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물어볼 게 있어서요
하영수는 지금, 상당히 초조한 모습으로 사내 빈 컨퍼런스 룸 한 가운데 홀로 앉아 있었다.
‘···설마, 진짜로 찾아내는 건 아니겠지.’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는 지금 상당히 초조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지금 가장 초조하게 만드는 건 역시나 앞선 정서준 이사의 말이었다.
최초 유포자를 잡아 그에 대한 합당한 책임을 물겠다는 그 말. 꽤나 힘주어 말했던 그 말이 신경 쓰여 미칠 지경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회사에서 그렇게 나올 줄 몰랐다.
추후 발매될 곡이나 뮤직비디오를 유출시킨 사항도 아니고, 이 정도면 그냥 유야무야 넘어가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야. 그것도 그냥 하는 말이겠지.’
애초에 해당 자체 컨텐츠 촬영에 참여한 사람만 해도 수십 명에 달한다. 거기엔 외부 관계자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만큼 최초 유포자가 누구인지 그리 쉽게 찾을 순 없을 거라 그는 확신했다.
그 말을 하던 정서준 이사의 표정이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으나, 그 양반도 그냥 형식으로 한 말에 불과할 것이다.
대개 이사란 사람들이 그렇듯, 윗자리에 앉아 귀찮은 일은 아래에 떠넘긴 채 강 건너 불구경. 모르쇠로 일관할 게 뻔했다.
그렇게 하영수는 스스로를 달랬다.
‘사진은···거의 내려갔군.’
인터넷에 떠돌던 유출 사진은 현재 상당수 사라져 있었다. 회사가 본격적으로 움직인 덕이었다.
‘이럴 때만 X나 빨라요.’
그와 동시에 하영수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사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내심 통쾌했다.
‘애새X들 고생 좀 하라지.’
윈썸 멤버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떠올리니 그대로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가 이렇게 사진 유출한 이유는 단순했다. 윈썸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해서.
지난번 윈썸의 자체 컨텐츠 촬영이 끝난 이후, 하영수는 곧바로 매니지먼트 실장에게 불려갔다.
그리고 쏟아지는 불호령.
- 촬영장에서 흡연했다던데, 제정신이야?
- 아, 아니···그게···.
- 영수 씨, 앞으로 운전은 좀 조심하도록 해요. 애들 말로는 꽤 위험 운전을 했다던데, 그러다가 아티스트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 납니다.
- ···죄송합니다.
실장의 불호령뿐만이 아니었다.
사수에게까지 제대로 경고를 먹었다.
자신이 한 거라곤 그저 쉬는 시간에 담배 하나를 피우려던 게 다인데 어느새 제대로 찍혀 있었다.
‘그새 쪼르르 꼰질러? 이 새X들이!’
끓어오르는 화가 주체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허공에 그대로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억울했다.
자신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자신만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더불어 마찬가지로 윈썸에게도 제대로 한번 엿을 먹이고 싶었다.
그와 동시에 하영수는 앞서 멤버들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자신들의 작업실과 관련해 했던 이런저런 얘기들.
그 작업실은 분명 한동안 비공개로 할 거라 들은 바가 있었다.
‘···그거, 찍어서 올려볼까?’
그렇게 유출이 시작되었다.
* * *
처음 유출을 했을 때부터 반응은 그가 생각했던 이상이었다. 퍼지는 속도, 달리는 댓글 등 상상 이상의 파장이었다.
그리고 하영수는 그러한 반응에서부터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히 엿을 먹이고자 시작했지만, 새롭게 재미 또한 느끼게 되었다.
‘너희는 모르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러한 우월감에서부터 오는 재미.
자신이 올린 사진 한 장에 커뮤니티고 SNS가 온통 뒤집히는 재미.
그것은 마치 수많은 사람들 위에 자신이 군림하고 앉아 있는 것 같은, 그런 쾌감을 주었다.
‘애새X들이 유명하긴 유명해.’
그저 윈썸과 관련된 거라 하면 여기저기서 물밀듯이 관심을 갖고 몰려온다.
처음엔 그저 충동으로 시작했던 일이, 이제는 그 안에서 상당한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지난 사진들은 좀 지워둘까.’
그가 찍었던 작업실이나 자체 컨텐츠 사진들. 해당 사진들이 아직까지 하영수의 휴대폰 사진 앨범 안에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거 후에 발목을 잡게 될지도 모르는 것들은 한시라도 빨리 지우는 게 나을 듯했다.
‘찾았다.’
그리고 이내 지난 사진들을 찾은 하영수는 사진을 삭제하기 전, 다시 한번 이를 확인했다.
‘좋아.’
확인을 마친 하영수는 그대로 화면 속 [삭제] 버튼을 향해 손가락을 올렸다.
그런데 그때.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가 있던 컨퍼런스 룸의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눈앞으로 보이는 인물에 하영수는 놀란 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 계셨네요, 형.”
* * *
“어디 계신지 몰라서 한참 찾았네요.”
방금 전,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윈썸 세현이었다.
그리고 그런 우세현의 예상치 못한 방문에 하영수는 지금, 한껏 당황해하고 있었다.
‘이 자식이 왜 여기 있는 거지. 지금은 레슨인가 뭔가 하는 시간 아니었나.’
제가 알고 있는 스케줄로는 분명 우세현은 오늘 회사에서 보컬 레슨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우세현은 보컬 레슨실이 아닌 이렇게 제 눈앞에 서 있었다.
“형한테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요.”
“아, 그래?”
일단 하영수는 들고 있던 폰을 조용히 제 안 주머니에 넣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무렇지 않게.
“근데 여기서 혼자 뭐 하고 계셨어요?”
“어, 그냥 좀. 앞으로 스케줄 좀 확인했지. 피디님하고 통화도 좀 하고.”
“아, 네.”
그리고 다시 침묵이 일었다.
컨퍼런스 룸 내부는 그대로 아무 소음도 없이 고요했다.
‘뭐지.’
이상하게 긴장됐다.
분명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들켜선 안 되는 걸 들킨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 새X···눈치 빠르니까.’
윈썸의 매니저 대행을 맡게 된 지 약 5일이 지난 시점. 그 과정에서 심영수는 멤버들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있었다. 우세현은 눈치가 X나 빠르다는 거.
속된 말로 눈치가 빠르고, 분위기를 읽는데 탁월했다. 그 사실을 하영수는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니 얘는 조심해야 해.’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우세현 앞에선 작은 행동 하나도 조심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유출자라는 걸 절대 알지 못하게. 아니, 알 리가 없지.’
그렇게 하영수는 최대한 의연하게 행동하려 노력했다.
“그러고 보니 형.”
“어, 왜?”
그 순간, 침묵 속에 우세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차분한 어조였다.
“이번 유출 건이요.”
유출이라는 단어에 순간 하영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표정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함을 유지했다.
“어, 그래. 유출.”
“그거 아무래도 이사님께서 단단히 벼르고 계신 것 같더라고요.”
“아, 그래?”
“네. 이대로 넘어가실 생각은 없다고. 확실히 못 박으시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정말 다행인 것 같아요.”
“그래. 그렇지. 다행이지···.”
젠장, 다행은 무슨 다행!
설마 이후에 윈썸을 따로 불러 다시 얘기한 건가?
그렇다면 상황이 정말 좋지 않았다.
역시 사진을 빨리 지워야 할 것 같았다.
“근데 한 편으론 좀 걱정되기도 해요.”
“어? 걱정?”
“네. 그대로 유출범이 밝혀지고 그게 만약 꽤 가까운 사람이었다면, 좀 씁쓸할 것 같아서요.”
동시에 우세현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반면, 하영수는 그대로 마른침을 삼켰다.
앞선 그 말은 다시 말해 유출범이 가까운 내부 사람일 지도 모른다는 걸 전제로 두고 있다는 말이었다.
‘의외로 가차 없잖아.’
그건 다시 말해 주변에서 함께 일하는, 가까이서 일하는 동료를 의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보통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 자주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일수록 용의선상에서 가장 먼저 제외하고 나선다.
그만큼 신뢰가 있으니까.
여기엔 아니길 바라는 희망 심리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보통은 그렇다.
‘무서운 새X···.’
어린 새X가 의외로 가차 없다.
하영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한 가지 의문인 건, 왜 작업실 사진을 올린 건지예요.”
“···그게 왜?”
“보통은 더 중요한 컨텐츠부터 올리잖아요. 곡이나 컨포, 뭐 그런 거요. 물론 컨텐츠도 그렇긴 하죠. 그런데 굳이 작업실 사진을 올린 거 보면···특별한 이유나 있나 싶기도 하더라고요.”
그 말에 하영수는 다시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솔직히 말해서 작업실 사진은 다른 것보다 엿 먹으라는 의미가 컸다.
멤버들이 꽁꽁 숨겨두었던 걸 먼저 공개적으로 오픈하면, 제대로 엿을 먹일 수 있을 테니까.
“유출범에게 특별한 이유 같은 게 뭐가 있겠어···. 그냥 이것저것 올린 거겠지.”
“맞아요. 그렇겠죠.”
이에 하영수는 애써 태연한 척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우세현은 그저 그런 하영수를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이 새X, 왜 쳐다보는 거야?
“근데 난 왜 찾았어? 물어볼 거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 맞아요. 형.”
그제서야 우세현이 떠올랐다는 듯 반응했다. 지금 하영수의 입장에선 어떻게서든 화제를 돌리는 게 급선무였다.
이대로 계속 있다간 정말로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기에.
“지난번에 모니터링하면서 찍으신 사진 있잖아요. 광고 촬영 때 찍었던 사진이요.”
“어. 그래. 그거.”
일전에 광고 촬영에 갔을 당시 모니터링 겸해서 찍는 사진. 떠오르는 그 사진에 하영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혹시 지금 볼 수 있나 해서요.”
“뭐?”
그 순간, 당황한 하영수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사진? 모니터링 사진?
“갑자기 떠올라서요. 그때 찍어두기만 하고 제대로 보질 못했잖아요. 생각난 김에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아, 그래. 그랬었지···.”
“네. 그러니 지금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우세현이 하영수를 향해 살짝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러한 우세현의 미소에도 하영수는 여전히 당황하고 있었다.
보여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모니터링 사진 같은 거.
그걸 보여준다는 건 결국 자신의 휴대폰 사진첩을 보여준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지금, 꼭 봐야 하는 거야?”
“네. 지금 보고 싶어서요.”
“···그거라면 그냥 내가 나중에 톡으로 보내줄게. 양이···좀 되거든.”
“양 많으면 역시 그냥 제가 볼게요. 그편이 일일이 보내시는 것보다 편할 것 같은데.”
젠장, 뭘 자꾸 본대!
앞선 변명에도 우세현은 여전히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아냐. 역시 그냥 보내줄게.”
“형.”
“···어?”
“보여주기 싫은 거, 있어요?”
정곡을 찔렸다.
그리고 정곡을 찌르는 그 말에 하영수는 잠시 보이지 않게 숨을 멈췄다.
“무슨 말이야? 보여주기 싫은 거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하지만 여기선 절대 당황한 티를 내선 안 됐다. 그건 곧 긍정을 의미하는 거였으니까. 그렇게 그는 다시금 태연한 얼굴을 보였다.
“너무 꺼려하길래 혹시나 해서요. 혹시 보여주면 좀 곤란해지는 그런 거요.”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을 리가···.”
“예를 들면, 유출 사진.”
그 순간, 우세현과 하영수의 시선이 얽혔다.
“그런 거요.”
그 순간, 하영수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