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화. 안 들키고 잘해준다.
갑작스럽게 마니또 게임이 시작되었다.
앞서 전혀 들은 바가 없었던 터라 좀 당혹스러운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또 그렇게 놀랄 만한 게임은 아니었다.
아이돌 리얼리티에서 마니또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게임 중 하나니까.
‘그러고 보니 마니또는 처음 아닌가.’
이제껏 멤버들과 마니또를 해본 적은 없었다. 다른 방송에서도 해본 적 없었고. 돌이켜보니 마니또라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와, 마니또~ 소원권은 아무거나 써도 되는 거예요?”
“그렇죠. 아무거나 써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금액적으로 한도가 있긴 해요. 100만원 정도로 측정하고 있고요.”
“100만원!”
“맞추기만 하면 되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그러자 이를 들은 백은찬이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보였다. 해본 경험이라도 있나. 마니또.
“기한은 마지막 촬영 때까지고요, 그때 최종 마니또를 공개할 예정이기도 합니다. 그럼 모두 최선을 다해주세요.”
그렇게 마니또 게임이 시작되었다.
* * *
“마니또 해본 적 있어?”
“아니, 처음 해보는데? 넌 해본 적 있냐?”
“나도 처음.”
알고 보니 백은찬도 마니또는 처음이었다.
근데 그런 것치고는 자신감이 상당했다.
100만원의 힘인가.
“일단 난 안 들킨다. 안 들키고 잘해준다. 그것도 엄청나게.”
저렇게 열정적으로 말하니 괜히 더 궁금해진다. 백은찬의 마니또가 누군지.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한 만큼 당연히 알 길이 없었다.
‘아무래도 OFF 상태로 두는 게 좋겠지.’
원활한 게임 진행을 위해선 능력을 오프로 두는 게 좋을 듯했다. 굳이 편법을 쓰고 싶지는 않아서.
길어봤자 이틀 정도에 불과할 테니 부작용도 크게 염려할 것 없을 것 같고.
“용돈은 얼마 받았어요?”
“30만원 정도.”
“하루?”
“하루.”
하지만 여기에 식사 비용은 별도였다.
그건 다행이었다.
“근데 다들 오늘 제대로 꼈네~?”
“뭘?”
“우리의 우정.”
그와 동시에 백은찬이 이상한 표정으로 웃었다. ···우정을 낀 건 뭐냐.
하지만 백은찬의 그 말에 다른 멤버들 역시 묘한 미소를 보였다. 입꼬리가 씰룩거리려는 걸 애써 감추려는 얼굴들이다.
그리고 그런 멤버들의 손에는 앞서 백은찬이 말한 대로 저마다 반지가 하나씩 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이거 나갈 때쯤엔 이미 공개했겠죠?”
“그렇겠지. 이거 봄이나 되야 나가죠?”
“네. 그럴 거예요.”
“그때까지 공개 안 하면 큰일 나지.”
다들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것 같았다. 당장 지금도 멜로우들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난리다.
되도록 빨리 공개하고 싶긴 하다.
그리고 곧바로 준비된 일정에 나섰다. 가장 먼저 가게 된 곳은 바로 ATV 사륜 바이크장이었다.
“이거 한번 타보고 싶었거든.”
도운이 형이 말했다.
바이크 체험을 제안한 사람은 다름 아닌 도운이 형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많이 하고 싶었던 건지 기대감에 잔뜩 부푼 모습이었다.
“재밌을 것 같아요.”
“그렇지?”
“뭐야, 우세현. 설마 도운이 형이 마니또?”
옆에서 백은찬이 날카로운 척 물었다.
한 거라곤 맞장구 한 번 친 것밖에 없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냐.
“지호야, 이거 써.”
“······?”
와중에 앞에선 차선빈이 안지호에게 안전모를 건네고 있었다. 그러더니 곧 안지호를 향해 살짝 미소 짓는다.
그리고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안지호는 곧바로 미간을 좁혔다. 얘가 왜 이러냐는 표정이었다.
“갑자기 왜 이러냐?”
“아, 형 너무 투명한 거 아니에요?”
“야, 그래. 이건 진짜 너무 티가 난다~”
“난 그냥 준 것뿐인데.”
하지만 그러한 멤버들의 타박에도 차선빈은 그저 태연한 얼굴을 보였다. 그러더니 곧 옆에 있던 헬멧을 꺼내 내게도 건네주었다.
일단 차선빈은 안지호일 확률이 높겠다.
“벌써부터 이렇게 티를 내면 어떡해. 다들 마니또 안 해봤냐고.”
“지호야, 여기 타면 좋을 것 같아.”
“아, 이 형은 진짜 티 나!”
“아니야. 저게 다 선빈이의 고도의 전략일 수도 있지. 갑자기 지호를 챙기는 척하면서 혼란을 야기 하려는 전략.”
확실히 도운이 형 말에도 일리가 있긴 했지만···그와 동시에 차선빈과 눈이 마주쳤다.
음, 하지만 역시 차선빈과 전략이라는 단어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마니또와 관련해 한창 이야기를 하던 무렵, 마침내 사륜 바이크 체험이 시작됐다.
근데 이게 생각보다 재밌다.
마냥 느릴 줄 알았는데, 스피드도 꽤 있는 편이었고.
중간에는 이걸로 게임을 진행하기도 했다.
“팀을 2팀으로 나눠서 레이스 형식으로 진행할 거예요. 그리고 승리한 팀은 이번 점심 식사 시간 때 좋은 메뉴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바로 팀 레이스였다.
3명씩 2팀으로 나누어서 레이스를 펼치고, 거기서 이긴 팀에겐 호화스러운 점심이 패배한 팀에게는 일반적인 점심이 제공된다고 한다.
“팀은 어떻게 나눌까요?”
“가볍게 엎어라 뒤집어라 하죠.”
“엎어라, 뒤집어라!”
그렇게 손바닥 몇 번으로 팀이 나뉘었다.
A팀은 나, 도운이 형, 안지호, B팀은 차선빈, 백은찬, 하람이가 이렇게 한 팀이었다.
“이겼네.”
안지호가 급 자신감을 보였다.
“자신 있어?”
“도운이 형 있잖아.”
“내 얘기였어?”
도운이 형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그렇지, 도운이 형 잘하지.
앞서 연습 주행으로 미루어봤을 때, 멤버들 중에서 가장 실력이 좋았던 건 도운이 형이었다. 확실히 전력에 큰 도움이 된다.
···근데 혹시 안지호 마니또가 도운이 형인가?
“자, 그럼 레이스 바로 시작할게요.”
그리고 시작된 바이크 레이스.
나는 팀 첫 주자로 나섰다.
그런 내 옆에는 백은찬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 세현이, 형이 또 봐줘야겠네.”
“왜 봐줘?”
“내가 너 마니또니까.”
백은찬이 마치 비밀을 속삭이듯 그렇게 말했다. 꽤나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일단 백은찬은 아니네.
“아니, 안 믿네?”
“아니. 믿어.”
“안 믿네, 안 믿어. 진짜 마니또인데?”
“응. 알겠어.”
그런 내 말에 백은찬이 어이가 없다는 듯 한 번 웃었다. 예상하기론 저건 그저 시작 전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기 위한 계획인 듯했다.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곧 시작 휘슬이 울렸다.
호화 점심을 위해 나는 그렇게 액셀을 크게 밟았다.
* * *
“골인!”
그렇게, 골인 지점에 도착한 하람이가 공중으로 손을 신나게 흔들었다.
팀 대결 결과, 아쉽게도 지고 말았다.
아주 근소한 차이였다.
아쉬운 감이 있긴 했지만, 저쪽이 워낙 잘 달린 거라 어쩔 수 없었다.
“헐, 회다!”
그리고 게임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점심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강원도에 있는 어느 유명 일식집이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엔 화려하고도 다양한 모둠회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세꼬시에 초밥까지 메뉴가 다양했다.
“승리하신 팀들은 앞에 준비된 음식을 맛있게 드시면 됩니다.”
이에 승리팀 멤버들이 쾌재를 불렀다. 정확히는 백은찬과 하람이가.
그에 비해 우리 팀에게는 간단한 볶음밥만이 주어졌다. 볶음밥도 맛있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회에 비할 바는 못 됐다.
아무리 봐도 회가 엄청나게 맛있어 보였기 때문에.
“아, 이건 세현이가 좋아하는 초밥이네.”
백은찬이 그대로 초밥을 든 채 활짝 웃었다.
오늘따라 더 얄밉게 보이는 건 내 착각인가. 아무래도 앞에 있는 초밥이 효과를 배로 올려주고 있는 모양이다.
“은찬아, 볶음밥 먹을래?”
그리고 나는 그대로 백은찬에게 볶음밥을 권했다. 그러자 백은찬은 마치 무언가 알겠다는 듯 씨익 웃는 얼굴을 보였다.
“이거 이거, 바꿔 먹자는 무언의 이야기?”
“아니, 정말로 맛있어서 하는 말인데.”
“볶음밥 진짜 맛있다.”
“맞아, 진짜 맛있어.”
옆에선 안지호와 도운이 형이 열심히 이를 거들었다. 그래, 볶음밥 진짜 맛있다고.
“볶음밥 맛있어?”
이에 차선빈이 관심을 보였다.
“지호야, 그럼 여기 회···.”
“어, 줘라. 그래. 고맙다.”
안지호가 모둠회를 획득했다!
마니또 찬스를 쓰다니!
“이렇게 교환 가능해요?”
“네. 원하시면 멤버분들끼리 교환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좋아, 그럼 교환하자.”
무슨 일인지 백은찬이 흔쾌히 교환을 외쳤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대신 애교 한 번씩 보여주기. 한 명씩!”
“애교 좋아요! 애교!”
“근데 카메라 말고 이쪽 보고 하기.”
“너희 보고?”
“넵. 우리 보고요. 귀엽다고 인정되면 같이 먹기.”
뜬금없는 조건에 잠시 고민이 됐다.
그것보다 귀엽다고 인정을 해주긴 해주는 거냐.
“당연히 인정해주지. 귀여우면. 우리 그렇게 야박한 사람들 아니라고.”
“그렇죠. 야박한 사람들 아니죠.”
“애교 좋은 것 같아.”
와중에 차선빈까지 이를 찬성하고 나섰다. 심지어 상당히 기대하는 눈치다.
“하자, 애교 한번 하자!”
“도운이 형?”
“저 새우가 너무 맛있어 보여···.”
“애교 가.”
“지호야?”
“한 입 먹으니까 더 먹고 싶네.”
이래서 한 입이 무서운 거였다.
안지호까지 애교를 하게 만드는 맛이라니.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좋아, 간다.”
“오오오오오오.”
이렇게 된 거 오랜만에 애교 3종 세트를 꺼내 들어야 할 것 같았다.
* * *
“잉.”
그와 동시에 멤버들의 고개가 숙어졌다. 그러면서 어깨를 들썩인다. 누가 보면 짠 줄 알 정도로 정말 동작이 일치했다.
아니, 그쪽 보고 하라며.
“아, 진짜! 세현이 형!”
“귀여워. 귀엽네. 그래. 귀엽다.”
“아직 안 끝났는데?”
그대로 손 하트를 추가로 날렸다.
그러자 백은찬은 뭐가 웃긴 지 다시금 폭소하고 있었다.
“귀여운데.”
그나마 차선빈만이 꿋꿋하게 자세를 유지해줄 뿐이다. 언제나 고맙다, 선빈아. 너에겐 하트 더 줄게.
중간에 도운이 형은 ‘한 입만’이라면서 다소 애교 섞인 음성을 보였고, 안지호는 다소 뻔뻔한 표정으로 브이 한 손가락을 얼굴에 갖다 댔다.
도운이 형은 그렇다 치고 안지호의 애교는 정말로, 엄청, 상당히,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귀한 광경이었다.
“후, 안지호, 우세현 연속타는 정말이지 감당하기 힘들어.”
“뭐가. 왜 힘들어.”
“너무 귀여워서 힘들단 소리였다. 자, 가져가서 먹어라.”
이내 백은찬이 모둠회 접시와 더불어 초밥을 나누어주었다. 그렇게 눈앞으로 초밥 접시가 배달됐다.
와중에 백은찬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초밥을 내 앞에 가까이 놓아주었다.
“은찬아.”
그런 내 부름에 백은찬이 곧바로 고개를 돌려 이쪽을 봤다. 그리고 그런 백은찬을 향해 다시금 활짝 웃어 보였다.
“내 하트도 먹으라고.”
아직 애교 안 끝났다.
그렇게 잊지 않고 하트를 더 날려줬다.
백은찬이 다시금 폭소하기 시작했다.
* * *
점심은 정말 맛있었다.
애교 3종 세트를 꺼낸 보람이 있을 만큼.
그리고 혼란의 애교, 아니 점심시간이 끝난 뒤에는 또 다른 새로운 액티비티 체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대망의 그것이었다.
패러 글라이딩.
“···이거 제안을 누가 했지?”
“어, 나.”
아, 차선빈이었군.
“완전 재밌을 것 같은데?”
“와, 밑에 봐봐. 경치 장난 아니다.”
그리고 그 패러글라이딩을 위해 고도가 높은 곳으로 이동했다.
여기에 올라가는 중엔 제작진이 준 귀마개와 장갑을 일시적으로 착용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양옆으로 찬 바람이 제대로 불어왔다. 젠장, 눈앞이 약간 혼미하다.
“이거 얼마나 올라가요?”
“위에서 돌기도 하나요?”
그에 비해 멤버들은 한껏 신이 난 모습이었다. 앞서 말한 대로 경치는 정말 좋았다, 경치는.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작게 두드렸다. 뒤를 돌아보니 하람이의 얼굴이 보인다.
“세, 세현이 형···힘내요···.”
마찬가지로 혼비백산의 얼굴이다.
같은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괜히 안쓰러웠다.
와중에 귀여운 귀마개에 장갑까지 세트로 끼고 있어 귀엽기도 했다.
“···괜찮아, 이거 생각보다 별로 안 무섭대. 뒤에서 강사님이 같이 탑승해주시기도 하고.”
“그렇죠, 그렇죠. 안 무섭죠. 안 무서워요.”
무서운 게 분명했다.
말을 두 번씩 하고 있었다.
“안 되겠다. 세현이 형!”
동시에 하람이가 나를 향해 팔을 벌렸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괜히 기특하고 귀여워 나 역시 그대로 팔을 벌렸다.
그렇게 둘이서 부둥켜 안았다.
그래, 살아서 만나자!
반면, 백은찬은 옆에서 그런 우리를 보며 고개를 몇 번 내젓고 있었다.
“한 마리의 소동물들 같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