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326화 (326/413)

326화. 내가 한다고 했잖아

“세현 씨, 연기는 언제 할 건가요?”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갑자기 연기?

해당 인터뷰는 분명 김재현의 앨범과 관련된 인터뷰였음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나온 주제에 맞지 않는 질문에 잠시 말을 주춤했다.

“···연기요?”

“연기요. 요즘 아이돌들은 연기를 기본으로 깔고 있잖아요. 흔히 그룹 비주얼이라고 불리는 멤버들이라면 더더욱이요. 특히 세현 씨는 이렇게 잘생겼는데, 당연히 곧 스크린에 데뷔할 생각이 있겠죠?”

기자는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에 옆에 있던 김재현 역시 미간을 살짝 좁혔다.

굳이 이 얘기를 길게 끌고 갈 필요 없었다.

“연기라면 아직은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은 그저 더 많은 무대를 서고 싶습니다.”

“에이, 그러기엔 얼굴이 너무 아깝지 않나? 솔직히 말해서 난 바로 연기 쪽으로 갈 줄 알았거든요. 욕심이 아예 없진 않죠?”

끈질기게도 물어본다.

마치 연기를 하고 싶다라는 말이 나오길 기다리는 사람마냥.

‘뭔가 건수라도 잡겠다는 얼굴이군.’

그렇지만 내가 할 대답은 여전히 같았다.

“아뇨. 지금은 무대에 서는 게 더 좋습니다. 오히려 멤버들과 같이 노래를 더 많이 부르고 싶어요.”

그런 내 말에 기자는 그대로 못마땅한 얼굴로 잠시 입을 다물었다.

물론 연기를 하는 게 이상한 게 아니다. 그저 개인 활동의 일환일 뿐이니까.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다. 인터뷰 주제와도 맞지 않고.

지금은 엄연히 노래와 관련된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에 당황하게 만들려는 의도도 어느 정도 포함 되어 있는 것 같고.’

이 기자의 생각에 의하면 말이다.

[“전혀 당황 안 하네. 근데 그래봤자 대충 허울 좋게 하는 말이겠지. 어차피 얘도 나중엔 백퍼 연기할 텐데.”]

[“노래를 더 많이? 하,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라. 나중엔 결국 하나 같이 다 드라마 찍더라.”]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아까부터 계속 연기 타령을 하고 있었다.

이 건수로 다른 기사라도 내고 싶은 건가.

“기자님, 이제 그만 다음 질문해주시죠.”

옆에 있던 김재현이 이내 넉살 좋게 웃어 보이며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을 재촉했다.

이에 해당 기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결국 알겠다는 말과 함께 다음 질문을 던졌다.

아직까지 아쉬움이 많이 남은 얼굴이었다.

* * *

그 이후, 인터뷰는 탈 없이 마쳤다.

다행히 앞서 있었던 그 질문 이외에 뜬금없는 질문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옆에서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말라는 매니저 형의 무언의 눈빛 덕도 있었다.

“중간에 연기 질문은 좀 뜬금없었어. 일부러 한 것 같은데, 건수 하나라도 잡으려고 그런 건지.”

“형 인터뷰인데, 죄송합니다.”

“니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 그리고 대답 잘했어. 쓸데없는 말 안 나오게 할 말만 깔끔하게 해서 좋더라.”

김재현이 그대로 나를 향해 미소와 함께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신경 쓰지 말라며 재차 말해주었다.

앞선 답변의 경우 더 이상 꼬리를 물지 않게 딱 잘라 말한 것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진심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저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다른 것보다 그저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는 게 중요했다.

사실 방금과 같은 질문은 회사에서도 가끔씩 내게 묻는 말이기도 했다. 이때쯤이면 연기할 생각은 없냐고.

하지만 그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노래를 부르는 게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고, 소중했기에.

물론 스케줄이 맞지 않는 것도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으니.

하지만 그런 시간을 확보하기보다는 그저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을 무대에 오르는 데 사용하고 싶었다.

윈썸 활동을 하는 데 쓰고 싶었고, 보컬 연습하는 데 사용하고 싶었다. 다른 건 머릿속에 없었다.

그거면 될 것 같았다.

단지 그거 하나면.

“세현아, 이제 의상 갈아입어야 한다는데?”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바빠진 대기실.

그렇게 나는 뒤에 있을 무대를 위해 의상을 갈아입고자 움직였다.

* * *

이후 곧바로 의상을 갈아입었다.

오늘 의상은 하늘색 점프 수트.

그리고 머리엔 헤어밴드를 착용했다.

여기에 머리는 그대로 살짝 볶았다.

흑발 상태에서 볶은 머리는 꽤 오랜만인 것 같다.

“세현이 오늘 엄청 멋있는데?”

김재현이 나를 보며 말했다.

김재현 역시 어느새 의상을 갈아입은 채였다.

“감사합니다. 형도 오늘 멋있으신데요.”

“역시 잘생긴 애들은 뭘 입어도 잘생겼나 봐. 헤어밴드 잘 어울린다.”

그렇게 말하는 김재현은 하늘색 캡 모자에 깔끔한 흰색 티, 허리엔 남색 셔츠를 묶은 채였다.

하이틴 팝이라는 곡 컨셉과 맞게 청량하면서도 캐주얼한 분위기의 의상이었다.

“김재현! 우리 왔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다른 인터니티 형들이 대기실을 방문했다. 지한이 형과 지원이 형이었다.

“오, 오늘 멋있는데? 세현이도 멋있다~”

“감사합니다, 형. 커피 드실래요?”

“커피? 우리 것도 있어?”

“네. 당연하죠.”

이에 나는 방금 사 온 커피를 인터니티 멤버들에게 건넸다. 앞서 사 온 아메리카노는 이미 재현이 형의 손에 들려있었다.

“마침 딱이네. 우리가 너희 먹으라고 도넛 좀 사 왔거든. 자, 세현아.”

“여기 휴지.”

인터니티 멤버들의 손엔 양손 가득 도넛 상자가 들려있었다. 그러다 보니 대기실이 금방 왁자지껄해졌다.

‘멤버들 생각나네.’

인터니티 멤버들이 온 걸 보니 문득 멤버들 생각이 났다.

분명 대기실은 많은 스텝들로 북적였다.

왁자지껄하고,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었다.

분명 이렇게 북적이는데도.

‘오늘은 따로 스케줄이 없는 날이긴 한데, 정말로 일어나 있으려나.’

그리고 생각난 김에 한 번 연락해볼까 하는데, 잠깐 고민이 됐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영통이란 단어 때문이었다.

‘···영통.’

그냥 톡으로 보낼까.

톡으로 보내면 한 번에 볼 수 있잖아.

생각해보니 아직 자고 있다면 영통보다는 톡으로 보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지이이잉!

그런데 그때, 손에 있던 폰이 울렸다.

뭐야?

─ 짠! 깜짝 놀랐지?

···백은찬이었다.

그것도 영통으로.

그렇게 화면 속 백은찬이 나를 향해 웃으며 신나게 손을 흔들어댔다.

뭐지? 텔레파시?

─ 뭐야, 왜 아무 말이 없어?

“아니, 좀 놀라서.”

─ 왜 놀라는데?

“니가 영통 와서.”

─ ? 내가 한다고 했잖아.

난 당연히 내가 하는 쪽인 줄 알았지.

게다가 이렇게 타이밍이 딱 맞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 왜? 영통해서 너무 좋아?

“···좋기는 무슨.”

─ 표정은 너무 좋은 표정인데? 나 보고 싶었구나?

백은찬이 장난기 가득 담긴 얼굴로 말했다. 이에 나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아니, 정확히는 보고 싶었다기보단···아니 얼굴이 생각난 건 맞는데···.

─ 이야, 진짜 보고 싶었나 보네? 우리 세현이,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따라 갈 걸 그랬네.

백은찬이 조금 전보다 더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는 거야. 보고 싶었단 얘기는 한마디도 안 했다.

물론 같이 왔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엔 나름 동의하긴 하지만.

─ 근데 지금 입고 있는 건 의상이야?

“아, 응. 의상.”

─ 잘 어울리네. 귀엽게 머리도 볶았···.

─ 세현이 형!

그때, 옆에서 하람이가 튀어나왔다.

아직 머리가 부스스한 걸 보니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모양이다.

─ 형, 형! 형 언제 나와요?

“어, 아마 후반은 돼야 할걸.”

─ 지금 소리 제일 크게 켜놓고 다른 형들이랑 기다리고 있어요~ 근데 형, 머리 볶았네요? 엄청 잘 어울···.

─ 세현아.

“아, 선빈아.”

이번엔 차선빈이 화면에 등장했다.

그 탓에 이번엔 앞에 있던 하람이가 자연스럽게 밀려났다.

─ 힘들진 않아?

“전혀. 힘든 건 없어.”

─ 밥은 먹었어?

“응. 아, 인터니티 형들이 도넛 사다 줬어. 이것봐. 엄청 크다.”

─ 응. 엄청 크다.

그리고 도넛은 잠깐 본 뒤, 다시금 화면에 눈을 맞춰왔다. 도넛은 별로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이거 맛있는데.

─ 와, 차선빈 힘센 것 봐!

─ 이 형은 왜 밀려나지가 않지?!

─ 얘들아! 난 말도 못 걸었어!

그런 차선빈의 등 뒤는 뭔가 왁자지껄했다. 목소리를 들으니 도운이 형도 거기 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것에 비해 화면 앞에 있는 차선빈은 그저 평온한 모습이었다.

근데 이거 왠지 릴레이 댄스 할 때 느낌인데. 그때를 떠올리니 괜히 입꼬리가 올라갔다.

─ 얼굴 보니 왠지 직접 갈 걸 그랬나 싶어. 헤어밴드 잘 어울려.

“고마워.”

─ 머리 볶은 것도 예···.

─ 야, 차선빈. 너 머리에 뭐 붙었다.

─ 응?

슥!

그런데 그 순간, 화면이 빠르게 올라갔다. 방금 그 목소리 분명 안지호 아니었나?

뒤이어 아니나 다를까, 안지호의 얼굴에 화면 속에 나타났다. 이거 폰을 통째로 뺏은 것 같은데.

─ 와, 안지호 낚는 거 봐라!

─ 지호 형이 선빈이 형 한눈팔게 하고 그대로 폰 낚았어요! 세현이 형! 이 형 봐요!

역시 예상했던 대로 안지호가 폰을 낚은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이 또 한 번 왁자지껄했다.

─ 야, 우세현.

그리고 그때, 안지호가 눈을 맞춰왔다.

─ 오늘 라이브 기대한다. 보고 있다. 야, 폰 가져가.

그리고선 그 말이 끝나자 옆에 있던 백은찬에게 폰을 휙 넘겨버렸다. 아니, 너무 용건만 말하는 거 아니냐.

─ 아, 맞다.

그런데 그렇게 넘긴 줄 알았던 안지호가 다시금 화면 속에 등장했다.

─ 너 오늘 머리 괜찮다.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정말로 화면 속에서 사라졌다. 솔직히 방금 말은 좀 놀랐다.

평소에 안지호에게 들어본 적 없는 칭찬 류라. 나 오늘 머리 진짜 괜찮나 보다.

···사진이라도 좀 남겨야 하나?

─ 휴우. 겨우 주도권을 잡았어!

드디어 돌아온 백은찬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주변은 여전히 복작복작했다.

조금 전 느꼈던 허전함은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였다. 겨우 얼굴 보고 통화하는 건데도.

문득문득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대로 조금 오래 통화하고 싶었다.

* * *

─ 그럼 우세현, 파이팅해라.

─ 세현이 형! 음량 최대로 해놓을게요!

화면 속 멤버들이 그렇게 손을 흔들었다.

어느새 무대에 올라갈 시간이 됐다.

영통을 오래 한 탓인지 폰이 좀 뜨끈뜨끈했다.

“둘 다 파이팅!”

“잘하고 와라.”

그리고 다른 인터니티 멤버들의 배웅을 받으며, 재현이 형과 함께 무대로 향했다.

도착한 무대 위로는 알록달록한 게임판이 펼쳐져 있었다.

오늘의 컨셉은 보드게임.

그 영향으로 인해 주변은 주사위나 카드 같은 소품으로 다양하게 꾸며져 있었다.

“여러분, 안녕~”

“안녕하세요.”

재현이 형과 함께 무대에 오르자 눈앞으로 인터니티의 응원봉이 크게 흔들렸다. 재현이 형의 무대인 만큼 인터니티 팬분들이 많이 보였다.

그래서인지 조금 낯설었다.

멜로우가 없는 무대는 이제껏 겪어본 적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주변을 살폈다.

‘아. 있다.’

멜로우가 있었다!

무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그렇게 반가운 마음에 밝게 빛나는 눈꽃 응원봉을 향해 빠르게 손을 흔들었다. 멜로우다, 멜로우.

“자, 그럼 이제 곧 스탠바이 들어갈게요.”

그리고 어두워진 조명과 함께 나는 저 멀리 있는 재현이 형을 바라봤다. 이제 곧 무대가 시작될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