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화. 유명 아이돌은 신기하네요
“도현 씨.”
등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우도현은 그렇게 뒤돌아 상대를 확인했다.
같은 출연 배우인 최성윤이었다.
“반갑습니다. 최성윤이에요.”
“우도현입니다.”
대본 리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최성윤은 우도현을 향해 먼저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최성윤은 요즘 한창 라이징 하고 있는 27세의 남자 배우였다.
그는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쏘아 올린 날개>에서 비록 작은 역에 불과했지만 나름 소소하게 주목을 받았다.
“저 어렸을 때 루트 완전 팬이었는데. 이렇게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루트 정말 저희 또래들 사이에서도 유명했어요. 루트 노래를 모르는 애들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동시에 최성윤이 우도현을 향해 사람 좋은 미소를 보였다.
‘또래들 사이에서도라.’
그건 마치 자신의 세대와 우도현의 세대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한 말투였다.
마치 자신이 더 어리다는 것을 애써 강조하는 듯한.
실질적으로 우도현과 최성윤의 나이 차이는 3살 차이에 불과했다.
데뷔 당시 우도현의 나이가 17살이었으니 그 당시 최성윤의 나이는 14살. 중학교 1학년의 나이다.
그게 세대를 분간할 만한 나이였던가.
최성윤은 아직 20대인 만큼 현장에서 막내였다. 그러니 최성윤이 어린 것은 현장에 있던 누구나 이미 아는 사실이었다.
‘그게 좋은 모양이군.’
그럼에도 자신이 어리단 사실을 굳이 이렇게 강조해서 언급하는 걸 보면, 그 사실이 꽤나 좋은 모양이었다.
그와 동시에 최성윤의 시선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최성윤은 그렇게 찰나의 순간 우도현을 위아래로 빠르게 흘겼다.
“근데 얼굴도 잘생기셨지만, 생각보다 키가 있으시네요. 아이돌분들 중에 이렇게 크신 분은 잘 못 본 것 같은데.”
최성윤은 상당히 의외라는 듯 말했다.
이에 우도현은 최성윤이 진짜로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대충 눈치를 챘다.
아이돌치고는 참 키가 크다.
그런 걸 말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키가 크다는 게 아니었다.
아이돌치고는 이지.
“요즘 아이돌분들은 대부분 크죠. 그런 의미에서 저도 딱히 큰 키는 아닙니다.”
“그런가요? 제가 아이돌분들은 거의 만나 뵌 적이 없어서요.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유명한 아이돌을 직접 보니 신기하네요.”
그리고 그런 최성윤의 시선은 여전히 우도현에게로 향해 있었다. 동시에 우도현을 향해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도현 씨 옆에 설 때면 뭐라도 더 넣어야 할까 봐요. 그래도 배우끼리 비슷해 보이는 게 좋잖아요.”
“네. 그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그러자 이를 듣던 최성윤이 표정이 ‘응?’하는 얼굴로 바뀌었다. 마치 본인이 뭔가를 잘못 들은 건 아닌가 하는 모습이었다.
앞서 한 말은 그저 우스갯소리로 한 말에 불과했다. 애초에 깔창 같은 거 넣을 생각 전혀 없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돌아올 답변은 당연히 ‘아뇨, 성윤 씨도 키가 크신대요.’로 정해져 있었다.
최성윤은 우도현보다는 작았지만, 통상적으로 그렇게 작은 키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런 최성윤의 생각과 달리 돌아온 대답은 아주 다른 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답에 쐐기를 박듯 우도현은 그대로 최성윤은 향해 한 번 더 말했다.
“앞으로 촬영 때마다 깔창 꼭 챙기세요.”
누가 봐도 잘생긴 미소를 지으며.
* * *
방금전, 깔창 발언을 들은 최성윤은 그대로 한껏 얼 탄 얼굴을 하더니 결국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돌아섰다.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드나 보군.’
최성윤이 자신에게 그다지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당장 오늘 처음 보는 사이에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을 보이는 건, 아마 자신이 과거 아이돌이었던 사실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굳이 아이돌, 아이돌 거리는 것부터가 그랬다. 무엇보다 최성윤은 이전 대화 속에서 우도현을 한 번도 선배라 칭하지 않았다.
가끔씩 그런 사람들이 있다.
아이돌이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아니꼬운 것이다.
아이돌이 감히 배역 하나를 차지하고, 배우인 척 진짜 배우인 자신과 연기를 한다는 게.
벌써부터 콧대가 하늘을 찔렀다.
최성윤은 연기를 시작한 지 이제 막 3년 차. 그럼에도 벌써부터 자신이 배우라는 것에 상당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지만 우도현으로선 그런 시선 따윈 넘겨버리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한두 번 받아본 것도 아니었다.
데뷔 후, 맨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한결같았던 시선이다.
제아무리 배역을 훌륭히 소화해내고, 실수 없는 연기를 하더라도 그건 절대 사라지지 않는 일종의 절댓값과 같았다.
아이돌치고 괜찮게 연기.
아이돌치고 준수한 연기력.
그래봤자 결국 아이돌.
그것이 매번 우도현에게 주어지는 평가 중 하나였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함없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시선이다.
“도현 씨, 반가워요. 작가 서남은이에요.”
“안녕하세요, 작가님.”
“<시간 감지자> 잘 봤어요. 너무 멋있더라고요.”
“감사합니다.”
물론 이전에 비하면, 그러한 시선도 많이 누그러진 편이었다.
루트 우도현이라는 이름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가장 뚜렷하게 각인된 것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연기자 우도현 역시 서서히 각인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정말로 깔창을 낄지도 모르겠군.’
자존심이 꽤 센 것 같아 보였다.
그러니 비교당하지 않기 위해서 실제로 낄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다.
근데 뭐,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제가 더 잘생겼다.
“안녕하세요, 문은후 역의 우도현입니다.”
그리고 시작된 대본 리딩.
그렇게 자신에게 오는 수많은 시선 속에는 꽤 여러 시선들이 공존했다.
당연하게도 아니꼬운 시선을 보내는 최성윤과 같은 인물들도 몇몇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유독 불편한 듯 다가오는 시선이 하나 있었다.
‘감독.’
그것은 바로 김정현 감독의 시선이었다.
* * *
영화, <가족>의 주요 인물들이라 할 수 있는 가족 구성원은 모두 6명이었다.
판사인 60대 아버지, 변호사인 50대 어머니, 마찬가지로 변호사인 40대 첫째 아들, 검사인 30대 둘째 딸, 변호사인 30대 셋째 아들, 마지막으로 펜싱 선수인 20대 막내아들이다.
이중 극 중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인물이 바로 변호사인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정체 모를 인물에게 살해당한 이후,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두 모여 해당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는 게 주요 스토리였다.
이에 주연의 범위는 가족 구성원 모두라 할 수 있으나 그중에서도 확고한 주연은 바로 첫째 아들이었다.
첫째 아들, 그러니까 장남 ‘문은석’ 역을 맡은 배우는 40대 중년 배우인 권무혁이었다.
권무혁은 드라마보다는 영화 쪽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로, 꽤나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권무혁이 맡은 ‘문은석’이라는 배역은 장남이지만, 책임감이 부족하고 귀찮음 많은 성격의 국선 전문 변호사였다.
“자, 바로 다음씬 들어갑니다.”
그리고 지금 찍는 이 씬(Scene)은 어머니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막내 문은후가 집으로 찾아와 장남인 문은석과 대면하는 장면이었다.
“하이-큐!”
방에 앉아 서로를 대면하고 있는 두 사람. 그중에서도 문은후는 상당히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떻게 나만 몰라?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거. 왜 나한텐 연락 안 했어?”
“흥분하지 마.”
“형 같으면 이 상황에서 흥분 안 하겠어!? 아무리 내놓은 자식이라고 해도 어떻게 아버지가 나한테···!”
“내놓은 자식이니까.”
“···뭐?”
“니 말대로 넌 내놓은 자식이니까 말씀 안 하신 거다. 할 필요가 없던 거지.”
문은석이 덤덤하고도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마치 그게 무슨 큰일인 마냥.
막내인 문은후는 철저하게 내놓은 자식에 불과했다. 법조인이 아닌 가족 구성원은 필요 없다는 그의 아버지에 의해.
그렇기에 지난 십수 년간, 정확히는 문은후가 펜싱의 길에 들어서게 된 이후. 그는 철저하게 없는 자식이나 마찬가지인 취급을 받아왔다.
그리고 앞선 말을 들은 문은후의 눈이 그대로 조금 커지며, 동공이 떨렸다. 뭐라 말을 할 수 없는, 상당히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잘해. 확실히 잘해.’
그리고 이를 보던 김정현 감독은 카메라 밖에서 조용히 감탄하고 있었다.
듣던 대로 우도현은 정말 연기를 잘했다.
그간 대본 리딩이나 다른 매체 등을 통해 우도현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긴 했으나 그것과 실제는 확실히 달랐다.
정확한 딕션과 어색함 하나 없는 깔끔하고 적절한 감정 표현. 여기에 지켜보는 이까지 빨려 들어가게 만들 것 같은 몰입감.
대선배인 권무혁과 연기를 하면서도 전혀 밀리거나 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의 연기는 그렇게 치우침이 없었다.
“컷!”
“자, 다음 컷 준비하겠습니다.”
하지만 김정현 감독은 자신의 그러한 속내를 내비치지 않았다. 그러기엔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김정현 감독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은 채 그저 덤덤하게 촬영을 이어갔다.
“도현 씨는 정말 아이돌 출신 같지 않게 연기를 잘하네요.”
정해진 컷을 마친 뒤, 그렇게 우도현이 대기실에 돌아가려 할 때쯤 김정현 감독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사실 말을 걸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앞선 말은 저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그간 우도현의 촬영분을 보다 보니 그렇게 나왔다.
“솔직히 말해서 좀 놀랐어요. 어느 정도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이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 난 그냥 최성윤보다 조금 나은 정도인 줄 알았지.”
최성윤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
그건 평가가 박해도 너무 박한 게 아닌가 했다.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나.
“압니다. 저도.”
“예?”
“연기 잘하는 거요. 저도 잘 알고 있죠.”
그렇게 우도현은 김정현 감독을 향해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자신이 연기를 잘한다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여기에 최성윤보다 잘한다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최성윤과 비교되는 건 상당히 별로였지만, 결국 아니라는 걸 알았다니 됐다.
거기에 김정현 감독이 우도현에게 이렇게 사적으로 말을 거는 건 촬영이 시작된 이후에 처음이었다.
그게 연기력 칭찬이라.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우도현의 말에 김정현 감독은 처음엔 조금 황당해하면서도 시간이 지나자 이내 허허실실 웃기 시작했다.
당연한 듯, 자신감 있게 말하는 그 모습이 김정현 감독의 마음에 들었다.
“허허. 그래요, 알고 있다니 다행이네. 아, 그렇다면 최성윤 씨랑 비교한 건 좀 그랬겠네요.”
“원래 감상이란 건 주관적인 거니까요.”
“나처럼 오해하는 사람들이 그간 꽤 있었을 것 같은데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겠어요.”
아이돌이니 그럭저럭 연기하겠다는 선입견이나 편견.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지금까지도 우도현을 따라다니는 그것.
하지만 그에 대한 우도현의 답은 명확했다.
“아뇨, 그런 건 전혀 없었습니다.”
“어? 그래요?”
“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을 원망하거나 억울해한 적은 없었다.
자신은 아이돌이 맞았기에.
지금은 그렇지 않았지만, 아이돌이었던 당시에도 그런 시선들 따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자신이 아이돌이었던 걸, 루트였던 것을 부정하거나 후회한 적은 없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같은 생각이었다.
아이돌이건 배우건 간에 우도현은 그저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두 사이의 어떠한 경계가 있던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굳이 아이돌 이미지를 탈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는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
굳이 떼지 않아도 된다.
그저 제가 선택한 배역을 그게 맞게 연기할 수만 있다면 됐다.
그거면 족했다.
“도현 씨는 참, 재밌는 면이 많이 있네요. 현장에선 워낙 차분해서 그런지도 몰랐어요.”
감독의 눈에 비친 우도현은 현장에 있던 그 누구보다도 차분한 모습이었다. 차분하고, 동요가 적고, 감정 변화가 크지 않은.
“평소엔 감정 표출도 거의 없는 것 같은데. 막 크게 웃고 그런 걸 전혀 못 본 것 같아. 원래 잘 안 웃죠?”
크게 웃었던 때라.
뒤이어 떠오르는 순간에 우도현은 그대로 작게 미소 지었다.
“당연히 있죠.”
“어, 정말요?”
“네.”
주변은 쌀쌀했지만 마음은 편안했던, 조용하고 잔잔한 강가를 산책하던 그 순간, 최근에 가장 즐거웠던 기억이었다. 그건.
“붕어빵 먹을 때요.”
그리고 그 순간, 김정현 감독은 그런 우도현을 보며 참으로 특이한 놈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