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화. 설을 맞이했습니다.
오랜만의 숙면이었다.
그날만큼은 정말로 꿈도 꾸지 않은 채 잠을 잤다. 은은하게 나는 캔들의 향도, 아마도 이어서 들렸을 노래들도 다 좋았다.
“숙면 세트가 따로 없었어.”
“뭐?”
“푹 잤어.”
“그래?”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일어난 건지 아침에 눈을 뜨자 곧바로 일어나 있는 백은찬이 보였다.
“어제 나 잠들고 바로 자러 갔어?”
“엉. 생각보다 빨리 잠들더라.”
“숙면 세트가 효과가 좋았어.”
“당연하지. 그거 내가 다 완전 엄선해서 고른 것들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백은찬은 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제 평소보다 더 팔팔한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보니 얼굴도 반질반질하다.
“왜냐면 나도 어제 푹 잤거든. 캔들이 효과가 엄청 좋더라고? 거의 기절했다, 기절.”
아, 그런 거였군.
어쩐지 얼굴이 반질반질하다 했다.
“형들, 일어났···아니 둘 다 왜 이렇게 얼굴이 반질반질해요?”
“푹 잤어?”
도운이 형이 조금 놀란 듯한 얼굴로 말했다. 어, 뭐야. 나도 좀 부은 건가.
“부었다기보단 반질반질해.”
“그게 그 말 아니야?”
“그래도 반질반질하단 표현이 더 낫지 않냐? 오, 안지호. 빵 먹냐?”
주방 식탁에서 빵을 먹고 있는 안지호를 향해 그대로 백은찬이 달려갔다. 그나마 오늘 스케줄이 없어서 다행이다. 얼굴이 너무 부었다.
그리고 백은찬의 숙면 세트는 정말로 효과가 좋았던 건지 그 이후로 부작용이 일어나는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러다 보니 불면증도 자연스럽게 나아지기 시작했고. 컨디션도 괜찮아졌다.
“우세현, 요즘은 안 먹네.”
“뭘?”
“아메리카노.”
안지호가 말했다.
잠을 잘 수 있게 되면서 가장 먼저 끊은 건 역시나 아메리카노였다. 솔직히 그간 익숙해진 것뿐이지 맛으로 먹은 건 아니었기에.
“근데 조금 걱정했어.”
차선빈이 나를 보며 말했다.
“왜?”
“아메리카노 먹는 거. 원래 전혀 안 마시잖아.”
“맞아요. 솔직히 저도 걱정했어요. 게다가 근래 계속 졸려 보이고. 그래서 이 형이 저녁에 따로 연습이라도 하나 했다니까요.”
음,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저녁에 연습하는 거.
마침 투어도 끝났겠다 괜찮을 것 같았다.
“정말로 밤에 연습할 생각 말고.”
“왜?”
“넌 한번 시작하면 적당히를 모르니까. 할 거면 시간 정해서 해.”
“할 거면 같이 하자, 세현아.”
“선빈이도 모르기는 마찬가진데.”
그렇게 도운이형과 백은찬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 아닌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 쉴 것까지야.
“근데 진짜 세현이 형이 다시 카라멜 마끼야또 먹으니까 왜 이렇게 좋지? 형, 이제부터 무조건 마끼야또만 먹어요!”
“어, 가끔은 다른 걸 먹고 싶을 때도···.”
“다른 건 무슨. 매일 그것만 먹잖아. 얘랑 딸기 라떼 먹는 거 말고는.”
안지호가 그대로 차선빈을 고갯짓했다.
그랬었나.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건 이제는 다시 마끼야또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리고 그 사이, 놀랄 만한 사실 한 가지가 전해졌다. 그건 바로 미국 스포티X이 주간 차트에 ‘Dreaming’이 진입했다는 소식이었다.
[- 30. Dreaming]
30위였다.
진입 45위에서, 30위까지 치솟았다.
솔직히 말해서 주간까지 들 줄은 전혀 예상 못했다.
이전엔 일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 윈썸 스포X 차트 주간 들었어? 대박 노래가 좋긴 했는데 엄청 잘 나왔다
└ 주간이면 진짜 대단한 건데 이러다가 핫백에도 드는 거 아님?
└└ ㅋㅋ아무리 그래도 핫백은 뭔 핫백
└└ ㅇㅈ 핫백은 무슨 200도 아직 1위 못했는데
└└└ 걍 ㅅㅊ한 건데 줄줄이 초치네
우리 노래가 좋긴 했다.
멤버들 목소리가 좋은 덕분이다.
“아, 맞다. 다들 설 때 집에 가?”
“전 일단 가요.”
신하람이 그대로 앞에 있던 빵 하나를 가져가 먹었다. 이번 돌아오는 설에는 예정된 스케줄이 없었다.
마침 설 전에 투어도 끝났고, 콜라보 음원 홍보 일정도 설 전에 마무리가 될 예정이니까.
그래서 하루에서 이틀 정도는 모처럼 본가에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하람이는 그럼 내려가는 거야?”
“다른 가족들은 그럴 것 같긴 한데, 전 좀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워낙 멀어서.”
“작년에 하람이 어머니가 곶감도 한 박스 주셨잖아.”
“그거 엄청 맛있었는데. 한동안 밥 먹고 후식으로 맨날 그것만 먹었었잖아.”
작년 추석쯤엔 큰 집으로 내려간 하람이가 곶감 몇 박스를 가지고 왔었다. 처음엔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싶었는데, 생각보다 금방 비워졌다.
“신하민이 맛있다고 아주 강조를 해서.”
“아, 하민 누나는 내려가겠네?”
“그렇죠. 안 그래도 멀다고 힘들다고 난리예요.”
하민 누나는 하람이의 친누나였다.
나이 차가 3살 정도 나서 해가 바뀌었으니 올해 23살일 터였다. 하람이랑 꽤 얼굴이 닮았다.
“안 닮았어요, 전혀 안 닮았어.”
“닮았는데.”
“내가 더 낫죠! 그리고 닮은 걸로 치면 선빈이 형네가 더 닮지 않았어요?”
“아, 차선빈. 차선빈네 닮았지.”
차선빈네도 확실히 닮긴 닮았다.
차선빈에게는 형이 한 명 있었는데, 그 형도 엄청 잘생겼다.
“그런가?”
“응. 분위기도 닮은 거 같아.”
“난 잘 모르겠어서.”
아무튼 둘 다 잘생겼다.
엄청 잘생겼다.
하지만 듣기로는 형은 그냥 평범하게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 같았다.
“형님이랑 우세현도 닮았잖아.”
“뭐? 어, 안 닮지 않았나?”
“붕어빵마냥 닮은 건 아닌데, 뭔가 분위기가 닮았어요.”
사실 분위기 얘기는 좀 들어보긴 했는데, 솔직히 안 닮았다는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형이 루트 활동을 할 때도 의심받지 않았던 거고.
“세현아, 넌 집에 가?”
“응. 갈 것 같아.”
“근데 다 가지 않나? 안 가는 사람 있어?”
그러한 백은찬의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번 설엔 멤버 모두 본가에 간다.
‘그리고 이번 설엔 형도 온다고 했고.’
형도 시간이 맞았는지 다행히 이번 설 연휴엔 본가에 들릴 수 있다고 했다. 전에 말한 영화도 아직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 같았고.
‘명절에 모이는 건 오랜만이네.’
이렇게 명절에 가족들이 다 모이는 건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까마득할 정도였다.
그나마 가장 최근에 모인 건 콘서트 때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건 끝나고 백스테이지에서 잠깐 본 거에 불과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다가온 설.
멤버들은 하나둘 씩 본가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백은찬.”
“엉?”
“혹시 올해도 외가에 가?”
혹시나 외가에 가게 되면, 분명 예정보다 일찍 올 터였다. 그럼 자연스럽게 혼자 숙소를 지킬 테고.
“왜?”
“너 혹시 빨리 오면 나도 좀 일찍 오려고.”
숙소에 혼자 있는 것보단 적어도 둘이 있는 게 나으니까.
“난 혼자 있는 거 괜찮은뎁.”
“···괜찮다고?”
“농담이야. 빨리 안 와. 올해엔 외가에 안 가거든. 가족끼리만 보내기로 했어.”
백은찬이 그렇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거라면 다행이다.
“아, 근데 나 좀 감동인데. 이번 설엔 형님도 오신다고 하지 않았어?”
“응. 와.”
“하, 그런데도 빨리 온다고? 아, 나 진짜 너무 감동. 내가 진짜 동생을 잘 키웠다!”
동생 아니고, 이틀 자고 올 거 하루 자고 온다는 말이었거든. 어차피 형도 그렇게 오래 못 있을 테니까.
“그래도 혹시 빨리 오게 되면 말해라.”
“아이, 알겠다니까~ 내가 진짜 동생을···.”
그대로 백은찬의 주둥이를 막았다.
아무튼 오바하긴.
그래도 그때와 달리 꽤 신나 하는 걸 보면, 정말로 올해엔 외가에 가지 않는 모양이다.
“세현아!”
“저 왔어요.”
“아이고, 우리 아들!”
본가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의 격렬한 환영이 있었다. 그간 연락을 자주 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투어 때문에 얼굴을 보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형은요?”
“도현이도 당연히 와 있지. 거실에 있어. 배는 안 고파?”
“조금요.”
“기다려. 저녁 바로 먹자.”
엄마는 그렇게 싱글벙글이셨다.
그런 엄마를 돕던 아버지 역시 싱글벙글.
“왔어?”
그리고 나도 싱글벙글.
거실에 가니 곧바로 소파에 앉아 있는 형이 보였다.
“왜 그렇게 신이 났어?”
“오랜만에 집에서 밥 먹는 거잖아.”
형이 그런 나를 보며 피식 한 번 웃었다. 맛있는 엄마밥도 먹고, 가족이 다 모였고. 신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벌써 21살이네.”
“어? 뭐가?”
“너. 벌써 21살이라고.”
형이 갈비찜을 먹으며 말했다.
새해 된 지가 언젠데. 새삼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엄마도 안 믿겨. 우리 세현이가 벌써 21살이라니. 엄마 눈엔 아직 애긴데.”
“그러니까. 어렸을 땐 도현이 옆에 그렇게 붙어 다녔는데. 사진도 도현이랑 찍겠다고 맨날 붙어서 찍었잖아.”
“예전에 형이랑 친구 되겠다고 떡국 아홉 그릇 먹겠다고 그러기도 했잖아요.”
“결국 내가 말려서 아홉 그릇은 먹지도 못했고요. 두 그릇 겨우 먹었나?”
형이 그렇게 웃으며 말했다. 다들 언제적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엄마나 아버지나 무슨 20년 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올해는 꼭 한 그릇만 먹어라.”
“당연하지. 그것보다 형도 이제 서른이네.”
“그렇지. 서른이지. 그래도 만으로는 아직 28살이야.”
“이제 곧 그것도 바뀌지 않아? 형, 생일 곧이잖아.”
“아, 그래. 그러고 보니 그렇네.”
형이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형 생일은 2월 28일.
겨울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러면서 항상 엄마가 하시던 말씀이 하루만 더 늦게 태어났어도 29일을 생일로 맞이할 뻔했다고.
그해 겨울에는 2월이 29일까지 있었다고 하기에. 하마터면 4년에 한 번씩 생일을 맞이할 뻔했다.
“형, 뭐 갖고 싶은 건 없어?”
“갖고 싶은 거라. 딱히 없는데.”
“뭐라도 좀 생각해봐. 그래도 생일인데.”
“어, 그럼 손 편지?”
“너무 뻔뻔한 얼굴로 말하는데.”
저번부터 왜 이렇게 손 편지에 집착하는 건지. 이러고 진짜로 써주면 실제로는 그다지 감흥 있어 하지 않을 게 뻔했다.
“다른 거 필요 없고, 그냥 시간이 내.”
“시간?”
“28일날. 나중에 스케줄표 확인해서 빈 시간 말해.”
“오후에 없어. 그날은.”
“벌써 확인했어?”
“응.”
그날은 이미 며칠 전부터 확인의 확인을 했다. 그러자 형이 다시금 나를 보며 한번 웃었다.
“형이야말로 스케줄 관리 잘해.”
“나는 언제나 잘하지.”
그렇게 말하던 형의 얼굴엔 여전히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엔 그대로 방에 엎어져 있었다. 오랜만에 오는 내 방이었다. 올 때마다 변한 게 없었다.
“야, 세현아. 나와 봐.”
그러던 도중, 형이 갑작스럽게 불렀다.
사실 귀찮아서 무시하고 그대로 엎어져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형이 직접 방문을 열고 난입했다.
“왜 불렀는데?”
“이제 그거 해.”
“뭐가 하는데?”
“복주머니를 찾아라.”
“···뭐?”
복주머니를 찾아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제목···.
“아.”
기억났다.
지난번 설날 특집으로 찍었던 그 프로.
안지호와 같이 서바이벌을 했던 그 프로였다.
근데 잠깐만, 그 프로면···.
“얼른 나와. 같이 보게.”
그렇게 형이 나를 향해 고개를 한번 까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