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화. 왜 이렇게 익숙하지
1 Round가 시작되었다.
무대를 비추는 카메라는 어느새 모두 촬영의 시작을 알리는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1라운드부터 개인 무대로 꾸며지는 왕중왕전은 연예인 판정단 30%, 현장 판정단 70%의 비율로 점수가 구성되어 있었다.
여기서 패한 출연자는 곧바로 가면을 벗어 그대로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면 된다.
[아, 왕중왕전인 만큼 시작부터 아주 강렬한 무대였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출연자는 과연 어떤 무대를 보여줄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박수 소리와 함께 다시금 객석에서부터 크나큰 함성이 쏟아졌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무대에 현장은 그야말로 열띤 열기로 가득 찼다.
“시작부터 진짜 장난 아니네.”
“이거 진짜 괜히 왕중왕전이 아니다.”
들썩이는 것은 객석만이 아니었다.
연예인석 역시 함께 들썩이고 있었다.
앞서 첫 무대였던 ‘음악의 우편배달부’의 무대는 그야말로 감탄할 만한 가창력을 보여준 무대였다.
그렇기에 보는 내내 감탄의 감탄을 반복했다. 동시에 이와 함께 그들의 기대감 또한 더욱더 상승했다.
이다음은 과연 또 어떠한 굉장한 무대를 보여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자, 그럼 바로 무대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무대는 바로···‘달리는 시계 토끼’의 무대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신도하의 미간이 보이지 않게 좁아졌다. 드디어 그가 기다렸던 그 무대의 차례였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무대 위로 검은색 토끼 가면을 쓴 출연자가 올라왔다. 우세현이었다.
우세현은 그렇게 소매를 살짝 걷은 블랙 셔츠에 쓰리피스 수트를 입은 채 손엔 검은색 장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역시 잘 어울리네.’
신도하는 문득 다시 생각했다.
딱 보기에도 큰 키에 슬림한 체격, 여기에 얼굴은 가려져 있지만,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잘생긴 훈남을 연상시킬 만한 모습이었다.
숨소리마저도 고요한 그 순간, 지금 스튜디오의 모든 시선은 오로지 우세현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순서가 빨라서 다행이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꽤나 안달이 났을 듯했다. 물론 그 기다림마저도 즐거웠겠지만.
그렇게 신도하가 작게 미소를 지음과 동시에 마치 신호처럼 경쾌한 밴드 반주가 시작되었다.
‘시계토끼’의 무대가 시작된 것이다.
* * *
1라운드 우세현의 선곡은 ‘닫힌 시간’이라는 90년대 발라드곡이었다.
이 곡은 잊을 수 없는 과거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곡이며, 그로 인한 씁쓸함을 표현한 곡이었다.
하지만 원곡은 잔잔한 감성 발라드인 반면에, 이를 밴드 사운드로 편곡해 더욱더 리듬감 있고 사운드를 풍부하게 변화시켰다.
[이 시간은 영원히 닫혀있어]
[그대로 닫혀만 있어]
그리고 그게 우세현 특유의 목소리가 그의 섬세한 감정과 어우러져 풍부하게 전달되었다.
그와 더불어 어우러지는 록 사운드.
동시에 그런 우세현에게 환한 스포트라이트가 조명되었다.
[아무리 나아가려 해도]
[나는 결국 다시 돌아오게 돼]
[그 닫힌 시간 속으로]
치닫는 고음과 함께 제대로 녹인 록 감성에 그 순간 객석이고 연예인석이고 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압도적인 무대였다.
입이 딱 벌어질 만큼.
‘잘한다.’
너무.
지금 이 무대에서 느껴지는 감상평은 오로지 그것 하나로 통일되고 있었다.
[이번 라운드의 승리자는─아, 꽤나 압도적입니다. 바로 ‘달리는 시계 토끼’!]
‘시계 토끼’가 첫 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 * *
“수고했다, 세현아.”
그대로 1라운드 무대를 끝나고 내려와 곧바로 대기실로 향했다. 대기실로 오니 곧바로 매니저 형이 활짝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이야, 1라운드부터 표 차이가 엄청나더라. 연습 때보다 더 잘한 것 같아.”
“괜찮았어요?”
“그걸 말이라고 해? 니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것 같더라!”
매니저 형이 그렇게 싱글벙글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이에 나는 그 자리에서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가면이 갑갑한 건 여전했다.
이제 보니 이마에도 살짝 땀이 나 있었다.
“왜 가면 벗는 것도 잘생겼냐.”
“예?”
“아니, 어쨌건 2라운드 전에 잠깐 쉰다고 하니까 그사이에 수분 좀 보충해놔.”
그런 매니저 형 말에 곧 고개를 끄덕였다. 물 좀 마셔야지. 이어서 테이블 위에 있던 물병을 그대로 챙겼다.
1라운드의 결과는 대략 70대 30이었다.
내가 70이었는데, 생각보다 득표를 많이 얻어 조금 놀라던 참이었다.
거기에 이번엔 연예인 판정단의 선택 역시 공개되지 않는다. 철저하게 득표수만. 그렇기에 개인이 누구를 찍었는지에 관해선 알 수 없었다.
‘일단 한 라운드는 넘겼군.’
한 단계는 넘긴 상태였다.
앞으로 남은 건 두 무대.
표 차이가 났다곤 했지만, 첫 상대도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조금 더 집중을 해야겠다.
[다음 순서는 ‘길 위의 탐험가’의 무대입니다!]
그때, 대기실 안에 있던 모니터에서부터 큰 함성과 함께 다음 차례의 출연자가 등장했다.
‘탐험가 가면.’
올라온 출연자는 머리에 고글을 얹은 탐험가 얼굴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키가 꽤 컸다.
그냥 봐도 180cm은 확실히 되어 보일 정도로.
‘봐둬야겠군.’
대진표상 이번 조의 승리자가 다음 라운드의 내 상대였다. 그러니 미리 봐둘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물병을 든 채로 잠시 모니터 화면을 응시했다. 아무래도 이제 곧 무대가 시작될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시작된 전주.
역시나 익숙한 멜로디의 곡이었다.
최신 음원차트에서 한창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어느 음원 강자의 솔로곡이었다.
‘이거 상당히 어려운 곡인데.’
스킬적인 면도 그렇지만, 일단 원곡 가수가 음색이 독특해서 아무리 잘 소화해도 어디까지나 커버 곡처럼 보이기 쉽다는 점이 그랬다.
다시 말해 원곡의 색이 짙었다.
- [이 작은 속삭임을]
[그대로 네게 담아 보낼게]
[이건 하나의 신호야]
[오직 널 위한 나의 신호]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이 무색하게 무대의 위의 출연자는 꽤나 쉽게, 그리고 담백하게 그 곡을 노래하고 있었다. 음색이 좋았다.
이렇게 모니터 너머로 듣기에도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긴 왕중왕전이지.’
그렇게 다시 물을 마셨다.
누가 잘 불러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잘 부르는 게 당연한 그런 라인업일 터였다.
‘근데 가수인가.’
목소리가 굉장히 익숙했다.
그간 왕좌에 오른 이들 중 가수가 아닌 사람들도 꽤 있던 터라 오늘 나온 출연자들이 반드시 가수라는 보장은 없었다.
뮤지컬 배우, 성악가 등 직군은 다양했다.
‘왜 이렇게 익숙하지.’
그런데 묘하게도 그 목소리가 상당히 익숙했다. 그냥 음원을 통해 들어본 정도의 익숙함이 아니다.
- [그리고 새롭게 안부를 전할게]
[나는 지금 네 앞에 있다고]
[이곳에 있다고]
‘아.’
그리고 그 순간, 알았다.
이 익숙함의 원인을.
이 목소리의 주인을.
‘주건후.’
이건 분명 주건후의 목소리다.
* * *
다시금 크나큰 함성이 들리며, 앞서 진행되던 무대가 끝이 났다.
해당 무대의 주인공인 ‘길 위의 탐험가’는 그렇게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를 내려갔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난 여전히 머릿속이 좀 복잡했다.
‘주건후가 나왔을 줄이야.’
앞서 보이는 출연자는 분명 주건후가 확실했다. 착각일 리가 없었다. 아닐 리가 없다는 그 확신이 내 안에서 제대로 들었으니까.
생각해 보니 주건후가 <가면 아래의 가수> 왕좌에 올랐다는 기사를 얼핏 본 것 같기도 했다.
애초에 이 프로를 일일이 챙겨보던 것도 아니라. 일단 몇 년 동안 방영 중인 장수 프로그램이니까.
그런데 하고많은 그 출연자 후보 중에서 하필 주건후라니.
‘···주건후가 이기려나.’
그리고 눈앞에는 다음 출연자의 무대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출연자와 주건후 중 한 사람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과 내가 붙게 될 테고.
[이렇게 무대가 끝났습니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어느새 앞선 무대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투표를 통해 승자를 결정하는 것뿐.
“누가 이기려나? 둘 다 잘하긴 했는데.”
“앞에가 더 낫지 않았어요? 탐험가. 그쪽이 더 잘하는 것 같은데.”
“확실히 그쪽이 더 인상이 깊긴 했죠.”
같이 보던 스텝들 역시 승자를 두고 여러 말들이 오갔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탐험가, 그러니까 주건후 쪽이 의견이 좀 더 우세해 보였다.
[그럼 이제 그 승자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발표되는 결과.
[이번 라운드, 그 승자는─!]
그리고 그대로 물병을 손에 쥔 채로 앞으로 나올 결과를 묵묵히 기다렸다.
[─바로 탐험가입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 * *
이번 라운드의 승자는 주건후였다.
그리고 그 의미는, 내 다음 상대가 주건후라는 거였다.
이를 확인해주듯 곧바로 모니터 화면 속에선 내 이름 옆에 ‘길 위의 탐험가’의 이름이 매치가 되었다.
2 라운드의 상대는 주건후다.
주건후는 포지션 상 루트의 리드 보컬이기는 했으나 보컬 실력이 탁월했다.
흔히들 그런 주건후를 두고 다른 그룹에 갔다면 메인 보컬을 했을 감이라며 말하기도 했다.
같은 그룹 안에 너무나 넘사인 메인 보컬이 있기에 루트에서는 리드 보컬에 그친 것뿐이라며.
‘눈치챘을까.’
주건후는.
그러니까 상대가 나란 걸.
내 쪽에선 주건후가 ‘탐험가’인 걸 이미 눈치챘지만, 과연 주건후 쪽에서도 눈치를 챘을지까지는 알 수 없다.
‘아직까지 모를 확률이 더 높나.’
일단 주건후는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사이 대중음악을 얼마나 들었을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윈썸의 노래를 찾아들었을 것 같진 않았다.
‘솔직히 알아도 별 상관없긴 하지만.’
이미 눈치를 챘다고 해도 별로 달라지는 건 없긴 했다. 퀴즈도 아니고 어차피 노래 승부다.
그러니 크게 달라질 건 없다.
“세현아, 중간에 잠깐 쉬는 타임 두고 다시 촬영 들어간다네.”
1 라운드 절반의 무대가 끝났으니 그사이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갖는 듯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잠깐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대략 30분 정도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지이이잉!
그런데 그때, 갑작스럽게 폰이 진동했다.
[010-XXXX-XXXX]
모르는 번호였다.
등록되어 있지 않은 번호.
그렇지만 동시에 느낌이 왔다.
이 번호의 주인이 누구인지가.
그렇게 방금 온 메시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잠깐 대화 좀 나눌까? 토끼 씨.]
[- GH]
GH.
주건후였다.
‘···이 자식.’
그리고 난 그대로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어, 세현아. 어디가?”
“저 잠깐 화장실이요.”
“너무 돌아다니지 말고 바로 들어와.”
“네. 알겠어요.”
그리고 매니저 형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내 대기실의 문을 열고 나왔다. 걸음이 향하는 장소는 조금 전 메시지에 적혀 있던 화장실 근처 비상구였다.
물론 가면을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