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화. 기사가 터졌다
그렇게 여전히 찜찜함이 감도는 가운데, 그로부터 며칠 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기사 하나가 등장했다.
- [단독] 유명 인기 아이돌 그룹, 매니저에게 지속적인 폭언과 갑질한 사실 밝혀져
그건 바로 유명 아이돌 그룹의 갑질 사건이었다.
[인기 아이돌 그룹에게 오랜 기간 지속적인 갑질을 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1일 한 커뮤니티에 ‘유명 아이돌 그룹에게 갑질 당한 전 매니저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n년 전 매니지먼트 업계에 종사했다고 전한 글쓴이는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며, “그룹의 멤버들로부터 폭언을 듣는 것이 일상이었고 하인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고 밝혔다.]
- 헐 이게 뭐임 인기 아이돌 그룹? 누구?
- ? 뭐임 돌 멤버한테 갑질을 당했다고? 멤버 전체한테 당했다는 거임?
└ ㅇㅇ 전문 읽어봤더니 그렇더라
- 인기 아이돌이라고 해봤자 말로만 인기 아이돌일 듯 걍 이름 모를 돌 중 하나인 거 아니냐
- 폭언에 갑질 이거 사실이면 누구든 존나 타격 상당할 듯
- 근데 n년전 이라고 하는 거 보면 지금 돌은 아닐지도 모르겠는데? 혹시 이전 세대 돌 아님?
‘폭언에 갑질.’
해당 기사 내용에 따르면, 수년 전 매니저로 일하던 작성자가 함께 일하던 그룹 멤버들에게 온갖 갑질을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폭언부터 시작해 사소한 잔심부름까지.
하지만 작성자가 올린 내용에는 해당 그룹이 어떤 그룹인지 특정 지을 만한 단서는 없었다.
그저 인기 아이돌이라는 명칭뿐.
그것이 현세대를 뜻하는 건지 이전인 n세대를 뜻하는 건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애초에 정말로 ‘인기’ 아이돌이라는 게 맞을지도 의문이었다.
원래 이런 수식어는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끌기 위해 종종 갖다 붙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기에 대부분은 그저 말만 인기 아이돌 그룹일 것이라는 추측 의견이 많았다. 나 역시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이런 식의 기사는 이전에도 종종 있었지만, 막상 까보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기에 사실 여부도 확실하지 않았고.
“이거 진짜일까요? 매니저 갑질. 요즘 여기저기서 꽤 말이 나오더라고요.”
“아직 명확히 나온 건 없지 않아? 그 폭로글도 증거 없이 글뿐이라던데.”
“그냥 말만 무성하던데요?”
멤버들 역시 해당 기사를 본 건지 관련 이야기가 잠깐 나오긴 했다. 근데 뭐, 별로 관심 없었다.
‘어차피 우리 팀과는 관련 없는 얘기고.’
사실 여부를 떠나 그게 어쨌건 우리 그룹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다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무색해졌다.
얼마 뒤, 해당 사건과 관련되어 새로운 기사가 다시 한번 포털 사이트를 장식했다.
- [단독] 루트, 과거 매니저 갑질 사건 밝혀져
- 매니저에게 폭언, 갑질한 탑 아이돌, ‘루트’였다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 * *
지난 매니저 갑질 사건의 주어가 ‘루트’였다는 사실이 단독 기사가 난지 몇 시간 만에 온갖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식했다.
‘이게 무슨···.’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해당 기사의 주어가 루트였다고?
내가 아는 그 루트, 그 루트를 말하는 건가?
- 루트라고? 루트가 갑질 폭언 그룹이라고?
- ㅁㅊ 이건 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냐 루트가? 진짜 루트가 그랬다고?
- 존나 반전이네 진짜 인기 그룹일 줄이야
└ ㅇㅈㅋㅋㅋ 인기를 넘어서 존나 탑이네
- 이거 걍 찌라시 엮어서 만든 거 아님? 그게 아님 이딴 기사가 무슨 이 타이밍에 나와
- 그저 황당 그 자체
마찬가지로 이에 대해 나오는 반응은 대부분이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일단 터지는 타이밍부터 이상했다.
이런 뜬금없는 타이밍에 이런 뜬금없는 기사가 터진다고?
그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의문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무언가 걸리는 느낌에 곧바로 맨 처음 단독 기사를 낸 기자의 이름을 확인해봤다.
아니나 다를까, 낯익은 이름이다.
‘이형준 기자.’
그 기자였다.
지난번 대기실에서 인터뷰했던 그 기자.
‘이거 마냥 찌라시로 치부될 만한 일이 아닌 건가.’
그도 그럴 게 이번 기사엔 해당 발언과 관련한 그럴듯한 증거가 함께 제시되어 있었다.
그건 바로 앞선 폭로자가 RA 엔터테인먼트에 한때 재직했던 매니저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자신의 명함을 찍어 올림으로써 증명하고 있었다. 여기에 당시 루트 멤버들의 사진 또한 게시되어 있었다.
마치 폰 카메라로 찍은 듯한, 확실히 이제껏 본 적 없는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여기엔, 형 사진도 있었다.
5명일 때의 이야기라는 거다.
- 이거 사진도 있는 거 보면 빼박인디
- 와 루트가 갑질이라니 이미지 왕창 깨지는 소리 들린다
- 정확히 누가 폭언을 했단 건데? 다섯명이서 다 같이 매니저 다굴이라도 했나?
└ 걍 단체로 슈스병
- 근데 이거 우도현도 있었을 때지? 우도현도 있네
└ 그렇겠지 애초에 우도현 없는 루트 시절이 뭐 얼마나 된다고ㅋ
- 다시 모이길 바라는 팬 많던데 이젠 추억 회상도 불가네ㅋ
정신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앞선 기사가 사실인 마냥 이야기되고 있었다.
루트는 이미 해체된 그룹이었지만, 그 화제성만큼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여전했다.
이 건으로 SNS 실시간 검색어는 물론, 아이돌 관련 사이트들까지 일시적으로 마비 시킬 정도였으니.
‘형.’
동시에 나는 그대로 빠르게 폰을 꺼내 들었다. 다른 것보다 그 생각부터 났다.
형한테, 연락을 해봐야겠다는 생각.
연락해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연락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왜 안 받아!’
하지만 한창 촬영 중이인 건지 신호만 갈 뿐 연락이 닿지 않았다.
분명 오늘 분 메시지를 보낼 때까지만 해도 답장이 잘만 왔었는데!
‘당연히 사실은 아니겠지만···.’
당연히 기사에서 나온 폭언이나 갑질이 실제로 있을 리 없었다.
그걸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지금 내가 확인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었다.
그저 형의 안부를 묻고 싶은 것뿐이었다.
목소리를 듣고, 안정을 찾고자 하는 걸지도 몰랐다.
‘···일단 침착하자.’
지금 상황에서 당황해봤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왜 이런 기사가 나오게 됐고, 어떻게 이를 수습할지를 생각해야만 했다.
‘아마 RA 엔터 측에서든, 다른 기획사 측에서든 이에 대한 부정 기사를 내겠지.’
그룹도 그룹이지만, 애초에 멤버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만한 기사다. 그러니 이대로 조용히 넘어가지는 않을 거다.
‘문제는 사진이지.’
눈앞에 증거가 떡하니 첨부되어 있으니 마냥 아니라고 회피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멤버 사진의 경우 합성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긴 했지만, 당시 매니저였던 것을 증명하듯 명함 사진 또한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굳이 이런 허위 기사를 내는 이유가 뭐지.’
이러한 기사를 낸 목적.
루트 멤버 중 한 명에게 뭔가 앙심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면, 다른 것을 위한 포석인가.
‘뭐가 됐든 짜증 나는군.’
결국 루트를 이용했다는 것이니.
그 루트에 우리 형도 있는 거고.
‘···신도하.’
신도하를 만나봐야 하는 걸까.
해당 사건엔 신도하 또한 연루되어 있으니 어떻게 된 건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형이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에서, 이와 관련해서 그나마 이야기를 해볼 사람은 신도하뿐이었다.
‘그렇다면, 일단 메시지를···아니, 전화가 나은가.’
그리고 그렇게 연락 수단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순간 손에 있던 폰이 진동했다.
전화였다.
[신도하 선배님]
‘텔레파시냐···.’
순간 조금 놀랐다.
이내 [응답] 버튼을 누르고,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 세현아.
그러자 들리는 신도하 목소리.
언제나처럼 여유 있고 느긋한 톤이었다.
그리고 앞선 부름에 대답하려 입을 열 때쯤, 다시 한번 신도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방금 내 생각 했지?
* * *
순간 말을 잃었다.
마치 정곡을 찔린 듯한 기분이라서.
‘생각을···하긴 했지만.’
그게 생각이라기보단, 이렇게 맞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그저 타이밍이 절묘한 탓이었다.
하지만 막상 긍정하려니 입이 잘 안 떨어졌다. 왠지 좀 긍정하기가···.
─ 역시 내가 타이밍을 딱 맞췄나 보네.
신도하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 이런. 의도치 않았지만 앞선 말에 이미 긍정을 해 버린 꼴이었다.
···너무 오래 입을 다물고 있었나 보다.
─ 이렇게 되면 직접 듣고 싶어지는데. 내가 보고 싶던 이유.
굳이 뒷말을 강조하며 이야기한다.
괜히 말리기 전에 주제를 확실하게 잡고 가야 했다.
“그보다도 선배님, 어떤 용건으로···.”
─ 난 그냥 생각나서 전화한 건데. 목소리 듣고 싶어서.
신도하가 여전히 여유로운 목소리로 답했다. 이거 그냥 듣기에도 거짓말 같은데.
하지만 신도하가 정말로 어떠한 용건으로 내게 연락한 건가에 대해서는 짚이는 게 없었다.
만약 앞선 기사 건에 관해서라고 하더라도 그건 내가 아니라 소속사, 혹은 같은 루트 멤버들에게 연락을 했을 거였다.
‘그리고 왜 이렇게 여유로운 거냐.’
엄연히 신도하는 앞선 논란의 당사자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목소리가 언제나와 같이 그저 차분하고 여유로웠다.
결국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겠지만.
─ 근데 역시 목소리 만으론 좀 아쉽네.
“예?”
─ 만나는 거 어때? 지금. 꽤 시간 많거든.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 * *
이러니저러니 해도 신도하를 만나고 싶었던 건 사실이었다. 만나서 앞선 일에 관한 이야기를 좀 듣고 싶었다.
그때까지 형은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였다. 일단 메시지는 보내놨으니 보면 다시 연락을 주겠지.
그리고 만남의 장소는 역시나 신도하의 작업실이었다. 지금의 대화는 바깥으로 새어 나가선 안 되니.
“당연히 허위 기사야.”
자리에 앉자마자 신도하가 말했다.
“네?”
“오늘 난 기사. 혹시 걱정할까 봐.”
동시에 신도하가 나를 향해 미소를 보였다. 역시 허위가 맞았군. 당연히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그렇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그런데 그 사진들은 어떻게 된 건가요? 기사를 보면 매니저로 재직했던 건 사실인 것 같은데.”
“아마도 그건 사실이 맞을 거야.”
“예?”
“매니저로 있었던 거. 다른 건 허구에 불과하지만, 그 사실 하나만큼은 진짜라고 보고 있어.”
그거 하나만큼은 진짜.
그렇다는 얘기는 결국, 해당 매니저의 개인적인 앙심으로 인한 허위글이라는 건가.
“어떤 매니저인지 파악은 하셨나요?”
“그렇지. 당시에 찍은 사진들, 그리고 명함에 나와 있던 성. 그걸 보면 대충 누군지 짐작이 가긴 하거든.”
마치 신도하는 해당 매니저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냥 거쳐 가는 매니저는 아니었나.
보통 매니저의 경우, 재직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 편이었으니까. 신도하가 기억하고 있다면, 그래도 꽤 일한 매니저일 거다.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나요?”
“글쎄. 사이가 좋고 말고 할 사이도 안 됐던 것 같은데.”
좋고 말고 할 사이도 안 됐다고?
“있었던 기간이 꽤 짧았어. 내 기억으론 대충 길어봤자 3개월 정도로 기억하는데.”
“3개월이요?”
그 정도면 거의 수습 기간 정도 아닌가. 아니, 어쩌면 중간에 다른 팀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겠군.
‘그렇지만 겨우 3개월에 불과했다면, 신도하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거지.’
같이 일했던 기간도 짧고, 거기에 꽤 오래전 일이다. 하지만 그런 것에 비해 신도하는 확실하게 기억한다는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내가 원래 기억력이 좋거든.”
신도하가 그렇게 살짝 미소 지었다.
단순히 기억력이 좋은 것도 좋은 거지만, 예상보다 주변 사람을 챙기는 스타일인가.
짧게 일했던 매니저에 관련되어 아직까지도 이름과 얼굴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거 보면.
“다른 선배님들과의 관계는요?”
“당연히 다른 멤버들도 비슷했을 거야. 아마 도현이나 박시겸은 이름조차 기억 못할걸.”
이렇다 할 사건조차 없었다는 건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루트 멤버들의 관점이고, 매니저 개인으로선 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제 기준에 마음에 안 들었다거나 하는 그런 거.
‘여기에 기자도 좀 걸리는군.’
해당 기사를 낸 기자.
이형준 기자에 관해서도 역시 걸렸다.
“혹시 그럼 특별히 기억나는 일 같은 건···.”
지이이이잉─
“아, 잠시만.”
그런데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신도하의 폰이 진동했다. 전화가 온 것 같았다.
“해진이 형이네.”
그리고 신도하는 그대로 권해진의 전화를 받았다. 아마도 지금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고자임이 분명했다.
“예. 형.”
그렇게 신도하는 권해진과 잠깐 통화를 했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특별한 말은 없었지만, 이내 신도하는 알겠다는 듯 대답했다.
“알겠어요. 그렇게 알아둘게요.”
그리고 통화는 얼마 안 가 끊어졌다.
“해진이 형 말로는 이번 건에 관해 일단 RA 엔터 측에서 기사를 낼 모양이야. 당연히 허위 사실로.”
“그렇군요.”
“그리고 역시나 형도 그 매니저에 관해선 딱히 짚이는 게 없는 모양이고.”
그렇지만 RA 엔터 측에서 수습 기사를 낸다고 해도 아마 여론을 한 번에 뒤집긴 힘들 거다. 아무래도 사진들 때문에.
여기에 마치 건수를 잡았다는 양 공격해오는 글들도 상당했고.
“선배님은 이대로 있으실 건가요?”
“어, 방금 그 질문 꽤 좋은데.”
신도하가 마음에 든다는 듯 웃었다.
지금 상황에서 장난칠 힘이 남았나.
“세현이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저야 당연히 오해를 풀고 싶습니다. 이대로 형이 오해받는 건 싫으니까요. 그리고 루트도···.”
“루트도?”
“···오해를 받지 않았으면 싶고요.”
적어도 형이 루트 멤버였던 이상, 오해를 받지 않았으면 했다. ···루트 멤버들을 위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리고 그 순간, 신도하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게 와중에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이다.
“당연히 나도 이대로 오해받고 있을 생각은 없어. 해결해야지. 그런 의미에서 같이하는 건 어때?”
“문제 해결 말씀이신가요?”
“그렇지. 물론 내가 제안하지 않아도 세현이 넌 하려는 것 같지만.”
당연한 소리를.
“저야 거절할 이유가 없죠.”
“그래? 그렇다면, 오케이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신도하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지? 왜 일어나는데?
“그런 의미에서 장소를 옮기는 게 어떨까.”
“어디로···.”
그러자 신도하가 그대로 내게 시선을 맞춘 채로 말했다.
“우리 집.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