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366화 (366/413)

366화. 싸우는 건 아니겠지

앞선 통화가 끊기고 난 뒤, 박시겸은 그대로 잠시 멍하니 제 전화를 응시했다. 어이가 없었다.

단순히 간단한 것 하나 물어보려 전화했을 뿐인데, 어째서인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띠링!

[서울특별시 용산구···]

“······.”

설상가상으로 주소까지 도착해있었다. 동시에 이를 확인한 박시겸은 이내 미간을 구겼다. 그 와중에 주소가 낯익었다.

‘하여간 여전히 제멋대로군.’

그리고 결국 한껏 짜증이 올라온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겼다. 그나마 거리가 멀지 않아 다행이었다.

보내준 주소에 도착하자 그곳엔 아니나 다를까 신도하와 우도현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도 한 테이블에.

“···이건 뭔 상황이지?”

우도현과 신도하가 같은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데, 와중에 그 술이 한두 병이 아니었다.

거기에 웬 안주는 또 이렇게 많은 건지 특히나 하몽이 가장 많았다. 누가 보면 하몽 못 먹어 죽은 귀신이 붙었나 싶을 정도로.

“어쩐 일이야?”

신도하가 그런 박시겸을 향해 물었다.

동시에 박시겸이 다시 미간을 구겼다.

“얘기 안 했어?”

“내가 불렀어. 자, 지금 얘기했다.”

이 자식이.

박시겸은 순간 그 말이 입 밖으로까지 튀어나올 뻔했다.

“너도 한잔할래? 오늘 그날이잖아.”

와중에 신도하는 태연한 얼굴로 한잔을 권하고 있었다.

“만취했다고 하지 않았어?”

“취한 거 맞아. 물 들이붓더라.”

아아.

우도현의 그 말에 박시겸이 곧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취한 거 맞네, 그럼.”

신도하는 평소 주량이 상당히 센 편에 속했다. 그래서인지 설령 취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밖으로 티 나는 일이 크게 없었다.

다만, 멤버들만이 아는 주정 정도는 있었다. 그건 바로 물을 엄청나게 마신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를 증명하듯 테이블 위에 있던 물병은 어느새 동이 나고 없었다.

“근데 난 왜 부른 거냐. 너희 둘이 시작한 자리라면 알아서 마시다가 대리 부르면 그만일 텐데.”

“그걸 니가 하라고. 난 그럴 여유 없어.”

“하.”

이에 박시겸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실소했다. 하지만 우도현은 그런 박시겸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여전히 제 폰에만 집중했다.

‘···둘이서 술이라.’

얼마 전까지 거의 평생 안 볼듯한 분위기였던 두 사람이었다. 그런 둘이 이런 자리를 가졌다는 건, 뭔가 있었다는 얘기였다.

사이좋게 회포나 풀 사이는 아니었으니 뭔가 이야기가 오가긴 했을 터였다.

하지만 설령 무슨 이야기가 오갔더라도 별 관심 없었다. 제 알 바 아니었으니.

“일어나라, 신도하.”

박시겸이 신도하를 향해 말했다.

이에 신도하는 여기까지 온 거 한 잔이라도 하라며 박시겸을 회유했지만, 박시겸은 그 모든 것을 철벽처럼 막아내었다.

그리고 승리자는 박시겸이었다.

그렇게 결국 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계산서를 챙기려는 우도현에, 박시겸이 그런 우도현보다 먼저 한발 앞서가 계산을 진행했다.

“뭐 하는 거야?”

“습관이야. 오늘 값은 신도하한테 받을 테니까 걱정 말고.”

“그게 더 기분 별론데.”

“그럼 계속 별로든지.”

그렇게 박시겸은 계산을 마쳤다.

“니가 계산했어?”

“어.”

“내가 해야 하는데. 거기 우리 세현이 분도 있어서.”

“세현이?”

그리고 그 말에 박시겸이 곧바로 고개를 들어 신도하를 바라봤다. 동시에 우도현의 표정이 구겨졌다.

“세현이라면, 우세현? 우세현도 여기···.”

“아, 둘 다 빨리 꺼져.”

이내 박시겸의 말을 빠르게 가로챈 우도현이 그런 두 사람을 재촉했다. 우세현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호칭 똑바로 해라. 누가 우리 세현이야?”

“난 이렇게 부르는 게 편한데.”

“쓸데없는 거에 집착하는군.”

우도현은 그대로 비속을 뱉을 뻔했지만, 결국 참아내었다. 둘 다 굉장히 거슬렸지만, 그저 지금은 더 이상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앞서 부른 대리가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신도하는 박시겸의 차에, 우도현은 대리를 기다렸다.

“우도현.”

그리고 박시겸이 차에 올라타기 직전, 우도현을 다시 불렀다. 이내 우도현과 박시겸의 시선이 잠시 마주했다.

“쓸데없는 일 만들지 말고, 알아서 잘 들어가라.”

그리고 우도현은 이내 작게 실소했다. 앞선 박시겸의 말이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주건후 같은 X신 짓은 안 하니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그래. 그럼 됐고.”

그대로 우도현의 대답을 들은 박시겸은 곧바로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다시 생각해보면, 앞선 말은 평소라면 굳이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 그럴 우도현이 아니라는 건 충분히 잘 알고 있었으니.

사실상 불필요한 우려였다.

자신답지 않은 괜한 우려.

‘얼마 전에 있던 일 때문인가.’

주건후의 음주 운전 사건.

아무래도 그게 어느 정도 영향이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문득 현재 시각이 보였다. 정확히는 현재 시각과 날짜.

‘······.’

혹은 오늘이 그날이었기 때문일 지도 몰랐다. 답지않은 괜한 우려가 든 것은. 그렇게 박시겸은 곧 차의 시동을 걸었다.

* * *

그날 저녁부터 숙소에 들어갈 때까지, 아니 숙소에 도착하고 난 이후까지에도 형의 메시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형]

: 숙취는?

[형]

: 혹시 있으면 형이 약 사가고

[형]

: 술 마셨으니 오늘은 일찍 자

아무래도 형은 내가 아직도 어린애인 줄 아는 것 같다. 지금 내 나이가 몇인데.

‘근데 신도하랑은 잘 마시고 있나.’

사실 다른 것보다 그게 궁금했다.

순전히 내 멋대로 만든 자리긴 하지만, 일단 형은 그 와인바로 다시 돌아갔다. 신도하가 있던 그 와인바로.

‘내가 참견해선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그냥 그때는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취해있던 건지. 아니면, 그때의 신도하의 이야기를 듣고 괜한 오지랖이 발동했던 건지.

루트의 데뷔일.

찰나에 불과했지만, 내가 택시에 오른 뒤 그때 그 와인바 앞에서 생각에 잠긴 형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메시지의 흐름을 보면, 와인 한잔 정도는 신도하와 함께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난 그대로 다시 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형이 취할 일은 없겠지만.

[우세현]

: 많이 마시지 말고

[우세현]

: 집 도착하면 연락해

[형]

: 바로 할게 혹시 잘 거면 말하고

답이 아주 칼이었다.

이거 둘 다 말 한마디 없이 술만 들이키고 있는 거 아닌가? ···솔직히 그렇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동안을 생각하면.

‘혹시 싸우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그 방면도 생각을 안 할 순 없긴 한데···그래도 설마 오늘 같은 날까지 싸울까.

···음.

[우세현]

: 형 되도록 온화하게 귀가하고

[형]

: ? 난 언제나 온화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온화라는 단어와는 절대 맞지 않는데.

그래도 다른 때는 몰라도 오늘만큼은 꼭 온화해야 할 텐데.

괜히 걱정 아닌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몇 시간 정도 후, 형으로부터 집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다행히 잘 도착한 모양이었다.

일단은 안심이 됐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신도하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신도하 선배님]

: 오늘 정말 고마웠어

그걸 보니 다시 한번 안심이 됐다. 앞선 자리가, 그렇게 마냥 나쁜 상황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신도하 선배님]

: 근데 난 늘 진심이야

?

와중에 뒤이어 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

뭐가 진심이라는 거지?

앞서 했던 고맙다는 말이 진심이라고 하는 건가?

[우세현]

: 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대충 답장을 보냈다.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형과 신도하는 꽤 평화로운 방향으로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지 궁금하네.’

왠지 끼어들기 힘든 분위기라 선뜻 묻지는 못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나면 그때 형한테 한번 물어볼까. 물어도 되는 걸까.

“밖에선 술 금지 조항을 걸면 어떨까?”

“······.”

“도대체 시계는 뒀다가 뭐 하는지 모르겠는데. 술이랑 같이 말아 드신 걸까.”

안지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게 바로 그 온화구나. 정말로 온화하긴 한데 이상하게 온화하다.

“미안, 먹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분명 12시 전엔 들어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니 입으로.”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안지호에겐 한동안 꾸지람 아닌 꾸지람을 들어야만 했다. 근데 이건 솔직히 내가 잘못한 거라 뭐라 할 순 없었다.

늦지 않겠다고 해놓고, 제대로 늦어버린 바람에.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건 다름 아닌 무섭게도 가라앉은 안지호의 얼굴이었다.

“세현아, 너무 늦는 건 좋지 않아.”

그리고 그런 안지호 옆엔 차선빈이 있었다. 안지호처럼 화가 난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기분이 좋지 않은 건 분명했다.

“미안, 미안하다···.”

“아, 근데 난 기다리는 것도 잘하는 편이라서.”

“차선빈은 뭐라는 거냐, 지금?”

백은찬이 그런 차선빈을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쳐다봤다.

“그래서, 무슨 감상평을 이렇게 길게 한 건데?”

“그냥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하다 보니.”

아무래도 루트와 관련된 이야기는 하기 힘들었다. 그 부분은 내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결국 그냥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노래를 잘한다잖아. 당연한 걸 길게도 말하고 있네.”

안지호가 여전히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그게 그렇게 되나?

“야, 걱정하지 마. 내일 해장은 안지호가 안 해줘도 내가 해줄게.”

“니가 해주겠다고?”

“그럼. 형이 해준다니까.”

백은찬이 자신 있게 말했다.

“해주긴 뭘 해줘. 그리고 부엌 파탄 날일 있냐?”

와중에 안지호가 백은찬에게 괜한 일은 벌일 생각은 하지도 말라며 엄포를 놓았다.

“콩나물국을 그대로 확 부어버릴 거니까.”

표정은 당연, 목소리마저 살벌했다.

이왕이면 뜨거운 거 말고 찬 콩나물국으로 부어줘라, 그럼···.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확실히 어제 마신 영향이 있는 건지 평소보다 머리가 약간 지끈거렸다.

두통이 심한 건 아니었으나 묘하게 거슬리는 감이 있었다. 꽤 멀쩡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정말로 콩나물국이 눈앞에 등장했다. 뜨거운 콩나물국이었다.

“배로 다 부어라. 국물 하나 남김없이.”

이에 그대로 잘 끓여진 콩나물국을 받아들었다. ···표정은 여전히 안 좋았지만.

그래도 안지호 덕에 숙취 걱정은 없을 듯했다. 와중에 맛있었다.

“다음엔 내가 끓여줄게.”

“다음에 또 마시겠다는 거냐?”

“···아니. 그냥 끓여줄게. 그냥.”

당분간 술은 입에도 댈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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