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화. 이제 땅땅이지
“줄 거 있다고?”
“응. 줄 거 있어.”
그와 동시에 백은찬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기분이 업되어 보였다.
“잠깐 기다려봐.”
그리고는 잠시 뭔가를 찾더니 이내 그것을 찾아 손에 쥐고 왔다. 한 손에 들어갈 만한 크기의 작은 상자, 아니 케이스였다.
“아, 이거 혹시···.”
“눈치챘냐? 맞아, 그거야.”
눈치 못 챌 수가 없었다.
이 크기의 케이스라면, 당연히 그것밖에 없었다.
“반지.”
그와 동시에 백은찬이 가지고 있던 케이스를 열어 보였다. 그 안에는 금색의 반지 하나가 담겨 있었다.
다 같이 맞춘 우정 반지였다.
“어때? 예쁘지 않냐?”
“응. 예쁘다.”
이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며칠 전, 멤버들과 같이 오프라인 매장으로 반지를 사러 갔었다.
실물도 보고 사이즈가 맞는지 확인도 할 겸 직접 갔는데, 하필 해당 매장에 내 손에 맞는 사이즈의 반지가 없어 그대로 입고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거 픽업하면서 같이 가져왔어. 오늘 막 들어왔다고 하더라고.”
“지금 끼려고?”
“응. 이런 건 원래 바로바로 끼는 맛이지. 너도 끼워줘?”
“아니.”
그러자 백은찬이 씨익 한번 웃었다.
끼워주긴 내가 껴야지.
그렇게 백은찬은 또 다른 케이스를 열어 반지를 착용했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한번 보인다.
상당히 잘 어울렸다.
그때도 봤지만, 멤버들에게 잘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잘 정한 것 같았다.
“이걸로 이제 땅땅이지.”
“뭐가?”
“윈썸에 뼈 묻기.”
그 순간, 백은찬과 시선이 마주했다.
“그룹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난 우리 팀에서 가족과 같은 뭔가를 느껴. 그래서 더 애착이 가고. 나한테 있어 가족은···좀 특별하거든.”
···가족과도 같은 무언가.
백은찬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직접 듣는 건 처음이었다.
백은찬은 평소에 가족 같다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만큼 가족이라는 표현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백은찬은 그 누구보다 가족을 소중히 했다.
가족을 소중히 하는 백은찬에게 가족과도 비슷한 무언가.
그러니 방금 그 말은 정말로 윈썸을, 우리 그룹을 가족처럼 여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오래 함께하고 싶고. 그러니까 혹시라도 불안해할 필요 없다고. 이렇게 눈에 보이는 증거도 있으니까.”
“···그건 안지호가 한 얘기라니까.”
“뭐든. 어쨌든 타이밍 맞게 잘 온 것 같다.”
그렇게 백은찬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반지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백은찬에게서 받은 반지를 잠시 응시했다.
‘눈에 보이는 증거.’
어째서인지 그 말이 꽤 와닿았다.
그리고 그렇다면, 항상 쥐고 있고 싶었다. 절대 놓치거나 잃어버리거나 하는 일 없이. 최대한 가까이 두고 싶었다.
“···디자인, 이거 누가 정했었지?”
“그거 내가 정한 거잖아~”
“일단 넌 아니야.”
“? 뭔소리지? 나라니까?”
“넌 확실히 아니었어. 누구였더라, 선빈이었나.”
“? 아니, 나 지금 굉장히 어이가 없는데?”
그렇게 반지를 착용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처음 봤을 때보다 반지가 더욱 빛나 보였다.
이것과 함께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게 생겼다.
* * *
“세현이 형, 반지 꼈네요~?”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마주한 하람이가 그렇게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하람이의 손에도 역시 내 것과 같은 디자인의 반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너도 꼈네. 잘 어울린다.”
“히, 그렇죠. 저도 꼈어요. 근데 이거 디자인 누가 정했었죠? 엄청 잘 정한 것 같아요.”
역시 보는 눈은 다 비슷하군.
내 눈에만 계속 괜찮아 보인 게 아닌 모양이다.
“형은 검지에 꼈어요?”
“응. 검지가 편해서.”
“전 중지에 꼈어요! 근데 선빈이 형은 아까 보니까 약지에 꼈던데요?”
“나, 왜?”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차선빈이 나왔다. 마찬가지로 손에 반지를 끼고 있었는데, 실제로 오른손 약지에 끼고 있었다.
“약지에 꼈어?”
“응. 여기에 끼는 게 어울려서.”
차선빈이 늘 그렇듯 덤덤하게 답했다.
그렇지, 뭐 편한 곳에 끼면 되는 거지.
‘그렇다면 선빈이가 괜한 오해 받지 않게 옆에서 최대한 반지를 흔들어야···.’
잠깐 그렇게 생각에 잠겼다.
왼손은 아니지만, 설령 오른손이라도 약지의 반지는 아무래도 오해받기 쉽다.
“세현이 넌 어디에 꼈는데?”
“난 검지.”
“약지에 끼는 것도 예쁠 텐데.”
그런가.
그 말에 잠시 고민이 되긴 했으나 역시 그냥 이쪽에 끼는 게 편했다.
“근데 우리 이거 언제 공개해요?”
“날짜 정해서 라이브로 공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니면 그 전에 먼저 다 같이 찍어서 올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날짜 잡는 건 중간 과정 때문에 시간이 좀 더 걸릴 테니까.
어쨌건 우정 반지 공개 건에 관해서는 멤버들과 조금 더 의논해보고 구체적인 공개일이나 방법 등을 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전에 회사에 들러야 할 일이 있었다. 앞선 악플 고소 관련 일이었다.
“그러니까, 악성 댓글 작성자 중에 세현 씨의 지인이 있다는 거죠?”
“네. 맞습니다.”
앞선 강윤석의 이야기를 그대로 회사에 전달했다. 아무래도 이건 확실하게 이야기를 하고 갈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자 내 말을 들은 정서준 이사가 순간적으로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는 약간의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선처를 생각하고 있나요?”
“전혀요.”
하지만 괜한 우려였다.
애초에 선처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았다.
“무조건 강경 대응으로 가겠습니다.”
이건 무조건 강경 대응이었다.
선처 같은 것을 할 명분 따위는 없었다.
그저 아는 지인이 있었다는 것뿐, 그게 선처를 할 명분은 되지 않았다.
씁쓸함을 조금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할 순 없었지만, 이에 좌우되지는 않았다.
이렇게 고소 명단에까지 올랐다는 건 가볍게 욕 몇 번 한 게 아니라는 거니까.
아마도 수위가 높은 욕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빈번하게 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눈 감을 생각 따윈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내 대답을 들은 정서준 이사가 이내 살짝 미소를 보였다. 혹시나 내가 선처를 택할까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좋습니다. 그럼 세현 씨의 말대로 회사가 처음 진행하려 했던 대로 강경 대응으로 가겠습니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예정했던 대로 고소 관련 공지가 올라갔다.
- [IN 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 명예 보호를 위한 법적 조치 관련 사항 안내
[안녕하세요, IN 엔터테인먼트입니다. 현재 당사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지에서 발생한 지속적인 악플과 관련한 아티스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고소를 진행하고 있음을 알립니다.]
└ 와 IN 고소 공지 떴다
└ 드디어 IN이 고소를 하는 구나 이참에 인생은 실전이라는 걸 보여줘야지
└ 안 그래도 요즘 윈썸 악플 많아서 보는 족족 PDF 따서 넘겼는데 IN이 계속 읽고 있더라
└ 걍 입고소인 거 아님? 맨날 공지만 띄우고 뭐 메일 읽지도 않던데
└└ 내용 보면 한다는 게 아니라 이미 했다는 것 같은데? 이거 이미 고소장 돌린 듯
└└└ ㅇㅇ 이미 했다는 것 같음
└ 요즘 윈썸 관련 악플 개 심했어ㅡㅡ
└ 여기에도 이미 잡혀갈 것 같은 애들 몇 명 보이는데ㅋㅋ
그리고 그 뒤로 예상했던 연락이 왔다.
강윤석으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내용은 뻔했다.
[고소 취하 어떻게 안 될까?]
고소장을 받은 순간부터 연락은 지속적으로 왔다. 물론 내용은 모두 동일했고. 하지만 그에 관한 내 대답도 뻔했다.
[차단]
그대로 번호를 차단했다.
굳이 일일이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같은 말을 여러 번 하는 것도 힘드니 그냥 차단하는 게 나았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나온다 한들 강윤석의 쪽에서는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뭔가를 하려는 순간, 그건 오히려 자신의 목을 조르는 행위라는 걸 본인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안타까운 감정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감정을 쏟을 필요조차 없어서.
이전에 들었던 불안한 생각 또한 더는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지금만 생각해야지.’
그저 지금,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을 지켜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나아가기로 했다.
* * *
고소는 탈 없이 잘 진행되었다.
마음은 후련했고, 반지는 여전히 마음에 들었다. 그 이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간만에 행사 스케줄을 하게 되었다. 행사 장소는 인천이었다.
“행사장 근처에 유명 빵집이 새로 생겼대요!”
“유명 빵집? 맛있대?”
“맛있으니까 유명 빵집이겠죠. 보니까 거리도 꽤 가깝던데. 끝나고 이거나 몇 개 사갈까요?”
“사자. 저녁으로 먹어도 좋고.”
행사장 근처로 유명한 빵집이 하나 있는 모양이었다. 정말로 맛있는 곳인지 하람이가 그 집의 빵 사진을 이것저것 보여주고 있었다.
빵, 그렇지. 빵 좋지.
“세현이 형, 카스테라 좋아하죠? 여기 카스테라도 맛있대요!”
“그래?”
이에 신나 하는 하람이를 향해 웃었다.
그래. 카스테라, 맛있지.
‘···골 울린다.’
근데 지금은 골이 울렸다.
동시에 지끈거리는 머리에 그대로 잠시 이마에 손을 댔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망할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한심하게도.
형한테 감기 같은 건 안 걸린다고 그렇게 큰소리를 땅땅 쳤는데.
‘목도···살짝 잠긴 것 같은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목 컨디션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평소와 다른 느낌이긴 한데, 그나마 다행인 건 목소리엔 문제가 크게 없다는 점이었다. 무대엔 충분히 오를 수 있었다.
‘젠장, 쓸데없이 감기라니.’
간간이 헛기침 같은 기침이 나오긴 했지만, 최대한 멤버들이 눈치채는 일이 없도록 나름 신경 쓰고 있었다.
아니, 그때 비 맞아서 걸린 게 아닐 수도 있다. 아무래도 근래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걸린 걸 수도 있다.
···아마도.
“이마는 왜 짚고 있냐?”
“···갑자기 흑역사가 떠올라서.”
“너 흑역사 뭐? 우세현의 연대기는 웬만해서 내가 다 아는데.”
백은찬, 니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건데?
어쨌건 괜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그대로 이마를 짚던 손을 내렸다.
그대로 행사장에 도착했다.
오늘따라 바람이 차가웠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몸 주변으로 으슬으슬한 한기가 느껴졌다.
“많이 추워?”
“아니, 조금.”
“목도리 더 해줄게.”
그러자 차선빈이 하고 있던 목도리를 벗어 내게 둘러주었다. 와중에 메이크업이 지워지지 않도록 움직임이 조심스러웠다.
“고마워. 따뜻하다.”
“많이 추우면 말해. 핫팩 더 줄게.”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차선빈이 준 목도리 덕에 조금은 따뜻해진 기분이었다.
그 사이 대기실에 도착했다. 그나마 실내 대기실인 덕분에 더 이상 덜덜 떨 일은 없었다.
그러니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분명 컨디션도 조금씩 나아질 거다.
그래도 차선빈이 준 목도리는 계속하고 있었다. 막상 벗으려니 다시 한기가 도는 것 같아서.
“우세현, 목도리 안 불편하냐?”
“응. 괜찮은데.”
“더울 것 같은데.”
“따뜻해서 좋아.”
“따뜻하다고?”
그러자 백은찬이 의아한 얼굴을 보였다.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스텝의 목소리.
“그럼 이제 윈썸 분들 올라갈게요.”
무대에 올라가야 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