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화. 귤이 왔어요.
숙소에 귤이 왔다.
그냥 온 게 아니었다.
어마어마하게 왔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그런 귤 6박스가 쌓인 상태였다. 한두 박스가 아니다. 무려 6박스였다.
“와, 형님이 이걸 정말 보내주셨네.”
“그러게요. 정말로 보내주셨어요. 근데 그때 3박스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게. 분명 3박스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1인 1박스 하라고 주셨나?”
멤버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으니 원래는 6박스가 아니라 3박스였던 모양이다. 근데 왜 두 배가 늘었지.
‘진짜 1인 1박스 하라고 줬나.’
귤 싫어하는 멤버는 없긴 한데.
아무튼 형은 일 벌이기 선수다.
“와, 이거 엄청 맛있어요.”
“뭐야, 벌써 먹고 있었어?”
어느새 하람이는 박스에서 귤 하나를 꺼내 먹고 있었다. 맛있다니 다행인데···아니, 아니지.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전화. 전화다!
“무슨 귤을 6박스나 보냈어?”
─ 아, 도착했어?
와중에 태연했다.
─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네. 그거 빨리 먹어야 해. 오래 두면 상할 수도 있다더라.
“귤은 형이 사 온 걸로 충분했다고. 그것도 많은데.”
─ 박스째로 사달라고 할 땐 언제고.
“박스?”
그때 내가 박스째로 사달라고 했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약을 먹고 난 이후라 그런지 비몽사몽 해서.
형이랑 귤 얘기를 했던 것까진 알겠는데, 그 이상 구체적인 건 기억이 안 났다.
─ 기억 못 하나 보네. 나한테 매달려서 그렇게 말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얼핏 박스 얘기를 했던 것도 같고···모르겠다. 역시 다시 생각해도 그냥 맛있다고 한 기억밖에 없다.
그보다 내가 언제 매달렸어!
아무리 기억이 희미해도 그런 기억은 없다.
─ 열은?
“이제 다 내렸어.”
─ 몇 도인데.
“36.5.”
─ 약은 먹었고?
“응. 먹었어.”
열도 다 내렸겠다 그만 먹어도 되겠다 싶었는데, 그런 원래 생각과 다르게 안지호의 성화에 결국 먹을 수밖에 없었다.
─ 꼬박꼬박 챙겨 먹어. 대충 괜찮아진 것 같다고 거르지 말고. 생각해보니 약 개수를 확인 못 했네.
“확인 안 해도 돼. 알아서 잘 챙겨 먹을 거니까.”
─ 아님 약봉지 찍어서 보내. 줄어드는지 확인하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은데.
하지만 형이 워낙 완강하게 나오는 탓에 결국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와중에 그런 내 대답이 영 시원찮았던 건지 형은 한동안 약과 관련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사이 잔소리가 더 는 것 같다.
─ 아, 근데 방에 그건 뭐야?
“방? 방에 뭐?”
─ 웬 화···.
“세현아.”
그때 도운이 형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네, 형.”
“아, 통화 중이야?”
“네. 잠깐요.”
그러자 곧 폰 너머로 형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바쁘면 나중에 통화해.
“어, 알겠어.”
─ 오늘 분 연락하는 거 잊지 말고.
그렇게 통화가 끊어졌다.
근데 방금 전에 무슨 말 하려고 하지 않았나. 화,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다음에 연락할 때 다시 물어봐야겠다.
“형, 왜요?”
“귤 보관을 어떻게 할까 하고. 일단 어느 정도는 냉장고에 넣어두려고 하는데, 어떻게 할래?”
“네. 그럼 일단 그렇게 해요.”
6박스나 돼서 냉장고에 다 들어가지는 않겠다만. 겨울이니 베란다에 보관해도 되니까.
이내 거실로 나가니 멤버들은 여전히 모여 앉아 다 같이 귤을 먹고 있었다.
“이 정도면 귤 파티해도 되겠는데요?”
“귤 파티 좋지.”
“세현아, 이거 먹어.”
이내 차선빈이 내게 귤 하나를 건넸다. 색이 노란 게 꽤 맛있어 보였다.
‘귤로 뭐 할 수 있는 요리 같은 거 없나.’
그렇게 손안의 귤을 하나 까먹었다.
역시 맛있긴 맛있다.
* * *
감기가 완벽하게 나았다.
열이 내린 이후부터 점차 컨디션도 회복되더니 결국 목 컨디션도 원 상태로 돌아왔다.
다른 것보다 목이 좀 컨디션이 변한 게 신경이 많이 쓰였다. 이건 철저한 자기 관리의 실패였다.
그사이 만약 한창 활동 중이었거나 노래하는 스케줄이 있었다면 꽤 타격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한동안은 목 관리에 더 힘썼다.
노래를 오래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목 관리가 중요했다.
“우세현, 이제 거의 다 나은 것 같네.”
“응. 그렇지.”
“형님의 귤 덕분인가~?”
백은찬이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정확히는 약 때문이겠지만, 솔직히 귤 덕분이 없다고는 못했다.
그동안 참 많이도 먹었다, 귤.
튀김으로도 해 먹고, 잼도 만들고.
“그래도 오래 안 가서 다행이다. 세현이 성격이면 아파도 오늘 스케줄 간다고 했을 것 같아서.”
“당연히 간다고 했겠죠. 그래서 문제고.”
“맞아요, 그래서 세현이 형이 빨리 나아서 다행이에요!”
솔직히 오늘 있을 스케줄 때문에 더욱 컨디션을 빨리 회복하려고 노력한 것도 있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스케줄이 하나 있어서.
그건 바로 여행 리얼리티 프로그램.
오늘부터 멤버들과 함께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 * *
오랜만의 여행 리얼리티였다.
하지만 이번 리얼리티는 그동안 했었던 것들과는 조금 달랐다.
이번엔 우리 이름, 윈썸의 이름을 직접 걸고 하는 프로그램이었기에.
이번 프로그램은 윈썸의 공식 커뮤니티인 ‘Connect’를 통해 공개가 될 예정이고, 여기에 TV로도 동시 방영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 이름은 . 제목에 나타나 있듯 멤버들의 여행기를 보여주는 게 프로그램의 주된 내용이다.
“근데 이거 시즌제로 할 수도 있다네.”
“시즌제요?”
“아직 어디까지나 예정이긴 한데, 어느 정도 잘 되면 시즌제도 고려해본다는 것 같더라.”
도운이 형이 말했다.
시즌제라. 아직 시작도 안 한 마당에 시기상조이긴 하지만, 시즌제로 나오면 좋긴 하지.
일단 고정적으로 나오는 컨텐츠가 있으면 팬들도 좋아할 테고.
그런 의미에서 열심히 촬영을 하도록 하자. 목표는 시즌제다!
“그러고 보니 체이스 쪽도 이런 프로그램 있지 않았어요? 뭐였더라, 제목도 기억이 안 나네.”
“.”
“아, 맞아요. 그거.”
체이스도 역시 이런 비슷한 여행 리얼리티를 찍은 적이 있었다. 근데 그건 TV 방송으로까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요즘은 이런 여행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그룹마다 하나씩 있으니까.
“좋다.”
차선빈이 기분 좋게 웃었다.
짐을 싸는 내내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멤버들이랑 여행 가는 거 좋다고 했었지. 그런 의미에서 차선빈은 이번 여행을 꽤 기대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차선빈을 보니 나 역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비록 촬영이고,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차선빈이 기대하는 만큼 좋은 여행이 됐으면 했다.
그런 의 첫 여행지, 그건 바로 강원도였다.
사실 사전 회의를 할 당시만 해도 해외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해외도 좋지만 이왕이면 국내로 가고 싶었다.
그리고 제작진이 그 의견을 수용한 덕에 국내로 여행지가 정해졌다.
“숙소 장난 아니네.”
“형들, 밖에 수영장이랑 바비큐 공간 따로 있어요!”
“그것보다 경치가 엄청 좋은데.”
묵게 된 숙소는 강원도에 있는 어느 펜션이었다. 펜션 안엔 없는 게 없을 정도였고, 여기에 상당히 넓었다.
“바다 보이네.”
와중에 저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반짝거리는 바다의 물결이 여기서도 보일 정도였다.
“나중에 입수?”
“한겨울에 입수하자는 거냐.”
“나름 좋은 추억이 될 수도 있잖아.”
백은찬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입수면, 잊지 못할 추억 정도는 되겠군.
물론 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잠깐의 펜션 구경을 마친 뒤, 멤버들과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이제 많은 걸 정해야 해요. 가장 먼저 해야 할 게···일단 회계 담당을 정하셔야 해요.”
“회계 담당이요?”
“이번 여행 동안엔 용돈이 지급될 예정이거든요. 그에 따라 회계를 담당하실 멤버 한 분을 정해주시면 됩니다.”
용돈···그럼 꽤 구매가 한도적이겠군.
아껴 써야겠다.
“누가 할래? 회계 담당.”
“이런 거 칼 같은 게 누구지? mbti T 누구냐? 지호야, 너 T지?”
“몰라.”
“갑자기 웬 mbti예요.”
“지호 회계 담당 괜찮을 것 같은데?”
의견은 빠르게 안지호로 모아졌다. 그리고 그 의견엔 나도 찬성을 던졌다. 꼼꼼하게 잘할 것 같아서.
평소에 집안일 하는 걸 보면···역시 안지호가 적임자가 맞다.
“회계 담당은 지호로 하겠습니다!”
“···네. 제가 하겠습니다.”
그리고 안지호도 순순히 이를 받아들였다.
“용돈은 밥이랑도 관련되어 있으니까. 과자 같은 거 못 사게 관리해야지.”
“엑? 과자 못 사요?”
“아이스크림은 사겠지?”
“돈의 액수를 보고 결정한다.”
안지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과연 회계 담당을 맡을 만하다.
앞으로의 일정은 자유여행의 형식이었다.
하지만 완전한 자유여행은 아니고, 사전 미팅에서 멤버들이 하고 싶어 했던 활동 이야기를 바탕으로 진행이 될 예정이었다.
사륜 바이크나 패러 글라이딩, 미술관이나 바다 등이 이에 해당됐다.
‘패러 글라이딩···.’
그 와중에 좀 걸리는 이름이었다.
아무래도 고소공포증이 있는 터라.
“아, 그리고 하나 더 해주실 게 있습니다. 이걸 뽑아주셔야 해요.”
그때 제작진이 종이 몇 장이 든 통을 앞으로 건넸다. 뭐지, 이 종이는?
그렇게 멤버들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보고 있으려니 제작진이 뭔가 속셈이 있는 듯한 얼굴로 웃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하나씩 뽑아주시면 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요?”
“네. 하나씩 뽑아주세요.”
그렇게 재촉하는 제작진에 일단 멤버별로 종이를 하나씩 뽑았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제작진의 말.
“그럼 종이를 다른 분들에게 보이지 않게 한 뒤, 각자 확인해주세요.”
“야야, 멀어져. 우리 잠시만 멀어지자.”
“언제는 엄청 붙어있던 것처럼 말하네.”
“기다려라, 지호야. 곧 다시 붙어주마.”
그러자 안지호가 미간을 좁힌 채 백은찬으로부터 조금 더 멀어졌다.
하지만 백은찬은 종이를 확인하자마자 다시 안지호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나 역시 종이를 펼치려고 하는데, 순간 옆에 있던 차선빈이 보였다. 이거 잘못 움직이면 안의 내용이 보일 것 같았다.
안 되겠다, 조금 더 떨어지자.
“세현아···.”
그러자 차선빈이 급격하게 서운하다는 표정을 보였다. 어, 방금 건 그저 사전 방지를 위해서인데···.
“기다려, 금방 볼게.”
그렇게 차선빈의 서운함이 더 깊어지기 전에 빠르게 종이를 확인했다.
어라.
“다 봤어?”
“응. 다 봤어. 확인했어?”
“응. 확인했어.”
그렇다면 안심이었다.
이제 거리낄 게 없겠군.
그리고 다시 차선빈의 옆으로 가 앉았다. 그러자 곧 차선빈이 다시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선빈이 형은 뭘 그런 걸로 서운해하고 그래요. 어차피 맨날 붙어 있으면서.”
“원래 그러다가 안 그러면 서운한 법이잖아.”
“그럼 이제 좀 떨어져 있을 법도 한 데 말이야? 응?”
그와 동시에 백은찬이 차선빈과 내 사이로 와 앉았다. 그 좁은 공간을 잘도 치고 들어왔다.
“자, 그럼 다들 종이에 적힌 내용 확인하셨죠? 그 종이에 적힌 내용은 이번 여행 동안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왜요? 왜 잊으면 안 되는데요?”
“그건 바로 종이에 적힌 이름이 여러분들의 마니또이기 때문이죠.”
어, 뭐야. 마니또?
“앞으로 2박 3일 여행 후, 여러분들은 자신의 마니또가 누군지 맞혀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를 완수해주신 분께는 상품으로 소원권 하나를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