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화. 아직도 멤버라 생각해?
앞선 주건후의 그 말에 익숙한 침묵이 한 번 더 그곳을 찾아왔다. 우도현은 루트가 아니다. 그 말 한마디에.
마치 평온한 호수에 작은 조약돌을 던진 것처럼 그 말 한마디는 그런 조약돌과 같은 역할을 했다.
“하, 어이가 없네. 새삼스럽게 이렇게 당연한 걸 굳이 짚고 가야 하는 거예요?”
주건후가 이내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주건후의 입장에선 오히려 그런 권해진의 물음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루트는 4명이잖아요. 여기 있는 4명. 그룹 싫다고 나간 놈을 굳이 다시 챙겨야 할 이유는 없죠. 누구 좋으라고.”
탈퇴 계기가 어쨌건 우도현은 제 발로 루트를 나갔다. 그 사실을 주건후는 멤버들에게 다시 한번 명확하게 상기시켰다.
우도현이 그룹을 나간 지도 이미 수년이 흘렀다. 주건후는 굳이 그런 놈을 제 손으로 다시 챙겨야 할 필요도, 이유도 느끼지 못했다.
분명 루트가 다시 뭉친다면 그 화제성은 가히 최고일 거다. 그건 어느 정도 보장이 되어 있는 바였다.
그런 화제성과 주목도에 굳이 우도현을 끼워 넣고 싶지 않았다.
“설마 그 자식을 아직도 우리 멤버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그리고 주건후는 한 번 더 물었다.
제 옆에 있는 권해진 뿐만 아니라 신도하, 박시겸을 향해서도.
“그 자식이 뒤통수친 거 그 새 다 까먹었나 보네. 재계약으로 간 보다가 하기 싫다고 내뺀 거 잊었어요?”
“말은 바로 하죠.”
그때, 신도하가 그런 주건후의 말에 개입했다. 동시에 이를 보던 주건후가 그대로 의아한 얼굴을 보였다.
“뭐?”
“뒤통수도, 내뺀 것도 아니죠.”
“그게 뒤통수가 아니라고? 너 지금 그 자식 편드는 거냐?”
“형이야말로 너무 잊은 거 같네요.”
신도하의 서늘한 시선이 그대로 주건후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신도하의 그 말에 주건후는 순간이지만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찔리는 구석은 있었기에.
그렇게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뭐, 5명이건 4명이건 사실 상관없긴 하죠.”
그때, 박시겸이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곧 주건후가 굳었던 표정을 풀며 반색했다.
“야, 그래. 그렇지. 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 우도현은 무슨 우도현이야. 4명으로 충분해.”
굳이 우도현 따위 없어도 됐다.
애초에 이렇게 아직까지 우도현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주건후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룹 싫다고 제 발로 나간 자식을 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우도현 이 자식은 왜 다시 돌아온 건데? 그땐 그렇게 다시는 안 돌아올 것처럼 뒤도 안 돌아보고 튀더니.”
“뭐, 시간이 지나서 생각이 바뀐 걸 수도 있고. 그리고 원래 연기 좋아했잖아.”
“연기?”
연기라는 그 말에 주건후가 그 순간, 픽하는 비웃음을 내뱉었다. 연기가 아니라 인기가 그리웠던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니면 뭐 세현이 때문일 수도 있고.”
“세현이?”
“우세현. 옛날부터 그렇게 동생 끼고 돌았잖냐.”
그 말에 주건후가 이제야 기억난다는 듯 반응했다. 기억이 났다. 그 꼬맹이. 예전부터 우도현이 무섭게 끼고 돌던 그 동생.
“아, 맞다, 맞아. 그 꼬맹이 오늘 봤는데.”
그리고는 자세를 조금 더 편하게 바꾸었다. 동시에 손으로는 주머니에 있던 담배 한 갑을 찾았다.
그런데 그 순간, 신도하가 기대어 있던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세현이를 만났다고요?”
“···뭐냐, 이 반응은?”
“어디서 만났는데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니가 줄기차게 놀렸었지. 쪼끄맣다고.”
“그랬었나? 근데 작은 걸 어쩌라고.”
동시에 신도하가 손안에 물잔을 크게 내려놓았다. 이어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물잔이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어디서 만났냐고요.”
이에 주건후는 이 새X가 왜 이러나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박시겸은 그저 조용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 자식은 왜 이렇게 흥분해?”
“흥분할 정도로 궁금한가 보죠.”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복도에서. 어렸을 때랑 똑같던데.”
그렇게 주건후는 담배를 손에 쥔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듭되는 짜증 때문인지 한 대피고 오고 싶어졌다.
“꽤 자주 볼 것 같더라고.”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주건후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하지만 곧 표정이 변하며 미간이 강하게 구겨졌다.
‘귀찮게.’
동시에 그의 손안에 있던 담뱃갑이 보이지 않게 구겨졌다.
이어서 그는 구겨진 담뱃갑 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그대로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등을 돌려 제 뒤에 있던 멤버들을 향해 한 번 더 물었다.
“그래서 재결합, 하는 거죠?”
* * *
지난번 인터뷰 현장에서 주건후를 만난 이후, 더 이상 주건후와 이렇다 할 접촉은 없었다. 하지만 그때의 그 만남은 꽤나 찜찜함을 남겼다.
그 찜찜함의 원인은 아마도 형을 향한 주건후의 적대감. 그것일 거였다.
이제껏 만났던 다른 루트 멤버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적대감. 그게 주건후로부터는 뚜렷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유는 대충 알 것 같지만.
‘어쨌건 마주치면 그다지 안 좋을 것 같은데.’
그런 상태에서 형과 주건후가 만나면 꽤 좋지 않은 결과를 도출할 거란 게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형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그랬다.
말해도 그런 건 걱정할 필요 없다며 대충 넘겨버릴 테고, 오히려 주건후와는 어떻게 만난 거냐며 그쪽을 더 신경 쓸 것 같았다.
지금 그게 중요하냐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 아니.”
그런 나를 백은찬이 이상하다는 듯 바라봤다. 너무 오래 생각에 잠겨 있었나 보다.
“혹시 고민하고 있냐?”
“무슨 고민?”
“출연할지 말지.”
“어딜?”
“어디긴 어디야. <가면 아래의 가수>지.”
아, 그 얘기였나.
“그건 아직 소문일 뿐이잖아. 게다가 아직 정식 섭외 요청도 안 들어온 마당에.”
“내 생각엔 바로 들어올 것 같은데. 너한테.”
그렇게 백은찬이 나를 향해 묘한 미소를 보였다. 그 표정은 뭔데?
하지만 그럼에도 백은찬은 여전히 그 묘한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나를 보며 계속 히죽거렸다.
사실 얼마 전부터 소문 하나가 돌고 있었다. MBS <가면 아래의 가수>가 왕중왕전을 진행할 거라는 소문이.
MBS <가면 아래의 가수>.
이 프로그램은 예전에 내가 한 번 출연한 전적이 있는 프로였다. 가면을 쓰고 노래하는 그 프로그램.
이전에 나는 ‘한여름의 스노우맨’으로 이 프로에 출연해 왕좌 타이틀을 얻은 바가 있었다.
‘그때 가면이 눈사람이었지.’
눈사람 같은 가면을 쓴 채로 무대에 올랐었다. 정체는···아쉽게도 오래 숨기진 못했지만.
그런데 근래 그 프로그램이 이번에 역대 왕좌들을 모아 왕중왕전을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래서 만약 오면 나가실 생각입니까?”
“나가야지.”
“오, 뭐야. 좀 멋있는데?”
당연한 걸 묻고 있었다.
섭외가 오면 당연히 나가야지.
일단 <가면 아래의 가수>의 왕중왕전은 이번에 처음 시행하는 특집이었다.
그간 왕중왕전에 대한 시청자들의 요청이 꽤 있는 편이었는데, 처음인 만큼 화제성도 어느 정도 있을 거라 예상됐다.
‘무엇보다 어떤 왕좌가 출연했을지도 관심사겠고.’
그간 수많은 왕좌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과연 어떤 왕좌가 이에 참여를 했고, 그 출연자 중에서 누가 최종 우승을 거머쥘 것인지도 관심사다.
최종 우승까진 모르겠지만, 어쨌건 출연을 하고 적절한 성적을 거둔다면 컴백하기 전에 좋은 떡밥 하나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재혁 선배님은 출연하실 것 같냐?”
“글쎄. 하지만 제작진이 기를 쓰고 섭외하려고 하지 않을까.”
한재혁은 유명 발라드 가수로, 흔히 레전드라고 불리는 인물 중 한 명이다. 한국에선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만큼 수많은 명곡을 낳았다.
그런 한재혁 역시 일전에 <가면 아래의 가수>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왕좌에 올랐다.
그리고 화제성과 함께 시청률이 폭발했다.
‘그러니 어떻게 서라도 일단 잡고 보고 싶은 게 제작진의 사정이겠지만.’
과연 다시 출연하실지는 의문이었다.
그래도 만약 다시 출연하신다고 하면, 나 역시 TV 앞에 앉을 생각이었다.
한재혁 선배님의 보컬은 가히 최고라고 말할 수 있었고, 어떤 무대를 보여줄지 궁금했다.
근데 아마 나 같은 사람이 한 트럭이지 않을까.
“아, 내가 볼 땐 너 섭외 올 것 같은데. 너 그때 반응 완전 장난 아니었잖아. 시청률도 잘 나오고.”
“그렇게 폭발적이었던 것도 아니었어.”
“왜, 신도하 선배도 그때 그렇게 극찬했잖아.”
아, 맞다. 신도하.
생각해보니 그 프로 신도하 고정 프로다.
그래서 그때 무대에 대한 감상평을 묻기도 했었다. 근데 무슨 이상한 드립도 날리지 않았었나.
근데 어차피 나갈 것도 아니니 별로 상관은 없는···.
─지잉!
그런데 그때, 폰이 작게 진동했다.
하지만 폰이 울린 건 나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백은찬의 폰 역시 함께 울렸다.
“스케줄 안내인가 본데?”
이에 백은찬 역시 폰을 들었다.
매니저 형까지 있는 단톡방 메시지인 걸 보니 스케줄 관련 공지인 듯했다.
그리고 확인한 메시지에는 다음과 같은 간략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건희 형]
[섭외 요청]
[<가면 아래의 가수> - 왕중왕전 : 세현]
“역시.”
그 순간, 백은찬이 나를 향해 보란 듯이 미소 지었다. <가면 아래의 가수>로부터 정말로 섭외 요청이 왔다.
* * *
<가면 아래의 가수>의 프로그램 회의실. 지금 이곳은 한창 바쁜 현장이었다.
바로 앞으로 있을 특집 방송인 <가면 아래의 가수> 왕중왕전의 출연자 섭외. 그것 때문이었다.
<가면 아래의 가수>는 그간 시청자들의 꾸준한 요청에 이번에 왕중왕전이라는 이름 아래 새롭게 특집을 방영하기로 했다.
“아, 정말 이대로만 출연하면 좋을 텐데.”
메인 작가인 오유나가 앞에 있는 출연자 리스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 이대로만 되면 아주 좋을 텐데 말이야. 답변은? 왔어?”
“아직 오는 중이에요.”
“되도록 빨리 왔으면 좋겠는데······.”
담당 PD인 이성안이 그렇게 한숨 아닌 한숨을 내쉬었다. 앞선 출연자 리스트가 마음에 든 건 이성안 PD 역시 마찬가지였다.
몇 날 며칠을 다 같이 회의를 해가며 완성한 출연자 리스트였으니까.
오랜 장수 프로그램인 만큼 왕좌에 오른 이들은 수없이도 없었다.
왕중왕전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확실하게 화제성을 일으킬 수 있는 인물로만 선정해야만 했다.
“일단 가장 핵심이라고 여겨지는 게 한재혁. 한재혁이지. 꼭 수락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두고 봐야겠죠. 그래도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았어요.”
“음, 그 외에도 김신우, 이혜지···.”
그렇게 이성안 PD은 앞에 있던 출연자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이름을 한 번씩 훑었다.
“그리고 아, 그래. 이 친구. 이 친구도 있었지.”
그러던 도중, 리스트를 훑던 이성안 PD의 손이 잠시 멈춰졌다.
“윈썸 세현. 이 친구도 꼭 나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아, 세현. 그쵸. 현직 아이돌 중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올라가기도 했고요.”
이번 왕중왕전 출연자 리스트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현직 아이돌이 한 명 있었는데, 그게 바로 윈썸의 세현이었다.
“이 친구, 어린 데도 장난이 아니더라고. 그때 현장 분위기가 아직까지 기억이 날 정도라니까. 오 작가도 기억해?”
“당연히 기억하죠.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아직까지 두 사람에겐 당시의 무대가 생생했다. 그때의 그 객석의 공기와 환호, 그리고 열기.
그걸 느낀 이상, 이번 왕중왕전 목록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세현의 이름은.
“그러고 보니 세현 하니 생각나는데, 이 출연자도 좀 기대가 돼.”
“아, 네. 그렇죠. 다름 아닌 루트의···.”
그런데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닫혀 있던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문이 열림과 동시에 스텝 한 명이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왔다.
“피디님. 지금 출연자 중 한 명 섭외 관련해서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오, 그래?”
이에 제작진들은 다시금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면 아래의 가수>의 최초의 왕중왕전. 그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마침내 고대하던 출연자 리스트가 최종 확정되었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아! 이대로 가자!”
그리고 그 최종 출연자 리스트를 확인한 이성안 PD의 얼굴에는 그야말로 함박웃음이 걸려 있었다.
[<가면 아래의 가수> 왕중왕전]
[출연자 리스트]
[한재혁] [주건후] [이혜지]
[김신우] [세현(윈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