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356화 (356/413)

356화. 긴장 많이 하려나

쾅!

대기실로 돌아온 주건후는 그대로 가지고 있던 가면을 제 앞으로 던졌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싼 철저한 방음 덕에 그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던져진 가면은 홀로 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주건후는 그렇게 허망하게 나 뒹굴고 있는 가면을 조용히 응시했다. 상당히 서늘한 시선으로.

‘하.’

그와 동시에 헛웃음이 터졌다.

그저 지금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이와 같은 결과가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그렇게 그는 텅 빈 대기실에서 다시 한번 조용히 주먹을 쥐어 보일 뿐이었다.

* * *

이제 내게 남은 무대는 단 하나였다.

최종 라운드. 바로 결승전이다.

나는 이다음에 있을 무대의 승자와 다시 한번 더 무대를 하게 될 예정이었다.

‘꽤 열이 오른 것 같던데.’

주건후.

승자는 다음 무대를 위해 무조건적으로 먼저 퇴장해야 했기에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역시 잠깐 온을 할 걸 그랬나.’

그랬다면 아마 속내를 자세히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꽤 아쉬워지는 참이었다.

그때는 그저 주건후의 가면을 벗기게 된 것에 기분이 좋았던 터라.

‘지는 일은 절대 없다고 했었나.’

시작 전 주건후와 나눴던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꽤나 자신만만한 표정이었지. 그놈의 노래 어쩌고 하면서.

역시, 표정을 직접 봤어야 했는데.

“그렇게 기분 좋아?”

“네?”

“계속 웃고 있길래.”

매니저 형이 나를 보며 말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던 모양이다.

“축하한다, 세현아. 이제 결승이다. 결승!”

“네. 이제 결승이죠.”

“기분 좋지?”

매니저 형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묻는 매니저 형의 얼굴도 이미 상당히 싱글벙글한 상태였다.

“네. 엄청 좋아요.”

그리고 당연히 나 역시 기분이 좋다.

정말로 이따금 미소가 지어질 만큼.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멤버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전하고 싶을 정도였다.

‘근데 그건 너무 설레발이고.’

하지만 그건 지금 시점에선 너무 섣불렀다. 다른 라운드도 아니고 결승 라운드이니 조금 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괜한 설레발로 실망감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정말로 우승하게 되면, 그때 이야기하고자 했다.

‘상대는 아마도 검사려나.’

푸른 초원의 검사.

그게 지금 진행하고 있는 라운드의 출연자 중 한 명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푸른 초원의 검사는 상당한 실력자였다. 오늘 나온 출연진 중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아무래도 한재혁이니까.’

투구 모양의 가면을 쓴 이 출연자의 정체는 분명 한재혁 선배일 거라 추정되었다.

그랬다.

이번 왕중왕전엔 그 한재혁이 출연했다.

* * *

흔히 레전드 가수라고 불리는 한재혁.

그 한재혁 선배가 이번 <가면 아래의 가수> 왕중왕전 특집에 참여하고 있었다.

한재혁이 쓴 가면의 이름은 ‘푸른 초원의 검사’. 이건 곧 눈앞에서 무대를 하고 있는 가면의 이름이기도 했다.

‘역시 압도적이네.’

그리고 예상했듯이 한재혁은 압도적이었다. 일단 첫 라운드부터 이제까지 중 상대와 가장 큰 격차로 승리하며 올라왔다.

그건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고.

사실 객석이나 판정단이나 ‘검사’의 정체가 한재혁이라는 걸 이미 눈치챘을 확률이 높다. 모를 수가 없는 가창력이었다.

이전에 <가면 아래의 가수>에 나왔을 때도 그렇게 엄청난 무대를 하고 갔었으니까.

[이번 승리자는─‘푸른 초원의 검사’입니다!]

역시나.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스포트라이트는 ‘푸른 초원의 검사’에게로 돌아갔다.

“역시 검사네. 이번에도 표 차가 꽤 나는데?”

“그래도 80대 20 정도면 낫죠. 아까는 90대 10이었잖아요.”

“그 정도로 나면 무대 위에서 마음이 아프긴 하겠다.”

이를 본 스텝들 역시 저마다 한마디씩 말을 던졌다. 이번에도 역시 전 라운드와 마찬가지로 표 차가 좀 있었다.

그리고 그 압도적인 표 차이가 한편으론 말해주는 것도 같았다. 한재혁 선배라는 산이 이렇게 커다랗다는걸.

‘···꽤 부담이 되긴 하네.’

부담과 긴장이 전혀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상대는 보컬에서 레전드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솔직히 나도 엄청 좋아한다.

한재혁 선배 무대.

그러니 이왕이면 대결이 아닌 콜라보 같은 형식이었다면 훨씬 더 좋았겠지만, 현실은 결국 무대로 승부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부담 가는 상황이긴 하지만.

‘···아. 진짜 미친X인가.’

왜 이렇게 기대가 되는지 모르겠다.

부담되고 긴장되는 와중에도 동시에 무대에 빨리 서고 싶었다.

빨리 서서, 노래하고 싶었다.

저 위에서. 수많은 사람 앞에서.

[그렇다면, 이제 최종 라운드 대진표! 그 대진표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와, 이제 마지막이다. 마지막!”

“결승전 대진표다, 세현아.”

매니저 형의 그 말에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마지막 대진표가 나왔다.

[▶ Final Round]

[달리는 시계 토끼 VS 푸른 초원의 검사]

동시에 나는 그대로 화면을 바라본 채로 입가를 가렸다. 나도 모르게 또다시 미소가 지어진 탓이었다.

꽤 재미있을 것 같았다.

* * *

마지막 촬영 시작 전.

이를 앞두고 객석과 판정단은 지금, 누구랄 것도 없이 다소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몇 시간에 걸친 오랜 촬영 시간 탓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여전히 멀끔한 얼굴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신도하가 그랬다.

“도하 씨는 어째 시작보다 지금이 더 얼굴빛이 좋아 보이는데? 뭐, 쉬는 시간 동안 비타민이라도 먹고 왔어요?”

“그런가요?”

“응. 아주 반짝반짝해.”

신도하가 그대로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곧 시선을 다시 무대 위로 옮겼다.

기분이 꽤 좋았다.

“근데 도하 씨는 알았어요? 탐험가가 건후 씨라는 거.”

“저는 바로 알았죠.”

“아, 역시 멤버는 멤버네. 나는 가면 벗고 나서야 알았는데.”

앞 라운드 우세현과의 대결에서 탈락한 주건후, 가면을 벗고 정체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길 위의 탐험가’의 정체가 주건후라 눈치챘던 사람은 얼마 없었기에. 전역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주건후는 언제나처럼 수줍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론 꽤 성을 내고 있겠지.’

물론 속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신도하는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워낙 욕심이 많으니까.’

주건후는 예전부터 욕심이 많은 멤버였다. 그리고 그 욕심은 항목을 가리지 않았다.

무대 욕심, 카메라 욕심, 파트 욕심.

그 외 다양한 곳에서 항상 주건후는 욕심을 내었다.

그렇게 욕심이 많은 인간이다.

그러니 분명 지금의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지 못할 확률이 다분했다.

하지만 지금 신도하에게는 그런 것보다 눈앞에 있는 이 무대가 더 중요했다. 앞으로 펼쳐질 이 무대가.

‘세현이는 마지막이군.’

순서는 ‘푸른 검사’부터였다.

‘검사’가 앞서 먼저 무대를 펼치고 난 다음, 우세현이 무대를 이어 나갈 예정이었다.

‘긴장, 많이 하려나.’

결승전이자 그 한재혁과의 무대다.

긴장을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긴장을 한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재밌겠지만.’

평소 우세현을 생각하면, 그리 큰 긴장은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가끔씩 깜짝 놀랄 만큼 대담한 면이 있었으니까.

[그럼 지금부터 <가면 아래의 가수>, 왕중왕전! 마지막 파이널 라운드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된 파이널 라운드.

파이널 라운드라는 이름에 맞게 시작부터 여기저기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그리고 먼저 올라온 한재혁.

비록 얼굴은 가면에 가려져 있어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베테랑답게 차분하면서도 온화한 모습이었다.

[파이널 라운드의 첫 번째 무대! ‘푸른 초원의 검사’의 무대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한재혁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한재혁이 선곡한 곡은 ‘나만의 여행’.

현재의 인생을 하나의 여행으로 빗대어 표현한 곡으로 밝고 희망찬 가사를 특징으로 하는 곡이었다.

[하나의 발자취를 남겨]

[이 모든 발자취를 엮으면]

[그 길이 곧 내가 걸어온 길이겠지]

성량부터 귀를 사로잡았다.

여기에 한재혁만의 감미로운 음색이 가미되어 곡의 분위기를 더욱더 희망차게 만들어 주었다.

분명 이제 막 시작된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나만의 여행을 떠나요]

[조금 먼 여행을 떠나요]

[그대로 이 발자취를 따라]

[나만의 발자취를]

그야말로 듣기 편안했다.

박자, 리듬, 호흡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모든 게 안정적이었다. 노래를 갖고 논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가.

그럴 정도로 여유가 있고 노련하면서도 듣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기분 좋은 노래였다.

객석들과 판정단은 모두 이미 그런 한재혁의 노래에 푹 빠져 있었다.

[이대로 나만의 여행을]

그렇게 한재혁의 무대가 끝이 났다.

열렬한 박수 속에서.

“역시.”

“잘한다, 잘해.”

그렇게 패널들이 박수를 치면서도 한마디씩 말을 이었다. 주변에 있던 이들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토끼 가면을 쓴 출연자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다음 무대가 지체 없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주변은 방금 전 무대의 열기가 사그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만큼 인상 깊은 무대였기에.

그러한 와중에 신도하는 가장 먼저 무대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여전히 소란스러운 현장 속에서도 신도하의 시선은 오로지 눈앞에 있는 무대에만 향해 있었다.

그렇게 이제 막 이번 특집의 마지막 무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그럼 이제 파이널 라운드의 마지막 무대! ‘달리는 시계 토끼’의 무대를 시작합니다!]

동시에 들리는 환호 소리.

마침내 ‘달리는 시계 토끼’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무대가 시작되자, 무대 위로 은은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며 잔잔한 멜로디의 전주가 이어졌다.

익숙하면서도 감미로운 멜로디.

‘이 곡은.’

그리고 신도하는 그게 어떤 곡인지 단숨에 알아챘다. 그건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는 ‘Daily’이라는 어느 남자 솔로 가수의 히트곡인 ‘목소리의 출처’라는 곡이었다.

이는 일상 속 타인의 다양한 감정들이 마치 목소리처럼 내게 전해져온다는 내용의 감성적인 발라드곡이었다.

[불쑥 나를 찾아온 그 목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나를 향해 말을 걸죠]

[나의 일상 속 그 어디에서도]

덤덤하면서도 동시에 호소력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만큼 순간순간 우세현이 내뱉는 가사 하나마다 저절로 집중되었다.

사실 이 곡은 지난 2 라운드 때의 곡과는 달리 멜로디의 변주가 크지 않았다. 그러니 화려한 스킬보다는 감정을, 음색을 강조하는 곡이었다.

‘감성은 세현이의 강점이니까.’

그리고 우세현은 노래에 담아내는 감정을 언제나 섬세하게 그려낼 줄 알았다.

평소엔 감정 표현이 그리 크지 않은데도 신기하게도 무대 위에서만큼은 노래만의 감정을 호소력 있게 표현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차가운 그 꿈속에서도]

[이렇게 꿈과 같은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내 곁을 머물죠]

[그 목소리가, 그 감정이.]

분명 덤덤한 것 같음에도 애절했고, 절절했다. 목소리 하나로 승부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좋다.’

잔잔하게 흐르는 멜로디도, 그것을 노래하는 우세현의 목소리도, 그리고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은 채 노래하고 있는 우세현 역시.

마치 모든 구성 요소가 맞아떨어진 것 같은, 그런 무대였다. 그리고 신도하는 다시금 그 목소리에 집중했다.

이는 신도하 뿐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잔잔하게 흐르는 멜로디 속에서 관객들은 어느새 그런 우세현을 따라 가사를 읊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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