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화. 끝까지 잡히고 와라
<가면 아래의 가수> 왕중왕전에 출연하게 됐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건 거의 반년만인 것 같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왕중왕전으로 다시 나가게 될 거라곤 전혀 예상 못 했지만.
재출연 같은 건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 그 무대가 마지막일 거라 생각했었다.
“히, 세현이 형이 왕중왕전이라니. 거기 역대 왕좌 중에 고작 8명만 나가는 거라면서요?”
“그 안에 우세현이 있고.”
“혹시 다른 아이돌도 있을까요? 그 안에.”
“아, 이거 느낌이 왠지 없을 것 같은데~”
“굳이 아이돌을 둘이나 넣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뭐, 있어도 세현이가 더 잘하겠지만.”
도운이 형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그건 좀 과한 칭찬이었다. 노래 잘하는 아이돌은 워낙 많아서.
이번 <가면 아래의 가수>의 출연자 수는 모두 8명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출연자 리스트는 비공개였다.
그래서 나 역시 누가 출연을 하는지는 아는 게 없다. 물론 현장에 가면 곧바로 알게 될 것 같긴 한데.
“가면은 정했냐?”
“아직 못 정했어.”
“지난번엔 눈사람이었지? 이번엔 완전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할 텐데.”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무대에서 쓸 가면을 정해야만 했다. 아니, 그것보다 이번에도 곧바로 시청자들이 알아채는 거 아닌가.
그건 좀 곤란한데.
“목소리가 많이 티가 나나?”
“너? 너 목소리 완전 지문이잖아.”
“지문 정도까지야?”
“몰랐냐?”
그리고 그런 안지호의 말에 잠깐 생각에 잠겼다. 멜로우들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보긴 했는데, 그건 멜로우들이니까.
분명 지난번에 출연했을 때도 목소리를 일부러 좀 달리했는데, 어째 예상보다 정체가 빨리 탄로 났다.
“목소리 지문은 안지호 아니야?”
“둘이 투탑이다. A&R팀 직원분이 그러시던데, 너희 둘 목소리 나오는 순간 그냥 아, 이건 윈썸 노래구나 하신다고.”
그런 말을···듣긴 했지.
그렇다면 역시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
“마음 같아선 보러 가고 싶은데.”
차선빈이 상당히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단체로 몰래 방청가고 싶을 정도라니까.”
“너희 오면 너무 튀잖아. 가서 연락할게.”
“그래. 엉아가 잘생겼으니까 어쩔 수 없지. 그리고 긴장은···당연히 안 하려나?”
백은찬이 그대로 입꼬리를 올렸다.
긴장, 아예 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보다도 최대한으로 쏟고 올 생각이었다.
나가는 건 개인이지만, 결국 대중에게는 윈썸의 이름으로 비춰질 테니까. 그렇기에 어떤 무대건 질 생각이 없었다.
목표는 당연하게도 우승이다.
‘얼른 선곡부터 준비해야겠군.’
사실 긴장도 긴장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한편으론 설레기도 했다. 그 무대에 서게 될 생각에.
“되도록 오래 잡히고 올게.”
그리고 그런 내 말에 멤버들은 잠시 놀란 듯한 얼굴들은 보였지만,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이왕이면 끝까지 잡히고 와라.”
안지호가 말했다.
그리고 안지호의 그 말에 난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중간에 무대를 내려오는 일은 없을 예정이었다.
* * *
그리고 그로부터 몇 주 뒤.
마침내 <가면 아래의 가수>의 촬영날이 되었다.
촬영 장소는 지난번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세트만큼은 훨씬 더 화려하고 웅장해졌다.
평소에 익숙하던 그 세트가 아닌 정말로 무슨 시상식을 하는 것처럼 화려해진 세트에 이전과 같은 장소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왕중왕전이라고 돈을 좀 쓴 모양이군.
이번 왕중왕전은 크게 3 Round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하여 최종 3 라운드에 올라가는 건 단 두 사람.
그리고 그 두 출연자가 왕중왕전의 왕좌를 놓고 대결을 벌이는 방식이었다.
1 라운드의 경우, 순전히 제비뽑기로 순서를 정했다. 그리고 1번부터 8번 중 하나의 숫자를 뽑아 그 순서대로 대결을 펼친다.
그리고 나는 오늘, 2번을 뽑았다.
대기실에서 대기를 하는 동안엔 멤버들과 간단하게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다. 분명 출연하는 건 나인데, 어째서인지 톡방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러웠다.
아무래도 제대로 흥분한 모양이다.
[은차닝]
: 후 떨려
특히 백은찬이.
그런 백은찬을 보고 있으려니 한결 긴장이 풀렸다.
“시계 토끼님, 촬영 시작되고 나면 바로 나와서 대기해주세요.”
그런 스텝의 말에 그대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대결 상대는 1번을 뽑은 ‘음악의 우편배달부’였다.
이번에 선택한 내 가면은 컨셉은 바로 시계 토끼였다. 검은색 2D 토끼 캐릭터 가면에 한쪽 눈에는 외알안경을 쓰고 있는.
여기에 시계토끼의 컨셉을 살리기 위해 의상은 블랙 셔츠에 쓰리피스 네이비 수트, 그리고 네이비색 타이를 착용했다.
그리고 아쉽게도 반지는 착용할 수 없었다. 손에 따로 또 장갑도 껴야 했고, 반지 자체가 이미 많이 알려지기도 했고.
그렇게 반지는 미리 가져온 케이스에 잘 보관해두었다. 그리고 잠시 목을 축이기 위해 옆에 있던 물병을 집었다.
‘아, 물 없네.’
목이 건조하지 않게 물을 계속 마시다 보니 어느새 물병의 물이 다 떨어져 있었다. 분명 정수기가 근처에 있었지.
“어디 가려고?”
“저 잠깐 물 좀 받으려고요.”
“그럼 내가 가져다줄게.”
동시에 매니저 형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제가 다녀올게요.”
어차피 요 앞이고, 가볍게 금방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렇게 빈 물병을 손에 든 채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촬영 시작 전이라 그런지 복도는 아직까지는 한산한 편이었다. 스텝 몇 명만 오가는 게 보일 뿐.
‘아, 여기 있군.’
그리고 발견했다.
익숙한 정수기를.
그렇게 정수기를 향해 몇 걸음을 가, 그대로 물을 잠시 받고 있을까. 그 순간 누군가가 그런 나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그 목소리를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낯익은 목소리였다.
동시에 불길한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이어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 젠장.’
그러자 역시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물, 마시러 오셨나요?”
신도하였다.
* * *
한창 물을 받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프로그램 패널과 제대로 마주쳐버렸다.
게다가 하고많은 패널 중에서도 하필 신도하였다. 아니, 패널들은 지금 안에서 한창 대기할 시간 아닌가?
“물 마시러 오셨나 보네요, 토끼님도.”
그 순간, 신도하가 먼저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토끼님’이란 명칭을 붙인다.
하지만 나는 당연히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대로 고개만 한번 끄덕였다.
“토끼는 원래 물을 많이 마시니까요. 하던 거 마저 하시죠.”
그리고선 겉보기에 상당히 친절해 보이는 얼굴로 하던 것을 계속하라며 정중하게 손짓했다.
와중에 토끼가 물을 많이 마신다는 건, 그걸 말하는 건가.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하는 그 노래.
···어쨌건 지금은 일단, 남은 물을 마저 채우기로 했다.
여기서 당황해서 그냥 가는 꼴도 이상하니까. 그건 거의 신도하와 개인적으로 안면이 있다고 대놓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적당히 채우고 가자.’
하지만 그 짧은 사이에도 옆에서부터의 시선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도대체 왜 그렇게 빤히 보는 거냐.
혹시 여기 정수기에 뭐가 있나.
아니면 왜 매번 이 정수기 앞에서 신도하와 마주치는 건지.
아무래도 다음엔 다른 정수기를 찾아 그쪽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다행히 물은 빠르게 채워졌다.
오래 있어 좋을 게 없으니 이대로 바로 대기실로 직행할 생각이었다.
이어서 간단한 묵례와 함께 그대로 자리를 벗어나려 했는데, 그 순간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긴장은 안 돼요?”
신도하가 뜬금없이 물었다.
“느낌상 토끼님은 상당한 실력자 같은데.”
그리고는 다시 한번 친절한 미소를 보인다. 도대체 어딜 보고 그런 걸 느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앞서 무대를 본 것도 아니고 그저 마주친 게 다인 마당에.
그리고 그러한 와중에 나를 향해 한 번 더 묻는다.
“노래, 잘하죠?”
꽤나 진지한 얼굴로.
그리고 나는 그런 신도하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다가 이내 그에 대한 답을 했다.
“(끄덕)”
조금 뻔뻔하게.
얼굴도 가리고 있는 마당에 굳이 겸손은 떨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일단 여긴 왕중왕전이고.
“역시.”
역시는 뭐가 역시냐.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표정은 전혀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그럼 전 토끼님 응원할게요.”
? 뭐?
“실력자 응원해야죠. 전 개인적으로 실력자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그와 동시에 나를 보며 말했다.
“토끼님 같은 실력자요.”
“······.”
뭐지, 이 묘한 확신은.
앞선 신도하의 그 말엔 어떠한 확신 같은 게 들어있었다. 정말로 실력자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다는 것처럼.
“그럼 무대에서 봐요.”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신도하는 웃으며 등을 돌렸다. 왠지 모르겠지만, 꽤나 기분 좋아 보이는 뒷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신도하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순간, 그대로 옆에 있던 정수기를 잡고 섰다.
“아.”
젠장.
정체, 들킨 거 아니겠지?
* * *
“도하 씨, 어디 갔다 와요?”
스튜디오 세트장으로 돌아가자 같은 패널인 김덕형이 그러한 신도하를 발견하곤 곧장 말을 걸었다.
“잠깐 화장실이요.”
“아, 그사이 어디 갔나 했네. 듣기로는 이제 곧 준비가 끝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가요?”
그리고 그러한 신도하의 대답 속에는 약간의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이에 김덕형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기 전과 후의 신도하의 모습이 묘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묘한 차이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이전보다 신이 나 보이는 건 분명했다.
이전에 신도하는 기대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적당히 경직된 모습을 보였는데, 지금은 그런 것 하나 없이 그저 기분 좋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무튼 어떤 출연자가 나왔을지 난 궁금해 죽겠어요. 왕중왕전이니까 우리가 한 번쯤은 봤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렇죠.”
“근데 들었어요? 이번 왕중왕전에 그분이 나온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 순간, 김덕형이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조용히 맞췄다.
“한재혁이요. 이번에 제작진이 섭외에 성공했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아, 네. 얼핏 들은 것 같아요.”
“나오면 진짜 대박인데. 근데 가면 바꿔도 바로 알 것 같긴 해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잔뜩 흥분한 김덕형과는 달리 신도하의 표정은 그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정작 관심은 딴 곳에 있다는 듯이.
“도하 씨, 덕형 씨. 여기 오늘 대진표요.”
“아,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때, 사전에 미리 출연자들에게 오늘의 대진표가 전달되었다.
당연하게도 대진표에는 출연자들의 이름이 아닌 가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신도하는 전달받은 대진표를 잠시 응시했다. 동시에 대진표 속 어느 이름을 빠르게 찾았다.
‘2번째인가.’
우리 토끼님은.
2번째, 그러니까 1조에 있었다.
시계 토끼는.
그와 동시에 신도하가 보고 있던 대진표를 곧바로 다시 덮었다.
그 토끼 가면의 인물이 누구인지 그 가면과 마주하는 순간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확실하게 느낌이 왔으니까.
‘토끼 가면, 꽤 잘 어울렸는데.’
그리고 그 순간 떠오른 어떠한 얼굴에 신도하는 그대로 혼자 조용히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