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화. 어디서 뵌 적 있지 않나요.
이형준 기자가 이러한 짜깁기 기사를 내야겠다고 생각한 건 불과 한두 달 전 일에 불과했다.
이형준이 처음 기자 생활을 시작한 곳은 상당히 작은 규모의 언론사였다.
그렇지만, 자신의 열정만은 다른 메이저 언론사에 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그래서 그는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특종을 잡기 위해서.
본인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런 이형준의 시선에 루트는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당시 최고의 아이돌은 역시나 루트였기 때문에.
하지만 백날을 쫓아도 루트 멤버들과 관련된 특종은 얻기 어려웠다.
멤버들 대다수가 숙소에서 거의 나오지 않을뿐더러 어쩌다 나왔다 하면 신도하는 작업실, 우도현은 제 본가였다.
‘이 자식은 본가에 떡이라도 숨겨 놨나.’
집돌이도 이런 집돌이가 없었다.
그나마 권해진이 바깥 활동이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뭔가를 잡기는 어려웠다.
그만큼 권해진은 사생활 관리가 철저했기 때문이다.
“그러게, 루트는 힘들다니까.”
“······.”
그런 선배 기자들의 말에 이형준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제서야 선배 기자들이 왜 그렇게 자신을 만류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마냥 포기하기엔 아까웠다.
그러던 도중, 루트가 다음 앨범을 발표했다. 동시에 그에 따른 기자회견이 열린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무조건 간다.’
무조건 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루트에 관한 기사는 뭐가 됐든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돈이 됐기에.
당연하게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하게 갈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갈 수 없었다.
“초청을 안 했다고요?”
“그래. 루트 취재하겠다는 언론사가 어디 한둘이야. 듣자 하니 RA 엔터에서 대충 추려서 이름 있는 급들한테만 연락 돌렸다더라.”
기자회견에 대형 언론사 위주로 기자들을 불렀다는 얘기였다. 이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하, 이렇게 차별질을 해?’
동시에 화가 났다.
제멋대로 급을 나누는 RA 엔터에, 아니 루트에.
마치 너는 이 정도 급밖에 되지 않는다고, 고작 이 정도라며 낙인을 찍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그동안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한 자신을 부정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순 없지.’
그래서 그날 이형준은 기자회견장에 몰래 잠입하기로 했다. 엄연한 무단 침입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자리에 앉아야 했다.
그리고 시작된 기자회견.
예정된 시간에 맞춰 마침내 루트 멤버들이 모습들 드러냈다.
“이번 앨범만의 주목해야 하는 키 포인트가 있다면 뭘까요?”
“타이틀곡에 관해서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멤버분들이 가장 선호하는 곡은 뭔가요?”
그렇게 많은 질문들이 오갔다.
그때까지 이형준은 그저 조용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만한 새X들.’
무대 중앙에 떡하니 앉아 기자들의 질문을 듣는 루트 멤버들이 지금 그의 눈엔 그저 거만한 인물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마 지들이 최고인 줄 알 테지.’
다른 사람들은 결국 발아래인 마냥.
중간중간 짓는 미소들 또한, 마치 저한테 짓는 비웃음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이형준은 마침내 손을 들었다.
“네, 그쪽에 손드신···어, 언론사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TO 뉴스입니다.”
“TO···예?”
“TO 뉴스 이형준 기자입니다. 질문하겠습니다.”
동시에 사회자를 비롯한 기자회견장에 있던 모든 이들은 시선은 앞선 이형준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러한 시선에 이형준은 살짝 입꼬리를 올린 뒤, 다시 당당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본인들은 어떤 급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 *
- 기자회견에서 오늘 기자 미친 거 아님? 루트한테 급이 어떻게 되냐고 질문함
- 오늘 루트한테 급 타령한 기자 이름이 어떻게 됨? 어디 기자야?
└ TO 기자라고 질문 전에 밝힘
└ 이름 보니 존나 듣보 언론사인가보네
- 기레기가 기레기했다 질문 수준하고는
- 멤버들 당황했을 텐데 침착하게 잘 대답했네ㅠ 역시 우리 똑또기들ㅠ
‘정신 나간 빠순이들.’
기자회견 이후, 앞서 있었던 일로 인해 한바탕 뒤집어졌지만 그런 것 따위 이형준에게 있어 거리낄 거리가 아니었다.
‘급 타령하는 건 내가 아니라 저 루트 자식들이라고.’
이형준에게 있어 루트는 그저 돈이면서도 동시에 상종하고 싶지 않은 무리였다.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재수 없는 새X들.’
지 잘난 맛에 사는 인간들이었다.
본인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들.
“루트가 쫑났다고?”
그래서 이형준은 루트가 비공식적으로 해체가 되었을 때, 온종일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이후 한동안 이형준이 루트 멤버들을 만나는 일은 없었다.
루트 멤버들의 잇따른 입대, 그리고 남은 멤버인 신도하와 박시겸과는 이렇다 할 접촉이 없었다.
그사이 이형준은 기자로서, 제 나름의 커리어를 조금씩 쌓아갔다. 동시에 시간이 갈수록 그가 몸담고 있던 언론사 역시 조금씩 그 크기를 키워갔다.
그리고 그러던 도중 만난 것이다.
또다시, 루트 멤버를.
‘대충 이 게이트로 나올 것 같은데.’
그는 지금 앞으로 있을 권해진의 입국을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었다.
권해진이 입국 시 그대로 보도 사진을 찍는 것. 그게 오늘 자신이 맡은 업무였다.
하지만 어느 게이트로 나올지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채였다.
그렇기에 이형준은 최대한 머리를 굴려 권해진이 나올 만한 게이트를 수색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 게이트에 멈춰 서 앞으로 나올 권해진을 기다렸다. 다른 기자들은 모두 반대편에 있는 게이트로 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정답이다, 짜식들아!’
그동안 쌓아온 기자로서의 감.
그게 지금 발동되고 있었다.
이제껏 제 감은 틀린 적이 없었기에.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얼마 뒤 정말로 해당 게이트로부터 권해진이 나타났다. 동시에 이형준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 찰칵! 찰칵!
이윽고 울리는 셔터 소리에, 이를 느낀 권해진의 시선 또한 곧바로 그쪽을 향했다.
그리고 그렇게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이형준은 찰나의 순간, 자신도 모르게 권해진을 향해 말했다.
“TO 뉴스 기자입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잠시 말을 멈췄다.
왠지 모르게 긴장된 탓이었다.
그동안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형준도 TO 뉴스도 제 나름의 커리어를 쌓았다.
그러니 혹여 자신의 뉴스를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 그런 게 존재했다.
이어서 이를 들은 권해진이 그런 이형준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무심히 지나쳤다.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TO 뉴스도, 본인도.
그리고 이형준은 생각했다.
이 새X들은 여전히 변한 게 없다.
* * *
루트는 여전히 오만하고 거만했다.
이형준 기자의 눈엔 루트는 여전히 짜증 나는 족속들이었다.
그래서 한번 거 하게 엿을 먹일 계획을 세웠다. 그 자식들의 오만함을 한번 제 손으로 꺾어보고 싶었다.
논란을 만드는 건 쉬웠다.
제 전문 분야이기도 했으니까.
우연히 만난 루트의 전(前) 매니저. 그 매니저에게 돈을 좀 쥐여주고 이번 일을 계획했다.
‘고작 3개월밖에 일하지 않는 놈이지만, 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지.’
중요한 건 매니저로 일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그것만으로도 만들 수 있는 논란 소스는 다양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지금 논란되고 있는 ‘루트 갑질설’이었다.
더불어 이 계획을 진행하고 있을 무렵, 우연히 만나게 된 이가 또 한 명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건 바로 우세현이었다.
지난 인터니티 김재현와 관련해 간단한 대기실 인터뷰를 하던 도중, 피처링을 맡게 된 우세현과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이에 자연스럽게 이형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엄연히 다른 그룹이긴 했으나 당연하게도 루트가 떠올랐기에.
‘···잘생겼네.’
우세현을 처음 본 감상을 그거였다.
우도현과 그렇게 닮은 건 아니지만, 잘생긴 거나 특유의 분위기 같은 게 닮아 있었다.
‘이런 애가 노래라. 그래봤자 나중엔 다 연기로 갈 거 아닌가?’
그룹에서 이른바 비주얼을 담당하는 멤버들의 활동 수순은 매번 뻔했다. 결국은 가수 활동보단 연기 활동에 주력.
그러니 우세현 역시 제 형처럼 연기로 갈 게 뻔했다.
‘연기 질문을 한번 날려봐?’
그래서 한 게 그 질문이었다.
연기는 언제 할 거냐는 그 질문.
왠지 당황한 꼴이 보기 좋을 것 같아서.
어차피 연기로 갈 게 뻔한 데 마치 노래에 진심인 마냥 입에 바른말만 해대는 게 꼴 보기 싫은 것도 있었다.
“지금은 무대에 서는 게 더 좋습니다. 오히려 멤버들과 같이 노래를 더 많이 부르고 싶어요.”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 치의 당황스러움도 볼 수 없는 차분한 대답.
마치 철벽과도 같은 단호한 그 대답에 이형준 기자의 입은 그대로 굳게 다물어졌다.
오히려 당황한 건 이형준 쪽이었다.
‘하, 역시 재수 없긴 마찬가지네.’
그리고 그런 우세현이 아니꼬웠다.
뒤이어 이형준은 다시금 앞선 기사를 준비하는 데 집중했다.
이 기사가 나가고 나면, 과연 우세현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저 차분한 모습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지 내심 궁금해졌다.
* * *
[“그 매니저와 내가 서로 짜고 친 짜깁기라는 걸···신도하가 그새 파악했다고?”]
앞선 신도하의 말에 이형준 기자의 표정이 잠시 미세하게 구겨졌다. 이제야 대충 정황이 나왔다.
‘결국 그 매니저랑 한 통속이었군.’
다시 말해, 앞선 일은 저 기자와 옛 매니저가 한통속으로 꾸민 일이라는 거였다.
[“아니. 그 자식이 그걸 순순히 불 리가 없지. 지가 돈 먹었다는걸.”]
[“하지만 이 자식 표정을 보면 뭔가 알긴 아는 것 같고···도대체 어디서 뭘 들은 거야?”]
그리고 그렇게 이형준 기자의 생각이 거듭되는 도중, 신도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기자님과 그분···그러니까 구석영 씨 사이에 어떠한 커뮤니케이션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바입니다.”
“커···뮤니케이션?”
“네. 두 사람이 같이 벌이신 거 압니다. 이번 일. 열심히 머리를 맞대셨네요.”
그 말에 이형준 기자의 얼굴이 곧바로 사색이 되었다. 마치 앞선 말이 사실이라는 마냥.
그에 비해 신도하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여유를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분명 무겁지 않게 말하는 것 같은데도 무게가 느껴지네.’
분명 차분하고 느긋한 어조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압박감, 그 비슷한 게 느껴졌다.
저 기자 입장으로선 당연히 겁먹을 수밖에.
“증거, 있습니까?”
그와 동시에 이형준 기자가 말을 조용히 내뱉었다.
“증거 있냐고요, 증거! 내가 그 매니저랑 짜고 쳤다는 증거!”
그리고 그 모습이 꽤나 다급해 보였다.
“기자님은 꽤 자신하시나 보군요. 증거에 관해서.”
“당연하죠. 당연히 증거 같은 게 있을 리 없으니까요! 신도하 씨가 뭘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구석영 씨가 철저하게 혼자 진행한 일입니다. 나랑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요!”
“기자님은 전혀 연관이 없다?”
“하, 당연한 거 아닙니까? 구석영 씨가 제보한 일에 난 그저 도움을 줬을 뿐이거든요. 난 이 건과 완벽하게 무관해요.”
그렇게 선을 그었다.
예상했듯이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도하는 그런 이형준 기자를 잠시 조용히 응시했다. 그러더니 곧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하, 사람을 뭐로 보고! 할 말 더 없으면 난 이만 가겠습니다!”
이내 이형준 기자가 여전히 화가 난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궁지에 몰리니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모양이다.
“아, 그런데요. 기자님.”
그때 신도하가 다시 말했다.
“어디서 뵌 적 있지 않은가요. 저희.”
그리고 그런 신도하의 말에 돌아서려던 이형준 기자가 멈칫했다. 뒤이어 시선만 살짝 돌린 채 그대로 신도하를 쳐다봤다.
상당히 흔들리는 눈으로.
[“이 자식···설마 날 기억하나?”]
그 목소리가 꽤나 떨렸다.
마치 아니길 바라는 것마냥.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럼 난 정말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이형준 기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몸을 돌려 말없이 카페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