아라!>에 섭외된 출연자 중 한 명이었다.

당연히 출연한 아이돌 중 짬밥은 제일 많았다. 연차만 놓고 보면 루트보다, 그러니까 신도하보다 높은 연차의 아이돌은 없었다.

그래서 처음 출연자 리스트를 들었을 때, 조금 놀랐다. 공중파 설 특집 방송이라고 해도 신도하라면 굳이 이런 프로에 나올 필요가 없으니까.

스튜디오 촬영도 아니고 야외에서 진행하는 서바이벌을 주로 하는 프로였다. 다시 말해 어느 정도 고생이 보인다는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도하는 최종 출연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출연을 확정 지었다.

‘의외로 야외 촬영을 좋아하는 타입인가.’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으나 아무래도 그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서바이벌 게임을 즐길 리도 없고.

애초에 신도하가 서바이벌 게임을 즐긴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도 없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대충 엇비슷하네요.”

신도하가 대기실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신도하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신윤우의 얼굴에 곧바로 당황스러운 낯빛이 서렸다.

이럴 때만큼은 생각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왜 이 타이밍에 신도하가?”]

생각 또한 당황스러움이 잔뜩 섞여 있었다. 표정을 보니 신도하가 이 타이밍에 여기 방문할 거란 사실을 전혀 짐작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를 대변하듯 조금 전까지 편하게 앉아 있던 자세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다.

“안녕, 세현아.”

순간 들리는 목소리에 그대로 고개를 조금 들었다. 이내 눈에 띄게 반가운 기색을 하고 있는 신도하가 보였다.

···어째 평소보다도 더 과하게 반가워하는 것 같은 건 내 착각인가.

“안녕하세요, 선배님.”

그래도 일단 적당히 인사부터했다.

사실 신도하의 등장은 나 역시도 예상 못한 것이긴 했다. 따로 직접 들릴 줄이야. 게다가 이 타이밍에.

신도하가 원래 좀 현장에 빨리 오는 타입이었나. 돌이켜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마찬가지로 옆에 있던 안지호와도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던가.

다소 생소한 그림이다.

“아무래도 촬영 전에 한번 들려야 할 것 같아서. 우리 후배님들 한 번씩 보면 좋잖아.”

그렇다기엔 너무 빨리 온 거 아닌지.

이 대기실에 있는 건 결국 나와 안지호뿐이었다. 신윤우는 원래 이쪽 대기실이 아니니.

“그럼 오늘 촬영 잘해보자.”

“네. 선배님.”

일단 그렇게 답하긴 했는데, 여전히 여러 의문이 오갔다. 근데 신도하는 서바이벌 잘하나.

그리고 신도하는 정말로 가려는지 그대로 등을 돌렸다. 정말로 인사하러 온 거냐.

“아.”

그러던 도중, 신도하가 마치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 소리 내더니 이내 가던 걸음을 멈췄다.

“오랜만이네요. 윤우 씨.”

그리고선 신윤우에게 인사를 건넨다.

어째 말하는 것만 봐선 마치 잊고 있다가 이제 생각났다는 투였다.

그러자 신윤우는 답지 않게 다시금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일어섰다.

“선배님!”

“몇 년 전에 보고 처음인 것 같네요.”

“네네. 그렇죠. 잘 지내셨죠?”

신윤우가 그 순간, 넉살 좋게 실실 웃는 얼굴로 신도하를 향해 굽신거렸다.

‘···그러고 보니 루트와 티어로브는 한 때 활동 기간이 겹쳤었지.’

꽤 오래전 일이긴 해도 루트가 한창 활동할 시기에 마찬가지로 티어로브도 활동을 했었으니.

“선배님, 얼마 전에 뮤지컬도 하셨던데요. 저 뮤지컬 한번 보러 갔었어요.”

“그래요?”

“선배님이야 워낙 노래 실력이 훌륭하시니까요. 이번에 새 앨범도 나온다고 들었는데,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신윤우의 말을 신도하는 특별한 반응 없이 가만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저 놈은 언제 봐도 참 말이 많다.

“그런데요, 윤우 씨.”

“네네. 선배님.”

그런데 그때, 그런 신윤우의 말을 내내 가만히 듣고만 있던 신도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했나?”

“예? 어, 뭘······.”

“인사.”

이내 그 말을 들은 신윤우가 경직했다.

“인사 안 한 것 같아서. 나한테.”

그렇게 신도하가 신윤우를 향해 입꼬리를 올렸다. 이어서 그대로 신윤우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한 번 더 강조하듯 말했다.

“인사, 했어요?”

여유롭게 웃으면서.

* * *

신윤우가 그 즉시 신도하를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누가 봐도 반듯한 인사의 정석 자세였다. 정말로 인사 한번 잘했다.

“굳이 그렇게 까진 할 필요 없는데.”

“아뇨. 인사를 깜빡한 제 잘못이죠.”

그러면서도 신도하는 말만 그럴 뿐 신윤우가 인사하는 것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신도하도 확실히, 성격이 나쁘다.

와중에 신윤우가 인사를 놓친 건 사실이었다. 신도하의 등장을 정말로 예상 못한 건지 그저 벙찌고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인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요.”

“네네. 그렇죠. 기본이죠.”

“근데 윤우 씨는 나랑 같은 대기실 아니었나. 내가 듣기론 그런데.”

“아, 네. 맞습니다.”

“그럼 같이 돌아가는 게 어때요.”

“네. 그렇게 하시죠.”

일부러 치워주는군.

그리고 신윤우는 방긋방긋 잘도 웃는 얼굴로 그런 신도하를 따랐다. 속내는 전혀 다르겠지만.

의도치 않게 도움을 받아버린 셈이었다.

이건 나중에 인사를···.

“아, 맞아. 세현아.”

그때 돌아가던 신도하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오늘 팀, 잘 짜인 것 같더라.”

“예?”

“서바이벌 팀 말이야. 잘 짜여서 꽤 재밌을 것 같아.”

서바이벌 팀?

“마음에 들어.”

그렇게 말하던 신도하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동시에 이상한 기대감 같은 게 보였다.

···이거 어째 좀 불안한데.

* * *

어째서 불안한 예감은 늘 틀리지를 않는가.

촬영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 오늘의 서바이벌 게임의 팀이 사전에 공개되었다.

서바이벌 게임의 팀은 총 2개의 팀으로 나뉘는데, 통칭 A팀, B팀이었다. 그리고 내가 속한 팀은 A팀.

그리고 신도하 역시 그 A팀이었다.

“불안하다 했다.”

안지호가 말했다.

나랑 같은 불안한 기운을 안지호 역시 느낀 모양이다.

“근데 넌 왜 B팀이야?”

“제작진이 일부러 떨어뜨려놨나 보네.”

그렇게 안지호가 미간을 좁혔다.

와중에 안지호는 서바이벌 B팀이었다.

당연히 같은 팀에 배정될 줄 알았건만, 같은 그룹이라고 오히려 떨어뜨린 듯했다.

‘거기에 신윤우도 B팀이고.’

신윤우도 안지호와 같은 팀에 배정됐다. 물론 A 아니면 B이니 나 아니면 안지호 둘 중 하나와 당연히 같은 팀이었겠지만.

결론적으로 나와 신도하가 A팀.

안지호와 신윤우가 B팀에 배정되었다.

“근데 너 아까 어떻게 하려고 그랬냐?”

“아까? 언제?”

“신윤우가 인사하라고 했을 때.”

아, 그때.

“넌 어떻게 하려고 했는데?”

“뭘 어떻게 해. 그냥 씹으면 그만이지.”

안지호답긴 하다.

“난 그냥 하려고 했어.”

“뭐? 하려고 했다고?”

“어, 이렇게.”

그리고 난 그대로 한 손을 들었다.

이렇게 손을 들고서.

“안녕하십니까. 하고.”

그러자 이내 안지호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왜? 이거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가끔씩 넌 영 이상할 때가 있어.”

“그런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래. 그렇다고 하자.”

뒤이어 앞으로 사용할 보호 장비라던가 총기 등을 확인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여전히 걱정되는 감이 없지 않은데, 적어도 짐은 되지 않아야만 했다.

“그렇게 걱정하지 마라.”

안지호가 마찬가지로 장비들을 확인하며 말했다.

“넌 니 몫 확실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렇게 나를 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 조금 놀랐다.

마치 내 생각을 알아채 준 듯이 해준 앞선 말에.

‘쓸데없이 약한 생각은 안 되지.’

적어도 이기려면 그래야 했다.

안지호의 말 대로 내 몫은 제대로 하자는 생각으로.

그리고 난 그대로 다시 한번 손안에 있는 총기를 확인했다. 왠지 모르게 조금 자신감이 붙었다.

* * *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사전에 나눠진 조에 따라 A팀은 빨간색, B팀은 파란색 팔찌를 착용했다.

“네, 202X년 설 특집, 복주머니를 찾아라! 그 막이 지금 올랐는데요!”

프로그램의 특별 MC는 개그맨 성환이 맡았다. 성환은 서바이벌에 참여하지 않고, 별도의 자리에서 상황을 중계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밖의 출연자들은 주로 아이돌이 많았다.

“A팀, 파이팅!”

“B팀, 이깁시다!”

당연히 분위기는 가벼웠다.

진짜 서바이벌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이건 예능이니까.

설 특집이라는 취지에 맞게 온 가족이 볼 수 있도록 최대한 가벼운 분위기를 유지하고자 하는 듯했다.

“야, 다치지 마라.”

시작 전, 안지호가 다가와 말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어차피 페인트 탄인데.”

“그래도 조심하라고.”

“너야말로 다치지 마라. 무리하지도 말고.”

그러자 안지호는 그대로 어이가 없다는 듯 한 번 웃더니 곧바로 본인의 팀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나도 슬슬 가야 했다.

A팀과 B팀은 서로 출발 지점이 달랐다.

그렇게 난 나를 제외한 A팀 5명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팀마다 배치된 인원은 각 6명, 중간엔 협동이 가능하지만 처음엔 각개전투로 시작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예?”

그대로 옆에 있던 신도하를 봤다.

“최대한 열심히 할 생각이니까. 아, 그리고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그리고선 그대로 총을 어깨에 얹은 채로 살짝 미소 짓는다.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하니 정말로 그럴 것 같긴 했다.

“···선배님도 조심하세요. 저도 일단 되도록 끝까지 살아남는 걸 목표로 할 거라서요.”

“그래? 그럼 역시 그때까지 열심히 살아 있어야겠네.”

꽤나 의욕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신도하, 승부욕 강했지.

“그리고 혹시 위험하면 불러.”

동시에 신도하가 가지고 있던 무전기를 한번 들여 보였다. 개인마다 지급된 무전기였다.

애초에 그런 상황이 되면 부를 겨를이 있을까 했다. 부르고 자시고 알아서 해결해야지.

“선배님이야말로 위험하면 말씀해주세요.”

“어? 구하러 오게?”

“가까이 계시면요.”

“방금 그 말은 꽤 기분 좋은데.”

와중에 그 말을 진지하게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 부르면 지원은 하러 가겠지만.

“자,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각 팀의 인원들은 출발 지점 앞에 서주세요.”

그 순간, 다시금 카메라가 켜지며 본격적인 서바이벌 게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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