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355화 (355/413)

355화. 각축을 벌이나

‘달리는 시계 토끼’가 이번 라운드에 선곡한 곡은 경쾌하면서도 달달한 멜로디의 2010년대 남자 솔로곡이었다.

제목은 ‘눈꽃이 지면’.

이는 사랑의 감정을 하나의 눈꽃으로 표현한 애틋하면서도 따뜻한 감성의 곡이었다.

‘이 노래, 좋아하는데.’

신도하가 그 순간, 보이지 않게 입꼬리를 올렸다. 선곡부터 제 마음에 쏙 들었다.

‘눈꽃이 지면’은 당시 음원 차트에서 연간 순위에 들 만큼 대중적으로 터진 곡이었음과 동시에 많은 보컬 커버를 형성하기도 한 곡이다.

그만큼 보컬을 보여주기 좋고, 임팩트가 있는 곡이었다. 물론 경연에도 잘 어울리는 곡이다. 좋은 선곡이었다.

그렇지만.

‘다만,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지. 이 곡은.’

대중적이고 유명 곡인 만큼 이제껏 이 곡을 들고 무대에 오른 이들은 많았다.

그렇지만, 정작 이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고 여겨지는 이는 없었다.

원곡자가 워낙 파워풀한 성량과 음색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를 흉내 내려다 되려 밋밋해져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솔직히 이 곡을 부른다고 하면 그게 누구든 기대보다는 우려부터 되는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세현이는 어떻게 부를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우려 따위보다 기대감이 더 컸다. 과연 우세현은 이 곡을 가지고 어떤 무대를 보여줄지. 어떻게 자신을 즐겁게 해줄 건지.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세현이 마이크를 입에 대었다. 무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차가운 겨울 하늘 아래]

[그 하얀 눈꽃들이]

[그대 주변을 춤추고 있죠]

동시에 이를 지켜보던 관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앞선 라운드 무대에서 들려줬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음색이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뭐야?”

이에 놀란 건 연예인 판정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앞선 무대에선 단단하면서도 파워풀한 음색을 선보였다면, 이번 무대에선 포근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색을 보여줬다.

정말로 이 곡의 분위기를 그대로 표현한 듯한, 감미로우면서도 듣기 좋은 음색이었다.

[이 눈꽃이 지기 전에]

[녹아내리기 전에 네게 보낼게]

[이 눈꽃에 담아 보낼게]

음색 하나로 귀를 사로잡는다.

그 표현이 지금의 무대를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었다.

여기에 이 곡은 기본적으로 음역대가 높은 곡이었다. 자칫 방심했다간 음 이탈을 내기 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세현은 그저 편안하게 안정적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음역대라는 것처럼.

그저 쉽게 보였다.

‘역시.’

동시에 신도하의 입가에 다시 작게 미소가 번졌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역시 잘한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우세현의 노래에 빠져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처럼 노래에 푹 빠져 있는 사이, 어느새 곡은 클라이맥스 부분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때부터 점차 고음으로 치닫기 시작하는 음.

이 곡의 클라이맥스는 그야말로 클라이맥스이자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었다.

이는 듣는 이들이 가장 기대하고 기다리는 파트이기도 하며, 이 파트를 어떻게 소화하는지에 따라 전체적인 완성도가 달라지기도 했다.

엄청난 고음의 그 파트.

동시에 관객들의 마음 또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 파트, 과연 이 파트를 어떻게 소화해줄지 그런 기대감에.

[이 겨울의 마지막 날에]

[그 눈꽃을 전하러 갈게]

[이 눈꽃이 지기 전에]

우세현의 목소리는 그렇게 마치 하늘에 닿을 듯한 기세로 시원하게 쭉쭉 뻗어나갔다.

“미쳤다, 성량······.”

김덕형이 문득 그렇게 중얼거렸다.

성량감이 엄청났다.

그것은 정말로 이 스튜디오 전체를 꽉 채우고 남을 만큼의 울림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세현의 고음은 그야말로 끝없이 이어졌다.

전율이 흘렀다.

연예인 판정단이고, 관객석이고 하나 같이 그저 놀란 표정으로 말없이 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 하이라이트마저도 너무나도 가볍고, 쉬워 보였다.

[이대로]

[봄이 오기 전에]

뒤이어 쭉쭉 퍼지는 고음 애드리브.

적당히 기교가 섞여 있는, 듣기 좋게 이어지는 애드리브에 관객들은 그저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무대 주변에 앉아 있는 모든 이들은 그저 눈앞에 보이는 무대에 집중할 뿐이었다.

조금 전까지도 무대를 보며 한 마디씩 멘트를 던지곤 했던 판정단도 지금은 그저 말없이 무대에만 빠져 있었다.

[지금도 이렇게]

[손안의 눈꽃과 함께]

그리고 마지막 그 소절이 끝나고, 다시금 달달한 반주가 이어질 때쯤 객석과 판정단은 모두 하나같은 반응을 보였다.

“미쳤네.”

그저 그 한마디였다.

그 안에서 신도하는 노래가 끝나자마자 홀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대로 숨을 한번 깊게 내쉬었다.

‘이건 반칙 아닌가.’

그것은 너무도 과한 반칙이라 여겨질 만큼의 완벽한 무대였다. 그래서인지 힘이 쭉 빠지고 말았다.

‘···역시 멋있는 거엔 못 당하겠군.’

앞선 무대도 꽤나 멋있다고 생각하면 참이었는데, 이건 정말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미소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신도하는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어느 쪽 버튼을 눌러야 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어서 눈앞으로 보이는 그 무대를 신도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눈을 떼지 못한 채로 한참을 바라봤다.

* * *

2 Round의 무대가 끝났다.

일단 준비한 건 실수 없이 다했다.

당연히 백 퍼센트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좀 흥분했나.’

여기에 나도 모르게 좀 흥분한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기도 해서.

하지만 지금 와서 후회한다고 해서 돌이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굳이 미련은 갖지 않기로 했다.

아쉬운 건 아쉬운 대로 다음에 보완해야지.

개인적으로 애드리브가 연습 때보다 덜 터진 것 같아 조금 신경이 쓰였는데, 이 부분은 좀 더 보완할 필요가 있었다.

‘결과가 나오면 바로 모니터링부터 하러 가야겠군.’

그리고 결과가 집계되는 동안, 그사이 짧은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당연히 가면을 쓴 채로.

“자, 그럼 차례대로 한 분씩 인터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길 위의 탐험가’부터 간단하게 질문드리죠.”

동시에 옆에 있던 주건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인 시계 토끼님의 무대를 보셨을 텐데, 소감은 어땠는지 짧게 말씀해주시죠.”

“당연히 너무 좋은 무대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음성 변조된 목소리가 나왔다.

그렇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더 나긋한 어조였다.

“아, 상당히 말씀을 조용조용하시는군요. 수줍음이 많으신 분이신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 그런 것 같은데요?”

그러자 객석에서 작게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벌써 이미지 관리에 들어갔나 보군.

주건후의 방송용 이미지.

“그럼 반대로 시계 토끼님께도 묻겠습니다. 앞선 탐험가님의 무대는 어떠셨나요?”

“멋진 무대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역시나 음성 변조가 된 목소리였다.

확실히 주건후의 실력은 루트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노련해졌다.

2년여 간의 공백이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 특히 시계 토끼님은 앞선 라운드 때와 목소리가 완전히 달라져 좀 많이 놀랐습니다. 뭐가 진짜 목소리인가요?”

“둘 다 제 목소리이긴 합니다.”

“아, 둘 다인가요? 솔직히 말해서 둘 다 너무 좋았습니다, 전.”

“감사합니다.”

그렇게 적당한 인터뷰가 이어졌다.

그런데 생각보다 집계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각축이라도 벌이나.’

아무래도 오프를 해둔 상태라서 돌아가는 상황을 알기 힘들었다. 일단 뭐든 주건후보다는 앞서야···.

그런데 그때, 판정단석에 있던 인물과 순간 눈이 마주쳤다.

신도하였다.

평소와 다름없는 미소 띤 얼굴이었다.

그리고 잠깐의 우연한 마주침이라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오히려 거의 뚫릴 기세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너무 쳐다보는 거 아니냐.’

상당히 부담스러운 시선이었다.

아, 설마 본인 멤버 상대라고 그러는 건가.

‘분명 신도하도 탐험가가 주건후라는 걸 눈치챘을 테니.’

모를 수가 없었다.

같은 멤버인 이상.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먼저 눈치챈 사람도 신도하였을 거다.

한 소절만 불러도 안다.

멤버는.

나였어도 당연히 알았을 테니까.

‘정황상 내 정체도 알 것 같긴 한데.’

일단 지난번에도 바로 알아챈 전적이 있고, 그런 의미에서 벌써 2번의 무대를 했으니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았다.

‘투표는···아마도 본인 멤버에게 했겠지.’

두 사람 사이가 구체적으로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럴 테니까. 주건후에게 표를 던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그 순간, 신도하가 눈을 마주하고 있는 상태로 나를 향해 한 번 더 웃었다.

···묘하게 기분 좋아 보이는 모습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결과가 집계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결과가 집계되었다.

이윽고 시선을 다시 중앙으로 돌렸다.

[그럼 지금부터 2 Round 1조의 결과를 최종 결과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대 위론 다시금 긴장감이 흘렀다.

* * *

불 꺼진 무대 위에는 오직 나와 주건후, 둘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 우선 발표 전 최종 득표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득표율은 70대 30! 70대 30이라고 합니다!]

70대 30?

상당한 차이였다.

순전히 각축이라 결과 발표가 늦어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와, 표 차이 봐.”

“한쪽이 압도적이네.”

그리고 그 표 차이에 놀란 건 객석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추론이 시작되었다.

누가 70표인가를.

그리고 그 순간, 옆에서부터 시선이 느껴졌다. 주건후가 찰나의 순간 이쪽을 보고 있었다.

‘굳이 읽지 않아도 알 것 같군.’

대충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그럼 이제 정말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2 라운드 1조, 그 최후의 승자!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될 1인! 그 1인은!]

긴박한 음악이 흘렀다.

모든 이들의 시선은 오로지 한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마 발표가 된다면, 다시 그쪽으로 쏠리게 되겠지.

그리고 그 순간, 중앙에 있던 MC가 다시 마이크를 가까이 대었다. 정말로 결과가 나오는 순간이다.

[승자는···!]

그렇게 한 박자 쉬고 나오는 멘트.

[‘달리는 시계 토끼’입니다!]

팟!

동시에 뒤에 있던 스크린에 커다랗게 내 가면의 모습이 비쳤다. 그리고 주건후를 비추던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꺼졌다.

그 순간, 스포트라이트는 오직 나만을 비추고 있었다.

이겼다.

[아, 최종 득표 70표를 차지한 ‘달리는 시계 토끼’가 최종 라운드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박수가 쏟아졌다.

내가 이겼다.

“솔직히 시계 토끼가 갈 줄 알았어.”

“토끼가 너무 잘했어.”

“무조건 토끼가 결승이지.”

간간이 객석에서 말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로써 최종 라운드에 진출하게 됐다.

결승전이다.

마지막 결승전.

‘좋다.’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기뻤다.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다면, 표정 관리에 신경을 써야 했을 만큼.

결승전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그 외의 다른 요소도 있었다.

이를테면, 주건후의 저 뭐 같은 가면을 내 손으로 직접 벗기게 됐다는 것.

스포트라이트가 꺼진 주건후의 자리.

그 어두운 자리엔 탐험가 가면이 홀로 그렇게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보였다.

주건후가 조용히 주먹을 쥐는 것이.

그 주먹이 작게 흔들리는 게.

바로 옆에 있던 나에게만 보였다.

‘아, 이런.’

능력 키고 싶네.

하지만 얼마 안 가, 다시 무대 전체로 조명이 들어왔다. 그리고 승리자인 나는 그대로 제작진의 안내에 따라 무대를 내려가야만 했다.

[그럼 지금부터 아쉽게 탈락한 ‘탐험가’가 정체를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주건후를 스치듯 지나갔다.

정말이지.

‘가면이 있어서 다행이군.’

그렇게 난 기분 좋게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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