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화. 잘 수행하고 있어?
차선빈은 지금 눈앞으로 펼쳐진 드넓은 산맥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과 그 밑으로 그려진 푸른 산맥들.
여기에 바람도 적당히 불어 패러글라이딩을 하기엔 아주 안성맞춤인 날씨였다.
‘누굴까.’
마니또.
그런 풍경을 보면서도 차선빈은 다른 생각이 아닌, 앞서 진행 중인 마니또에 관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마니또라는 건 이제껏 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게임이었다.
마니또가 뭔지 사전적인 정의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다른 이와 함께하는 건 처음이었다.
‘재밌다.’
그것은 생각보다 재미를 주었다. 상대 모르게 챙겨주는 재미.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어떠한 뿌듯함.
여기에 자신의 마니또는 누구일까 추측하는 재미까지. 차선빈은 제 나름대로 그에 관해 열심히 추리 중이었다.
물론 이 또한 방송임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촬영임에도 불구하고 차선빈은 지금의 상황을 상당히 즐기고 있었다.
“지호야.”
“?”
“화이팅.”
차선빈의 뜬금없는 외침에 안지호는 그렇게 또다시 뭔가 싶은 얼굴을 보였다.
하지만 차선빈은 이내 만족스러웠다. 착실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만족감에.
“세현이 형···!”
그때, 한쪽에선 신하람과 우세현이 서로를 의지한 채 착 달라붙었다.
그렇게 우세현은 언제나와 같은 차분한 얼굴로 신하람의 등을 토닥여주었으나 묘하게 표정이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많이 무섭나.’
말로는 무섭다는 말을 절대 꺼내지 않는 두 사람이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서워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둘 다 고소공포증이 있으니까.’
그리고 앞서 백은찬이 말한 대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차선빈의 시점에서도 마치 작은 소동물들처럼 보였다.
꽤나 안쓰러웠다.
“마음 같아선 같이 타 주고 싶은데.”
차선빈이 그런 두 사람의 어깨를 마치 달래듯 천천히 토닥여주었다. 반면, 백은찬은 그런 둘이 웃긴 지 옆에서 한참을 웃었다.
“엉아가 같이 타줘?”
“···안 돼. 뒤에는 강사님이 타셔야지.”
“···그리고 그 정도로 무섭지는 않거든요?”
“아, 정말~?”
그러자 백은찬이 다시금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무서움이 없는 백은찬은 그저 여유가 넘쳤다.
“우리 세현이, 혹시 너무 무서우면 말해.”
“뭐죠. 갑작스러운 이 앙탈은? 형, 마니또죠?”
“어이고, 하람아. 너도 무서우면 말하고.”
“아, 진짜 이 형 왜 이래!”
이러한 백은찬의 과한 애교에 신하람은 질색했지만, 백은찬은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열심히 수행 중이구나.’
마니또.
그리고 그런 백은찬의 모습을 보며 차선빈 역시 다시 한번 왕성한 활동을 다짐했다.
그리고 시작된 패러글라이딩 체험. 여기서 차선빈은 첫 번째로 하늘에 올랐다.
마주쳐오는 바람이 차가웠지만, 한편으론 시원했다. 눈앞에 보이는 경치 또한 장관이었다.
그리고 무사히 착륙을 한 다음엔 그 아래에서 속속히 오는 멤버들을 기다렸다.
“오, 세현이도 좀 도네.”
와중에 우세현의 차례에는 공중에서 좀 많이 돌기도 했다.
“물 좀 줘야겠네.”
그걸 보던 백은찬이 문득 중얼거렸다. 걱정이 살짝 어린 목소리였다. 이에 차선빈도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세현아?”
“···응.”
“우세현 사색이 됐네.”
“아냐, 생각보다 재밌었어.”
“어후, 얼굴이 아닌데~?”
그와 동시에 백은찬이 미리 준비해둔 물을 건넸다. 그리고 우세현이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세현아, 이거.”
그리고 차선빈 역시 맡아두었던 귀마개, 장갑 등을 우세현에게로 다시 건넸다. 뒤이어 우세현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런 우세현을 보니 차선빈은 우세현과 신하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괜히 고된 경험을 시킨 것 같아서.
그리고 차선빈이 그에 대한 미안함을 전하려 입을 열 때쯤, 우세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근데 생각보다 엄청 재밌더라. 막상 해보니까 별거 아니었어. 하길 잘한 것 같아.”
“그래? 하람이랑 너무 무서워하는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막상 하고 나니까 좋더라고.”
그렇게 우세현의 웃는 얼굴에 차선빈은 작게나마 안도했다. 다행이었다.
그건 마치 미안해하고 있던 차선빈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은 한마디였다. 그리고 그 한마디에 마음이 한결 안심되었다.
액티비티 체험이 끝나자 어느새 하늘이 어둑해졌다.
연달아 이어진 액티비티 체험으로 인해서 멤버들은 모두 꽤나 늘어진 기색들이었다.
이후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우세현은 비장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뭔가를 내려놓았다.
“바비큐를 할 거야.”
“바비큐라고!?”
“바비큐!”
바비큐라는 말에 백은찬과 신하람이 그대로 펄쩍 뛰며 일어났다. 저녁은 야외에서 바비큐를 해 먹기로 했다.
주방장은 우세현, 그리고 그런 우세현의 보조자는 윤도운이었다. 여기에 나머지 멤버들 역시 각자 역할을 배정받았다.
“상추 좀 씻고, 양념장도 만들고. 아, 밥도 해야 해.”
“밥은 내가 이미 올려놨어.”
“빠르네. 잘했어.”
동시에 우세현이 백은찬을 향해 작게 웃어 보였다. 마찬가지로 백은찬 역시 뿌듯한 얼굴을 보였다.
그리고 차선빈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윽고 고기 파티가 시작됐다.
야외에서 먹는 바비큐는 그 맛이 달랐다. 물론 주방장이 실력이 좋은 덕도 있을 거라 차선빈은 여겼다.
“잘 익었네. 하나씩 먹어라.”
그런데 그때, 안지호가 조용히 고기를 멤버들의 접시에 하나씩 올려주었다. 그 순간 백은찬과 신하람이 동시에 씨익 웃었다.
“이 안에 안지호 마니또가 있다···!”
“여기서 지호 형이 한 점 더 올려주는 사람이 지호 형 마니또 백퍼.”
“그런 티 나는 짓은 안 한다.”
“야, 근데 와중에 내 고기는 좀 작다?”
“기분 탓이다.”
마찬가지로 차선빈의 접시 위에도 고기가 올려져 있었다.
‘혹시 지호 마니또, 하람이인가.’
방금 전 고기를 나눠줬을 때 가장 먼저 손이 간 쪽은 분명 신하람의 접시였다.
자신의 마니또를 챙겨주며 혼란을 야기하기 위해 다른 이들도 함께 챙겨준 것이 아닌가.
차선빈은 잠시 생각했다.
“후식 먹을 사람?”
“나!”
“후식 뭔데?”
“아까 과자 몇 개 산 거.”
그와 동시에 백은찬과 우세현이 일어났다. 그리고 차선빈의 시선 역시 자연스럽게 그쪽을 따라갔다.
‘오늘 세현이가 좀 다르네.’
뭐라 정확히 형용할 순 없지만, 평상시보다 백은찬에게 한결 다정한 느낌이었다. 평소에도 다정하긴 했지만.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이 꽤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직감이 왔다.
‘마니또가 은찬이인가.’
그렇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 혹시 그렇다면 조금 아쉬운 감도 있었다.
“과자 먹자, 선빈아.”
이내 우세현이 백은찬과 함께 과자를 한 아름 챙겨왔다. 차선빈은 그런 우세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세현의 마니또가 백은찬이라는 사실은 엄연한 제 추측일 뿐이지만, 설령 그게 정말이라고 해도 차선빈은 이를 굳이 입 밖으로 꺼낼 생각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묵인할 뿐.
굳이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쉽긴 하지만.’
그렇게 차선빈은 제 앞에 펼쳐진 과자를 묵묵히 하나 집었다.
* * *
다음 날에도 일정은 계속됐다.
레저 활동이 주요였던 첫날과 다르게 다음 날은 주로 관광을 목적으로 이동했다.
양떼 목장이나 박물관, 수목원 등이 주요 목적지였다.
“지호야, 이거 하나 사면 안 되냐?”
“가격 불러봐.”
“3,000원.”
“허가.”
“지호 형, 이거 하나 사도 돼요?”
“얼만데.”
회계를 맡은 안지호를 통해 중간중간 간식이나 기념품 등을 사기도 했다. 의외로 안지호는 인심이 넉넉했다.
기념품이나 간식에도 쉽게 허가를 내주는 편이었는데, 그럼에도 중간중간 꼼꼼하게 용돈의 잔액을 계산했다.
역시 회계엔 안지호가 적임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들린 카페에서 나는 안지호와 함께 멤버들의 주문을 맡았다. 이어서 결정한 메뉴를 안지호에게 말했다.
“난 아이스 커피.”
“기각.”
“···기각?”
처음으로 기각이 나온 순간이었다.
이에 곧바로 메뉴판을 다시 확인했다. 유명 카페라 그런지 가격이 좀 있긴 했지만, 그렇게 놀랄 정도의 금액까진 아니었다.
“왜 기각이야?”
“아이스라서. 감기 나은 지 얼마나 됐다고 아이스야.”
안지호가 여전히 메뉴판에 시선을 둔 채로 심드렁하게 말했다.
감기···분명 나은지 얼마 안 된 건 맞지만, 아, 그럼 가격이 아니라 메뉴의 문제였던 건가.
“그럼 핫으로 바꾸면 허가야?”
“응.”
그러자 그제서야 몸을 돌려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거 회계 담당자의 횡포 아니냐.
“부를 가진 자의 권한이다. 핫으로 바꿔. 아직 아이스는 일러.”
여전히 단호한 모습이었다.
어쩔 수 없지.
단호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일리 있는 그 말에 나는 결국 메뉴를 변경했다.
아이스에서 핫으로.
“어, 따뜻한 거네?”
“응. 권력의 횡포에 당했다.”
“그래도 잘 먹을 거면서.”
뭐, 그렇긴 하지.
솔직히 따뜻한 것도 맛있다.
이후에 카페를 나온 뒤엔 양떼 목장에 갔다. 가자마자 넓은 초원에 있는 수많은 양을 볼 수 있었다.
“도운이 형이 엄청 많아요!”
그걸 본 하람이가 외쳤다.
그렇네. 정말 도운이 형이 엄청 많다.
아니, 정확히는 친구들인가.
그리고 당사자인 도운이 형은 이를 듣고는 피식 한번 웃더니 손에 든 카메라로 하람이와 건너편의 양을 찍기 시작했다.
팬 분들이 붙여주신 동물 이모티콘이 멤버별로 하나씩 있었는데, 도운이 형 대표 이모티콘이 바로 양이었다.
잠깐 보니 저쪽에 양 관련 기념품도 있는 것 같던데, 그런 김에 하나 사줄까도 고민이 됐다.
근데 저 양은 진짜 닮았네.
그리고 나서 해가 저물 때쯤엔 다시 펜션으로 돌아왔다. 이제 이렇게 있다가 저녁을 먹고,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촬영도 끝을 맺는다.
어느새 벌써.
시간이 참 빨랐다.
“졸린다.”
안지호가 그대로 침대에 파묻힌 채로 중얼거렸다. 얼굴은 안 보이지만 상당히 졸린 듯했다.
이번 여행에서의 룸메 역시 안지호였다.
순수 랜덤으로 정한 거였는데, 이번에도 역시 같은 방이 됐다.
워낙 같은 방을 한 전적이 많아서 그런지 이제는 멤버들도 그러려니 하는 모습이었다.
“먼저 씻을래?”
“너 먼저 씻어라.”
안지호가 그대로 침대에 파묻힌 채로 고개만 살짝 돌려 답했다. 그리고는 다시 엎어졌다. 많이 졸린가 보다.
“내일 일출 보는 거 몇 시라고 했었지?”
“···5시인가.”
5시.
지금이 12시가 넘었으니 씻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앞으로 4시간 정도는 잘 수 있겠군.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멤버들과 바닷가에서 함께 일출을 보는 게 이번 촬영의 클로징이었다.
“안지호.”
“왜.”
“마니또는 하고 있어?”
“어. 하고 있어.”
안지호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렇게 고민 없이 대답하니 안지호의 마니또가 누구일지 내심 궁금해졌다.
“어떻게 잘하고 있는데?”
“잘하고 있어. 나름대로.”
“아, 어제 고기도 줬었지.”
“그것 말고도 많다.”
안지호가 누굴 열심히 챙겨줬더라.
대답을 들으니 정말로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는 넌 하고 있냐?”
“응. 하고 있어. 꽤 열심히.”
“열심히? 선빈이인가.”
그렇게 안지호가 중얼거렸다.
“선빈이 마니또가 너인 것 같던데.”
“그건 다 알지 않나?”
모를 수가 없긴 했다.
촬영 내내 안지호를 그렇게 챙겼으니.
차선빈은 차선빈 나름대로 꽤 재밌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니또를.
그리고 그걸 떠올리니 괜히 또 미소가 지어졌다. 안지호 역시 그게 나쁘지 않은 듯했다.
어쨌건 내일이면 이제 촬영은 마무리가 된다. 그때까지 마니또 역시 유효하니 내일은 또 어떻게 잘해줄지 잠시 고민이 됐다.
사실 오늘도 내 기준에 나름 잘해준다고 잘해줬는데, 이게 상대에게도 느껴졌을지까지는 모르겠다.
‘설마 들킨 건 아니겠지.’
특별히 들키면 안 된다는 룰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들키지 않는 쪽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니 되도록 끝까지 몰랐으면 좋겠는데.
혹시 또 몰랐다.
눈치가 빠르니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