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350화 (350/413)

350화. 안부 전해주고.

그 순간, 다시 한번 눈앞의 주건후와 시선이 마주했다.

앞선 말을 하던 주건후의 목소리는 처음 인사했을 때와는 달리 꽤나 날카로웠다.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표정 또한 상당히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나를 향해 있었다.

명백하게 느껴지는 적대감이었다.

나와 마주하고 있지만 그것은 형에게로 향한 적대감이었다.

“네. 잘 있습니다, 형은.”

그리고 나는 그런 주건후를 향해 웃으며 답했다. 설령 주건후가 적대감을 보일지언정 전혀 당황스러울 것 없었다.

오히려 태연하게 안부를 묻는 쪽이 이상하다면 더 이상했다.

주건후와는 활동 기간 동안 사업 관련으로 확실하게 트러블이 존재했고, 형이 루트를 나오는 과정에서도 크건 작건 트러블은 있었을 터였다.

그러니 지금 이 반응은 오히려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거였다.

그리고 그런 내 대답을 들은 주건후는 잠시 나를 빤히 쳐다보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잘 사나 보네. 솔직히 난 다시 못 볼 줄 알았거든. 그런데 그렇지 않아서 좀 놀라고 있었어.”

그리고는 마치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어 보인다. 형이 다시 업계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상당히 못마땅한 모양이군.

“그리고 너도 이렇게 볼 줄은 몰랐고.”

그와 동시에 주건후와 다시 한번 시선이 마주했다. 마주한 시선은 역시나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예전엔 요만했잖아.”

그러더니 허리 정도에서 손을 몇 번 흔든다.

“그래서 대기실도 뛰어다니고 그랬던 것 같은데, 이젠 이렇게 같은 복도를 걷고 있고.”

그래서 불만이냐.

이 말이 나올 뻔하다 말았다.

와중에 기억도 왜곡되어 있었다.

내가 언제 대기실을 뛰어다녔어.

“···몇 번 걸어 다니긴 했죠. 저도 선배님을 이렇게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보니까 인터뷰하러 온 모양이네. 나도 오늘 여기 인터뷰하러 왔거든.”

그렇다면 우리 다음 순서가 주건후라는 건가. 종종 스케줄에 맞춰 하루에 인터뷰를 몇 명씩 같이 하는 경우도 있으니.

“건후 씨, 여기서 뭐 하세요?”

그때, 주건후의 스텝 중 한 명인 것 같은 사람이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를 발견한 주건후가 곧바로 친절한 얼굴을 보였다.

“아, 들어가 봐야죠.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나서요.”

그리고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멈춰 섰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대로 주건후가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그렇게 내 옆에 선 순간, 주건후의 손이 그대로 어깨 위로 올라왔다. 와중에 힘이 실린 게 느껴졌다. 동시에 작게 속삭였다.

“만나서 반가웠다. 형한테도 안부 전해주고.”

이어서 내 어깨를 그대로 몇 번 툭툭 치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린다. 여전히 날이 선 목소리였다.

* * *

전역 후 주건후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그를 부르는 곳은 그야말로 차고 넘쳤다.

국내외 간단한 인터뷰부터 시작해서 라디오, 그밖에 예능 프로그램 등 다양한 곳에서의 오퍼가 있었다.

루트로서 얻은 개인 인지도와 화제성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했다. 그리고 그건 그에게 있어 당연했다.

약 2년여 시간 동안 군대에 처박혀서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것이 얼마나 답답했던가.

주건후는 그렇게 시원한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동시에 앞으로 진행해야 할 일정들을 되새겼다.

‘오늘은 인터뷰인가.’

일단 오늘은 해외 인터뷰가 하나 있었다. 마찬가지로 해외에서도 주건후의 복귀를 기다린 팬들이 상당했다.

그 당시, 루트는 국내에서 터진 만큼 해외에서도 터졌으니까.

빌보드 200 차트는 물론이고 100 차트 진입 기록 또한 가지고 있는 루트였다. 그만큼 해외 팬덤 또한 컸다.

그리고 그 팬덤은 아직까지도 굳건한 모습이었다. 전역 당일에 올린 별스타그램에도 각종 외국어로 축하 댓글이 달렸으니.

‘그러고 보니 오늘이 그날이군.’

여기에 오늘은 스케줄을 끝내고 나면, 사적인 식사 자리 약속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식사 자리는 주건후의 일정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바로 옛 동료들과의 식사 자리였다.

오늘 저녁, 루트 멤버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그 자리를 주도한 것은 다름 아닌 권해진이었다. 명목은 주건후의 제대 기념이었다.

그렇게 약속된 장소에 가자 도착한 주건후를 권해진이 활짝 웃는 얼굴로 반겼다.

“여어, 주건후. 하나도 안 변했는데? 복귀 축하한다!”

“형도 하나도 안 변했네요.”

“칭찬이지? 야, 당연하지. 내가 관리를 얼마나 하는데.”

권해진이 한껏 기세등등한 얼굴로 웃었다.

“얼굴 말고, 성격이요. 얼굴은 좀 변한 것도 같은데.”

“이 자식, 너도 여전하구나. 대놓고 짜증 나는 소리하는 거.”

이에 주건후가 태연한 모습으로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그래, 너희도 잘 지냈냐?”

뒤이어 주건후는 앞에 있던 두 사람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신도하와 박시겸이었다.

이와 같이 신도하와 박시겸은 주건후의 앞 좌석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특히 도하, 넌 여기저기 많이 나오던데.”

“그런 편이죠. 그동안에도 소식은 열심히 접했나 보네요.”

“웬만한 건 알고 있어. 얘 드라마 소식도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주건후가 그대로 박시겸을 턱짓하며 가리켰다. 하지만 박시겸은 특별한 대답 없이 조용히 앞에 있던 물잔을 들 뿐이었다.

지금 이곳엔 권해진과 주건후, 신도하와 박시겸 이렇게 4명의 멤버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이렇게 다 모인 게 얼마 만이지? 엄청 오랜만인 것 같은데.”

“4명은 말하는 거라면 형 입대 이후로 계산하면 돼요. 3명이라면, 형 제대 이후로 처음 보는 거고요.”

“쓸데없는 곳에서 정확하네.”

권해진이 그런 박시겸을 보며 질색한 표정을 보였다. 무엇보다 그런 박시겸의 말이 무섭도록 정확했기 때문이다.

권해진 제대 당시 만남 이후 세 사람이 사적으로 다시 모이는 일은 없었기에.

“근데 그건 애초에 내가 불러도 니들이 안 나온 거잖아.”

“나갈 필요성을 못 느껴서요.”

“여긴 필요성이 있어서 나왔냐!”

“얼굴 정도는 비추는 게 도리 같아서요.”

“아, 그래. 도리는 지켜서 다행이다.”

그렇게 권해진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식사 자리는 언제나와 같이 조용한 편이었다. 그저 대외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를 안부 겸 한 번씩 묻는 게 전부였다.

개인적인 사담은 거의 오가지 않았다. 굳이 이 자리에서 꺼낼 필요도, 누군가 궁금해하는 화제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 그러고 보니 내내 궁금했는데.”

그리고 그때, 주건후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동시에 앞에 있던 멤버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지난번 그 기사는 뭐예요? 루트 전 매니저의 폭로인가 뭔가 하는.”

주건후가 권해진을 향해 물었다.

그런 주건후의 물음에 권해진은 이내 기억이 났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 그 되도 않는 짜깁기?”

“짜깁기?”

“뭐긴 뭐야, 그냥 망상이지.”

얼마 전 커뮤니티를 한바탕 쓸고 갔던 루트의 스텝 갑질 사건. 그 사건의 구체적인 내막을 주건후는 알지 못한 채였다.

“기사 못 봤냐? 그 매니저랑 기자랑 짜고 쳤다는 기사.”

“봤어요.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오던데. 그것보다 내가 묻는 건 정확한 사건 해결 과정이에요. RA에서 나섰다고 들었는데.”

해당 사건 당시 주건후는 군인의 신분이었다. 그렇기에 개입 없이 기사를 통해 사건의 흐름을 확인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맞아. RA 쪽에서 나섰고, 사실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 건···.”

“나예요.”

신도하가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내내 조용하던 신도하가 처음으로 입을 연 순간이기도 했다.

“너라고?”

“네.”

단호한 그 대답에 주건후는 그대로 잠시 신도하를 응시했다.

‘신도하가 직접 나섰다라.’

못 믿을 건 없었다.

뭐든 일 처리는 확실하게 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뭔가 내키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이 자식은 속을 영 모르겠으니까.’

어쩌면 멤버들에게 이야기한 건 아주 단편적인 일부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단순히 해결했다 이외에도 그 밖에 뭔가 더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신도하가 말하지 않은, 감추고 있는 또 다른 무언가가.

그리고 주건후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이내 신도하가 그런 주건후를 향해 작게 미소 지었다.

“왜요? 안 믿겨요?”

“···그럴 리가. 오히려 니가 했다고 하니 믿음이 가는데. 해진이 형이 했다면 믿음이 안 갔겠지만.”

“난 왜 믿음이 안 가는데?”

“그런 면에서 형은 별 도움이 안 되니까요. 물론 인맥 쪽으론 얘기가 다르긴 하겠지만.”

“허, 참.”

이를 들은 권해진이 곧 실소했다.

“그래, 그런 거라면 수고했어. 답지 않게 발로 뛰기라도 한 거야?”

“그룹 일이잖아요. 발로 뛰지 않을 수가 없죠.”

“이래서 인기가 너무 많아도 힘들어. 어떻게서든 흠집 내려는 놈들투성이니.”

이내 주건후가 한숨 아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인기를 가장 좋아하는 게 형이고요.”

그때, 순간적으로 들린 그 말에 주건후의 시선이 곧 그쪽으로 향했다.

그 시선의 끝엔 박시겸이 있었다.

그리고 박시겸 역시 그런 주건후를 말없이 응시했다. 그 시선이 꽤 서늘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이 얼마나 마주쳤을까, 이내 주건후가 먼저 시선을 거두며 동시에 미소를 흘렸다.

“아, 그래, 그렇지. 인기. 인기 좋아하지.”

그리고는 조용히 옆에 있던 물잔을 들었다. 그 순간, 잔 속 투명한 물이 주건후의 눈앞에서 일렁였다.

“그래서 말인데, 제안 하나 하려고.”

“제안?”

“응. 재결합에 관해서요.”

“뭐?”

그리고 주건후는 눈앞에 있는 멤버들을 바라보며 한 번 더 말했다.

“루트 재결합이요.”

* * *

재결합.

그 단어가 나온 순간, 그대로 묘한 침묵이 흐름과 동시에 고요해졌다.

이는 불과 3자밖에 되지 않는 짧은 단어였지만, 그 단어에 내포돼있는 의미는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재결합이라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침묵을 가장 먼저 깨고 나선 것은 권해진이었다.

“네. 재결합이요.”

“갑자기 무슨 재결합?”

“갑자기가 아니에요. 입대 전부터 생각했던 거거든요. 제대 후 재결합에 관해서.”

그러자 권해진이 그런 주건후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런 얘기 난 처음 듣는데?”

“형도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요? 난 재결합 여부에 관해 다들 비슷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생각했는데.”

오히려 주건후는 그런 멤버들의 반응이 놀라웠다. 마치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는 듯 반응하는 멤버들에.

사실 오늘 이 자리가 주건후의 입장에서 중요했던 것도 순전히 그 재결합 때문이었다. 재결합을 위해 이 자리에 참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나도 제대했으니까 한 번 해요. 타이밍상 지금이 딱 적기에요. 아, 나 머리 좀 더 길고 해야 하나.”

그렇게 주건후가 자신의 짧은 머리를 한번 매만졌다. 어떤 컨셉이든 머리가 조금 더 긴 게 예쁘게 나올 터였다.

그리고 그 순간, 권해진이 잠시 닫았던 입을 다시 열며 물었다.

“그것보다 니가 말하는 재결합, 그건 4명을 말하는 거냐?”

“네?”

앞선 권해진의 물음을 들은 주건후가 순간 미간을 구겼다. 마치 무슨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느냐는 듯이.

“하, 지금 뭘 말하는 거예요?”

“재결합. 여기 있는 4명만을 말하는 거냐고. 우도현 뺀.”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리고 주건후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 자식은 루트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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