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화. 너무 긴장되면 말해
신도하와의 통화는 그렇게 얼마 안 가 끊어졌다. 그리 길지 않은 짧은 통화였다.
‘감상평, 나쁘지 않지.’
특별한 거 없이 마지막엔 감상평에 대한 약속만 다시 확인한 뒤, 통화를 끊었다.
확실히 신도하의 감상평은 도움이 됐다. 무대를 본 직후가 아님에도 꽤나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그게 괜찮은 거고.
그리고 나는 그대로 천천히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어두워진 탓인지 주변은 사람 하나 없이 고요했다.
‘···왠지 멤버들 생각나네.’
그렇게 걷는 도중, 왠지는 모르겠지만 멤버들 생각이 났다. 어쩌면 단순히 숙소가 가까워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니면, 한동안 있었던 일들 때문인가.
매일 보는 얼굴인데 새삼 이런 생각이 나는 게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차피 몇 걸음 더 가고 나면 볼 수 있었다. 다들 숙소에 있으니까.
그리고 그 생각에 걸음 속도를 이전보다 조금 빨리 하려 하는데, 그 순간 눈앞으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어, 뭐···.
“우세현!”
백은찬이었다.
백은찬이 환한 얼굴로 그대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 못 한 등장에 나는 서둘러 그런 백은찬에게로 다가갔다.
“너 왜 나와 있어?”
“느낌이 딱 와서. 반갑지?”
그렇게 백은찬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선 손으론 브이를 하는데 이건 뭐, 대놓고 칭찬을 바라는 얼굴이었다.
약간 재주 부린 뒤, 칭찬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기도 하고.
근데 진짜로 왜 나온···.
그런데 그때, 갑작스럽게 목 위로 목도리가 둘러졌다.
“세현아.”
“너도 나왔어?”
그대로 뒤를 도니 차선빈이 서 있었다.
어, 뭐야. 둘이 어딜 가는 건가?
“야, 같이 가자.”
“어딜?”
그러자 백은찬이 곧바로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어디긴 어디야. 붕어빵 사러지.”
* * *
그렇게 백은찬과 차선빈을 따라간 곳은 숙소 근처에 있는 어느 붕어빵집이었다.
사실 여긴 이전에도 한번 와 봤던 곳이었다. 그러니까 형이랑.
“이제는 붕어빵 보기도 점점 힘들어.”
백은찬이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백은찬의 품에는 붕어가 가득 담긴 붕어빵 두 봉지가 있었다.
“날씨가 꽤 따뜻해지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완전히 따뜻해지면 붕어빵 먹기도 힘들 텐데. 얼른얼른 먹어둬야지.”
“하나 먹을래?”
차선빈이 그대로 내게 붕어빵 봉투를 건넸다. 이에 그 속에서 슈크림 붕어빵 하나를 골라 집었다.
“근데 갑자기 붕어빵은 왜 사러 나온 건데?”
“신하람이 먹고 싶다고 해서. 이거 안 먹으면 모레 겁나 떨릴 것 같다고 하더라.”
하람이는 이번에 음악 방송 스페셜 MC를 맡게 되었다. 스페셜이긴 해도 한 주 스페셜이 아닌 무려 2주 스페셜이었다.
MC를 맡는 건 처음이니 당연히 떨릴 만도 했다.
“그런 거면 당장 사줘야지.”
“참나, 넌 유독 신하람한테 약하다니까.”
백은찬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유독 약한 건 아닌 것 같은데···근데 그래도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하람이는 귀엽잖아.”
“나눈?”
“······?”
백은찬이 그대로 반짝반짝한 눈으로 되지도 않는 이상한 애교를 부리며 나를 쳐다봤다. 붕어빵에 뭐 들어갔나?
그런 김에 그대로 손에 있던 붕어빵을 한 입 먹었다. 어라, 그런데 정말로 맛이 이상했다.
···아, 이거 팥이다.
“은차닝···.”
“이거나 먹어.”
“압!”
나는 그대로 손에 있던 붕어빵을 백은찬의 입에 집어넣어 주었다. 와중에 백은찬은 넣어준 붕어빵을 불평 없이 우물우물 잘도 먹었다.
“형이 또 팥 잘 먹는 건 어떻게 알아가지고?”
“응. 그래. 많이 먹어라.”
“웅. 아라써. 붕어빵은 역시 팥이징.”
그리고선 다시 맛있게 먹는다.
그래, 많이 먹어라.
“나도 팥 잘 먹는데.”
와중에 차선빈이 한껏 서운함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어, 다시 보니 표정도 좀 서운했다.
“어, 넌 슈크림 파 아니었어?”
“그렇긴 한데, 팥도 잘 먹어.”
그러면서 시선을 살짝 돌린다.
팥도 잘 먹었었나. 내 기억엔 나랑 같이 거의 슈크림만 먹었던 것 같은데.
이에 나는 곧바로 붕어빵 봉지를 뒤져 팥이 든 붕어빵 하나 찾았다. 느낌상 이건 분명 팥이었다.
“여기, 선빈아.”
“고마워.”
그러자 차선빈의 표정이 곧바로 밝아졌다. 그걸 보니 괜히 또 뿌듯했다. 진작 줄 걸 그랬다.
더불어 차선빈이 한 손에 붕어빵을 든 채 나를 향해 말했다.
“팥 나오면 말해. 내가 다 먹어줄게.”
“고마워.”
방금 그 말은 솔직히 좀 든든했다.
“왜 니가 다 먹어줘. 날 줘야지. 여기서 팥 파는 나밖에 없는데!”
“응. 그래서 세현이 것만 먹어주려고.”
“왜 우세현 것만 먹어주냐고! 나는? 나는 안 먹어 줄 거야?”
넌 그냥 팥 파라며.
팥은 니가 먹어야지, 뭔 소리를 하는 거냐.
“아, 안 되겠다. 둘 다 내놔. 엉아 먹게.”
그렇게 백은찬이 눈에 불을 켠 채로 붕어빵들을 위협했다. 하지만 여기서 질 수 없었다. 이건 하람이를 줘야 한다.
아, 도운이 형도 줘야 하고.
덤으로 안지호도 줘야 한다.
이내 나는 앞선 백은찬의 강력한 위협에 그대로 있는 소중한 붕어빵들을 지키고 나섰다.
* * *
“형들 왔어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하람이가 그대로 활짝 웃는 얼굴로 우리를 반겼다.
“오우, 세현이 형 잘 만났나 보네요?”
“그럼. 잘 만났지.”
백은찬이 그대로 당당하게 말했다.
뭐지, 잘 만났다는 건?
뭔가 알 수 없는 대화의 흐름이었다.
“이 형들이 형이랑 같이 온다고 했었거든요. 텔레파시인가 뭔가 보냈다고 하면서.”
“야, 봐. 진짜 통했잖아. 딱 만났으니까.”
“세현이 형한테 미리 전화한 거 아니에요?”
“아니다. 텔레파시 그 자체였어.”
그렇다면 정말 기다린 건가.
우연히 만난 게 아니라.
어차피 형의 집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은 정해져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정말 텔레파시긴 하네.’
정말로 그때 딱 멤버들 생각이 났고, 그 타이밍에 맞게 백은찬과 차선빈을 만났으니까.
“백은찬.”
“엉?”
“내 거 붕어빵 하나 줄게.”
기다린 거 고마우니까.
하지만 굳이 뒷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그러자 백은찬이 그대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왜 그렇게 빤히 보는 거냐. 그리고는 뭔가 알겠다는 얼굴로 씨익 웃어 보였다.
“땡큐. 근데-”
그와 동시에 갑작스레 훅 다가오더니 이내 내 귀에 대고 물었다.
“나만 주는 거얌?”
왠지 모를 기대감이 섞인 목소리였다.
와중에 이상한 애교까지 섞여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그런 백은찬을 향해 말해주었다.
“응. 아니야.”
“아아.”
그러더니 실망하듯 일부러 한숨을 크게 쉰다. 실망 안 한 거 다 안다. 그리고 당연히 선빈이도 줘야지.
“아, 하람아. 여기.”
“히. 고마워요, 형들.”
하람이가 잔뜩 신이 난 얼굴로 붕어빵 봉투를 가져갔다.
“제가 진짜 이 붕어빵이 없으면 무대에서 덜덜 떨다 올 것 같더라고요~붕어빵 생각이 나는데 먹고 싶어서 도저히, 아니, 어쨌건 긴장이 돼서 붕어빵을 안 먹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하람이가 붕어빵을 하나 먹었다. 좋아하는 걸 보니 꽤나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래, 그래. 먹고 싶으면 먹어야지.
하람이는 한창 클 때니까 더 먹어야지.
“신하람, 분명 그냥 붕어빵이 먹고 싶었던 거야. 긴장은 핑계고.”
한편, 옆에서 백은찬은 팔짱을 낀 채로 그런 하람이를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닌데요? 너무 긴장돼서 붕어빵을 먹어야겠다니까요.”
“하, 그게 그 말이지!”
그러자 하람이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붕어빵을 품에서 놓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래, 뭐가 먼저든 뭐 어때.
붕어빵, 잘 먹으면 됐지.
“MC, 혹시 너무 긴장되면 형한테 말해.”
“역시! 세현이 형밖에 없다니까요?”
“이거 봐, 이거 봐. 우세현 또 신하람한테 넘어갔지.”
백은찬이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고개를 몇 번 가로저었다. 넘어가긴. 오히려 마음 같아선 같이 가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 * *
그리고 얼마 뒤, 녹음이 있었다.
다음 앨범 수록곡 녹음.
특히 오늘 녹음하는 곡은 도운이 형이 작곡한 곡이었다. 여기에 나와 차선빈 역시 작사에 일부 참여했고.
이에 도운이 형은 디렉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녹음의 첫 타자는 차선빈이었다. 컨디션이 좋은 건지 평소보다 훨씬 쫄깃한 랩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 원래도 잘하긴 했지만.
“차선빈 오늘 컨디션 좋은가 보네.”
안지호가 말했다.
그 말을 하던 안지호는 옆에서 유자차 한 모금을 마시고 있었다. 상당히 평온하게.
차선빈 다음 녹음 차례는 나였는데, 안지호가 본인 순서도 전에 미리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응. 컨디션 좋아 보여. 근데 넌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미리 와서 봐야지.”
그리고선 다시 평온하게 유자차를 마신다. 그냥 일찍 일어나서 온 것 같은데.
안지호는 근래 들어 유자차를 마시는 일이 늘었다.
지난번에 내가 사다 줬던 유자차가 마음에 들었던 건지 그 이후로도 꾸준히 한 통씩 주문하고 있었다.
많이 마음에 들었나.
간간이 백은찬도 노리는 걸 보면, 생각보다 맛이 괜찮은 모양이다.
“왜?”
“어?”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냐고.”
안지호가 여전히 앞을 응시한 채로 물었다. 아, 나도 모르게 보고 있었나.
“그거 맛있어?”
“뭐?”
“유자차.”
“너도 전에 내가 타 줬잖아.”
“응. 근데 너 잘 먹길래.”
그러자 안지호가 조금 당황한 얼굴로 입을 다물더니 이내 다시 말했다.
“···알고 있었냐?”
“? 당연한 거 아니야?”
숙소에서는 물론 지금도 마시고 있는데. 근데 반응을 보니 내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나 보다.
동시에 안지호가 다시금 ‘큼-’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 목에 좋아서 먹는 거지.”
“아, 맞아. 그런 의미에서 많이 먹어.”
특히 안지호는 환절기 때 가끔 기침을 하는 편이니까. 생각해보니 기침에 좋은 차도 사다 놓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 의미라면 왜 나만 먹어. 너도 먹어야지.”
“아, 그래. 먹으면 좋겠네.”
“숙소에 많이 있으니까 그거 먹어라.”
어, 그거 나도 먹어도 되는 건가.
항상 백은찬의 공격에 방어하다시피 하길래 건들면 안 되는 건 줄 알았는데.
“냉장고 두 번째 칸이다.”
그리고 안지호가 다시금 남아 있는 유자차를 들었다. 아직까지도 그 향이 진하게 남아 내가 있는 곳까지 흘러오고 있었다.
왠지 더 유자차가 생각났다.
돌아가면, 정말로 마실까.
“어, 왜 그래? 선빈아.”
그런데 그때, 앞에서 도운이 형의 조금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안지호와 내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향했다.
“왜 그래?”
“···아뇨. 괜찮아요.”
그렇지만 차선빈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선 다시 원래대로 녹음을 진행하자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나.’
아무것도 아니라고 얘기하긴 했지만, 일순 표정이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
그리고 녹음이 다시 진행되었다.
녹음이 시작되자 차선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역시나 듣기 좋은 랩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신경 쓰였다.
‘역시 한번 다시 물어봐야겠다.’
앞서 보인 반응에 관해서.
그렇게 여전히 녹음실에는 차선빈의 랩이 듣기 좋게 공간을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