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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340화 (340/413)

340화. 그럼에도 변하지 않도록

“근데 갑자기 그런 생각은 왜 든 건데?”

형이 물었다.

그리고 그 대답을 하기까지 잠깐 고민의 시간이 있었지만, 그냥 말하고 말았다.

“아는 지인이 내 악플러였거든.”

“그 X끼 이름 뭔데.”

형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반응 한번 빨랐다.

형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잠식되는 기분이었다. 조금 더 침착해질 수 있었다.

머리를 어지럽히던 생각들도 많이 사라졌고, 그리고 그 덕인지 두통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비를 한번 시원하게 맞은 덕도 있는 것 같았다. 덕분에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

“그냥 가려고?”

“응. 숙소 가야지.”

“자고 가.”

“내일 스케줄 있어. 형도 스케줄 있지 않아?”

그러자 형이 잠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스케줄이 있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없을 리가 없다.

“나 이제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그러자 형은 말없이 한숨을 한번 내뱉더니 이내 겉옷을 가지고 나왔다.

“나와, 데려다줄게.”

“어차피 요 앞인데.”

“불안해서 안 돼.”

그렇게 형이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다시 날 보며 말했다.

“또 청승맞게 비 맞을까 봐.”

음, 내가 생각해도 그건 좀 청승맞긴 했다. 그리고 그대로 안지호가 준 우산을 잘 챙겨 형을 따라 집을 나섰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형한테 연락하고.”

“응.”

“말로만 하지 말고. 아니면 내가 하고.”

“걱정 마. 할게.”

그런 내 대답에도 형은 여전히 표정을 피지 않은 채였다. 이에 꼭 하겠다고 다시 한번 말해주었다.

“숙소에 감기약 같은 건 있어?”

“나 체력 좋아. 비 잠깐 맞은 걸로 감기 같은 거 안 걸려.”

“있어, 없어. 그것만 말해.”

“있어. 괜찮으니까 이제 그만 가.”

그러자 형은 이내 알겠다며 등을 돌렸다. 그렇지만 얼굴은 여전히 석연치 않다는 표정이었다.

“바로 먹어. 바로.”

“알겠다니까.”

그리고 나는 그런 형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이내 걸음을 옮겼다.

‘괜히 걱정만 하게 만들었네.’

돌이켜보니 형한테 좀 미안해졌다.

걱정만 시키고.

게다가 하필 그 꼴로 만나는 통에 괜히 더 걱정하게 만들었다.

‘당분간은 연락 좀 자주 하자.’

더 이상 걱정하지 않게.

그리고 그대로 숙소 앞에 도착했다. 이어서 평소처럼 익숙하게 번호를 누르려고 하는데, 그 순간 안에서부터 문이 열렸다.

─철컥!

“어, 우세현?”

백은찬이었다.

패딩에 회색 후드티를 뒤집어쓴 백은찬은 마치 집 앞을 나가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디 가?”

“뭐야, 왔네. 너 안 오길래 한번 나가 볼까 했지.”

“세현이 왔어?”

그 뒤로 차선빈의 모습도 보였다.

차선빈 역시 간단한 외출 복장이었다.

“어두워졌는데도 안 오길래. 그대로 우리도 한강이나 돌아볼까 하고 있었지.”

“아, 중간에 비가 와서 형네 집에 있다가 왔어.”

“세현아, 일단 들어와.”

차선빈이 그대로 나를 향해 손짓했다. 그리고 들어가자 곧바로 다른 멤버들이 나를 반겼다.

“왔어?”

“세현이 형!”

도운이 형도 하람이도 모두 거실에 모여 있었다. 여기에 안지호도. 동시에 안지호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우산은? 썼냐?”

“응. 잘 썼지.”

그대로 손에 있던 우산은 한번 들어 보였다. 오는 길에 잘 썼으니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어?”

“왜?”

“근데 옷은 왜 갈아입었어?”

아, 맞다. 옷.

“형한테 빌렸어. 집에서 핫초코 먹다가 옷에 흘려서.”

“아, 그거 잘 지워지지도 않을 텐데. 그래도 막 입는 거라 다행이네.”

“응. 다행이지.”

그렇게 자연스럽게 넘겼다.

이에 차선빈이 세탁물에 넣어두겠다고 하는 걸 내가 직접 넣겠다고 말해두었다.

그렇게 먼저 방으로 들어왔다.

‘···편안하네.’

숙소에 오니 익숙한 안도감이 들었다.

집이 최고란 말을 이럴 때 쓰는 거겠지.

분명 오늘 딱히 뭐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평소보다 피곤한 느낌이었다. 비를 맞은 영향이 정말로 어느 정도 있는 건지.

그대로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침대에 기대어 있었다. 그저 조용하고 편안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순간적으로 방문이 벌컥 열렸다.

“야, 우세현.”

“···깜짝이야.”

그대로 안지호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뭘 그렇게 놀라?”

“당연히 놀라지. 누구든 그렇게 들어오면.”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잖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알다시피 사전에 노크를 하는 건 한결같이 차선빈밖에 없어서.

“근데 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뭔데?”

“너 무슨 일 있냐?”

“뭐?”

그대로 안지호가 덤덤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질문 또한 갑작스러워서 순간 다시 한번 놀랄 뻔했다.

“안 그런 척하는 거 다 보인다. 아까부터 상태가 영 이상한 것 같았는데, 뭔데?”

안지호가 그렇게 팔짱을 낀 채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정확히 정곡을 찌르는 말에 순간적으로 침묵했다.

표정이 그렇게 티가 났나.

특별히 별로 다를 거 없다고 생각했는데.

“괜히 어영부영 넘길 생각 말고 말해라. 죽상으로 아니라고 하지 말고.”

“···죽상까지야?”

“어. 완전.”

꽤나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걸 보니 괜히 할 말이 없어 피식 웃었다. 그렇게까진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그냥 쓸데없는 생각이 좀 들어서.”

“쓸데없는 생각? 뭐.”

“시시각각 변화하는 인간의 생각에 관한 고뇌와 그에 대한 해결방안.”

“뭐?”

그러자 안지호는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둥 나를 쳐다봤다.

“···거짓말 아니고 진짜라고?”

“진짜일 리가 있겠어. 장난이야.”

이런 걸 고민한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반대의 입장이라도 웬 허무맹랑한 소린가 했을 거다.

“뭐 그런 쓸데없는 걸 고민하고 있냐?”

하지만 그 순간, 안지호는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뭐?”

“니가 방금 한 얘기. 너무 쓸데없는 거라 놀라는 참이라고.”

그럼에도 그런 내 얘기를 안지호는 진지한 태도로 들어주고 있었다. 분명 허무맹랑한 소리란 걸 알면서도.

그리고 그걸 보니 문득 묻고 싶어졌다.

“안지호. 너도 변한다고 생각해?”

“뭐가? 니가 방금 말했던 생각?”

“생각일 수도 있고 다른 거일 수도 있고. 범위는 넓잖아.”

“당연한 거 아니냐?”

안지호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 나온 대답에 나는 그대로 조금 놀랐다.

“생각이든 뭐든 당연히 변하겠지. 뭐가 됐던 시간이 지나면 변하기 마련이니까.”

의외로 안지호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런 안지호의 생각엔 나 역시 공감하는 바였다. 그렇지, 역시 그렇겠지.

“하지만 그러는 게 싫다면, 그냥 지켜가면서 살면 되는 거잖아.”

그렇게 뒤따라오는 말에 나는 그대로 안지호를 다시 쳐다봤다.

“변하지 않게 지키면서 살아가면 되는 거지. 물론 그건 혼자만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겠지만. 상대방도 모두 그럴 의지가 있다면, 난 가능하다고 보는데.”

의외의 말이었다.

안지호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에. 조금 놀랐다.

안지호라면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할 줄 알았기에.

“···그럼 너도 지키고 싶은 게 있어?”

“있어.”

“뭔데?”

그러자 안지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그룹.”

전혀 망설임이 없는 대답이었다.

* * *

“끝까지 지키고 싶은 거, 그룹이야.”

그룹.

그런 안지호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안지호가 말하는 그 그룹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난 되도록 이 그룹이 오래 갔으면 좋겠어.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 처음이자 마지막 그룹이니까. 그래서 지킬 생각이고.”

“지키면···되지.”

“그래. 그럴 거야. 반드시.”

그리고 그 말을 듣고 나니 알게 되었다.

안지호도 결국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보다 답은 간단했을지도 몰랐다.

지금의 대답처럼.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이렇게 간단하고 당연한 걸 너무 오래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러니 너도 지키면 된다고.”

안지호가 그렇게 나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그룹, 이건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러니까···.”

─쾅!

그리고 그때, 다시 한번 방문이 세차게 열렸다.

“둘이서만 뭘 그렇게 쑥덕거리냐?”

백은찬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 뒤로는 차선빈과 도운이 형, 하람이까지 줄줄이 다 같이 있었다.

“우세현이 그룹이 없어질까 봐 무섭대.”

“엥?”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안지호···.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하고 있어? 혹시 그것 때문에 힘이 없는 거였어?”

“세현이 형, 괜찮아요! 그런 일은 없어요! 제가 그렇게 안 되게 이끌 거니까요!”

“이끌어도 내가 이끌어야지···.”

“세현아,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난 윈썸에 뼈를 묻을 생각이야.”

“뭐 그렇게 말을 살벌하게 하는 거야, 차선빈.”

그럼에도 차선빈은 여전히 나를 향해 굳건한 얼굴을 보였다.

“그래, 그럼 같이 묻자.”

“야, 우세현 너까지···.”

“그럼 그냥 다 같이 묻죠!”

“난 상관없어.”

“선빈이 넌 당연히 상관이 없겠지···.”

“도운이 형은 안 묻을 거예요?”

“···묻어. 묻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다 같이 그룹에 뼈를 묻게 되어 버린 셈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와 비슷한 생각이다. 그러니 굳이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그건 멤버들의 생각 또한 마찬가지였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멤버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거면 됐다.

그거면 충분했다.

나는 그저 이를 지킬 생각이다.

“근데 세현아. 정말로 무슨 일인지 말해줘.”

그때, 차선빈이 나를 보며 말했다.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전에도 말했지만, 말해줬으면 좋겠어. 친구니까.”

“그래, 우세현. 니가 말하기 힘든 게 아니라면 굳이 숨기지 말고 얘기해봐.”

그 순간, 멤버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향했다. 하지만 말하는 것에 고민은 없었다. 못할 얘기가 아니었으니까.

다만, 그렇게 나를 보고 있는 멤버들의 모습이 마치 미어캣들 같아 나도 모르게 순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 * *

“미친 거 아니야? 그 자식이 니 친구였다고?”

“아니, 친구 아니고 그냥 지인이라고 했어.”

“아, 그래. 친구는 아니랬지.”

백은찬이 그대로 급하게 말을 정정했다.

사실 친구건 지인이건 표현은 상관없었다. 지인이라고 하는 것도 애매하니까, 이젠.

“잠깐,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강윤석.”

“아, 그 자식 왠지 기억이 나는 것 같다. 우리랑 비슷한 또래라서 눈에 띄긴 했어. 근데 그 자식이 너랑 아는 사이였다니.”

“X친 X끼네, 그냥.”

안지호가 와중에 찰지게 비속어를 날렸다.

“그런 새X 때문에 굳이 기분 더럽힐 필요 있어? 어차피 고소 들어갈 테고 제대로 처벌받을 텐데.”

“처음엔 좀 놀라긴 해서.”

“하긴 나 같아도 그럴 것 같아. 심장이 좀···철렁였을 것 같은데.”

처음엔 전혀 예상을 못 한 탓에 그런 감이 있었지만, 그 감정이 지금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이제는 그저 상관없는 일이었다.

“세현이가···놀라긴 했겠어. 많이.”

동시에 멤버들이 내 눈치를 보는 게 보였다. 어, 이제는 정말 상관없는데.

“처음에만 좀 그랬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래서 변하고 어쩌고 물어본 거냐?”

“어, 뭐. 그런 셈이지.”

“아오, 이런 X.”

그렇게 안지호가 얕게 한숨을 한번 내뱉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걸 물은 건 좀 낯부끄러웠다. 너무 솔직했다.

“신경 쓰지 마, 세현아. 굳이 니가 마음 쓸 필요 없어.”

“응. 고마워.”

“그래, 어떻게 생각하면 고소해서 다행이네. 이건 제대로 대응해달라고 회사에 다시 말해야겠는데.”

멤버들은 그렇게 나를 오랫동안 위로해주었다. 정말로 꽤 오랫동안.

앞선 사실 같은 건 이제 아무런 상관도 없었지만, 그런 멤버들의 위로는 확실히 힘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 같이 한동안 오래 대화를 나눴다. 이렇게 오랜 시간 대화를 한 건 상당히 오랜만인 것 같았다.

이어서 그 대화가 끝날 무렵, 방에 나와 백은찬만이 남게 되었을 때 갑작스레 백은찬이 나를 향해 말했다.

“야, 세현아. 줄 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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