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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343화 (343/413)

343화. 귤과 사과주스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얼굴에 나는 그대로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꿈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눈앞은 여전히 선명했다.

아직까지 미세하게 있는 열 탓인지 머리가 멍했다.

그리고 그런 내 눈앞엔 지금, 형이 있었다. 우리 형이. 동시에 형의 손이 내 이마 위로 올라왔다. 이건 분명 현실의 감각이었다.

“열 아직 있네.”

눈앞의 형이 중얼거렸다.

이에 나는 그대로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여긴 우리 숙소, 내 방이 맞았다.

“어딜 그렇게 봐.”

그리고 그런 내 의심을 꾸짖듯 형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여기 분명 우리 숙소인데.”

“맞아. 너희 숙소.”

형이 태연한 모습으로 답했다.

그리고 그런 형의 대답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하고 들었다.

진짜다. 진짜였다.

지금 이건 정말로 현실 상황이었다.

동시에 누워있던 몸을 빠르게 일으켰다.

“형이 왜 여기 있어? 숙소엔 어떻게 왔어? 다른 애들은···.”

“천천히 하나씩 물어. 그보다 아직도 열나는데, 약은?”

“아, 약 먹었어.”

“···너 원래 한번 열 오르면 잘 안 떨어지니까.”

그리고는 작게 한숨을 쉰다. 동시에 형이 뭔가를 부스럭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곧 내게 작은 유리병 하나를 건넸다.

사과주스였다.

그것도 상당히 익숙한 사과주스.

“이거···예전에 많이 먹던 그거네.”

“어. 그거 맞아. 너 열 날 때면 종종 마시던 거. 마시면 그래도 좀 떨어지고.”

“귤은?”

“귤도 사 왔어.”

형이 그대로 귤을 꺼내 보였다.

귤과 사과주스, 하나 같이 어린 시절 아파 누웠을 때마다 종종 먹던 것들이었다.

“따줘?”

형은 그렇게 물었지만, 이미 뚜껑은 딴 지 오래였다. 아무리 열이 나도 뚜껑을 못 딸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 열도 아까보다 내렸고.

그렇게 주스를 한 입 마셨다.

마시고 나니 그제야 좀 목의 통증이 완화되는 느낌이었다. 살 것 같았다.

“근데 숙소는 정말 어떻게 온 거야?”

“텔레파시.”

“장난치지 말고.”

“너 상태 안 좋아 보이는 거 보고 내가 너희 멤버한테 연락했어.”

상태 안 좋아 보이는 거···아, 혹시 오늘 올라온 프리뷰 사진을 본 건가. 역시 상태가 안 좋았던 게 티가 많이 났던 모양이다.

“근데 연락을 했다고? 누구한테···아, 백은찬?”

“응.”

“무슨 얘기 했는데?”

“너 잘 못 먹는 거 같다고 걱정하길래 내가 잠깐 방문하겠다고 했어. 너 사과주스랑 귤은 그나마 잘 먹잖아.”

그건 그렇긴 했다.

신기하게도.

그래서 아파서 누워있을 땐 항상 형이 옆에서 열심히 귤을 까주곤 했었다.

“그보다 분명 말했을 텐데. 약 먹으라고.”

“···그것 때문에 걸린 거 아니야.”

“대충 봐도 그때 비 맞아서 걸린 거로밖에 안 보이는데.”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 요즘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다. 피곤해서.

그럼에도 형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동시에 껍질을 깐 귤을 그대로 내게 건넸다.

생각보다 귤이 꽤 달았다.

“하나 더 줘?”

“응. 얼마나 사 왔어?”

“많이 샀어. 한 박스 사 오려다 말았다.”

“한 박스 사 오지.”

괜히 아쉬웠다.

이 정도 당도가 흔하진 않은데.

“사줄게.”

형이 귤 하나를 더 건넸다.

그리고 그렇게 받은 귤은 다시 금방 먹었다. 이상하게 입맛이 없어도 항상 이건 먹을 만했다.

이후 귤을 몇 개 더 먹고 나서야 다시 눕게 되었다.

“자고 일어나서 꼭 약 챙겨 먹고.”

“형은 이제 가려고?”

“···가야지.”

형이 조금 씁쓸한 얼굴로 답했다.

그걸 보니 다시 잠들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집이 아닌 숙소이다 보니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정 없게 나 자기도 전에 가진 말고.”

“걱정 마. 그럴 생각 전혀 없으니까. 제대로 보고 갈 거야.”

“근데 형.”

“응.”

“맛있어. 귤.”

그러자 형이 피식 한번 웃었다.

“한 박스 얘기를 이렇게 연장하는 건가.”

“응. 연장하는 거야. 멤버들도 먹으면 좋으니까.”

“그래. 알겠어. 이제 다시 자.”

곧바로 형이 다시 이마에 손을 얹었다. 아까보다는 확실히 손이 차갑지 않았다. 기분이 한결 편해졌다.

그렇게 눈을 감았다.

왠지 모르게 주변이 이전보다 훨씬 따뜻해진 느낌이었다.

“···형.”

“응.”

“이왕이면 오래 있다 가.”

그러자 형이 작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어.”

그 말에 왠지 안심이 됐다.

* * *

그로부터 얼마 뒤, 우세현은 이내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상당히 편안해 보였다. 방안은 그렇게 고요해졌다.

더불어 이를 확인한 우도현 역시 그제서야 한숨 놓이는 기분이었다.

평소 되도록 숙소에 드나드는 일은 없도록 하고 싶었지만, 오늘 같은 날은 예외였다.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한 번 열이 나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체질이었다. 여기에 그때마다 잘 먹지도 않는 통에 항상 걱정이 많았었다.

그나마 먹는 게 사과주스와 귤 정도였다. 그리고 그걸 먹고 나면 그때야 조금씩 열이 완전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세현이 잠든 이후에도 우도현은 한동안 방 안에 머물러 있었다.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탓이었다.

‘열이 다 떨어지는 걸 보고 가고 싶지만.’

그런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렇지만 여긴 어디까지나 개인 생활 공간이 아닌 엄연한 숙소였다.

만약 제집이었다면, 그대로 밤새 옆에 있었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아무래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나마 독방이었으면 좀 나았을 텐데.’

와중에 룸메이트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나저러나 동생이 곤란해지는 상황은 사양이었다.

‘도대체 숙소는 언제 나오는 건지.’

이제 겨우 3년 차, 도대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전부 무시한 채 그냥 빼 올 수도 없고.

우도현으로썬 이런 상황이 그저 답답했다. 그렇게 시간이 가는 줄 모른 채 한참을 옆에 있었다.

동생이 어렸을 땐, 아프거나 하면 종종 저를 찾아대곤 했었다. 그래서 그럴 때면 밤낮이고 항상 옆에 붙어 있곤 했었다.

이제는 이만큼 커버렸으니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그때의 우세현의 모습이 우도현에겐 아직까지 선명했다.

‘···이제 일어나야겠군.’

그렇게 우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이렇게 얼굴을 보니 이전보다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발걸음을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침대 옆에 놓인 인형에 시선이 갔다. 그걸 본 우도현은 이내 피식 한번 웃었다.

‘저 꼬질꼬질한 걸 아직도 갖고 있네.’

자신이 준 인형이었다.

아무래도 저것도 새로 하나 사다 줘야 하나 싶었다. 좋아하진 않겠지만.

그리고 마저 발걸음을 옮길 찰나, 그런 우도현의 시야에 순간적으로 걸린 것이 하나 더 있었다.

‘화분?’

화분이었다.

분홍색 화분.

처음 보는 화분이었다.

그렇게 우도현은 그 분홍색 화분을 잠시 응시했다. 그것은 마치 한 그루의 벚꽃 나무 같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게 자꾸 눈에 밟혔다. 상당히 마음에 안 들었다. 그것도 아주, 상당히.

그렇게 우도현은 방을 나설 때까지 화분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아, 형님. 이제 가시게요?”

방문을 열고 나오자 곧바로 거실에 있던 백은찬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동시에 다른 멤버들 역시 그런 백은찬을 따라 하나둘 다가왔다.

“네. 이제 가야죠. 오늘 고마웠어요.”

“세현이는 잠들었나요?”

“네. 방금 막이요.”

우도현은 오늘 올라온 윈썸의 행사 프리뷰 사진을 확인하는 순간, 곧바로 우세현의 상태를 눈치챘다.

어디까지나 선명하지 않은 프리뷰 사진임에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상태가 좋지 않다는걸.

실제로 우세현의 표정은 평소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얼굴이 창백하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우도현은 알아봤을 것이다.

그리고 우도현은 이를 눈치채자마자 급하게 동생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건지 연락이 제대로 닿질 않았다.

그래서 백은찬에게 연락을 넣었다.

우세현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선배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우도현은 곧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봤다.

“걱정 많이 안 하셔도 됩니다. 세현이 약은 잘 챙겨서 먹이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 말을 하던 차선빈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우도현은 그런 차선빈을 조용히 응시했다.

꽤나 듬직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걱정이 어려 있었고.

차선빈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멤버들 역시 하나 같이 우세현을 걱정하는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들을 보니 문득 지난번 우세현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멤버들에 관해 불안해하며 나눴던 그 대화.

그리고 아마도 우세현은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은 것 같았다. 그것도 상당히 긍정적인 방면으로.

하지만 우도현의 입장에선 그 선택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고맙네요. 세현이 일어나면 이 주스랑 귤 주세요. 그럼 잘 먹을 거예요.”

“아, 넵.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귤 한 박스···아니, 세 박스가 나으려나.”

“네? 귤이요?”

그 순간, 뜬금없는 말에 멤버들이 그대로 의아한 표정과 함께 우도현을 쳐다봤다.

“세 박스 정도가 적당할 것 같은데. 혹시 귤 안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우리 세현이는 좀 많이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여전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멤버들을 향해 우도현은 아주 멀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눈을 뜨고 나니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리고 지난 밤 동안 약 효과가 제대로 돌았던 건지 오늘은 몸이 훨씬 가뿐했다.

‘아니면 사과주스 덕인가.’

형이 사 왔던 사과주스.

어쩌면 그거 덕일지도 몰랐다.

자고 일어났을 때 당연히 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자는 사이에 간 거겠지.

‘···생각보다 일찍 잠들었다.’

사실 그렇게 일찍 잠들 생각은 없었는데, 어째서인지 눈이 계속 감기는 바람에 그대로 바로 기절해버렸다.

“일어났냐?”

그대로 개운해진 몸으로 나가자 거실에는 먼저 일어난 안지호가 있었다.

“형은?”

“어제 저녁에 갔어.”

아, 역시 갔군.

이에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냐?”

“뭐가?”

“형 가서 아쉽냐고. 표정이 그런데.”

···표정이 그렇기는 무슨.

그냥 물어본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냉장고로 향했다.

왠지 좀 목이 말라서.

그렇게 문을 열었는데, 유독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다.

“어?”

“왜.”

“사과주스 있네.”

“그거 어제 너희 형이 주고 갔다. 너 먹으라던데.”

어제 준 게 다 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이 사 왔을 줄은 몰랐다. 이게 다 몇 개냐. 그래도 이득이긴 했다.

“너 사과주스 좋아하냐?”

“아, 어렸을 때 열나면 많이 먹었어.”

“아아.”

그렇게 안지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앞을 향해 있었다.

[“몇 개 사다 둬야겠네.”]

안지호의 그 생각에 나도 모르게 살짝 입꼬리가 올라갔다. 안 그런 척하면서도 걱정이 느껴졌다.

“하나 줄까? 많은데.”

“아니, 됐다. 그것보다 너 열은?”

“열 이제 다 내린 것 같은데. 가벼워.”

“그래선 어떻게 아냐.”

그러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어서 안지호는 손에 체온계를 하나 든 채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봐.”

“굳이 재볼 필요까진···.”

“기계 뒀다 뭐 해.”

─삑!

그렇게 잰 체온은 36.5도, 당연히 정상 체온이 나왔다.

“내렸네.”

“그래, 이제 내렸다니까.”

“그래도 마저 약은 다 먹어.”

굳이 먹을 필요 없을 것 같은데.

회복도 된 마당에 굳이 약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직접 먹이기 전에 먹어라.”

안지호의 그런 엄포에 순간 생각을 읽힌 줄 알았다. 와중에 정말로 먹지 않는다면 직접 먹일 생각으로 말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쓸데없는 고집은 부리지 말라고.”

“내가 언제 고집을 부렸다고 그래.”

“어제도 병원 안 가겠다고 그 고집을 부린 거 잊었냐.”

그랬었나.

그래도 그게 고집까지는 아니지 않나.

결과적으로 가긴 갔으니까.

“계속 부렸으면 그대로 기절시키려고 했는데.”

“뭐?”

안지호가 그대로 턱을 괸 채 중얼거렸다.

···방금 굉장히 섬뜩한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정작 그걸 말한 안지호는 그저 태연해 보였다.

“근데 너 귤을 그렇게 좋아했냐?”

“어? 굴?”

“굴 말고 귤.”

“아, 귤. 귤 좋아하지.”

동시에 어제 형이 사 왔던 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어제 형이 귤도 왕창 사 온 것 같았는데. 그 귤은 어디 갔지.

“그럼 실컷 먹겠네.”

“뭐?”

그렇게 안지호가 혼자 영문 모를 소릴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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