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늘 변하기 마련이다.
유독 눈에 띄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낯설지 않은 이름.
얼마 전까지도 봤던 그 이름이었다.
[강윤석 (남/21)]
성별에 나이까지,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저 할 말이 없었다.
건네받은 악플러 고소 명단에서 그 이름을 발견했을 때, 순간이지만 말문이 막혔다.
···심장이 작게 철렁이는 느낌이었다.
이어서 시선은 자연스럽게 옆에 적힌 내용으로 향했다. 그간 적어 내려간 사이트의 악플들이 간략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적지 않은 숫자였다.
정확한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그 수만으로도 다시 한번 심장이 작게 뛰었다.
‘많기도···하네.’
상당히 씁쓸했다.
그것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있으려니.
“세현아, 왜 그래?”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 순간 정신이 들었다. 옆에선 차선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입이 그대로 굳게 다물어져 차마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명단에 아는 이름이 있다는 말이, 어째서인지 쉽게 나오지가 않았다.
“안색 안 좋아 보이는데.”
“아냐, 그냥 좀, 생각보다 많아서.”
“어디 아픈 건 아니고?”
“아니야. 그런 거.”
하지만 그런 내 대답에도 차선빈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에 그런 차선빈을 향해 웃으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이 명단대로 앞으로 고소를 진행할 예정이며, 이에 대한 공지도 이번 주 중으로 띄울 생각입니다. 아, 그리고 선처는 없을 예정입니다. 이참에 확실하게 보여줄 생각이라서요.”
정서준 이사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처는 없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 말이 다시 한번 내 안에서 맴돌았다.
그렇게 악플러 명단의 확인이 끝났다. 사실상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니 뭘 더 확인하고 말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기분은 여전히 심란했다.
‘하.’
한편으론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저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숙소로 돌아가는 차에 몸을 실을 때까지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지인이 악플러였단 이야기가 남 일이 아니네.’
간혹 그런 이야기를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그 이야기의 당사자가 될 줄은 예상 못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사실이 화가 나기도 했다. 다른 것보다 ‘윈썸’을 비난했다는 사실이.
단순히 나를 욕한 것을 넘어서 윈썸을 비난했다는 건 그 차원이 달랐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나 잠깐 근처 산책 좀 하고 올게.”
“어? 갑자기 웬 산책?”
“형한테서 연락이 와서. 잠깐 돌다가 올게.”
당연히 형한테서 온 메시지 같은 건 없었다. 거듭된 생각 때문인지 조금씩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무래도 바람을 좀 쐐야 할 것 같았다.
바람을 좀 쐬고 나면, 금방 나아질 것이다.
“근데 형, 빨리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째 날씨가 좀 어둑어둑해서.”
“그러게. 오늘 비 온다는 말 있었나?”
“비 올 것 같은데, 그냥 숙소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괜찮아. 금방 올게.”
잠깐이니까 괜찮을 거다.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잠깐 바람만 쐬면 될 것 같았다.
“야, 혹시 모르니까 이거 가져가.”
그때, 안지호가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다름 아닌 우산이었다.
“늦지 않게 와라.”
“고마워.”
그렇게 우산을 받아들였다.
* * *
그대로 모자와 마스크를 잘 착용한 채, 한 손에는 안지호가 준 우산을 들고서 밴에서 내렸다.
정말로 비가 오기라도 할 건지 하늘이 어둑어둑했다. 그리고 그대로 산책로를 따라 잠시 걸었다.
주변은 의외로 한적했고,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끔가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보이는 게 전부였다.
그저 고요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번잡했다.
아무리 이유를 생각하며 반문해도 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속내까지 아는 마당에 별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었다.
단지 싫을 뿐이다.
마음에 안 들었다, 그게 다일 것이다.
거창한 이유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왜 그랬냐고 따져야 할까.
잠시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의미 없는 짓이었다. 따져봤자 결국 예상된 답변만 나올 뿐이다.
‘왜 변한 걸까.’
생각이.
상황에 대한 변화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걸까. 아니, 분명 처음부터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바로 알았을 테니.
지금처럼.
그 순간, 저편에서부터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천둥소리였다.
아무래도 정말 비가 오려나 보다. 아까보다 하늘이 더욱 어두워졌다.
악성 악플러 중 하나가 강윤석이라는 사실 자체도 놀랍긴 했지만, 사실 이 우울한 기분이 단순히 강윤석 때문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고.’
단순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인물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다만,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나라는 그 사실에 더욱 놀랐을 뿐이다.
정말로 이렇게까지.
이제껏 생각이 변화하는 과정은 많이 봐왔다. 그러니 별로 놀랄 것도 없었다. 사람의 생각은 늘, 수 없이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 그러니 놀랄 것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혹시 변한 걸 알게 되면, 그땐 어떡해야 할까.’
멤버들의 생각이.
만약 그런 멤버들의 변한 생각과 마주하게 되면, 그때는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 생각과 함께 갑자기 두려워 지기 시작했다. 왜냐면 그 순간을 나는 오늘과 같이 바로 알게 될 테니까.
일어나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거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했다.
분명 그렇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음에도.
‘이제껏 변하지 않는 생각을 본 적이 있던가.’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해서 걸었다.
주변으론 무언가 쏟아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를 알려주듯 이전보다 모자가 무거워졌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그렇게 오로지 앞만을 향해 걷고 있을 때쯤, 저 멀리 내가 보이는 방향을 향해 서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아무도 없는 길 한가운데서 검은색 우산을 든 채 홀로 서 있는 누군가가.
흐릿한 인영에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난 그게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인물을 향해 그대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렇게 가까이 가자 마침내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동시에 왠지 모르게 고개가 숙어졌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형이었다.
* * *
나를 발견한 형은 곧바로 내 머리 위로 들고 있던 우산을 씌워주었다. 그제서야 주변에 떨어지는 빗줄기가 선명하게 보였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모자는 말할 것도 없고 옷이 축축하게 젖은 채였다.
“이리 와.”
그런 형의 말에 나는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형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내게 다시 씌웠다.
그리고 그대로 젖은 내 모자를 가져갔다. 더 이상 머리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스크로 돼?”
“충분해. 가자.”
그렇게 형을 따라 조금씩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뒤이어 형을 따라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형의 집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곧바로 따뜻한 온기가 훅하고 주변을 감쌌다.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와.”
“응.”
“먹고 싶은 거 있어?”
이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형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일단 씻고 오라며 나를 보냈다.
씻고 나니 그래도 조금 더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형이 준 옷으로 대충 갈아입었다. 가벼운 트레이닝복 세트였다.
근데 역시 좀 컸다. 팔이고 다리고. 이럴 때 보면 괜히 키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그렇게 나가니 형이 곧바로 내게 따뜻한 머그잔을 건넸다. 핫초코였다. 방금 막 탄 건지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마셔.”
“형은?”
“난 나중에.”
“근데 웬 핫초코야? 형, 원래 단 거 안 먹잖아.”
“너 먹으라고 한 통 사놨어.”
형이 핫초코 통을 다시 집어넣으며 말했다. 이렇게 보니 핫초코 패키지의 디자인이 익숙했다.
어렸을 때 많이 먹었던 그 핫초코 브랜드였다. 예전부터 겨울이 되면 형이 자주 타주기도 했었던.
물론 지금은 나이를 먹어 핫초코보다는 커피지만.
“근데 나 거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백은찬 씨가 연락 왔더라. 산책 잘하라면서.”
아, 백은찬이.
얼마 전 백은찬이 형의 번호를 물은 적이 있었다. 가끔씩 안부 인사라도 전하고 싶다면서. 그래서 알려줬고.
“근데 왜 비를 다 맞고 있어, 우산은 뒀다가 뭐하고.”
“아, 우산···.”
그 순간, 기억이 났다.
나 우산 있었지.
“무슨 일인데.”
형이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형. 예전에 형이 한번 말한 적 있었잖아. 생각이 어떻게 변하는지 잘 보라는 말.”
“어. 했었지.”
예전에 형이 했던 말이었다.
멤버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하는지 잘 보라는 말. 하지만 그때는 그 말을 그냥 넘겼다.
그리 와닿지 않았을뿐더러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다소 가볍게 생각했으니까.
“왜? 그 녀석들이 속이라도 썩여?”
“아니, 그런 거 아니야. 그럴 애들도 아니고.”
“그럼?”
“그냥···어디까지나 내 기우야.”
하지만 이렇게 되니 괜스레 그때의 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멤버들에 대한 믿음이 그때보다 가벼워져서 그런 게 아니었다. 오히려 더 무거워졌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떠오른 것이다.
그 마음들이 너무 소중해서,
잃고 싶지 않아졌다.
그저 간절히, 지키고 싶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내 의견은 같아. 듣기 싫겠지만, 너희 멤버들을 백퍼센트 믿으라는 말은 못 해.”
형이 말했다.
“사람이란 건 원래 각자의 생각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타인이 그 생각이 틀렸다고 마냥 지적할 수도 없는 거고. 그리고 생각이 달라진다면 결국 갈라설 수밖에 없어.”
방금 말이 마치 경험담처럼 들리는 건 내 착각일까. 왠지 모르겠지만, 순간 루트 멤버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난 별로 믿지 않는 쪽을 추천해. 나한테 중요한 건 너니까. 결국 니가 믿어서 상처받는다면, 사전에 내가 먼저 과감히 쳐낼 생각도 있어.”
그 목소리가 꽤나 단호했다.
아무리 그래도 쳐낼 것까진 없지 않나 생각하면서도 형이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멤버들을 믿고 싶은 건 여전했다. 그래야만 했고.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잠시 입을 다물고 있자, 형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앞서 걱정하지 말고.”
그렇게 형이 내 머리를 헤집었다.
막 씻고 나온 탓인지 그대로 머리가 붕 떴다.
“···니가 그때 그랬잖아. 이제까지 보고 느낀 게 있다고.”
“어?”
“이제까지 너희 멤버들을 보고 느낀 게 있고, 그 판단에 따라서 행동하고 있다고.”
기억이···났다.
그러니까 데뷔 서바이벌 생방이 끝난 당시, 멤버들에 관해 묻는 형에게 내가 했던 말이었다.
“그러니 지금까지처럼 계속 그러면 돼. 그 판단을 믿고. 멀리 생각할 것 없어.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한순간에 변하는 것도 아니니까.”
“···응.”
그러자 형이 나를 향해 웃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형을 보며 작게 웃었다. 형의 말처럼 앞서 걱정할 건 없었다.
그 말 한마디에 이전보다 마음이 편해졌다. 형에게 털어놓은 덕인지.
눅눅했던 마음이 한결 나아진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