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359화 (359/413)

359화. 왜 진작 말 안 했어?

─ 집으로 와.

통화 시작 1분 만에 나온 얘기였다. 그러니까 대충 형에게 안부를 묻고, 그러다가 가면 아래의 가수 이야기를 하고.

그러다가 주건후 얘기가 나왔는데, 그 순간 나온 형의 대답이 저거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게 고작 1분여만에 진행된 것들이었다.

그렇게 집으로 가자 현관에서부터 형과 마주했다. ···표정이 상당히 안 좋았다.

그리고 형은 그 상태로 팔짱을 낀 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봐?”

“왜 진작 말 안 했어?”

“뭘?”

“그 자식 만난 거.”

아니나 다를까 주건후 얘기였다.

일단 나 그거 어제 촬영한 건데···.

“우세현.”

그대로 들리는 형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동시에 형과 시선이 다시 부딪혔다.

“전부 불어.”

“···뭘?”

“그 자식이 X랄한 짓.”

아무래도 화가 단단히 난 듯했다. 대충 예상했던 반응이긴 한데···어째 생각보다 반응이 더 안 좋았다.

와중에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일단 거실로 이동했는데, 그때까지도 형의 표정은 여전히 풀릴 줄을 몰랐다.

그래서 하나씩 이야기했다.

촬영 때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토너먼트 상 주건후와 만났다고.

“촬영 말고는?”

“촬영 말고?”

“이외에는 뭐 없었냐고.”

그렇지만 촬영 이외의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이야기해봤자 그저 형의 화를 돋을 뿐이었다.

‘안 그래도 저렇게 화가 나 있는데.’

주건후가 쓸데없는 시비를 걸었다는 것까지 알게 되면···역시 이건 그냥 입을 다무는 편이 낫다.

“없었어, 이외에는.”

“절대 그럴 리 없을 텐데.”

“뭐?”

“그 새X가 공과 사를 구분할 성격이 아니라서.”

동시에 형이 아까보다 더 화가 난 듯한 얼굴로 나를 향해 다시 물었다.

“되지도 않게 숨길 생각하지 말고 다 불어. 그 새X 성격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주건후도 멤버였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모를 리가 없지. 그 성격을.

“근데 주건후, 어차피 한동안 방송하기는 힘들 것 같던데.”

사고를 거하게 친 만큼 이미 섭외가 들어갔던 것도 줄줄이 하차 수순을 밟고 있는 듯했다.

여기에 광고 계약 건이 있었다면 위약금도 물어줬을 테고.

아마 한동안은 활동하기 힘들 거였다.

자숙 뒤,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고 해도 그때마다 끌어올려질 병크인 만큼 그 꼬리표를 떼기도 쉽지 않을 거다.

“그렇겠지.”

형이 덤덤하게 답했다.

역시나 사건 소식은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정작 그 사건에 관해서는 관심도, 흥미도 없어 보였다.

그저 그 사실을 묵묵히 인지하는 게 전부였다.

“그 자식 성격상 아마 너한테 졌다는 사실이 용납 안 됐던 거겠지. 사리 분별 제대로 못 하고 날뛸 만큼. 그 자식은 원래부터 자존심 덩어리였으니까.”

안 봐도 뻔하다는 말투였다.

물론 실제로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 자식은 원래 그런 놈이야.”

형이 피식 실소하며 말했다.

“그보다 말해. 주건후가 뭘 어떻게 했다고?”

“별거 없어. 그냥 자기 자랑하던데.”

“자기 자랑?”

“응. 노래 잘한다고.”

이에 형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얼굴을 보였지만, 사실이었다. 순전히 자기 자랑뿐이었으니.

“그래서 내가 제대로 눌러줬어.”

쓸데없는 소리, 더 이상 못하도록.

그러자 형은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그런 형을 향해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앞선 내 말에 나름 형이 통쾌해할 줄 알았건만, 의외로 돌아오는 말은 잔소리뿐이었다.

위험한 짓은 하지 말라든가, 무슨 일이 있으면 형에게 바로 말하라든가 하는 것들.

아니, 당연히 칭찬할 줄 알았는데···.

그냥 누른 것도 아니었다, 세게 눌렀다!

하지만 형은 나를 보며 작게 한숨 쉬더니 그대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 묶어둘 수도 없고.”

“······.”

어째 말할수록 자꾸 방향이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은데.

와중에 너무 진지하게 말하니 조금 무섭기도 했다. 형의 실행력을 잘 알기에 더 쫄았다.

생각해 보니 아직까지도 1일 1연락 제도가 계속되고 있었다. 솔직히 이건 진짜 금방 까먹을 줄 알았는데.

“형이 미안해.”

그런 와중에 형이 뜬금없이 미안하다는 말을 꺼냈다. 설마 진짜 묶을 생각을···?

“그 새X가 너한테 X랄을 한 건, 반박할 여지 없이 나 때문이니까.”

아, 그 얘기가 아니었구나.

“그게 왜 형 때문이야. 오히려 그쪽이 정상이 아닌 거지.”

“어느 쪽이건 결국 너한테 위협이 됐다는 건 같으니까. 미안해, 형이. 내가 널, 지켰어야 했는데.”

그렇게 형이 다시 한번 사과했다. 자책감이 한껏 섞인 목소리로 형이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형이 미안할 게 뭐가 있다고. 애초에 주건후와 만난 것도 순전히 우연일 뿐이고, 시비를 건 것도 전적으로 그쪽 성격이 정상이 아닌 탓이었다.

그러니 형은 뭐 하나 잘못한 게 없다.

아무것도.

그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형 잘못 없어. 전혀.”

이건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자 형이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더니 끝내 씁쓸한 얼굴을 보였다. 여전히 미안한 모양이었다.

“아무 잘못이 없는 건 너지.”

그리고는 그대로 손으로 내 머리를 마구 휘저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 형이 속상해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는 연락을 하루에 5번씩···.”

“뭐?”

“농담이야.”

형이 그대로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아, 뭐야. 진짜인 줄 알고 놀랐잖아.

“그래도 위험한 짓은 이제 그만해. 상대가 누구든. 볼 때마다 수명이 줄어드는 기분이니까.”

“알겠어. 어쨌든 형 잘못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그리고···내가 진짜 잘 눌렀어.”

“···그래. 방송 꼭 봐야겠네.”

형이 작게 웃었다.

이제야 좀 평소의 형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걸 보니 나도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아, 근데 주건후 분량은···최대한으로 쳐내려나.’

물론 가면을 쓰고 노래하는 만큼 영향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제작진 입장에선 주건후가 우승하지 못한 것에 안도하고 있을지도.

“그런 김에 같이 해. 모니터링.”

“아, 그건 아마 애들이랑 할 것 같은데.”

그러자 형이 눈을 가늘게 뜬다.

근데 이건 같이 모니터링하자고 먼저 얘기를 다 해둔 거라.

“그, 나중에 재방이라도 같이할까?”

“아, 그래.”

하지만 여전히 반응이 시큰둥하다.

딱 봐도 서운해하는 게 보였다.

그래도 이건 어쩔 수 없잖아.

[“진짜로 묶어놓을까.”]

“···방금 그건 일부러 그런 거지.”

“방금? 뭘?”

“생각!”

이건 거의 그냥 말한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런 내 추궁에도 형은 여전히 뻔뻔한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그리고는 그대로 턱을 괸 채 씨익 웃는다. 누가 배우 아니랄까 봐 쓸데없이 연기를 잘하고 있다.

* * *

형의 집에서 그대로 밥까지 먹고 난 뒤, 나는 다시 숙소로 향했다. 형이랑 밥을 먹는 건 꽤 간만인 것 같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번 커뮤니티를 확인해봤다.

‘아직도 시끄럽군.’

역시나 아직까지도 주건후 관련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루트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도 여전하고.

돌아가는 걸 보니 루트 팬덤 내부에선 주건후에 관해 거의 언급을 금지하는 방향으로까지 간 듯했다.

당연히 그럴 만했다.

그동안 루트는 이번과 같은 대형 사회면 병크가 없었으니.

‘재결합 얘기도 당연히 들어갔고.’

아마 재결합과 관련된 이야기도 한동안은 나오지 않을 터였다. 설령 나온다고 해도 주건후는 철저하게 배제되겠지.

‘···신도하도 아마 이 상황을 보고 있겠지.’

문득 신도하가 떠올랐다.

신도하는 이 기사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든 건 역시나 지난번에 신도하와 했던 대화 때문이었다. 재결합은 신도하가 원했던 바였으니.

그와 동시에 어제 나눴던 대화 때문이기도 했다. 곤란한 일이 있으면 말하라던 그 말.

‘그건 주건후 일을 말하는 거였나.’

아무리 봐도 주건후와의 일로밖에 연관되지 않았다. 실제로 어제 퇴근길에 주건후에게서 그런 연락이 왔으니까.

‘···우려, 뭐 그 비슷한 걸 한 건가.’

어쩌면 신도하는 사전에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주건후가 뭔가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걸.

‘그리고 그 우려대로 주건후는 실제로 일을 쳤고.’

물론 그게 음주 운전이라는 형태일 거라고는 예상 못했을 거다. 그걸 알았다면 신도하는 내가 아닌 주건후를 따라갔을 테니까.

어제 저녁, 신도하는 우리 숙소 근처에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알아챈 건 꽤나 우연히였다. 주건후와 통화가 끝난 뒤, 그대로 숙소로 올라가려던 찰나 우연히 신도하의 목소리를 들었다.

다만, 그건 실제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생각의 목소리였다. 신도하는 그때 근처에 있었다.

정황상 촬영장에서부터 그대로 우리 차량을 따라온 것 같았다.

‘내가 그걸 눈치챘다는 걸 신도하는 절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때 들었던 신도하의 생각 역시 상당한 우려가 섞여 있었다. 뭘 그렇게 걱정하나 했더니 이런 거였나.

- 그 새X 성격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문득 앞선 형의 말이 떠올랐다.

신도하도 형처럼 잘 알고 있던 거겠지.

주건후를.

주건후가 무슨 일을 치든 결국 신도하는 그걸 막으려 했을 거다. 하지만 그건 주건후를 위해서가 아니다.

루트를 위해서지.

- 혹시 곤란한 일이 생기면 말해.

잠깐의 순간, 그때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폰을 꺼내 들었다. 꺼냄과 동시에 일순 고민이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냥 원래 생각대로 하기로 했다.

그렇게 전화를 걸었다.

신도하에게.

─ 응. 세현아.

곧바로 신도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도 받는다.

···분명 신호음이 아직 안 갔던 것 같은데.

─ 무슨 일이야?

들리는 목소리는 평소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하긴, 다른 게 있더라도 굳이 그걸 티 낼 리가 없다.

“어제 말씀하신 감상평이요. 그거 시간이 언제 되시나 해서요.”

─ 그거라면 언제든 상관없어. 네가 원하는 시간으로 해도 되고.

“그래도 이왕이면 선배님이 편하신 시간으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 그래? 그것도 좋네.

동시에 목소리가 급격하게 밝아진 게 느껴졌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감상평을 하는 걸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았다.

─ 그러고 보니 괜찮은 날짜가 하나 있긴 해.

괜찮은 날짜?

미리 생각한 날짜가 있었나.

“그럼 그 시간으로 하죠. 말씀해주시면 스케줄 확인한 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그래. 알겠어.

여전히 기분 좋아 보이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렇게 감상평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선배님.”

─ 응.

“···어제는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잠시 침묵이 일었다. 몇 초 안 되는 짧은 침묵임에도 불구하고 어째 평소보다 조금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건 나였다.

“투표해주신 거요. 감사했습니다.”

그러자 곧 폰 너머로부터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신도하가 이전보다 한층 더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 그건 당연한 거잖아.

여전히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였다.

* * *

어젯밤, 신도하는 그렇게 꽤 오랫동안 윈썸의 숙소 앞에 머물렀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우세현이 숙소 안으로 무사히 들어가는 것을 이미 확인하긴 했지만, 그래도 안심할 순 없었다.

‘전화는 안 받는군.’

와중에 주건후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무래도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자존심이 강한 주건후는 분명 한껏 열이 오른 상태일 것이다. 그러니 지금쯤 맥주를 들이켜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만큼 그 무너진 자존심에 대한 원망이 어떤 식으로든 직접적인 원인인 우세현에게로 향할 확률이 높았다.

‘조용하네.’

어쩌면 예상보다 더욱 긴 대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게 지루하진 않았다.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이렇게 직접 제 손으로 지키고 있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불안했을 테니까.

그리고 신도하는 그 안도감이 이대로 계속되기를 바라며,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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