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하나 맞추자
오늘은 연초 시상식이 있는 날이었다.
나온 차트 뮤직 어워드.
이는 연말에 열리는 다른 시상식들과 다르게 연초에 열리는 시상식 중 하나였다.
그리고 윈썸은 피지컬 앨범 부분 분기상을 포함하여 여러 부분에 후보로 올랐다.
오랜만의 시상식이라 그런지, 조금 긴장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작년에는 신인상을 받았었는데.
“우세현, 이거 어떠냐?”
대기실에서 준비가 한창일 시기, 백은찬이 갑작스럽게 나를 향해 폰을 들이밀었다.
“반지? 아.”
“엉. 어제 톡방에서도 말했잖아.”
마침 데뷔일도 있고, 3년 차도 됐으니 이를 기념해 우정 반지 겸 팀 반지를 하나 맞추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있었다.
최초 제안자는 백은찬이었고.
“그때 말한 걸 실제로 하게 될 줄은 몰랐네.”
“어, 뭐야. 너 기억하고 있었냐?”
“응.”
그런 내 대답에 백은찬이 그대로 입꼬리를 올렸다.
이전에 백은찬과 같이 X즈니에 갔을 때, 잠깐이었지만 우정 반지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그땐 정말로 흘러가듯이 했지만.
“계속 기억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네.”
“기억 못할 건 또 뭐야.”
“그런 김에 더 잘 봐달라고. 이거 어떠냐고, 이거.”
그리고 백은찬이 보여준 건 모 명품 브랜드의 다소 화려한 디자인의 반지였다. 어느 정도 화려하냐면, 다이아가 아주 눈에 띄게 여러 개 박혀 있었다.
“···이건 너무 화려한 거 아니야?”
“그런가? 눈에 띄는 게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왕 하는 거 눈에 확! 들어오면 좋잖아.”
“가격도 꽤 나가는 것 같은데.”
“가격이 좀 나가긴 하는데, 일단 우리의 우정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을지 그런 디자인이 중요하단 말이지.”
내심 백은찬은 이 디자인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톡방에 올린 것도 꽤 화려했었지.
“근데 팔찌도 나쁘지 않은데.”
“팔찌? 팔찌도 괜찮긴 한데, 그래도 링이 낫지 않나?”
“사실 손에 뭐 하는 건 익숙지가 않아서.”
예전부터 악세사리는 영 불편했다.
무대 소품으로 하는 반지나 팔찌나 이런 거. 아무것도 없는 게 편하긴 하다.
“그래서 설마 안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전혀. 할 거야.”
“오케이, 다행쓰.”
그래도 이건 의미가 있으니까.
하기 싫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멤버들 다 하는데 혼자 안 하는 것도 이상하고.
‘예전에 피아노를 쳐서 그런가.’
어쩌면 그래서 손에 뭐가 있는 게 불편한 걸지도 몰랐다. 고등학교 때는 밴드부에서 내내 피아노를 쳤으니까.
‘그러고 보니 연락 못 한 지도 꽤 됐네.’
밴드부 멤버들.
데뷔 이후 연락이 뜸해졌지만, 이제는 전보다도 더욱 연락이 뜸해졌다. 바쁜 건 서로 같았기에.
“근데 너 오늘 치는 피아노, 아까 리허설 할 때 들으니 역시 좋더라.”
오늘 무대에서 잠깐, 인트로 부분에서 혼자 피아노 앞에 앉아 짧게 연주하는 퍼포가 있었다.
피아노를 치는 것도 꽤 오랜만이긴 했는데, 그래도 별로 길지 않은 시간이라 익히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나중에 피아노 치는 것만 따로 올려봐.”
“피아노 치는 것만 올리는 것보다 노래도 같이해야 좋아하시지 않을까.”
“하긴, 노래도 같이하면 금상첨화긴 하지. 뭐야, 정말 올릴 생각 있는 거냐?”
“고민 좀 해보고.”
노래도 같이하는 건 좀 다른 이야기라 진짜로 하려면 연습이 더 많이 필요했다.
“너 피아노는 초등학생 때부터 쳤다고 했었지?”
“응. 기억하네.”
“기억 못할 건 뭐야.”
그 말과 동시에 백은찬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앞서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제대로 친 건 고등학교 때라.”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넌 그냥 밴드 보컬로 들어가는 게 어울리는데.”
백은찬이 마치 자기가 아쉽다는 양 표정을 보였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그거라도 해서 다행이었다.
밴드부를 해서 결국 노래도 좀 할 수 있었고, 버스킹 공연 덕에 길거리 캐스팅도 된 거니까.
단순히 당시 같은 반 친구의 제안으로 인해 승낙하게 된 거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감사하다.
“그럼 이건 어때?”
“이것도 좀 너무 화려한 것 같은데.”
“이것도 화려해? 아니, 일단 화려하고 봐야 한다니까?”
“정 그러면 투표를 올려봐. 애들이 결정해주겠지.”
그러자 백은찬이 다시 고민하는 얼굴을 보였다. 나도 좀 괜찮은 디자인이 없는지 알아봐야겠군.
* * *
오늘 입은 의상은 전체적으로 와인과 블랙의 조합이었다. 거기에 수트. 내 경우 와인색 자켓에 블랙 타이와 셔츠를 입었다.
여기에 멤버들마다 조금씩 디테일의 차이를 두었는데, 차선빈의 경우엔 겉에 롱코트를 걸쳤고 하람이는 보타이를 하는 식이었다.
“올해의 가수상 피지컬 앨범 부분, 3분기 수상자는···윈썸! 축하합니다!”
그룹이 호명됨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있던 멤버들과 함께 무대 위로 올라갔다. 무려 올해의 가수상이었다.
작년 3분기,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가수에게 주어지는 상이었다.
나온 차트 기준으로 우리가 판매한 앨범 기록은 총 150만장. 순전히 미니 3집 ‘Face off’의 판매량만 놓고 본 수치였다.
그리고 체이스는 바로 옆 테이블에서 우리가 무대 위로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작년에 비슷한 시기에 컴백을 했으니 체이스도 마찬가지로 이 부분에 후보에 올랐으나 근소한 차이로 우리가 체이스를 앞섰다.
상당히 기분 좋았다.
- 윈썸 3분기 ㅊㅋㅊㅋ
- 윈썸 나온이 얼마였길래 체이스 이김?
└ 나온 기준 150만 체이스 137만
└ 와우 윈썸이 개 잘파네
- 윈썸 진짜 많이 컸다 작년에 신인상이었는데 올해 바로 올해의 가수상....!
- 윈썸 그럼 내년엔 대상 확정이야?
└ ㄴㄴ 아직 몰라
└ 내년 대상을 어떻게 벌써 알아
└ 확정은 아니지만 이 추이면 가능성 높지
- 나온 차트 어워즈, 윈썸 올해의 가수상 피지컬 부분 3분기 수상
- 윈썸 데뷔 3년 만에 나온 차트 올해의 가수상 수상···“모든 것은 함께 해준 멜로우 덕분.”
오늘 열린 나온 차트와 관련해 많은 기사가 떴지만, 아무래도 수상자 중 연차가 가장 낮은 건 우리였기에 우리와 관련된 기사가 유독 많았다.
- 윈썸이 올해의 가수상이라는 게 말이 되나 난 쟤네 노래 들어본 적도 없는데ㅋ
- 이거 IN에서 걍 대놓고 밀어준 거네 그게 아니면 어떻게 윈썸이 올해의 가수상이야?
- 그래서 얘네가 누군데
당연히 좋은 반응만 있을 리가 없었다.
특히나 ‘올해의 가수상’이라는 이름은 악플러들을 더욱 자극하는 말이나 다름없으니.
‘한동안은 이런 말들이 종종 올라오겠군.’
그러다 보니 오래전, 루트가 첫 대상을 받았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참 말이 많았었지.
그래서 매번 그 댓글들을 보며 화를 많이 냈었다. 형한테 달리는 악플들이 싫어서. 물론 그 당시 내 눈에 루트만큼 대상에 어울리는 그룹은 없었다.
“야, 오늘 무대한 거 벌써 너튜브에 올라왔다.”
오늘 했던 나온 시상식의 무대가 벌써 클립으로 올라온 모양이었다. 이에 곧바로 모니터링에 들어갔다.
역시 멤버들은 무대를 참 잘했다.
- ㅋㅋ 이게 진짜 잘 추는 건가 생각보다 잘 추지도 않네
- 라이브 맞음? 걍 라이브 AR 인 것 같은데 라이브로 사기 좀 치지 마라 ㅉㅉ
- 얘네가 그 듣보인데 대상 탔다는 애들?
- 혹시 앞에 피아노는 치는 척 연기인가
‘한동안은 이 패턴이겠군.’
영상 밑으로 달린 댓글에도 역시 눈살을 찌푸리는 댓글이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별로 신경 쓰이진 않았다.
이 무대가 좋은 무대였다는 건, 확실히 알고 있었다.
* * *
“심플한 거, 무조건 심플한 걸로.”
“근데 이왕이면 알이 이렇게 크게 박혀 있는 게 좋지 않아요? 그런 게 멋있던데.”
“그런 건 가격이 천문학적이라고!”
그러자 이를 들은 하람이가 곧 아쉽다는 얼굴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멤버들과 우정 반지 디자인에 관해 더욱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대화는 생각보다 길어졌는데, 다행히 결론은 쉽게 났다.
“그럼 이건?”
차선빈이 보여준 모 명품 브랜드의 심플한 골드링이었다. 지금까지 올랐던 후보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었다.
동시에 그걸 본 다른 멤버들 역시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그걸로 결정이 됐다.
“그래, 역시 이게 딱이네.”
백은찬이 폰을 보며 그대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런 백은찬이 보고 있던 건 바로 어제 결정한 우정 반지였다.
명품 브랜드라서 그런지 가격은 좀 나가지만, 그건 별로 상관없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우정 반지니까.
무엇보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나 역시 이에 한 표를 던졌다.
“우세현, 넌 언제 사러 갈 건데?”
“글쎄. 시간 될 때 빨리 가려고.”
“기간도 정했잖아. 앞으로 일주일. 그 안에 사자고.”
이참에 기간도 맞춰버렸다.
이왕 사는 거 빨리 맞추자고.
“아예 다 같이 가는 건 어떠냐?”
“그럼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
“야, 안지호. 넌 언제 갈 건데?”
“조만간.”
“그럼 반반 나눠서 갈까? 하루는 이쪽 팀, 다른 하루는 이쪽 팀. 이런 식으로.”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
그렇게 단체로 가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근데 난 당장 내일 가려고 했는데.”
“엑, 도운이 형 내일 바로 가요?”
그러자 놀란 백은찬이 곧바로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언제 갈지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지이이잉-
그때, 폰이 짧게 진동했다.
확인해보니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이승준]
동창이자 같은 밴드부 멤버였던 이승준이었다.
[이승준]
: 그래? 아쉽네 시간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얼마 전, 오랜만에 밴드부원들이 모이려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날은 스케줄로 인해 시간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마 나를 제외한 3명이 만나게 될 듯했다.
[이승준]
: 야 근데 너 강윤석 기억하냐?
‘강윤석?’
굉장히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강윤석은 마찬가지로 같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분명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그리고 그런 강윤석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내가 밴드부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준 인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강윤석이 같이 밴드부에 지원하자고 한 덕에 나도 같이 지원했었으니까.
하지만 그대로 강윤석과 함께 밴드부에 들어갔지만, 강윤석은 한 해를 다 채우지 못한 채 부를 나갔다.
포지션이 애매했던 것도 있고, 공부를 하겠다며 부 활동을 포기한 것도 있었다.
[이승준]
: 강윤석도 뜬금 모임에 오겠다네 그래서 다들 좀 놀라는 중
그 자리에 나온다라.
좀 의외이긴 했다.
강윤석은 밴드부를 나간 이후 부원들과 전혀 교류가 없었다.
그건 나와도 마찬가지고.
재학 도중에는 마주치면 간간이 인사하는 정도였지만, 졸업 후에는 이렇게 할 연락은 없었다. 특히나 데뷔하면서는 더더욱.
‘···그래도 같이 공연할 때 재밌었는데.’
반년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함께 공연을 준비하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학교에서 할 공연도 같이 준비하고, 언제나 내게 넌 노래를 해야 한다며 이야기해주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내가 밴드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준 인물이니까. 아직까지 나름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다. 강윤석이라는 인물에 관해 적어도 나쁜 기억은 없었다.
[이승준]
: 그래 그럼 스케줄 힘내라
[우세현]
: 응 다음에 보자
그렇게 답장을 보냈다.
막상 답장을 보내고 나니, 왠지 모르게 그때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