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304화 (304/413)

304화. 뭔 일 있었는데.

“안지호, 떡국 먹어.”

나는 그대로 가지고 있던 떡국을 안지호에게로 건넸다. 그러자 안지호는 이를 잠시 가만히 보는 듯 하더니 이내 받아들였다.

“갑자기 이건 왜 주는데?”

“너 아까 별로 안 먹는 거 같아서. 입맛 없는 거냐?”

슬쩍 보니 먹는 둥 마는 둥 하길래 입맛이 없거나 혹은 만들어진 떡국이 정말 입에 안 맞거나 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느 쪽 이유든 이거라도 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나마 간간히 먹던 거니 이거라면 좀 먹을 것 같아서.

한창 뛰고 나서 출출할 텐데 이대로 아무것도 안 먹이긴 그랬다. 게다가 오래 뛴 만큼 피곤할 테고.

그리고 다행히 안지호는 내가 준 떡국을 말없이 잘 받아먹었다.

“근데 고기는 왜 이렇게 많아?”

“많이 먹으면 좋지.”

그렇게 안지호는 잠시 떡국을 응시하는 듯 하더니 이내 다시 떠먹었다.

사실 안지호 말대로 안지호 거에는 한우를 좀 더 넣었다. 이유는 묻지 마라, 주방장 마음이다.

그렇게 안지호는 떡국의 그릇을 조금씩 비우고 있었다. 잘 먹는 거 보니 그래도 안심이다.

촬영도 끝났으니 안지호가 마저 다 먹으면 이제 슬슬 이동을···.

“세현 씨.”

그런데 그때, 등 뒤에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신윤우였다.

평소처럼 살살 웃는 얼굴에.

“오늘 고생 많았어요. 내가 또 오늘 깜짝 놀랐다니까요? 세현 씨가 눈치는 빠른 줄 알고 있었는데, 몸도 빠를 줄이야.”

“감사합니다.”

“오늘 아주 귀중한 정보 얻었어요.”

그렇게 신윤우가 입꼬리를 올렸다.

정보건 뭐건 알 바 아니었다.

얻어가려면 마음껏 얻어가라지.

“역시 그때 보자마자 바로 쐈었어야 하는 거였는데. 아직도 그게 한이라니까요.”

“네. 그러셨겠네요.”

“아, 물론 첫 번째 말고 두 번째요. 내가 또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머리 말고 몸통에 쐈을 거란 이야기를 친절하게 덧붙이고 있었다. 머리에 총을 겨눠놓고 잘도 하는 말이었다.

“어, 그런데 세현 씨가 만든 떡국이 그렇게 맛있다던데. 왠지 좀 궁금하네요. 어디 나도 한번···.”

“죄송하지만 아마 지금 가도 없을 겁니다. 얼마 안 남았거든요.”

“아, 그런가요? 그거 엄청 아쉽네요.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이것도 정보로 살짝 넣으려고 했죠.”

신윤우가 정말로 안타깝다는 양 말했다. 니 새X 줄 떡국은 없다 이거다. 입으로 들어가는 떡 하나도 아쉬울 판국에.

아니, 먹을 걸로 이러는 건 좀 치사하긴 한데. 어쨌건 신윤우 줄 떡국 따윈 없었다.

“그래도 다음에도 또 방송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오늘 세현 씨 플레이가 엄청 인상 깊었거든요. 그저 눈치만 빠른 줄 알았지.”

뒤이어 신윤우는 또 보자는 석연치 않은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떴다. 다시 생각해도 오늘 가장 잘한 건 저 자식을 아웃시킨 일이다.

“엄청 별론가 보네.”

옆에 있던 안지호가 말했다.

어느새 떡국 그릇이 바닥을 보였다.

“어?”

“신윤우. 너 답지 않게 싫은 티 엄청 내고 있잖아.”

어떻게 알았지.

“대충 이유는 알 것 같고. 그래서 전에 뭔 일 있었는데.”

“···뭐.”

일이 있긴 있었다.

상당히 짜증 나는 일들이.

하지만 그래도 그 어떤 일이 있었어도 그 얘기만 아니었으면 그냥저냥 무시하고 넘어갔을 거다.

‘저 새X가 예전에 형 얘기만 꺼내지 않았어도.’

- 근데 세현 씨는 알아요? 선배님이 왜 갑자기 복귀했는지.

- 거기에 루트가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역시 모른 척 몇 발 더 쏠 걸 그랬다.

* * *

설 특집, 복주머니 서바이벌 촬영이 정말로 끝이 난 뒤로는 그대로 안지호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나섰다.

“세현아, 떡국 정말 맛있었어.”

돌아가기 직전까지 신도하는 내내 떡국 얘기만 했다. 입맛에 맞았다면 다행이지만, 그렇게까지 얘기할 정돈 아닌 것 같은데.

사실 떡국을 만드는 데는 신도하의 도움이 꽤 컸다. 옆에서 보조를 굉장히 잘했다. 굳이 말을 안 해도 척척.

그래서 상당히 편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생일 선물로 받은 화분, 근황 같은 거 알려줘야 하나.’

그러다가 문득 숙소에 있는 화분이 떠올랐다. 핑크 아악무는 여전히 잘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신도하는 화분에 관해서 묻지 않았다. 정말 끝까지 떡국 얘기만 하다가 갔다. 진짜 끝까지 떡국 얘기만.

화분 얘기를 할 새도 없었다. 알고 보니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떡국, 설마 이런 거냐.

“그야 세현이 형 떡국이 엄청 맛있으니까요. 이 형 떡국은 뭔가 달라.”

“그렇지. 우세현 떡국 진짜 맛있지.”

앞선 신하람의 말에 백은찬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떡국 파티를 했다고?”

“어. 떡국 파티였다.”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끝나고 조금 나눠 먹은 것뿐이라고.”

와중에 안지호가 오바해서 말하고 있었다. 파티까진 아니었다. 그냥 나눠 먹은 정도.

“그래서 제가 말했잖아요. 이제 세현이 형 떡국 아니면 못 먹을 것 같다고.”

“세현이 한 귀로 흘린 모양인데?”

“형까지 그러지 마시죠.”

“근데 정말이야. 이제 그 떡국 안 먹으면 좀 허전할 것 같아.”

도운이 형까지 그렇게 말하니 괜히 좀 민망했다. 다음에 더 맛있게 만들라는 뜻으로 새겨듣도록 하자.

“그래서, 세현이 형이 다 죽였다고요?”

“아니, 복주머니를 많이 얻었다고. 그리고 가장 많은 킬(Kill)수를 기록한 건 안지호고.”

“이열, 안지호. 그럴 줄 알았다.”

그런 만큼 분량도 많이 나가지 않을까 예상하는 중이었다. 이왕이면 멋있게도 나왔으면 좋겠군.

“아, 근데 아침에 빵 넣은 사람 누구야?”

“어, 나야.”

차선빈이 대답했다.

“빵 엄청 맛있더라고.”

“그래?”

그러자 표정이 밝아진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진 스티커가 들어 있는 빵이었는데,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었다.

스티커는···별로 안 귀여웠다.

“초코 우유는?”

“그거 니가 넣었냐?”

“엉.”

범인은 백은찬이었구만.

어, 범인은 아니지만.

“좋았어. 근데 숙소에 초코 우유 말고도 있지 않나.”

“있는데, 그냥 내가 초코 우유가 먹고 싶어서 그걸로 함.”

“내 취향을 반영해주면 안 되겠냐.”

“야, 안지호. 초코 괜찮았지?”

“몰라.”

안지호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대답은 저래도 초코 우유는 다 마셨다. 물론 안지호는 흰 우유파긴 했지만.

“나도 뭐 넣을까 했었는데.”

“그럼 도운이 형이 바나나 넣었어요?”

“바나나? 아니. 안 넣었는데. 난 껌 넣었어. 너희 혹시 멀미할까봐.”

“그럼 하람이야?”

“아뇨? 전 사탕 넣었는데요.”

···그럼 바나나는 누가?

그대로 대답 없는 고요함에 순간 숙소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 * *

바나나를 넣은 이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날 우리 가방에 바나나를 넣은 건 다름 아닌 매니저 형이었다.

매니저 형이 자기 먹을 바나나를 가져오면서 우리 것도 몇 개 뜯어왔다고 한다.

“바나나 괴담이 될 뻔했어요.”

“그땐 진짜 분위기 호러였는데.”

백은찬이 그렇게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랬지. 진짜 분위기 호러였다. 아무리 찾아도 바나나를 넣은 사람이 없어서.

어쨌건 범인, 아니 넣은 사람도 찾았고 뭐든 잘 먹었으니 된 거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도운이 형은 사색이 되긴 했지만.

“우세현도 꽤 사색이었지.”

얼굴색이 살짝 변한 것뿐이었다.

살짝 변한 거.

그로부터 몇 주 뒤, 신도하의 신곡 앨범이 발표되었다. 앞서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미니 앨범이었다.

[new] 3. The End of Winter

- 도하 (Doha)

역시 바로 나온 지 1시간 만에 바로 진입이군. 게다가 무려 Top 차트 3위였다. 이 정도의 솔로 화력은 거의 신도하가 원탑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지난번 설 특집 촬영 당시 신도하에게 물었었다. 여기 출연하게 된 이유가 있냐고.

‘물론 방송 출연 제의가 온다면, 웬만해선 수락하는 게 일반적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런 내 질문에 신도하는 이렇게 답했었다.

‘홍보하러. 이제 곧 컴백이잖아.’

다만, 이건 설 특집이니까 설에나 방송이 될 텐데 그러기엔 너무 늦는 거 아닌가. 물론 본인이 그렇다고 답했으니 그냥 그러려니 했다.

오랜만에 컴백이니 신도하도 나름대로 긴장을 하고 있을 수 있는 거고.

- 신도하 이번 노래 개좋다 겨울에 듣기 좋음

- 신도하 이번 곡도 자작곡임? 존나 좋은데 이거

- 미쳤다 신도하 자몽 차트 3위네? 진짜 화력 대박 진입자 수보니 이번에도 머글 엄청 붙은 거 같은데

- 신도하 노래 롱런 할 것 같다 연초에 나왔으니 일단 올해 연간은 확정일 듯

‘좋긴 좋아.’

노래가, 확실히.

앞서 이미 한 번 들었던 거지만, 그럼에도 좋은 건 여전했다. 가사도 그렇고.

- 근데 여기 가사에 회색 우산이라고 하는 거 왠지 루트 생각난다 나만 그런가

└ ㅇㄴㄷ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 왜? 왜 루트 생각이 남?

└└ 루트 상징색이 그레이잖오

└ 헐 그렇게 들으니 진짜 그렇긴 하네 근데 설마 그걸 생각해서 넣었겠음 우연이겠지

‘회색······.’

확실히 그레이가 루트의 상징색이긴 했다. 그렇지만, 그냥 단순히 우연 아닐까 싶었다. 그 밖의 다른 의도도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고.

그리고 정말로 설령 루트라고 해도···.

‘···형은 아마 안 듣겠지.’

그냥 문득 형이 떠올랐다.

‘아, 노래 끝났네.’

어느새 듣고 있던 신도하의 노래가 끝났다. 역시 미니는 곡 수가 적다.

그나저나 그럼 신도하도 음악 방송을 돌려나. 보통 신도하 정도 연차면 대게 1주 정도 돌긴 하던데.

[This Love-]

그 순간, 재생 목록이 넘어가 플레이리스트의 다음 곡이 재생되었다. 흘러나오는 곡은 팝송이었다.

미국의 유명 싱어송 라이터 카일 브라운의 ‘The past’라는 곡이었다.

백은찬에게서 추천받은 곡인데, 발매된 지는 꽤 됐지만 워낙 좋아서 요즘 한창 듣고 있는 노래였다.

“카일 노래, 진짜 좋지 않냐?”

“응. 좋아.”

“올해 나온 곡도 좋았는데. 그건 앨범도 엄청 팔렸다고 하더라.”

백은찬이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백은찬이 말한 대로 카일은 올해 다시 한번 대박이 났다. 앨범 판매량이 얼마라고 했더라, 분명 3자리 수였던 것 같은데.

아무튼 그 수가 상당했다.

최근에 발매한 곡은 자몽 차트에서 상위권을 지킬 정도로 인지도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카일도 요즘 한창 투어 중이라고 하던데. 아시아도 분명 투어 일정에 있었지.

투어라고 하니 우리 투어 역시 이제 완전한 끝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윈썸에게 남은 월드 투어 일정은 도쿄를 포함한 일본 투어뿐.

일본 투어까지 마치고 나면, 이제 공식적으로 첫 번째 투어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아쉽다.’

이제 당분간 무대가 없을 거라 생각하니. 분명 많은 나라를 돌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더 잘했으면 좋았을 걸 하고.

그리고 그러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며칠 뒤, 마지막 투어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멤버들과 함께 일본으로 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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