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화. 조금 신기하네
그대로 신도하와 함께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사실 이곳은 전에도 몇 번 왔던 곳이었다.
“꽤 오랜만인 것 같네, 이 식당.”
신도하가 자리에 착석하며 말했다.
도착한 식당은 이전에도 방문했었던 그 한식당이었다. 마침 위치가 가까웠다.
앞서 신도하의 제안은 일단 승낙했다. 말하는 걸 보니 오늘 거절해도 결국 다시 밥 먹자며 연락이 올 것 같아서.
여기에 조금 출출한 감도 있었다.
“메뉴는 이 코스랑···세현이 넌 사이다?”
“선배님은요?”
“난 맥주 한 캔을 할까 하고···.”
“그럼 저도 맥주요.”
“뭐?”
그러자 신도하가 살짝 놀란 얼굴이 됐다. 뭐야, 왜 그렇게 놀라는데?
“사이다 아니고?”
“? 네. 맥주요.”
그렇게 다시 확인하듯 대답하니 이내 여전히 찜찜한 얼굴을 보인다.
“애한테 술을 먹이기는 좀 그런데.”
순간 먹던 물을 뱉을 뻔했다.
아니, 애는 누가 애냐.
설마 신도하, 내 나이를 모르나?
그렇지만 결국 신도하는 그런 내 의견을 수용해 그대로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사실 내가 직접 식사를 대접할까도 했었어.”
“직접이요?”
“응. 나름 자신 있는 요리가 몇 개 있어서.”
직접 만들어주려고 했단 이야기인가.
‘그러고 보니 신도하 요리 좀 했었지.’
이전에 루트 리얼리티를 볼 때면, 신도하는 늘 요리를 도맡곤 했었다. 이전에 떡국 만드는 걸 보조했을 때도 척척 잘했고.
“그저 비싸고 좋은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성에 차지 않아서 말이야.”
“괜찮습니다. 여기도 충분히 좋으니까요.”
“다음에 한 번 더 초대할게. 그래도 두 번째니까 좀 더 편하지 않겠어?”
집으로 먹으러 오란 소리냐.
두 번째고 뭐고 여전히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선물했던 화분, 근황은 어때?”
“아, 네. 잘 자라고 있습니다.”
생일 선물로 받았던 화분.
그 화분을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처음보다 크기가 좀 더 자랐고요.”
그래서인지 잎도 전보다 더욱 풍성해졌다. 이제는 얼핏 보면 정말로 벚꽃 나무 같다. 그 정도로 예뻤다.
“잘 자라고 있다니 다행이네.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원하신다면 나중에 사진 보내드릴게요.”
“고마워.”
그렇게 신도하가 웃으며 앞에 있던 잔을 들었다. 그래도 받았는데 한 번 정도는 어떻게 자랐는지 보내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사이, 맥주가 나왔다.
오랜만의 맥주였다.
사실 평소에 술을 즐겨 마시거나 하진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맥주가 땡겼다.
무사히 일이 해결되어서인지.
오늘만큼은 한잔하고 싶었다.
아마 신도하도 같은 기분이었기에 맥주를 주문한 게 아닐까.
그리고 이를 대변하듯 맞은 편에 신도하가 나를 향해 잔을 들었다. 이에 나 역시도 맥주가 든 컵을 들었다.
그리고 쨍하는 소리와 함께 잔이 부딪쳤다. 오랜만에 마시는 맥주가 꽤 썼다.
“역시 좀 신기하네.”
“뭐가요?”
“맥주 먹는 거. 여전히 사이다를 줘야 할 것 같은데 말이지.”
신도하가 살짝 웃었다.
아직도 그 얘기냐.
“평소 술은 센 편이야?”
“그렇게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편이에요.”
“도현이는 상당히 세니까. 세현이 너도 그러지 않을까 싶어서.”
“형이 너무 센 편이죠. 아마 형만큼은 아니고요.”
물론 형이랑 취할 때까지 마신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옆에서 형이 마시는 걸 보면 대충 알 수 있었다.
“도현이는 취한 걸 본 적이 없을 정도니까. 좋아하는 안주는?”
“전 그냥 감자칩을 먹는 편이에요.”
사실 그건 멤버들이랑 자주 먹는 조합이었다. 가끔씩 숙소에서 캔 맥주를 마시면, 항상 감자칩에 먹곤 했으니까.
파란색 봉지냐 초록색 봉지냐로 안지호랑 백은찬이 많이 싸우기도 했는데. 그래서 맨날 감자칩은 두 개씩 사서 들어갔다.
“그럼 다음엔 하몽 만들어줄게.”
“하몽이요?”
“응. 하몽 좋아해?”
“먹어본 적이 없어서요.”
“맛있어. 와인이랑 먹기에 어울리지.”
그렇게 신도하가 낮게 웃었다.
하몽···맛있을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그 집을 다시 방문하게 될 일은 없을 듯했다. 어쨌건 이번이 꽤 특수한 경우였고.
그리고 그때,
신도하가 마시던 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세현아.”
“네.”
“이번 일, 난 세현이 너에게 상당히 고마워하고 있어.”
“예?”
“솔직히 꽤 머리가 아팠거든.”
루트 멤버들과 관련된 논란.
이번 논란 때문에 상당히 골머리를 썩였다는 말이었다.
줄곧 여유로운 모습이었기에 그렇지 않아 보였는데. 생각보다 신경을 많이 썼던 건가.
“이제껏 이 업계에 있으면서 많은 논란을 마주하고, 그만큼 많은 논란을 겪었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역시···그룹 관련이거든.”
“루트 말씀이신가요?”
“그래. 루트.”
그리고 대답과 함께 신도하는 답지않게 조금 씁쓸해 보이는 표정을 보였다.
“그룹이란 건 참 특이해. 속해 있는 순간, 나 자신이나 다름없는 게 되지. 하지만 실제 그 이름이 단순히 나만의 이름은 아니고. 같이 속해 있는 다른 멤버들이 있으니까.”
나 자신이나 다름없는 것.
그건 결국 신도하는 루트라는 이름과 자신을 일치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마치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말로 들렸다.
“세현이 넌, 그룹 좋아해?”
그리고선 갑자기 내게 되려 묻는다.
그룹을 좋아하느냐고.
꽤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그렇지만 이에 관한 내 대답은 당연하게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네. 좋아합니다.”
“그래, 그런 것 같았어.”
그렇게 신도하가 살짝 웃어 보였다.
“나도 꽤 아끼는 편이야. 그룹. 루트로서 무대에 오를 때면 항상 기분이 좋았거든. 그리고 그 느낌을 아직도 기억해. 정말 너무, 좋았거든.”
그 말을 하는 신도하의 모습은 마치 그때를 회상하는 듯했다.
그리고 느껴졌다.
정말로 그때를 좋아하고 있으면서도, 한 편으론 그리워하고 있다는 게.
‘같이 무대를 서는 게 좋았다.’
솔직히 신도하가 말하는 그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왜냐면, 나 역시 그 무대를 보고 자란 사람이니까.
그때의 루트가 무대가 내 눈에 어떻게 비췄는지, 그리고 그때의 루트 멤버들의 모습이 어땠는지 내 머릿속에 여전히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제 눈에도 그렇게 보였어요. 그때 무대들을 보면.”
“무대 많이 봤어?”
“아무래도 형이 있으니까요.”
내 기억 속 루트의 무대들은 하나 같이 전부 빛났다. 아무 효과 없이 그저 무대 위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루트는 반짝거렸다.
그래서 더 서고 싶었다, 나도.
그 무대에.
솔직히 말해서 그 당시 신도하는 좀 멋있었다. 루트의 메인 보컬. 그 모습이 꽤 멋있었다.
“그 기분을 참 좋아했었는데.”
신도하가 말했다.
‘확실히 좋아했구나. 루트 때를.’
그리고 그게 느껴졌지만, 굳이 이를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형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래서 루트란 이름은 내게 있어서 꽤 중요한 부분이야. 절대 흠집 내고 싶지 않은 것이고.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늘 최선을 다해서 지키고 싶은 이름이지.”
그제야 신도하가 조금 전 말했던 말이 이해가 갔다. 가장 견디기 힘든 논란은 다른 게 아닌 그룹 관련 논란이라는 말.
이번 일로 골머리를 썩었다는 게 무슨 의미였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루트를 좋아했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그리고 그런 신도하의 마음을 나 역시 알 것 같았다. 나도 어떻게 보면 같은 입장에 있었으니까.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고 있었으니까.
‘혹시 신도하는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르고 싶은 건가.’
루트 멤버들과 같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말하는 것만 봐선 왠지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마 힘들겠지.’
지금 상황에선.
현실성이 다소 떨어지는 이야기였다.
현재는 그때와 달리 각자의 자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랬다면, 그때 그렇게 형을 등지는 일은 없었어야 했다. 틀어진 그룹을 되돌리기에 지금은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아마 신도하도 이러한 현실을 이미 잘 알고 있을 거였다.
“한 잔 더 할래?”
신도하가 나를 향해 물었다.
어느새 잔이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신도하를 향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신도하에 의해 비어 있던 잔이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도하가 말한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고 싶은 마음. 그룹으로서 무대를 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어떤지 나 역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신도하를 향한 현실이, 그런 바람이 조금은 안타깝게 느껴졌다.
* * *
처음 루트 관련 논란 사건을 접했을 당시, 신도하는 상당한 불쾌감을 느꼈다.
자신의 루트를 이런 식으로 폄하하려는 의도가 그의 눈에 너무나도 잘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기사를 확인하는 내내 신도하의 손가락이 탁상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그것은 신도하의 인내심을 나타내는 표현이었다.
‘얼마 만이지.’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 건.
기사 내용을 확인한 뒤, 그는 이제 단순히 불쾌감을 넘어선 화를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하지만 그런 속마음과 다르게 그는 여전히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단순히 그건 겉모습에 불과했다.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신도하는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고 있었으니까.
그는 지금 꽤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지이이이잉─
당연하지만 회사에서도 연락이 왔다.
지금의 소속사건, RA 엔터에서건 구분 없이. 발등의 불이 떨어진 건 마찬가지였으니.
여기에 멤버로부터도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권해진이 멤버들에게 한 차례씩 전화를 돌리고 있는 듯했다.
‘세현이에게도···연락을 해줘야겠군.’
그러던 도중, 우세현이 떠올랐다.
분명 기사를 확인한 뒤 걱정하고 있을 테니.
기사를 봤다면 당연히 우도현에게 먼저 연락을 취했을 것 같긴 했으나 그래도 걸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좀 안심이 될 것 같아서.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세현은 의외로 굳건했다.
마치 해당 논란이 사실이 아닌 것을 당연히 아는 마냥.
그 믿음에 신도하는 꽤 기분이 좋았다. 자신을 향한 신뢰마냥 느껴졌기 때문인지.
그러다 보니 우세현과 함께 움직이게 됐다. 앞선 논란의 해결을 위해서.
사실 신도하는 우세현의 도움을 받을 생각까진 없었다. 사건의 해결은 어디까지나 저 혼자 처리할 생각이었으니까.
누구의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 같은 건 한 적이 없었다. 혼자 하기에도 전혀 벅참이 없으니.
하지만 막상 우세현을 만나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함께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우세현은 감이 좋았다.
눈치도 빠르고.
여기에 일을 똑똑하게 해결할 줄도 아니 함께한다면 분명 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어차피 그냥 둬도 세현이는 어떻게서든 일에 달려들 테니.’
우도현의 일이었다.
그러니 우세현이 이대로 잠자코 있지 않을 거란 걸, 신도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무리하게 달려들 건 아는 데도 그저 가만히 보고 있을 순 없었다. 그럴 바엔 같이 달려드는 편이 나았다.
적어도 넘어지면 손은 잡아줄 수 있게.
그렇게 신도하는 우세현과 함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