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화. 솔직하게 불어
형이 알아버렸다.
그러니까 뭘 알았냐 하면, 지난 임시 매니저 사건의 자세한 정황을 알아버렸다는 말이다.
“어딨어?”
“···어?”
“이 X발 X끼 어딨냐고. 이 X끼 X되는 게 뭔지 보여준다.”
온갖 욕이 난무했다.
그야말로 삐-처리의 향연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알았냐고는 묻지도 못했다.
아니, 애초에 물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고소부터 하자.”
“아니, 잠깐만! 형, 그게···.”
“그 X끼한테 맞은 곳 어디야.”
“아, 좀 진정해봐!”
이제는 맞은 곳이 어디냐며 눈 뒤집힌 얼굴로 내 옷을 있는 대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힘은 또 왜 이렇게 센 거야!
“지금은, 괜찮아!”
“지금은? 그럼 전에는?”
“전에도, 괜찮았,어!”
와, 밀어내는 것만으로도 힘이 다 빠졌다. 그 사이 멍이 좀 가라앉아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그대로 들킬 뻔했다.
“솔직하게 불어.”
“···뭘?”
“벗겨서 나오면 한 대다.”
···일났다.
진짜 제대로 화가 났다.
“아니, 잠깐만! 그냥 멍이야!”
“멍?”
“응. 그냥 작게···.”
“안 되겠다.”
“···뭐?”
“그거 어디 있지?”
“뭐가···.”
“빠따.”
이런, X친!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형, 집에 야구 방망이 같은 거 없어!”
“대체제라도 있겠지. 역시 그 X끼 반쯤 죽여 놔야···.”
아무래도 제대로 정신이 나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그런 형을 말리기 위해 한동안 분주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 * *
예전부터 화가 난 형을 진정시킨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내가 어디서 맞고 온 줄 알 때.
당연하게도 이제껏 어디서 맞고 다닌 적은 없었다.
어렸을 때, 공놀이를 하다가 어쩌다 배에 맞은 적이 있는데, 크게 멍이 드는 바람에 형이 불같이 화를 낸 적도 있었다.
‘겨우, 진정시켰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정말로 방망이를 들고 쳐들고 갈 기세라 말리는 데만 해도 장장 몇 시간이 걸렸다.
회사에서 적절한 처분을 내렸고, 그에 따라 일이 잘 해결되었다는 이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만 했다.
‘아무리 그래도 저걸 들고···.’
신문 1면에 날 일 있나.
진짜로 반쯤 죽여 놓을 기세라 살벌했다.
‘물론 나라도 형이 어디서 맞고 왔다면···방망이를 들 것 같···.’
아니, 아니지.
뭐가 됐든 방망이는 들어선 안 된다.
침착하게, 차분히 고소장부터 날리자.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대로 그냥 형에게 딱 붙어 있기로 했다. 정말로 혹시 모르니.
그래서 형의 집에서 자고 갔다. 언제 또 불이 붙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다행히 형이 방망이를 휘두른다거나, 고소장을 날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정말 다행이었다.
고소라도 했다간 그것도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날 거다. 우도현이 일반인 하모씨를 고소했다고.
“앞으로 꼬박꼬박 연락해.”
“뭐?”
이른 아침, 부스스한 모습으로 빵을 뜯던 형이 그대로 엄포를 날리듯 말했다.
“하루에 한 번씩 문자하라고.”
“···보낼 내용이 없는데.”
“점이라도 찍어서 보내. 내용이 뭐든 상관없으니까.”
이건 뭐, 제2의 세현아 어디가? 가 따로 없었다. 와중에 그 세현아 어디가는 아직까지도 이따금씩 나온다는 거다.
“통화로 해?”
“아니. 점이 낫다, 점이 나아···.”
그래도 세현아 어디가도 슬슬 가라앉는 추세니 이 점 문자도 시간이 지나면 슬슬 가라앉겠지.
애초에 형이 모든 길게 하고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화가 좀 풀리고 나면,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거다.
“그래서 병원은? 제대로 간 거 맞아?”
“어. 애초에 맞았다고 할 수도 없어.”
“근데 멍이 왜 생겨?”
와중에 또 톤이 높아졌다.
이에 침착하게 괜찮다고 한 번 더 말해주었다.
그러자 형은 다시 한번 눈을 날카롭게 떴지만, 이내 다시 빵을 물었다. 솔직히 좀 쫄았다.
“갑자기 사자 새X 떠오르네.”
“사자는 왜?”
“그때 못 팬 게 한이 돼서.”
그렇게 형은 조용히 빵을 씹었다.
우리 지난 과거 얘기는 하지 말자, 형.
* * *
밥을 다 먹은 뒤, 형은 그대로 집을 나섰다. 오늘도 역시 아침 일찍부터 촬영이 있다고 한다.
“촬영만 아니었어도.”
형이 그렇게 짜증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에 그저 조용히 입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형을 따라 나오며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우세현]
: 형 얼굴에 김 묻었다
이내 메시지를 받은 형은 곧 이게 뭐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오늘 분 메시지.”
그대로 형을 보며 씨익 한번 웃어주었다.
“당연히 점으로 시작할 줄 알았는데.”
“내일부터 점이야. 알고 있으라고.”
“근데 이건 뭐냐? 언제적 드립이야? 그리고 이건 언제나 붙어 있는 건데.”
“그런 말을 당당하게도 말하네. 그리고 드립 아니야. 사실을 말한 거라고.”
“사실?”
그러자 형은 다시 한번 그게 뭔소리냐는 얼굴로 나를 봤다. 진짜로 김 묻었다고. 아까 반찬으로 김을 먹은 바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잘생김 드립은 아니지.
“그러는 너도 김 묻었다.”
“어? 진짜?”
“어. 웃김.”
“······.”
할 말이 없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잘생김 같은 걸 원하는 건 아니었다.
“오늘, 내일은 전화해.”
“왜?”
“하라면 해.”
그러고 보니 오늘, 내일은 지방에서 촬영한다고 했었지. 혹시 그래서인가. 정확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단 조용히 따를 생각이다.
“다음부턴 숨기지 마. 제일 먼저 알려.”
“알겠어. 그럴게.”
“···하.”
그렇지만 형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건지 그대로 내 머리를 마구 휘저었다. 가라앉은 형의 모습을 보니 괜히 미안했다.
다음엔 더 조심해야겠다.
걱정시킬 일 없게.
그렇게 형은 촬영장으로, 나는 회사로 향했다. 건희 형이 데리러 온 덕에 수월하게 갔다. 역시 건희 형 운전이 최고다.
숙소가 아닌 회사로 향한 이유는 멤버들이 모두 회사에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후에 스케줄도 하나 잡혀 있었고.
하지만 그 전에 멤버들과 모두 모여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왔어?”
“응.”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곧바로 차선빈이 나를 반겼다. 굉장히 반가워하는 얼굴이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요, 왔냐?”
“형, 왔어요?”
“세현아, 이쪽에 앉아.”
다른 멤버들 역시 나를 보며 한 마디씩 건넸다.
어제 급하게 형의 전화를 받고 형에게 갔던 사실을 다들 아는 터라 곧바로 내게 모여들었다.
“그래서? 형님은?”
“일단은 괜찮아.”
“아, 진짜요? 다행이네요. 어제 형 표정 보고 좀 걱정했었는데.”
“그런데 화내실 만하지. 어떻게 형님한테까지 숨길 수가 있냐.”
백은찬이 마치 잔소리하듯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사실 그때 도운이 형이 오지 않았더라면 멤버들한테도 계속 비밀로 할 생각이었는데.
근데 이렇게 말하면 멤버들 역시 화를 낼 테니 굳이 이야기하진 않았다. 그래도 멤버들 걱정시키는 건 싫었다.
“화 많이 내셨어?”
“그냥, 조금. 걱정 안 해도 돼.”
와중에 차선빈은 너무 걱정하는 표정이라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형도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풀릴 거다.
집에서 나올 때도 많이 누그러져 있었고.
물론 그때까지는 열심히 문자를 보내야겠지만.
“우세현. 앞으론 꼭 말해라.”
그때, 내내 조용히 있던 안지호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 목소리가 꽤 진지했다.
“뭘?”
“뭐든. 사소한 거라도 상관없으니까 무슨 일이든 어영부영 넘기지 말라고.”
마치 내가 넘기려고 했다는 걸 안다는 듯한 말투였다. 찔리는 게 있어서 그런가. 어쨌건 일단은 알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안지호는 여전히 의심하는 듯한 눈을 거두지 않았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라, 찔리니까.
“세현이한테 너무 그러지들 마. 그럼 세현이도 왔으니 이제 회의 시작해보자.”
이내 도운이 형이 정리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저 너머에 있던 화이트보드를 하나 가지고 왔다.
분위기를 바꿔 우리가 오늘 여기 모인 이유를 설명하자면, 바로 공동 작업실의 이름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역시 Secret office 괜찮은데.”
“그건 너무 그룹이랑 연관이 없지 않아요?”
“일단 후보에는 올려둘게. 의견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Winsome music. 이런 건?”
“윈썸 뮤직? 나쁘지는 않은데, 왜 스트리밍 사이트 이름 같지.”
“그런 것도 같아.”
정작 의견을 낸 차선빈 역시 그런 백은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과 뮤직이랑 어감이 비슷한 탓인가.
의견은 다양하게 나온 편이었다.
뭐든 'WIN'은 꼭 넣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부터 시작해서, 멜로우의 이름을 따는 건 어떠냐는 말도 나왔다.
“우세현, 넌?”
백은찬이 물었다.
“생각해둔 이름은 없는데, 넣었으면 하는 건 있어.”
“뭔데?”
“Time.”
“타임?”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것보다 시간은 넣었으면 하는 키워드였다.
일단 윈썸 세계관에 근본이 되는 것이기도 하고, 그런 만큼 데뷔곡과도 관련이 깊다.
여기에 첫 콘서트의 타이틀명도 ‘Through Time’이었으니까.
“시간.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지?”
“우리 세계관이요!”
‘시간 판타지’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윈썸의 세계관은, 멈춰 있던 시간이 흘러가게 된 이후 다양한 시간 속을 여행하게 되었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그래서 매번 뮤직비디오에도 금색 회중시계가 마치 부록처럼 나왔던 거고.
이렇듯 시간이라는 키워드는 우리 그룹에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였다.
“T···ime···그래. 타임 들어가는 거 괜찮다.”
“타임 들어가는 단어 넣어서 해도 좋겠다. 개인적으로 난 타임 아일랜드.”
“은찬이 형이라면 당연히 시크릿 타임 이런 거 할 줄 알았는데?”
“시크릿 집착남의 시선으로 보지 마. 사실 시크릿에 그렇게 고집이 있진 않았다.”
어째 점점 타임이 들어가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같았다. 멤버들의 생각에도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한동안 Time과 관련된 단어들이 난무했다.
특히나 백은찬과 하람이는 무려 검색까지 동원하여 ‘Time’이 들어간 단어는 다 찾아내겠다는 기세였다.
그리고 결국 후보에 오른 몇 가지 ‘Time’들. 우리는 이를 다수결이라는 가장 보편적이면서 공정한 방식을 통해 선정하기로 했다.
나 역시도 앞서 나온 것들 중에서 마음에 든 이름이 하나 있었다. 아, 당연히 내가 의견 낸 건 아니다.
“자, 그럼 첫 번째부터 갈게.”
앞서 나온 후보들을 토대로 이윽고 팀 공동 작업실의 이름을 결정하기 위한 투표가 시작되었다.
* * *
공동 작업실의 이름이 마침내 정해졌다. 선정된 이름은 3표로 가장 많은 득표를 올린 이름이었다.
“좋아, 그럼 이름은 Time train으로 가자. 박수 짝짝짝.”
“와, 짝짝짝.”
“입으로 치지 말고 손으로 치자.”
“짝짝짝.”
이내 하람이가 입과 손을 이용해 동시에 박수쳤다. 그러면서도 얼굴은 여전히 싱글벙글이었다.
최종적으로 확정된 이름은 ‘Time train’.
시간 열차라는 의미다.
열차의 목적지는 항상 다양하다.
그리고 우리 시점에서 그 목적지는 곡의 장르이자 컨셉이다.
즉, 그 목적지를 이곳에서 함께 만들겠다는 포부를 담아 결정한 이름이었다.
“제가 선택한 거 됐어요. 히.”
“그래. 그래서 아주 싱글벙글이네.”
“정작 의견 주인인 안지호는 조용하고.”
“크게 기대했던 건 아니라서.”
안지호가 말했다.
타임 트레인의 아이디어 제공자는 바로 안지호였다. 와중에 안지호는 본인이 낸 거에 손도 안 들었다.
“타임 트래블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와중에 안지호가 중얼거렸다.
타임 트래블은 내가 낸 아이디어였다.
그럭저럭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안지호나 우세현이나 본인들 거에 손 안드는 건 똑같네.”
백은찬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안지호와 나를 한 번씩 번갈아 봤다.
음, 사실 난 타임 트래블보다는 트레인이 나은 것 같아 거기에 투표했다.
“그럼 문패는 내가 다는 걸로 할게.”
“어? 형이 또 달게요?”
“그럼, 지금 문패도 내가 써놓은 거잖냐.”
지금의 문패는 이미 알다시피 백은찬이 달아놓은 임시 문패였다. [윈썸 작업실]이라고 적혀 있는.
그것도 나름 정성 들여 쓴 거라 괜찮았는데, 새로 할 것도 예쁜 걸로 했으면 좋겠다.
“백은찬, 문패 정하면 한번 보여줘.”
“오케이.”
그리고 현재 시간을 한번 확인했다.
이제 슬슬 가야 할 시간이었다.
“이제 슬슬 가야 할 것 같은데. 스케줄.”
“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으아, 그럼 빨리 일어나야겠네요.”
이에 백은찬과 하람이 역시 서둘러 움직였다. 다음으로 있을 스케줄은 나와 백은찬, 그리고 하람이 셋의 스케줄이었기에.
“셋 다 잘하고 와.”
“넵. 촬영 장소가 바로 코앞이니 좋긴 좋네요.”
그리고 뒤에 있을 스케줄의 장소는 지금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바로 이 사옥.
우리 회사였으니까.
오늘 회사에 손님이 좀 많이 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