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화. 그저 평안하길 바랐다.
사건의 해결은 예상보다 훨씬 수월했다. 그리고 이는 우세현의 덕이 컸다.
폭로자에게만 온통 시선이 집중되던 와중에 우세현은 다른 이들과 달리 이를 보도한 기자에 초점을 맞추었다.
여기에 논란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중요 사실을 알아낸 것 또한 우세현이었다. 정말이지, 말이 나오질 않았다.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 우세현은 기억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를 기억하고 있었는지 나중에 반드시 물어봐야겠다고 여겼다.
역시 제 안목은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니 다시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여기에 더욱 확실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폭로자와의 개인적인 만남을 가졌다. 녹음본이라는 무기를 쥐고 있는 만큼 협상은 간단했다.
폭로자는 그대로 기자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앞선 논란을 꾸며낸 과정들을 술술 풀어내었다.
지루할 정도로 일은 쉽게 풀렸다.
이에 대한 사과문 작성은 물론 허위 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에 따른 법적 처벌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가장 신경 쓰였던 루트에게 씌워진 잘못된 오해 역시 자연스럽게 가라앉았다.
앞선 폭로자가 어떠한 동기로, 왜 그러한 논란을 일으켰는지에 관해서는 그다지 궁금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루트의 이름을 이용했다는 것.
중요한 건 자신의 루트를 폄하했다는 사실 하나였다.
‘개운하지가 않군.’
논란이 잘 잠식되고, 그에 따른 질타와 법적 처벌 또한 받게 될 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신도하의 마음은 개운하지 않았다.
성에 차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성에 찰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거듭하는 도중, 마치 그런 생각을 끊기라도 하듯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박시겸]
박시겸이었다.
“어. 왜?”
─ 이번 논란 해결, 그거 니가 한 거냐?
평소와 같은 변조 없는 말투였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연락이 올 거라는 건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어, 맞아.”
─ 그래? 듣기로는 꽤 크게 일조한 것 같던데. 증거를 찾으려 직접 나서기라도 한 거냐.
“내가 원래 좀 기억력이 좋잖아.”
신도하가 그렇게 낮게 웃었다.
이 건에 우세현이 관련되어 있다는 건 당연하게 비밀에 부칠 생각이었다.
분명 우세현도 그걸 원할 테니까.
특히나 우도현에게 알려지는 걸 그 어떤 것보다 꺼릴 것이다.
그러니 이번 건은 어디까지나 제 선에서 해결된 것으로 하기로 했다.
─ 기억력이 좋다는 건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지만, 이렇게까지 일 줄은 몰랐는데. 다른 조력자가 있었던 건 아니고?
“조력자가 있을 리가. 조력자 같은 거 만들지 않는다는 거 알잖아.”
그러자 곧 박시겸이 잠시 침묵했다.
─ ···그건 그렇지. 신도하가 조력자를 만들 리가 없지.
박시겸은 순순히 이를 인정했다.
그렇다, 조력자 같은 건 만들 성격이 못 됐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기 마련이었다.
“근데 그거, 도현이도 아는 거야?”
─ 이번 논란의 해결자가 너라는 거? 그거라면 우도현도 알겠지. 그러니 더더욱 말이 없겠지만.
“그건 좀 슬픈데.”
하지만 박시겸의 말처럼 자신이 이 일을 도맡아 해결했다는 걸 알고 있다면, 우도현은 그 이상 뭔가를 캐거나 하지 않을 터였다.
─ 그렇게 슬프면 직접 연락을 하던지. 생색이라도 내면서.
“아, 그건 안 돼. 좀 곤란하거든.”
─ 뭐가 곤란한데?
“혹시나 도현이가 휴대폰이라도 집어던지면 안 되니까 말이야.”
그러자 박시겸이 피식 웃었다.
있을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박시겸과의 통화는 얼마 안 가 끊어졌다. 박시겸의 용건은 어디까지나 신도하가 지난 논란의 해결자인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그걸 확인한 이상, 그 이상의 잡담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두 사람은 그렇게 통화를 마쳤다.
- [단독] 루트 논란의 주동자 구모씨, 모 기자에게 거액의 입막음 비용 받아
그리고 이러한 기사를 보며 신도하는 다시금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답례를 해야겠는걸.’
무사히 일을 해결할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한 답례. 그렇게 논란이 가라앉고 난 뒤, 우세현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됐다.
마음 같아선 이보다 더욱 좋고 맛있는 걸 대접해주고 싶었지만, 우세현이 이곳을 직접 선택한 탓에 그러지는 못했다.
그게 내심 아쉬웠다.
그리고 그렇게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러다 보니 루트에 관한 이야기까지 흘러갔다.
이는 순전히 저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그저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저도 모르게 속에 있던 말을 꺼내고 있었다.
루트에 관한 이야기는 그간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꺼내지 않는 것이었음에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지금 있는 이 자리가 편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일이 순조롭게 해결됐기 때문인지.
그게 아니면 순전히 우세현 앞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느 것이 답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앞서 우세현에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루트는 신도하에게 있어 꽤 특별했다.
그리고 그는 그 이름이 오랫동안 평안하길 바랐다. 되도록 꽤 오랫동안.
그 이름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신도하에게 있어 언제까지고 의미 있을 이름이었기에.
그리고 신도하는 오늘 그 이름을 지키게 해준 우세현에게 상당히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 * *
어제 신도하와의 식사는 생각보다 조금 길어졌다. 주문한 맥주 한 병을 비우고, 그대로 조금 더 먹다가 이내 식당을 나섰다.
처음 주문한 것 이외에 맥주를 더 주문하진 않았다. 그렇게 간단하게 먹고 그대로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렇게 귀가한 시간이 10시쯤이었나.
늦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니 눈꺼풀이 잠겨 그대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이후 쏟아지는 햇빛에 그대로 다음날 눈을 떴다. 오전 10시. 왜 이렇게 많이 잤지.
그렇게 몸을 일으키니 옆 침대는 이미 비어 있었다. 백은찬은 이미 일어난 모양이다.
‘아, 화분.’
그리고 문득 창가에 둔 분홍색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잘 자라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걸 보니 자연스럽게 어제 일이 다시 떠올랐다. 신도하와 했던 대화. 정확히는 루트와 관련되어 신도하가 했던 말.
‘그 기분을 꽤 좋아했다라.’
그 말을 하던 신도하의 표정이 아직까지도 기억 속에 짙게 남아 있었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비슷한 입장에 있었기에, 대화를 하는 내내 그 기분이 어떤 건지 이해가 됐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떠한 공감 같은 걸 느꼈다.
‘···공감이라니.’
어떻게 보면 꽤 거창한 말이었다.
애초에 신도하한테 공감 같은 것을 느낄 일은 평생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 잠깐. 근데 내가 어제 뭐라고 했었지.
분명 그 당시 신도하가 멋있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설마 그걸 직접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겠지?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밥이나 먹자.’
괜히 더 떠오르긴 전에 그냥 밥이나 먹기로 했다. 고작 몇 잔 먹은 게 그대로 술은 술이었는지 그렇게 허기가 지진 않았지만.
그리고 그렇게 거실로 나왔는데, 순간 부엌에서부터 맛있는 냄새가 났다. 뭐지, 부엌에 누가 있는 건가.
“뭐 해? 여기서.”
“어, 우세현. 일어났네?”
백은찬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렇게 나간 부엌에는 백은찬과 안지호가 있었다. 와중에 안지호는 뭔가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콩나물국이야?”
“엉. 너 어제 마시고 들어왔잖아. 그래서 콩나물국으로 합의를 봤지.”
“그렇게 말할 정도로 마시진 않았는데···.”
살짝 보니 안지호 앞에 냄비에서 어느새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콩나물국을 먹기엔 너무 가볍게 마시고 온 거 아닌가.
“얼마나 마시든 뭐가 중요해. 일단 술을 마시고 들어왔단 게 중요하지. 그것도 신도하 선배랑.”
굳이 뒷말을 강조해서 말하고 있다.
그 말에 괜히 좀 머쓱해져 그대로 시선을 살짝 돌렸다.
“분명 밥 먹으러 간다고 했는데, 와중에 술을 먹고 와서 얼마나 놀랐던지. 그래서 얼마나 마셨다고?”
“맥주 한 병. 그 정도일 거야.”
“맥주 한 병. 많이도 마셨네.”
“한 병이 뭐가 많아. 둘이서 나눠 마신 건데. 너희랑 마실 땐 훨씬···.”
─쿵!
그 순간, 눈앞의 식탁 위로 냄비 하나가 올려졌다.
“야, 다 됐어.”
“어, 그래.”
안지호는 그대로 식탁 위에 콩나물국을 놓은 채로 다시금 부엌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밥솥을 연다.
‘근데 표정이···.’
뭔가 상당히 불만에 차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혹시 어제 신도하랑 마시고 온 것 때문에 그러나.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지만, 안지호는 여전히 신도하를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어, 안지호. 맛있다.”
“그러게. 야, 맛있어.”
“그래.”
그리고선 백은찬과 내 앞에 나란히 밥공기를 놓는다.
“근데 넌 안 먹어?”
“먹을 거야.”
“안지호, 너 원래 콩나물국 할 줄 알았냐?”
“아니. 오늘 처음 해보는 건데.”
“헐, 이게 처음이야?”
백은찬이 놀란 얼굴로 반응했다.
근데 정말 그럴 만했다. 이게 처음이라고? 근데 왜 이렇게 맛있어?
“대충 보고 만든 건데.”
“엄청 맛있어.”
“···그래, 많이 먹어라.”
그리고선 다시 조용히 밥을 푼다.
안지호는 역시 요리에 소질이 있다. 옆에서 보조를 잘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그래서, 어제 그 선배랑 술은 어쩌다 마시게 된 건데?”
“아, 그거.”
일단 멤버들에게는 이번 일과 관련해 대략적인 설명은 해둔 상태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은 제외하고.
‘괜히 말하면 걱정할 테니.’
그저 그 논란을 해결하는 데 조금 일조한 정도로, 그 정도 선에서만 이야기를 해두었다.
그래도 멤버들에겐 어느 정도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번 논란 도움 준 거. 그거 고맙다고 밥 사주다가 그냥 맥주도 한잔한 거야.”
“거기서 갑자기 웬 술. 평소엔 마시지도 않더니. 그렇게 친해진 거냐?”
“그냥 몇 잔 수준이었어. 마침 그냥 기분이 좋았던 거겠지. 논란도 해결됐고 하니.”
그러자 안지호가 여전히 석연치 않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이에 그저 조용히 국을 떠먹었다. 와중에 국이 맛있어서 다시 놀랐다.
“술, 자주 먹지 마라.”
“···알겠어.”
술 앞에 주어가 대충 신도하인 것 같은데, 어차피 신도하랑 이제 술 마실 일도 없었다.
“근데 그 도움 줬다는 거, 큰 수준이었냐? 직접 밥을 사 준다고 하는 거 보면.”
“그렇게 큰 수준은 아니고, 그냥 그 당시 내가 기억하던 거랑 폭로자가 말한 일이랑 다른 게 있어서 그거 알려준 정도.”
“아, 정말?”
그렇게 백은찬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몇 번 느리게 끄덕였다.
“직접적으로 개입한 건 아니고?”
그 말에 순간 뜨끔했다.
하여간 백은찬, 이럴 땐 눈치 한번 빠르다.
“아니야. 정말로 딱 그 정도였어.”
“그래? 그렇다면, 뭐. 일단 잘 해결돼서 다행이네. 형님은? 괜찮으시지?”
“응. 애초에 다 허위 사실이니까.”
통화했을 때를 보건데, 다행히 형은 평소와 목소리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뭐든 나설 일이 생긴다면 우리한테도 말하라고. 괜히 너 혼자 나서지 말고.”
“너희를 어떻게 관여시켜.”
“그렇게 말하면 또 서운하지. 안 그러냐?”
“말해. 상관없으니까.”
그렇게 안지호가 덧붙였다.
그래도 역시 멤버들을 관여시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멤버들도 엄연히 공인이다.
그러니 좋지 않은 일엔 최대한 멀리하게 하도록 하는 게 좋았다.
“어라, 대답이 없네.”
“알겠어. 근데 다른 애들은 어디 갔어?”
어째 숙소가 내내 조용한 게 백은찬과 안지호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없는 것 같았다.
“셋이서 편의점. 뭐 좀 사 오겠다고, 아마 이제 곧 올 때가···.”
“우리 왔어요!”
그리고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현관에서부터 멤버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 세현이 형! 일어났네요?”
“일찍 일어났네?”
“세현아.”
동시에 나를 발견한 멤버들이 그대로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런 멤버들의 손엔 양손 가득히 봉투가 들려 있었다.
“방금 일어났어. 근데 그건 다 뭐야?”
“아, 이거 배 음료.”
“배 음료?”
그러자 차선빈이 봉투 안에서부터 배 음료 몇 개를 꺼내 보였다. 갑자기 웬 배 음료?
“이거 숙취 해소용으로 좋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먹진 않았는데.”
하지만 이내 밝은 얼굴로 이를 건네는 차선빈에 나는 그대로 이를 받아들였다. 어째 마신 양에 비해 숙취 해소가 과한 듯한 느낌이다.
“야, 이거 다 먹고 마셔.”
“알겠어.”
그렇게 받아든 3개의 배 음료를 식탁 위에 잘 올려두었다. 먹고 마셔야지.
“아, 맞다. 형들. 올 거예요?”
어느새 막대 사탕을 문 하람이가 그대로 나와 멤버들을 향해 물었다.
“어딜?”
“내 졸업식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