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화. 대박 나려나 보네
이후에 녹음은 탈 없이 마쳤다.
와중에 그 이후로 뭔가가 들린다거나 혹은 전등이 깜빡거리는 것과 같은 이상 현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대박 나려나 보네.”
사자가 문득 말했다.
어제 있었던 녹음실 관련 이야기를 듣고서 보인 반응이었다.
“흔히 녹음실에서 이상한 걸 보면 대박 난다고들 하잖아.”
“그 이상한 게 직접 말하니 뭔가 더 이상한데요.”
“아, 참고로 말하지만 난 아니다. 같은 이상한 거라고 해도 급이 다르다는 거 알고 있지?”
급이 다를 것까지야.
사실 내 눈에는 비슷하게 보이긴 한데.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분명 자존심 상해할 테니 굳이 말하진 않았다.
“근데 그게 다예요? 다른 거 뭐 더 있는 건 아니고요?”
“다른 거? 뭐?”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잖아요. 연습실에서.”
작년 말, 연습실에서 생긴 이상 현상에 사자를 도왔던 그 일. 어떻게 보면 그 일도 지금과 굉장히 유사했다.
그때와 다른 거라면 이 일이 심령 현상이라는 확실한 오피셜이 없다는 것 정도.
“아냐, 아냐. 그런 일은.”
사자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반응을 보니 확실히 그때와 별개의 문제인 듯했다. 그래, 뭐.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럼 그냥 정말 우연한 일인가.’
우연한 일치고는 너무 과하지 않나.
아무리 그래도 문이 잠긴 건 좀 그랬다.
혹시 그때 내가 아니라 안지호나 차선빈이 들어가 있었다고 생각하면···그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열 받네.
“대박 징조라니까 그러네.”
그리고 사자는 끝까지 좋은 징조라며 대박 타령을 했다. 정말로 대박이면 좋겠지만, 그래도 이런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했다.
혹시 모르니 한동안은 멤버들 옆에 붙어 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리고 그날의 소동은 이미 멤버들은 물론 회사에서도 자자하게 퍼져 있었다.
“귀신 소리가 들렸다라······.”
백은찬이 진지한 얼굴로 고민에 빠진 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귀신 소리라고는 안 했다.”
“전등이 꺼지고 문은 봉쇄되고···.”
“전등은 깜빡거렸고 문은 잠깐 걸려서 안 열렸던 것뿐이라고.”
“지호 형, 계속 그렇게 정정해도 저 형 귀엔 안 들려요.”
그 자리에 없었던 백은찬은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듣자 귀신 소동이라 혼자 결론을 지은 듯했다.
“진짜로 대박 나려나?”
“지호 형이 말 한대로 그냥 우연이 겹친 거 아니에요?”
“근데 이상하잖아. 그 이상한 소리를 들은 사람도 둘이나 되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심령 현상이야!”
평소 심령 현상 같은 건 믿지도 않으면서. 그러면서도 지금은 꽤나 확신하고 있었다.
“근데 뭐, 우연일 수도 있잖아.”
“느낌상 이건 우연이 아니야. 분명 이번 앨범 대박이다!”
“와, 대박이면 좋긴 하죠. 근데 그렇게 되면 전 오히려 소리가 궁금한데.”
“야, 너도? 나도.”
그렇게 백은찬과 하람이가 서로를 향해 히죽거리며 웃었다. 저 둘은 오히려 심령 현상이 일어나면 좋다고 달려들 애들이다.
“내가 들었어야 했는데!”
응, 확실히 그렇지.
“다음엔 녹음할 때 무조건 가야겠다.”
“헉, 저도 방금 그 생각했는데!”
기세만 보면 오히려 귀신 멱살 잡고 그대로 안 나오냐고 들이밀 기세였다.
“얘들이 귀신 무서운 줄 모르고···.”
그리고 그런 둘을 보며 도운이 형은 조용히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와중에 도운이 형 얼굴이 살짝 하얗게 질려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니겠지.
그리고 흘러가는 말로 형에게도 이와 같은 일을 이야기했다. 어렸을 때, 형이 나한테 말했던 것도 생각나고 해서.
“녹음실에 갇혔다고?”
“아니, 갇힌 건 아니고 그냥 문이 잠깐 안 열렸던 거야.”
하지만 이야기를 듣더니 의외로 꽤 정색한다. ···그렇게 정색할 만한 얘긴 아닌데.
아, 그러고 보니 형도 알고 있지.
사자.
그걸 아는 이상, 반응이 이런 것도 이해가 갔다.
“사자 관련해서 뭐는 아니야. 애초에 귀신인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고.”
정황상 귀신 같긴 하지만.
“다른 일은 더 없었고?”
“응. 없었어.”
“별 쓸데없는 게 다 붙네.”
형이 그대로 미간을 구겼다.
근데 뭐, 원래 이쪽에 그런 게 유독 많다는 이야긴 많았으니까.
“형도 예전에 비슷한 일 있었다고 했었잖아.”
“내가 직접 겪은 건 아니야. 어디까지나 들린 얘기지.”
아, 그럼 혹시 다른 멤버들이 겪은 이야기였나. 다시 생각해보니 주어가 형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근데 도대체 컴백은 언제 하는 거야?”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어. 혹시 기대 중이야?”
“응.”
한 치의 고민도 없는 대답이었다.
막상 이렇게 들으니 기분 괜찮은데.
“뭘 웃어. 관심 있는 아이돌 컴백 기다린다는데.”
“윈썸?”
“어. 윈썸.”
그러더니 곧 옆에 있던 달력을 확인한다.
“시간이···왜 이렇게 안 가는지.”
그런 형의 시선이 잠시 오늘 날짜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형을 따라 오늘 날짜를 잠시 응시했다.
‘18일이지. 오늘.’
오늘은 3월 18일.
앞으로 이틀 후면 그날이었다.
루트의 데뷔 기념일.
그리고 형은 그렇게 달력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형은 그날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 * *
루트의 데뷔일이 가까워질수록 형이 문득문득 달력을 응시하는 일이 늘었다. 어디까지나 무의식적인 행동인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더 눈에 띄었다.
그때마다 특별한 생각은 없었지만, 느낌상 형이 그날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여기에 내 기억상 형은 그때 특별한 스케줄이 없는 걸로 안다. 나도 그때 특별한 건 없긴 한데.
‘물론 하루 전엔 약속이 하나 있긴 하지만.’
[신도하 선배님]
: 그럼 그날 오후 7시에 보자
신도하와의 약속이었다.
그러니까 지난번에 약속했던 그 감상평. 그 감상평을 위한 자리였다.
루트 데뷔 기념일 하루 전.
지난번 신도하에게 날짜 선정을 맡겼을 당시, 신도하는 고민 없이 이 날짜를 택했다.
정황상 다음 날이 어떤 날인지 모를 리가 절대 없으니 어쩌면 일부러 이날을 피해서 고른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다.
‘물론 그냥 스케줄 없는 날을 잡았을 확률도 있긴 한데.’
어쨌건 그날 신도하와 만나게 되었다. 이 날짜를 택하게 된 경위는 알 수 없었지만.
‘데뷔일에 권해진이나 박시겸. 만나려나.’
사실 생각해보면 둘 다 데뷔일을 일일이 챙기는 스타일은 아닐 것 같았다.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루트도 존속되지 않는 마당에.
‘아니, 어쩌면 신도하도 이날을 그리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을 확률이···.’
그럴 리가 없나.
신도하가 보인 루트에 대한 애정을 생각하면, 적어도 아무런 날도 아닌 하루 정도로 여기진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앞서 말한 날짜에 신도하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향했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용산에 있는 어느 한 레스토랑이었다. 한강뷰가 보이는.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굉장히 차분한 곳이었다.
여기에 상당히 가격이 있어 보이는.
“사실 지난번에 제대로 대접 못 한 거 같아서 내내 걸렸거든.”
“지난번이요?”
“응. 지난번 그 루트 매니저 사건 때.”
아, 그때.
“그래서 한번 제대로 대접해주고 싶었는데, 마침 기회도 생겼겠다 싶어서. 여기 꽤 맛있거든.”
신도하가 웃으며 말했다.
그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나.
“디너 코스로 먹으면 될 것 같은데.”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메뉴 선택은 저쪽에 맡길 생각이었으니. 솔직히 난 불판에 고기를 구워 먹을 줄 알았다.
“오늘을 그동안 꽤 기다렸는데. 감상평을 하고 싶어서 나름 안달이 나서.”
“아, 네.”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 하면 잘 어울리겠다.
“감상평은, 식사 다하고 할까?”
“아뇨. 지금부터 하셔도 됩니다.”
“빨리 듣고 싶구나?”
이에 순간 대답이 안 나왔다.
그보다 애초에 그거 들으러 나온 거니까.
와중에 신도하는 그 순간을 기가 막히게 캐치를 한 건지, 이내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야지.”
언제나 생각하지만 눈치는 참 빠르다.
* * *
그렇게 신도하의 감상평이 시작되었다.
“감정이 너무 좋았어. 그래서 마지막 파이널은 특히 더 아쉬웠어.”
시작된 감상평은 이후 식사가 나온 뒤에도 계속됐다. 한 번씩 바뀌는 식사 접시가 그때마다 꽤나 화려한 모양새였다.
“항상 감정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타고난 건가?”
“그냥 항상 가사를 어떻게 하면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편이에요.”
“내가 볼 땐, 단순히 이해하는 것 이상인 것 같은데. 마치 일반 사람보다 알고 있는 감정의 깊이 자체가 다른 것 같다고나 할까.”
신도하가 나를 조용히 응시한 채 말했다.
상당한 칭찬이었지만, 동시에 내게 한 번 더 묻고 있었다.
‘알고 있는 감정의 깊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어쩌면 생각을 읽는 것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생각을 읽다 보면, 가끔씩 감정도 자연히 따라올 때가 있으니까.
마주하는 생각에 많아지다 보면, 마주하는 감정도 이따금 생기게 된다.
‘감정이 좋다는 건 이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이긴 했지만.’
하지만 깊이가 다르고까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감수성이 유독 풍부한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대충 그렇게 답을 했다.
앞서 추측한 걸 그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러자 신도하가 그대로 말없이 날 응시하더니 이내 턱을 괸 채 말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드는 부분이야. 그래서 더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어. 네 노래를.”
동시에 한 번 더 살짝 미소 짓는다.
···역시나 과한 칭찬이다.
너무 진지하게 말하는 통에 순간 뻘쭘해져 나도 모르게 시선을 살짝 피했다.
“감사합니다.”
“사실이니까.”
그리고 신도하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선곡에는 특별한 이유 있어?”
“선곡은 그냥 제가 좋아하는 곡이요.”
“좋지. 나도 그 곡들 좋아하는데.”
동시에 다시 한번 앞에 있던 접시가 치워졌다. 그리고 다시 나온 새 메뉴. 오늘의 메인 메뉴인 안심 스테이크였다.
그대로 옆을 바라보니 어느새 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깜깜한 와중에 뷰가 좋은 덕인지 눈앞의 풍경이 여전히 장관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식기를 들어 고기를 썰었다. 당연하게도 부드러웠다. 그래, 부드럽긴 한데.
이거 얼마짜리였지.
역시 불판에 먹었으면 더 많이 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
* * *
나오는 디저트까지 전부 먹고 난 뒤, 그대로 레스토랑을 나왔다. 나오면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벌써 9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오래도 있었다.
“잘 먹었어?”
“네. 잘 먹었습니다.”
“다음엔 더 맛있는 걸로 사줄게.”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말하는 모양새였다. 다음은 무슨. 그보다 다음엔 오히려 내가 사야 할 것 같은데.
그리고 슬슬 택시를 타고 돌아갈까 하는데, 그 순간 신도하가 잠시 걷던 걸음을 멈췄다.
“선배님?”
“···아, 응.”
그리고선 다시 멍하게 대답한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세현아.”
“네.”
“이대로 가기 아쉽지 않아?”
“네?”
그러더니 뜬금없는 말을 한다.
“하몽 먹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