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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363화 (363/413)

363화. 특별한 날이라서

신도하가 뜬금없이 꺼낸 하몽 이야기에 이건 뭔가 싶었다. 잠깐 멍해 있는 것 같더니 그리고서 말하는 게 하몽이었다.

그렇지만 그 하몽이 뭘 말하는 건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신도하가 가리킨 어느 한 와인바를 보고서.

“아, 와인이요?”

“응.”

그러니까 와인 한잔하자는 거였다.

근데 그럼 그렇게 말하면 될 걸 왜 굳이 하몽 먹을래로 나온 건지 모르겠다.

‘와인이라.’

나쁘진 않았다.

딱히 즐겨 먹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가볍게 한 잔 정도는 상관없었다.

하지만 와인이 괜찮고 아니고를 떠나서 정작 고민되는 건 같이 마시는 상대다. 신도하랑 와인···생각해본 적 없는 조합인데.

‘근데 왜 저렇게 멍하지.’

그런데 그런 도중, 정작 그걸 제안한 신도하의 상태가 묘하게 이상했다.

평소와 달리 좀 멍해 보이는 모습이다. 정확히는 앞서 말한 와인바를 발견한 직후부터.

‘혹시 루트 때와 관련된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근거는 없다만, 신도하를 이렇게 동요하게 만들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지 않나 싶었다.

루트.

어쩌면 내일이 그날이기에 더욱 이런 생각이 드는 걸지도 몰랐다.

“먹으러 갈래?”

신도하가 다시 한번 나를 향해 물었다.

“···네, 뭐.”

이에 그런 신도하를 향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가볍게 한 잔일 뿐이었다.

그러니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답지않은 모습을 보이니 솔직히 신경 쓰이는 게 없지 않아 있었다. 루트 관련일지도 모르고.

그렇게 일단 눈앞에 보이는 와인바를 향해 걸음을 떼었다.

* * *

들어간 와인바는 상당히 작은 규모의 와인바였다. 테이블은 고작 3개 정도에 불과했고, 소수로만 인원을 받는 듯했다.

그리고 오늘은 마침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들어간 와인바 공간에는 우리 이외 다른 사람은 없었다.

“여긴 상당히 골목에 있어서 그런지 평소에도 사람이 적은 편이야.”

“와보셨어요?”

“응. 예전에 멤버들이랑.”

역시 루트 멤버들이랑 왔던 거군.

“근데 나도 오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야.”

그리고 그 말과 동시에 신도하는 잠시 가게 내부를 천천히 살폈다. 그렇다는 건, 역시 예전 활동 당시를 말하는 거겠지.

“세현이 너도 나중에 한번 멤버들이랑 하몽 먹으러 와.”

이에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근데 아까부터 계속 하몽, 하몽 하는데 여기가 혹시 하몽 맛집인가.

“그런데 왜 하몽인가요?”

“뭐가?”

“아까부터 계속 하몽 얘기를 하셔서요.”

말하는 것만 보면 와인바가 아니라 하몽 가게인 수준이다. 그러자 신도하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다시 말했다.

“와인보단 하몽을 먹여주고 싶어서?”

“네?”

“사실 나도 모르게 나온 거야. 그렇지. 여기 와인도 맛있긴 하지.”

본인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나온 거였나. 그만큼 정말로 하몽 맛집이라는 건가. 하긴 멤버들도 와인보단 하몽을 좋아할 것 같긴 했다.

그리고 신도하의 주문에 따라 레드 와인 한 병과 하몽 하나, 그밖에 안주를 시켰다.

그렇게 얼마 안 돼, 주문한 와인이 나왔다. 동시에 옆에 있던 와인잔에 붉은색 와인이 천천히 채워졌다.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유독 더 고요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분위기에 맞게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사실 와인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 마실 예정이었는데.”

신도하가 와인이 담긴 투명한 잔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일이 좀 특별한 날이라서.”

특별한 날.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의미를 알았다.

아니, 당연히 알 수밖에 없긴 했지만.

10시가 넘은 시각, 앞으로 약 2시간 후면 신도하가 말하는 그 특별한 날이었다. 루트의 데뷔 기념일.

“무슨 날인지 알아?”

“네. 알아요.”

그러자 신도하가 작게 웃었다.

모를 리가 없었다.

그날이 다가올수록 형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으니까.

‘와중에 내일 마시려고 했던 건 결국 기념하기 위해서인가.’

아무래도 그 의미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축하의 날 드는 게 와인이니까.

예상했던 대로 신도하 역시 그날을 굉장히 의미 있게 여기는 것 같았다.

“원래 말이야, 그날은 항상 와인을 드는 날이었어.”

신도하가 문득 말했다.

그리고 난 그대로 고개를 들어 그런 신도하를 바라봤다.

“매년 데뷔일이 되면 숙소에서 다 같이 유리잔에 와인을 따라 마시곤 했거든. 레드 와인.”

그와 동시에 신도하의 투명한 유리잔 속 와인이 작게 흔들렸다.

“데뷔 초부터 늘. 7년 내내 그랬어. 매해 언제나. 그게 우리만의···나름의 축하 방식이었거든. 물론 마지막 해는 다 같이 마실 수 없었지만.”

마지막 말엔 아쉬움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표정에도 역시.

마치 어제 일처럼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루트만의 축하 방식.’

그건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루트가 데뷔일에 매년 다 같이 와인을 들었다는 이야기.

형에게 듣지 못한 사실이기도 했지만, 애초에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아마 루트 팬들도 알지 못했을 거다.

정말로 루트 멤버들만이 아는 축하였다.

“그래서 매년 그날이 되면 습관처럼 마시게 돼. 솔직히 안 마시면 이젠 오히려 이상하더라고.”

신도하가 그렇게 작게 웃었다.

그 말은 곧 루트가 와해된 이후에도 신도하는 혼자 여전히 와인을 마시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아까 그렇게 멈칫했던 거군.’

왜 갑자기 표정이 변한 건가 싶었는데, 아마 이 와인 때문인 듯했다.

‘근데 그럼 왜 굳이 오늘 마셨지.’

어차피 내일 마실 텐데.

여전히 그날을 챙기고 있으니 아마 신도하는 내일도 와인을 딸 것이다.

“근데 그럼 오늘이 아니라 내일 마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 그렇긴 한데. 그런데 막상 이 와인바가 눈에 들어오니 안 마실 수가 없더라고.”

분명 멤버들이랑 왔었던 와인바라고 했었지.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이 와인바 자체에도 뭔가 추억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새삼 느껴지네.’

신도하가 그룹을 얼마나 아꼈는지.

여전히 혼자 와인을 마시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더.

‘형도 기억하고 있을까.’

와인 이야기.

루트를 나온 이후엔 곧바로 군대에 가고, 캐나다에 가 있다 보니 그것에 관해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이전에 재결합 이야기가 나왔었어.”

“예?”

“건후 형이 막 제대했을 당시에.”

아, 재결합.

역시 나오긴 했었군.

시기상 안 나올 수가 없는 화제긴 했다.

특히나 주건후라면, 누구보다 먼저 추진할 것 같았고.

“하지만 거절했어. 5명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거든, 난.”

5명.

형까지 포함한 인원이었다.

신도하가 생각한 재결합이란, 단순한 재결합이 아닌 형을 포함한 인원이었다.

5명의 루트.

“내가 다시 무대에 서고 싶은 건 5명으로서의 루트야. 그러니 4명이라면 의미가 없어. 그래서 거절한 거지만, 이젠 결국 5명으로서 서는 건 완전히 불가능해진 것 같네.”

신도하가 그대로 잔을 들어 손에 있던 와인을 한 입 마셨다. 그 표정이 꽤나 씁쓸했다.

얼마 전에 입건된 주건후.

아마 복귀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였다. 그런 상황인 만큼 5명이 다시 모이기란 거의 불가능한 얘기라는 거였다.

그보다 설령 다시 복귀하게 되어도 내 생각에 신도하는 주건후를 다시 넣으려 하지 않을 거다.

루트가 타격을 입는 걸 누구보다도 싫어했으니.

그러니 그런 불안 요소를 넣으면서까지 재결합을 추진하진 않을 거란 말이었다.

“기분이 참 착잡하더라고. 같은 멤버가 사고를 친 걸 보고 있으려니. 동시에 화가 나기도 하고. 한 명으로 인해 루트라는 이름 자체가 피해를 봤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신도하의 표정은 아직까지도 착잡한 듯한 모습이었다.

“참, 화가 많이 나면서도 아쉬워. 여전히.”

신도하가 이내 고개를 들어 그 어딘가를 바라봤다. 공허한 시선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신도하는 앞선 말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화가 나면서도, 아쉬운. 굉장히 많이.

그리고 그런 신도하의 감정이 생각과 함께 내게도 조금씩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 역시 잔을 들었다. 왠지 모르게 마시고 싶어져서. 어쩌면 또다시 어떠한 공감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신도하가 말하는 그 착잡함이 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는 생각에.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신도하와 함께 그대로 말없이 눈앞의 와인을 조금씩 들이켰다.

* * *

그렇게 마시다 보니 어느새 주문한 와인이 반 이상이 줄어 있었다.

마시려고 마신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이게 생각보다 먹을 만해서.

‘아, 안지호가 알면 난리 날 것 같은데.’

지난번 콩나물국 때도 그렇고 영 석연치 않아 하던 느낌이었는데, 또 술을 마시고 들어가면 이번엔 콩나물국을 끓여주는 게 아니라 그대로 부을 것 같은 예감이···.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야?”

“아뇨. 아직 괜찮습니다.”

“혹시 입에 안 맞을까 봐 조금 단 와인으로 했는데, 다행히 잘 맞은 모양이네.”

아, 그래서 쑥쑥 들어갔구나.

솔직히 이대로라면 한 병 더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여전히 손님은 없었다. 와인바 안에는 아직까지도 테이블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좋았다.

조용하고 차분하고.

“마음에 들어?”

“예?”

“여기. 마음에 들면 다음에 또 데려오려고.”

“···와인이 맛있긴 하네요.”

“그렇지?”

신도하가 웃으며 말했다.

다음, 다음이라.

다음엔, 멤버들이랑 오면 좋겠다.

멤버들도 분명 잘 먹을 테니까.

물론 이 말을 직접적으로 하진 않았다.

“천천히 마셔. 와인은 숙취가 꽤 있으니까.”

그리고 잠깐의 사이 신도하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새 11시가 훌쩍 넘어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됐지.

─지이이잉!

그런데 그때, 주머니에서 폰이 울렸다.

간단한 톡이었다.

설마 안지호인가. 조금 늦을 것 같다고 얘기는 해뒀는데···.

[형]

: 오늘은 왜 연락 없어

아, 맞다.

연락하는 걸 잊었다.

오늘 하루 종일 좀 정신이 없던 터라.

그리고 그대로 다시 톡에 답을 하려고 하는데, 그 순간 폰이 다시 울렸다. 하지만 이번엔 메시지가 아니라 전화였다.

그렇게 응답 버튼을 누르자 곧바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이었다.

─ 어디야?

“어, 나 지금 밖이야.”

─ 밖이라고? 저녁에 스케줄 없다고 했잖아.

“스케줄 말고 약속이 있어서 나왔어.”

─ 근데 이 시간까지 있다고?

목소리에서부터 살짝 심기가 불편한 게 느껴졌다. 근데 그렇게 놀랄 정도는 아닌데, 아직 12시도 안 됐고.

─ 무슨 약속인데 이 시간까지 밖이야? 멤버들이랑 있어?

“아니. 선배랑.”

─ 선배?

그러자 목소리가 더 안 좋아졌다.

괜히 더 목소리 안 좋아지기 전에 빨리 말해야겠다.

“신도하 선배.”

─ 신도하?

···이미 더 안 좋아졌네.

─ 신도하랑 지금 같이 있다고? 아, 이 새X가 또 개수작을···.

동시에 폰 너머가 소란스러워졌다.

형이 급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형, 오려고?”

─ 어. 주소 찍어 보내.

정말로 그 말이 맞는지 전화 너머가 여전히 분주했다. 역시나. 하여간 행동력 하나는 최고다.

“알겠어. 그럼 빨리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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