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357화 (357/413)

357화. 그냥 잘하는 게 아니거든요.

[알쏭달쏭 음악쇼, <가면 아래의 가수>! 왕중왕전, 마지막 파이널 무대, 첫 왕좌를 차지할 인물은 바로─‘푸른 초원의 검사’입니다!]

펑펑!

그대로 준비된 꽃가루가 터졌다.

그리고 나는 그 꽃가루를 잠시 바라본 뒤, 이어지는 환호 속에 박수를 보냈다.

아쉽게 결승전에서 지고 말았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까.

‘무엇보다 재밌었고.’

솔직히 그게 컸다.

그저 재밌게 불렀다.

물론 아쉬움은 남았다.

애초에 난 우승을 목표로 온 거니 아쉬움이 없을 순 없었다. 겨우 한 걸음 차이로 우승을 놓친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래서인지 멤버들 생각이 났다.

이거, 말하면 위로해준다고 할 것 같은데. 그것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대로 멤버들의 위로를 받는 것도.

[아, 그런데 놀랍군요! 득표수가 놀랍습니다!]

그런데 그때, MC가 급하게 제작진으로부터 뭔가를 전달받았다. 그리고는 꽤나 놀란 얼굴로 말했다.

[바로 결승전, 두 출연자의 득표 차가 고작 2표! 고작 2표 차였다고 합니다!]

동시에 스튜디오 전체가 술렁였다.

2표 차.

최종 결과는 51대 49로 약 2표 차에 불과했다.

[이거 엄청난 격전이었군요!]

“미쳤다, 2표 차?”

“2표 차라고? 와, 이거 진짜 아깝다.”

“토끼가 진짜 아까웠어.”

어째 결과를 발표했을 때보다도 주변이 한층 더 술렁이는 느낌이었다.

“아, 너무 아쉽지 않나요? 시계 토끼.”

와중에 나한테 마이크가 왔다.

“네. 많이 아쉽네요.”

“아, 그렇죠. 정말 아쉽죠. 아쉽네요.”

그렇게 MC가 아쉬움의 말을 반복했다.

근데 물론 아쉽긴 한데, 그래도 표 차이가 적게 났다는 점에서 내심 안도감이 들었다.

일단 표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 다행이고, 무려 그 한재혁 선배와 고작 2표 차이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아마 순서가 후순이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작용이 됐을 테지만, 그래도 좋았다.

“와, 검사랑 이렇게 표 차이 안 나는 건 처음이네.”

“그러게. 지금까지 엄청났는데.”

동시에 옆에 있던 ‘검사’가 나를 향해 묵례했다. 이에 나 역시 그런 한재혁 선배를 향해 인사했다.

사실 무대가 끝난 이후로부터 왠지는 모르게 한재혁 선배와 시선이 자주 마주하고 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자, 그럼 이제 그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오늘 멋진 무대를 보여준 시계 토끼의 정체부터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드디어 벗는 건가.’

그리고 돌아온 얼굴 공개 시간.

드디어 가면을 벗을 수 있는 시간이 왔다. 역시 하루 종일 가면을 쓰고 무대를 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럼 이제 얼굴을! 공개해주세요!]

이어서 다시 한번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동시에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는 게 보였다.

그 안에는 신도하의 시선 또한 있었다.

신도하는 그렇게 언제나처럼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신도하를 조용히 바라보았고, 이내 시선이 맞닿았다.

그렇게 나는 쓰고 있던 가면을 천천히 벗었다.

* * *

“안녕하세요, 윈썸 세현입니다.”

정체를 밝히자 그 순간, 엄청난 크기의 환호성이 따라왔다. 나는 그렇게 중앙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지었다.

“아, 정말 잘생겼네요.”

와중에 한재혁 선배가 나를 향해 말했다.

아직까지 가면을 벗지 않아 음성 변조가 된 상태로.

“검사님은 아직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아, 예. 죄송합니다.”

동시의 주변으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잠깐의 인터뷰 시간을 가지고 난 뒤, 나는 그대로 무대에서 내려왔다.

반응을 보니 정말로 놀란 사람도 있었지만, 어째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었던 듯한 얼굴들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티가 났나.

···어째 이거 또 시작하자마자 이름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인데.

그리고 그렇게 짐을 챙기며 퇴근 준비를 하는데, 그 순간 대기실 문 너머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세현아.”

신도하였다.

위의 촬영이 벌써 끝난 건가.

“오늘 고생 많았어.”

“네. 선배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가면, 아주 잘 어울리던데.”

신도하가 미소 지었다.

대충 말하는 걸 보니 역시나 내가 시계 토끼였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되니 도리어 궁금해졌다.

도대체 언제 눈치를 챈 건지.

“알고 계셨어요? 제 정체요.”

“아니, 몰랐는데.”

“···굳이 거짓말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 난 니가 정체를 꽁꽁 숨기고 싶어 하는 것 같길래.”

“네?”

“그래서 일부러 1라운드 선곡도 그렇게 정한 거 아니야? 목소리 감추려고.”

1라운드의 선곡은 원곡을 록 장르로 편곡해서 불렀다.

이 곡을 선곡한 건 순전히 하고 싶은 곡이었던 것도 있지만, 솔직히 신도하가 말한 의도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좋더라고. 목소리.”

···역시 눈치 한번 빠른 것 같다.

그럼 결국 1라운드부터 알고 있었다는 거네.

“마지막엔 정말 아까웠어. 마음 같아선 내가 두 번 눌러주고 싶었는데. 그만큼 무대가 좋았거든.”

신도하가 아쉽다는 표정을 보였다.

어, 그래. 무대 좋다는 건 고마운데, 근데 잠깐. 두 번 눌러주고 싶었다고?

“···저한테 투표하셨나요?”

“응. 난 너한테 했어.”

“어, 감사합니다.”

당연하다는 듯 밝히는 그 말에 일단은 그렇게 말을 전했다. 근데 이렇게 막 밝혀도 되는 건가.

“그것보다 이번엔 안 궁금해?”

“네?”

“감상평.”

아. 감상평.

“이번에도 해줄 수 있는데. 꽤 자세히.”

신도하가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도 비슷한 걸 해줬었지.

···잠깐 고민이 됐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에도 묻고 싶긴 했다. 어땠는지 말이다. 지난번 해줬던 감상평도 꽤 도움이 됐으니까.

“원한다면 지금 당장도 좋고.”

“···지금은 그렇고, 그럼 나중에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후로 일 있어?”

“그건 아니지만, 웬만하면 숙소로 바로 가고 싶어서요.”

이후로 일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다른 것보다 숙소에 가고 싶었다. 멤버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오늘의 결과를 직접.

분명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래. 알겠어. 오늘은 피곤할 테니까. 그럼 언제가 좋을지 약속을 잡아야겠네.”

그리고 신도하는 내가 피곤해서인 줄 알았는지 이내 시일 내에 약속을 잡자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주건후는 퇴근인가.’

멤버 하니 떠올랐다.

마찬가지로 오늘 같이 촬영을 했던 주건후. 한 라운드 먼저 탈락했으니 이미 퇴근했을 시점이긴 했다.

‘의외로 조용히 퇴근인가.’

그때 그 자존심이 꽤 상한 모습으로 봤을 땐, 이대로 고분고분 넘어갈 것 같진 않았는데.

오히려 한 번 더 시비를 걸어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성격상 그럴 것 같아서.

“세현아.”

그때, 신도하가 다시 한번 나를 불렀다.

동시에 그대로 시선이 마주했다.

“혹시 곤란한 일이 생기면 말해.”

“예?”

그리고는 뜬금없이 영문 모를 소리를 했다. 하지만 신도하는 그저 말없이 작게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기꺼이 나서 줄 테니까 말이야.”

꽤 단단한 목소리로.

* * *

주건후는 지금 한껏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이렇게까지 화가 솟구치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가면 아래의 가수> 촬영이 끝난 이후로 주건후는 곧장 술을 찾았다. 지금 당장 알콜이라도 넣지 않으면 제정신으로 있지 못할 것 같았다.

그만큼 오늘 있었던 일은 그에게 큰 치욕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 치욕은 바로 오늘 있었던 무대에 있었다.

바로 우세현에게 졌던 일.

그것도 무대로.

‘그런 꼬맹이 자식한테···.’

그것은 주건후에게 있어 상당히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제 나름의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다.

무대로는 절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프라이드.

과거엔 신도하에게 밀려 제2 보컬 같은 취급을 받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 진가를 모르기 때문이라 여겼다.

신도하와는 그저 한 끝 정도의 차이라 생각했다. 회사에서 부여한 메인 보컬이라는 명칭이 그 격차를 더 벌리고 있을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물론 신도하가 좋은 보컬이고 노래를 X나 잘한다는 것 정도는 자신도 알고 있다.

그건 인정했다.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옆에서 그걸 지켜봐 왔으니까.

‘그 자식이 노래를 X나 잘한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고.’

솔직히 말해서 그건 인정했다.

기꺼이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도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자신보다 까마득하게 어린, 고작 3년 차밖에 되지 않는 꼬맹이한테 노래로 진다는 건 절대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 X발.’

그렇게 주건후가 비어 있는 잔을 보며 옆에 있던 맥주를 한 병 더 깠다. 자존심이 남아나질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떠올랐다.

신도하가 했던 이야기가.

정확히는 오늘 촬영장에서 신도하가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

‘세현이, 얕보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주건후는 오늘 <가면 아래의 가수> 촬영을 하던 도중 신도하와 만났다.

정확히는 우세현과 이야기를 나눴던 그 비상계단에서. 우세현과 대화를 나눈 이후, 다시 그곳에서 신도하와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너무 없어 보이는 거 아니에요?”

“뭐?”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한테 겁주는 거요. 없어도 너무 없어 보여서.”

신도하가 그대로 입꼬리를 올렸다.

정황상 앞선 두 사람의 대화를 이미 다 들은 듯한 발언이었다.

“못 본 사이 겁이 많아졌네요. 형답지 않게.”

이에 주건후가 미간을 작게 구겼다.

“···글쎄. 난 니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는데.”

“형, 노래 잘하죠. 그래서 꽤 자신만만해하는 것 같지만, 방심하지 않는 게 좋을걸요.”

“방심? 무슨 방심? 내가 방심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방심이랄 것도 없었다.

이 승부는 자신이 이기는 게 당연하니까.

우세현이 노래를 잘한다는 것 정도는 주건후 역시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라 생각했다.

“너 설마 내가 그 꼬맹이한테 질 거라 생각하는 거냐?”

그리고 신도하는 그런 주건후를 말없이 바라보다 이내 미소 지었다.

“세현이는 그냥 잘하는 게 아니거든요.”

“뭐?”

“굉장히 잘해요. 내 마음에 쏙 들 정도로.”

그 순간, 주건후가 다시 미간을 좁혔다. 신도하의 지금 그 말이 단순한 농담이 아닌 꽤 진담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세현이, 얕보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런 신도하의 말에는 어떠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아주 확고한 확신.

그와 동시에 그 말은 마치 자신을 향한 하나의 경고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우세현을 함부로 얕보지 말라는 경고.

쾅!

그대로 손에 있던 잔이 테이블 위로 강하게 내려앉았다. 그때도 그랬지만, 역시나 어이가 없다.

척 봐도 우세현이 마음에 든 게 틀림없었다. 그 자식은 원래 노래 잘하는 사람을 보면 환장하니.

‘재결합 거절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일전에 했던 그 재결합 제안.

신도하는 그 자리에서 이를 거절했다.

당연히 이유 따위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은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할 뿐.

‘백퍼 우도현 때문이겠지.’

그 이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 당시 자신을 향해 잡은 꼬투리나 태도를 생각하면 이유는 역시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붙어 다니더니.’

활동 내내 멤버들 중 유독 붙어 다니던 둘이었다. 그러니 어쩌면 사전에 우도현과 뭔가 다른 커넥션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다시 뻗치는 열에 주건후는 제 손에 있던 잔을 한 번 더 들이켰다.

그리고 그런 신도하의 거절을 시작으로 다른 멤버들 역시 하나둘, 동일한 의견을 보였다.

재결합은 하지 않겠다는 의견.

권해진, 박시겸 역시.

쾅!

그렇게 주건후의 손에 있던 잔이 테이블 위로 이전보다 더욱 크게 부딪혔다. 동시에 구겨진 자존심, 모욕감, 억울함 등 여러 감정이 한순간에 뒤섞였다.

그리고 그런 주건후에게 오늘 가장 큰 모욕감을 줬던 일은 역시나 그것이었다.

동시에 얼굴이 떠올랐다.

우도현과 겹치는 그 얼굴이.

‘그 꼬맹이 새X.’

우세현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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