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화. 스타성이 상당하십니다.
주건후는 우도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몇 가지가 있지만,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은 어딜 가든 제일 먼저 주목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이 꼬맹이 새X.’
동시에 주건후는 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이어서 조금 긴 수신음이 들린 뒤,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 네, 선배님.
우세현이었다.
들리는 그 목소리에 주건후는 다시 한번 일전의 그 무대가 떠올랐다. 자신이 처참하게 패배한 그 무대가.
그리고 떠오른 그 순간에 다시금 울화가 치밀었다. 동시에 주건후의 머릿속에는 이 애새X를 어떻게 X 되게 만들지 그 생각만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 끝에 주건후는 일단 물었다.
“너 지금 어디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 * *
숙소 앞에 도착해 그대로 올라가려던 찰나, 갑작스럽게 모르는 번호로 연락 하나가 왔다.
아니나 다를까 주건후였다.
등록한 번호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이 번호가 주건후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역시 그냥 넘어가질 않는군.
‘대충 어떤 말을 할지 예상이 가긴 하는데.’
그럼에도 일단 전화를 받았다.
일단 루트 멤버이기 때문에.
─ 너 지금 어디냐?
잔뜩 날이 선 목소리였다.
그에 비해 주변은 꽤 조용했다.
“용건, 말씀하시죠.”
─ 직접 보고 말해야겠다고. 어디냐고.
귀찮게도 군다.
무슨 대단한 말을 하겠다고 직접 만나겠다고 건지.
그리고 그대로 잠시 대답하지 않고 있자 전화 너머로 피식거리는 소리가 한번 들렸다.
─ 누가 그 형의 그 동생 아니랄까 봐.
순간 나온 형의 이름에 그대로 미간을 좁혔다. 한껏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였다.
─ 네 형 때문에 어찌나 귀찮은 일이 많았던지. 그 자식 때문에 고이고이 쌓아온 내 사업 망했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열이 뻗쳐. 그때 우도현이 재계약만 엎고 나가지 않았더라도···!
그리고 그 순간, 주건후의 언성이 높아졌다. 분을 이기지 못한 목소리였다.
단순히 얘기만 들으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지만, 대충 앞서 나온 단어들만으로도 그 의미를 유추할 수 있었다.
사업, 재계약.
루트의 재계약 시점에서 주건후가 새로 시작하려고 했던 사업.
형은 분명 그 사업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다.
‘혹시 그 시점을 계기로 망했나.’
주건후의 사업이.
혹은 시작도 못 했다던가.
‘그럼 그게 결정적인 건가.’
주건후가 형에게 지금까지 반감을 품은 이유. 단순히 제 사업을 망하게 했다는 이유.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그때 주건후가 하던 사업이 잘 안된 건 확실히 한 듯했다.
─ 사업 좀 하는 것 가지고 쓸데없이 시끄럽게 굴더니 이젠 그것 때문에 나간다고? 어이가 없어서. 변명도 말이 되게 해야지. 안 그래?
주건후가 다시 한번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했다. 아직까지도 그놈의 사업 타령을 하는 것 보면, 역시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
‘근데 이 자식···.’
혹시 술 마셨나.
묘하게 말에서 알콜향이 난다.
그리고 꽤나 감정적이다.
대놓고 언성을 높이는 것 하며, 말하는 내용 또한 사리 분별없이 혼자 퍼붓는 식이다.
아무래도 이 이상 더 들어주고 있을 필요가 없을 듯했다.
“특별히 하실 말씀 없으시다면, 먼저 끊겠습니다.”
─ 와, 이 새X. 어른 말 함부로 끊는 거 봐라.
그러더니 곧 킬킬거리며 웃는다.
X친놈인가.
─ 너. 어떻게 한 번 이긴 걸로 으스댈 생각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내가 확실히 너보다 우위니까 말이야. 잘 기억해둬.
날이 잔뜩 선 목소리였다.
역시나 앞선 무대 일로 자존심이 상했나 보군. 지금 상황에선 그 말조차 꽤 없어 보이긴 한데.
“그럴 생각은 없지만, 근데 그런 것치곤 너무 못하시던데요.”
─ 뭐?
“노래요. 이제보니 선배님도 스타성이 상당하신가 봅니다.”
본인이 한 말이니 분명 기억하고 있겠지. 그놈의 스타성이니 뭐니 했던 말. 형을 비꼬았던 그 말.
다시 생각해도 열 받는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답이 없다.
반응을 보니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 야, 꼬맹이.
“예.”
─ X 되고 싶어?
그리고 그걸 꽤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의문형으로 물어보고 있었지만, 그건 분명한 반드시 X 되게 해준다는 말이었다.
거의 협박성 발언이나 다름없었다.
어지간히도 열이 뻗친 것 같은데.
하지만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선배님.”
그렇게 난 다시 주건후를 향해 말했다.
“꽤나 속이 쓰리신 모양인데, 그렇다면 제가 위로차 작은 선물 하나 보내드리겠습니다.”
─ 뭐?
“음성 파일이 하나 갈 겁니다.”
주건후의 목소리가 담긴 음성파일.
주건후와 내가 오늘 2라운드 촬영에 들어가기 전, 비상계단에서 나눴던 대화를 담은 바로 그 음성 파일이다.
정확히는 주건후의 음성만이 담긴.
그 안에는 그 당시 주건후가 했던 말들이 빠짐없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처음부터 켜 놓고 들어갔으니까.’
녹음 기능을.
주건후와의 대면 전, 나는 사전에 녹음 기능을 켜 놓은 채로 그곳에 갔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하지만 생각보다 꽤 빠른 시일 내에 사용할 수 있게 될 듯했다.
“그거 받으시면 아마 정신이 좀 드실 것 같네요.”
그리고 주건후는 말이 없었다.
아마도 뭐된 것은 본인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한 게 아닐까.
그리고 그 생각을 하니 다시금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 * *
- 흔히 가수라고 말하면서 노래도 제대로 못 하는 거 한심하잖아. 그래 놓고 애써 스타성이라는 말로 대충 포장하고. 그게 되게 웃기더라고. 없어 보이기도 하고.
그대로 받은 음성 파일로부터 익숙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주건후의 음성이었다.
방금 전 우세현으로부터 받은 한 개의 음성 파일. 그 안에는 바로 몇 시간 전, 주건후와 우세현이 나눈 대화의 일부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나오는 목소리의 대부분은 주건후의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내용은 절대 새어나가선 안 되는 것들뿐.
‘이 자식!’
그와 동시에 주건후는 액셀을 밟았다. 분명 취기가 가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이상하리만큼 정신이 또렷했다.
그렇게 주건후는 차를 끌었다.
그가 탄 외제차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목적지는 다름 아닌 우세현이었다.
‘이런 X, 왜 안 받아!?’
이에 주건후는 곧바로 권해진에게 연락해 윈썸의 숙소 위치를 물으려 했지만, 어찌 된 것인지 내내 연락이 닿질 않았다.
동시에 주건후가 손안의 핸들을 더욱 힘주어 잡았다. 그렇게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와중에 이제는 초조함까지 더해졌다.
‘X 되게 한다, 이거냐?’
주건후가 이내 입술을 꽉 물었다.
설마 그때 그 대화를 녹음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대화 내용을 보니 중간부터 녹음을 시행한 것도 아니었다. 아예 처음부터 켜고 들어온 것이다. 작정하고.
하지만 주건후는 알고 있었다.
말은 그렇게 하더라도 그 음성 파일을 함부로 뿌릴 수는 없을 거라는 걸.
오히려 손에 꽉 쥐고 자신을 흔들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게 더 효과가 좋을 테니까.
‘꼬맹이 새X가, 머리 좋네.’
그렇게 핸들을 조금 꺾었다.
하지만 거기에 놀아날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아마 우세현은 자신이 이대로 포기한 채로 순순히 물러날 거라 예상했겠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주건후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주건후는 우세현을 향해 직진했다. 그깟 음성 파일, 애초에 없애버리면 그만이다.
이 머리 좋은 꼬맹이도 자신이 이렇게 직진할 것이라고까지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이게 정답이다.
‘이대로 바로 가서 밟아주면 돼.’
주건후는 눈앞을 차갑게 응시했다.
이제는 더 이상 취기조차 올라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저 정신이 또렷했다.
정신만이 또렷했다.
그리고 그렇게 액셀을 조금 더 강하게 밟으려는 찰나, 눈앞에 보이는 인영에 주건후는 순간 발을 멈칫했다.
“······!”
또다시 예기치 못한 일이 그런 주건후의 앞을 가로 막고 섰기 때문이다. 동시에 주건후의 차가 느리게 멈췄다.
─똑똑!
그 순간, 밖에 있던 이가 이윽고 차 문을 두드리고 나섰다.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음주 검문이었다.
‘젠장!’
그렇게 주건후는 목적지엔 다가가지도 못한 채 허망하게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대로 아득해지는 눈앞에, 이내 잡고 있던 핸들로부터 힘없이 손을 떨구었다.
* * *
다음 날, 기사가 하나 떴다.
눈을 의심하게 할 만한 기사였다.
- [단독] 루트 주건후, 음주 운전으로 경찰 입건
어젯밤, 주건후가 음주 운전으로 인해 경찰에 입건됐다는 기사였다.
- 헐 주건후가 음주운전 ㄴㅇㄱ
- 음주운전에 속도위반? 와우 사회면에 제대로 진출했네
- 술 처마시고 도대체 왜 운전을 하는 거임? 대리는 어디에 팔아먹고 ㅉㅉ
- 와 이미지 제대로 깬다
‘실제 술주정이었던 거냐.’
나는 그대로 미간을 좁혔다.
통화 당시 그런 게 아닐까 짐작은 했는데, 막상 그게 사실이었다고 하니 그저 어이가 없었다. 심지어 그 상태로 운전까지 했다.
제대로 정신이 나갔다.
기사 내용에는 검문에 걸렸다고 나와 있었다. 다행히 어딜 들이박거나 사고를 낸 건 아니었다.
‘근데 그 와중에 속도위반까지.’
가지가지 했다.
무엇보다 이번 일로 인해 주건후의 이미지가 제대로 골로 갔다.
그도 그럴 게 무려 사회면이다.
- 루트 주건후 원래 되게 조용조용한 순둥이 이미지 아니었어? 술 마시고 음주 운전 했다는 게 매치가 너무 안 됨
└ 순둥이는 무슨 그거 다 팬들 메이킹
└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닌가벼
└ 헐 그거 다 메이킹이었구나
- 주건후 순둥이 메이킹 그거 다 걔 팬들 영업임 특히 예전에 주건후 사업건 논란 크게 터지고 나서 그거 덮으려고 더 열심히 작업했잖아ㅋ
└ 주건후 사업일은 뭔데?
└└ 주건후가 지 사업에 루트 멤버들 초상권 팔아 먹었던 일 이거 유명했음ㅇㅇ
└└└ 멤버들 초상권을 팔아먹었다고? ㅂㅅ이네
└ 그때 그걸로 난리였지 ㄹㅈㄷ 노양심 이후에 얼굴 철판 깔고 잘만 활동 하더라ㅋ
└ ? 같멤들이 보살인데 이건
- 솔직히 주건후 보면 항상 좀 쎄했음 루트 때도 유독 혼자 야망있는 티 많이 났어
└ 주건후 야망 유명하지ㅋㅋ 센터 욕심 분량 욕심 대박이었잖아ㅋ
└ 우도현한테 열폭한다고 얼핏 봤었는데 그것도 사실이야?
└└ ㅇㅇ 맞음ㅋㅋ
└└└ 맞긴 뭐가 맞아 그건 까들이 지어낸 거고 멤버한테 열폭한 적 없음 이때싶 루머 생성하네
- 주건후 이제 막 전역하고 활동 존나 열심히 하려는 것 같았는데 줄줄이 하차 뜨겠네ㅋㅋ
- 주건후 이미지 메이킹 존나 잘 됐잖아 얘 골 때리는 일 ㅈㄴ 많았는데 팬들 수로 다 덮은 거지 이제 그 꼴 안봐서 좋다ㅋ
‘굳이 녹음본을 풀 필요도 없겠군.’
사실 그냥 쥐고 있어도 되는 거긴 했지만, 풀어도 상관없긴 했다.
대충 대화 내용의 상대가 특정되지 않는 부분만 풀면 어차피 어디서 흘러나온 건지 제대로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그만큼 그동안 쌓아온 주건후의 이미지가 걷잡을 수도 없이 크게 무너지고 있었다. 꽤 처참하게.
본래 주건후는 대외적인 이미지는 항상 철저하게 챙겨 가는 스타일이었다. 그 이미지를 이렇게 오랜 시간 고착시킬 만큼.
그런데 그런 주건후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쳤다는 건, 그만큼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할 만큼의 상태였다는 거다.
그만큼 흥분했거나, 혹은 오랜 공백으로 인해 정신이 잠시 가출했거나.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고.
그렇게 커뮤니티에는 주건후와 음주 운전에 관한 이야기들이 넘쳤지만, 그게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었다.
주건후는 루트였다.
그에 따라 루트 역시 같이 끌려 나오기는 마찬가지였다.
- 루트도 결국 사회면 진출 ㅊㅋ
- 그동안 이미지 클린했는데 주건후 때문에 루트도 병크돌 됐네
- 솔까 이제 한번 모이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이게 뭔 개민폐 ㅅㅂ
- 주건후 없이 걍 뭉치면 안 됨? 3명이서도 충분할 것 같은데
└ 4명 안 됨? 우도현 껴서
└ 뭔 나간 사람을 아직도 찾아 걍 3명이서 해도 충분해
주건후가 루트의 멤버였던 이상, 루트 이미지에도 어느 정도 타격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일단 기사 헤드라인 자체도 ‘루트 주건후’라고 뜨는 기사가 아직까지도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으니.
‘정말 끝까지 똥물을 튀기는군.’
주건후가 골로 간 건 상관없지만, 루트라는 이름까지 끌려 나오는 건 사양이었다.
루트 이름이 나오기 시작하면 결국에 끌려 나오는 건 형의 이름이다. 좋게 나오면 또 모르지만, 당연히 좋게만 나올 리가 없으니까.
‘···형도 기사 봤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작게 한숨이 나왔다. 아무래도 연락을 한번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아직 형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가면 아래의 가수> 출연 스케줄.
‘이참에 그것도 말해야겠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폰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