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365화 (365/413)

365화. 그땐 왜 그랬어?

“도현아, 그때 일은 정말로 미안해.”

신도하의 사과에 그렇게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앞서 둘의 잔은 붉은 와인이 가득 채워져 있었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그 잔을 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 일?”

“재계약 당시 널 속였던 일. 다른 멤버들과···당시 건후 형의 사업과 관련해서 묵인했던 일.”

신도하의 머릿속엔 아직까지 그날의 일이 생생했다. 그때 그 화가 났던 우도현의 표정, 그리고 그 이후로 일어난 일들, 무산된 재계약.

이 모든 일이 신도하에겐 마치 어제 일처럼 아직까지 선명했다.

“속여선 안 됐던 거 알아. 그걸 알고 난 뒤 네 기분이 어땠는지도 알고. 네가 왜 재계약을 하지 않았는지도, 이해가 되고.”

그때의 그룹 상황이, 멤버들의 생각이 어떠했는지 신도하 역시 잘 알고 있었기에.

늘상 그때 일을 떠올릴 때면 항상 수만 가지의 가정을 하곤 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거라 했지만, 오히려 그때 우도현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애초에 주건후가 다시 사업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그런 무의미한 가정들.

그만큼 그룹은 그에게 너무나도 지키고 싶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서일까, 그 이상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이해, 그래. 이해.”

이에 말문을 먼저 연 것은 다름 아닌 우도현이었다. 그런 우도현의 시선은 여전히 신도하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한 채였다.

“그럼 그땐 왜 그랬어?”

그리고 그때, 줄곧 다른 곳을 향해 있던 우도현의 시선이 처음으로 신도하와 맞닿았다.

사실 평소라면 절대 묻지 않았을 물음이었다. 과거의 일을 묻는 그 물음은. 애초에 묻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와인이 들어가서인가, 아니면 오늘이 그날이었기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묻고 싶어졌다.

“재계약 과정에서 들었어. 너 역시 그룹 활동보단 개인 활동을 우선시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다고.”

“그건 명백한 오해야.”

신도하가 단호하게 말했다.

“오해?”

“RA 측에서 일부러 그렇게 흘렸어. 조금이라도 계약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겠지.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그때 제대로 된 그룹 활동을 주장한 사람은 너뿐이었을 테니까.”

그 당시, 멤버들 대부분은 그룹 활동보다 개인을 보장해주는 계약을 하길 원했다.

하지만 그룹 활동을 주장하는 멤버가 있는 이상, 이 과정에선 어느 정도의 조율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수적으로 그룹보다는 개인의 보장을 원하는 멤버가 많으니 괜한 분란을 낳기 전에, 계약이 원활하게 될 수 있는 방향으로 RA 엔터 측에서 먼저 손을 쓴 것이었다.

“RA 엔터 측에선 그렇게 하면 도현이 네가 그룹 활동에 관해 어느 정도 양보를 하고 계약을 조율할 거라 생각했겠지. 개인 활동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RA 엔터의 입장에선 루트도, 우도현도 놓칠 수 있는 대어였다. 그렇기에 더욱 공을 들였다. 이 계약을 절대 놓치지 않기 위해.

하지만 그건 RA 엔터의 잘못된 판단이었고, 결국 그로 인해 우도현은 그룹을 떠났다.

그리고 RA 엔터에게 있어 우도현의 이러한 행보는 그저 예상 밖의 것이었다.

“RA 엔터도 그때 꽤 많이 놀랐을 거야. 설마 도현이 네가 그대로 계약을 완전히 포기하고 회사를 나갈 줄은 몰랐을 테니까 말이야.”

그때의 루트는 그야말로 최정점에 올라 있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우도현이 그대로 미련 없이 모든 것을 포기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분명 이와 같은 상황을 납득하고 결국은 다른 멤버들과 같이 개인 활동을 주장하며, 제 몫을 챙길 거라고 RA 엔터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RA 엔터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이를 막기 위해 RA 엔터가 던졌던 그 사소한 돌로 인해.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있었다는 걸, 신도하 역시 나중에야 알았다.

동시에 그게 이유가 되기도 했다.

신도하가 RA 엔터에 끝까지 남지 않은 이유 중 하나.

“···RA에서 그랬다고.”

우도현이 그렇게 자신의 잔을 바라본 채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런 우도현을 바라보며 신도하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난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같아. 루트는 나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일부야. 평생 함께해야 할 이름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늘 그렇듯 신도하에게 있어 루트는 특별했다. 그것은 과거에도, 그리고 다시 모일 수 없게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멤버들과 서는 무대는 그 어떠한 무대보다 그에게 있어 특별했다. 지금도 여전히.

“지금도 루트로 무대에 서고 싶을 만큼.”

이젠 그저 헛된 희망이 되어버렸지만.

그리고 그걸 듣던 우도현은 또다시 제 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다시 말이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어.”

우도현이 다시 입을 연 건, 그렇게 조금 더 침묵이 흐른 이후였다. 그리고 그런 우도현의 말에 신도하가 다시금 고개를 들어 우도현을 바라봤다.

“그렇게 그룹에 집착하던 놈이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꿀 리 없으니까.”

당시 우도현이 가장 씁쓸함을 여겼던 부분이자 화가 났던 부분 또한 그것이었다.

신도하의 태도 변화.

변했다고 여겼던 신도하의 그 태도에 우도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실망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변한 게 아니었다.

그러한 생각에 우도현은 잠시 제 빈 잔을 그대로 조용히 응시했다.

그리고 신도하는 앞선 그 말에 그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솔직히 그건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물론 그렇게 인정하면서도 우도현이 말하는 그 태도를 바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지만.

“루트는 철저하게 등한시되고 있었어. 절대 그래선 안 되는 걸 등한시하고 있다고, 그런 상황에서 그룹을 유지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여겼어.”

우도현이 말했다.

신도하를 제하고서라도 그 당시 멤버들은 루트를 최우선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우도현은 그 사실이 너무나도 화가 났다.

그 점에 관해선 신도하 역시 할 말이 없었다. 그건 그 당시 자신도 동일하게 느꼈던 부분이었으니.

“···그랬었지. 근데 재계약이 끝나기 전 해진이 형이 문득 그러더라고. 자기는 RA에 남을 거라고.”

우도현이 없는 재계약이 끝나 직전, 모든 멤버가 RA 엔터와 재계약을 하지 않는 와중에 권해진은 홀로 재계약을 했다.

“그리고 그건 리더로서의 나름의 책임감이라고 했어. 언젠가 루트가 다시 모일 수 있도록, 나름의 가능성을 열어둔 거라고.”

그게 권해진이 RA 엔터의 남은 이유였다. 다른 오퍼를 거절하고 한 번 더 RA 엔터와 재계약을 진행한 이유.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우도현은 이내 작게 실소했다.

“여전하네, 권해진 허세.”

그런 우도현의 말에 신도하 역시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알겠다는 듯이. 그리고 신도하는 이내 그런 우도현을 바라보며 한 번 더 말을 전했다.

“···내가 정말 미안해.”

그리고 그 말에 우도현은 그저 대답 없이 제 앞에 있는 잔을 다시금 기울일 뿐이었다.

“도현아.”

“왜.”

“혹시 후회는 안 해? 그때 그룹 나간 거.”

그리고 신도하는 그 질문을 다시 한번 우도현에게 물었다.

과거에도 같은 질문을 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떠한 대답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내심 서운한 걸지도 몰랐다.

우도현이 그렇게 미련 없이 그룹을 포기한 것에 관해.

“안 해. 후회.”

그리고 우도현은 그 질문에 다시 한번 답했다. 여전히 미련 없이. 그런 우도현을 보며 신도하는 결국 웃고 말았다.

“너 답네.”

참으로 우도현다운 대답이라고, 신도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으론 그 대답이 서운하기도 하지만, 신도하는 내심 그 우도현다운 대답을 늘 좋아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는 한동안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이렇게 같이 앉아 있으니 옛날 생각난다. 그때도 이렇게 앉아서 같이 마셨는데.”

“기억 안 나.”

“그땐 이 테이블이 아니라 저기였나?”

그러자 우도현이 피식 웃음 지었다.

“거기가 아니라 오른쪽이다, 멍청아.”

그리고 이번엔 신도하가 미소를 보였다.

“근데 웬 하몽이 왜 이렇게 많아?”

“아, 그건 세현이 먹이려고 시킨 거야. 세현이 많이 먹이고 싶어서.”

“니가 왜 내 동생을 많이 먹이는데.”

“세현이가 귀여워서?”

그러자 우도현이 그대로 인상을 단번에 구겼다. 그리고선 탐탁지 않다는 얼굴로 신도하를 노려봤다.

“예전부터, 아니 계속 생각한 건데, 너 왜 자꾸 쓸데없이 남의 동생 주변을 얼쩡거리는 거냐?”

“얼쩡거리는 거 아닌데. 세현이랑 나 친해.”

“친해···누가 그래? 친하다고. 혼자 착각하나 본데, 쓸데없는 장난질 말고 그만 얼쩡거려.”

“장난 아닌데.”

“뭐?”

단호한 그 말에 순간 우도현이 되물었다.

“난 언제나 진심이야. 세현이한테.”

그 순간, 우도현이 무표정한 얼굴로 신도하가 앉아 있던 의자의 다리 부분을 퍽 소리 나도록 강하게 쳤다.

거의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신도하가 앉아 있던 의자가 그대로 한번 흔들거렸다. 하마터면 그대로 넘어갈 뻔했다.

이어서 아직 분이 덜 풀린 우도현이 그대로 한 번 더 의자 다리를 치려는 순간, 이번엔 신도하가 타이밍에 맞춰 빠르게 자신의 의자를 뒤로 젖혔다.

“조심해야지, 도현아.”

그렇게 우도현의 공격을 잽싸게 피한 신도하가 이내 우도현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같은 수법에 두 번은 당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신도하의 모습에 우도현은 미간을 더욱 눈에 띄게 구겼다.

“역시 니 놈이랑은 의견이 참 안 맞아.”

“원래 우리가 의견이 잘 맞지는 않았었지.”

“그래, 새삼 기억나네. 정말 안 맞았지.”

우도현이 그렇게 여전히 미간을 잔뜩 구긴 채로 신도하를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러한 우도현의 모습에도 신도하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으로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다.

* * *

어느새 테이블 위로는 와인병들이 늘어져 있었다.

함께 있던 안주의 양은 거의 그대로인 것에 비해 와인은 이미 상당수 비어 있는 상태였다.

“취했냐?”

우도현이 앞에 있던 신도하를 향해 물었다. 이에 신도하는 여전히 말끔한 얼굴로 답했다.

“아니.”

다만, 처음보다 취기가 살짝 오른 것 같은 느낌이긴 했다.

그리고 그런 신도하의 비해 우도현은 정말로 처음과 다름없는 멀끔한 모습이었다.

“잘 마시는 건 여전하네.”

“니가 못 마시는 거겠지.”

“나 어디 가면 주당 소리 듣는 편인데.”

“헛소리 들었네.”

그렇게 우도현이 다시금 잔을 기울였다.

“취했으면 적당히 하고. 미리 말해두는데, 나 너 옮길 생각 없어.”

“아쉽지만 아직 안 취했어, 나 잠깐 화장실 좀.”

신도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이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신도하의 잠깐의 부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우도현은 자연스럽게 제 폰을 집어 들었다.

자리에 앉았을 때부터 우도현은 제 폰을 가까이에 두고 있었다. 우세현의 연락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내 동생]

: 형 많이 마시지마

[우도현]

: ㅇㅇ

[내 동생]

: 신도하 선배도 버리진 말고

순간 나온 이름에 짜증이 확 돋았지만, 이내 이를 다시 꾹 눌러 담았다.

그리고 다시 이에 대한 답장을 보내려 하는데, 그 순간 테이블 위에 있던 신도하의 폰이 진동했다.

‘아, 이 자식 놓고 갔네.’

하지만 우도현은 이내 이를 무시한 채 다시 제 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동생한테 답장을 보내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지이이잉!

그런데 한 번 울리고 말 줄 알았던 폰이 계속해서 진동하고 있었다. 메시지가 아닌 전화인 탓이었다.

짜증이 확 돋았다.

동시에 신도하의 휴대폰 액정 위 떠오르는 이름과 우연히 마주했다.

[박시겸]

짜증이 배로 돋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휴대폰의 진동은 여전히 멈출 줄을 몰랐다. 그리고 결국 우도현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그 폰을 집었다.

─ 신도하. 뭐하길래 이렇게 늦게···.

“박시겸.”

─ ···우도현?

그리고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다른 이의 목소리에 박시겸이 그대로 말을 멈춘 채 되물었다.

그러나 우도현은 그런 박시겸의 반응에도 개의치 않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신도하 만취했다.”

─ ···뭐?

“길바닥에 버리기 전에 데려가.”

그리고 우도현은 박시겸이 마저 뭐라 말하기 전에 여지없이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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