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368화 (368/413)

368화. 흑과 백

얼마 남지 않은 윈썸의 컴백일.

이에 장수연은 오늘도 역시 자정을 기다리며 노트북 앞에 앉았다.

장수연은 근래 자정마다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다름 아닌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이 나오는 날.

‘이번 앨범 컨셉 진짜 장난 아닌 것 같은데···.’

앞서 공개된 컨셉 포토들.

그 컨셉 포토들로 인해 이번 컨셉이 어떠한 컨셉인지 대략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다.

- 이번에 애들 컨셉 너무 좋아ㅠ

- 노래만 좋으면 진짜 완벽할 듯 A&R 팀에서 열일해줘 제발

- 세현이 진짜 비주얼에 물오른 것 같아 머리색 개 잘 어울려ㅠ

└ ㅁㅈ 세현이 머리색 이뽀

└ 세현이 머리색 이거 처음 하는 거지?

└└ ㅇㅇ 처음임

- 후 오늘 올라올 거 생각하면 벌써부터 심장 떨린ㄷ ㅏ

- 오늘도 선빈이가 얼굴 공격해줬으면

- 이번 컨셉 은찬이 너무 예뻐

그리고 그렇게 반응을 확인하던 중, 장수연은 다시 습관처럼 시계를 향해 눈을 돌렸다.

‘12시!’

마침내 자정이었다.

그와 동시에 업로드된 영상 하나. 이윽고 장수연은 설레는 마음으로 이를 클릭했다.

그렇게 영상 속 펼쳐지는 순백의 화면.

그리고 그 순백의 화면 위로 찰나의 순간, 검은색의 물감 하나가 뚝-하고 떨어졌다.

이내 떨어진 물감은 하얀 화면을 순식간에 잠식했다.

그렇게 펼쳐진 화면은 마치 한 편의 흑백 영화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거대한 체스판이 펼쳐지며 그 한가운데 엔티크하고도 고풍스러운 소파 위에 앉아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검은색 체스판 위의 검은색 소파.

동시에 체스 검은색 ‘킹’을 손에 쥐고 있는 흑발의 차선빈.

차선빈은 어깨 위로 화려한 로브를 걸친 채로 눈앞에 놓인 또 다른 체스판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차선빈이 제 손에 있던 ‘킹’을 조용히 공중에 놓았을 때, 무언가 어긋남과 동시에 그대로 하나둘씩 스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머지 다섯 멤버들의 모습이.

뒤이어 흘러나오는 잔잔하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

그리고 다시 떨어지는 어둠.

그런 화면 속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떠올랐다.

[WINSOME 4th mini Album, Darkest]

[202X.04.21 1pm]

“미쳤어!”

그렇게 장수연은 이내 터져 나오는 내적 소리를 억누르지 못한 채 그대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 * *

사전에 공개된 컨셉 포토와 티저 영상 등은 앞선 예상과는 전혀 다른 노선의 컨셉이었다.

지금 시기에 맞는 컨셉이라 하기에 단순히 봄에 어울리는 청량하고도 따뜻한 곡인가 싶었건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아련하면서도 딥한 느낌의 컨셉이었다.

- 퇴폐미ㅠ 진짜 너무 좋다ㅠ 심지어 곡 제목도 다키스트야ㅠ 대놓고 까리하다

- 이번에 아련아련 사연 있는 느낌이어서 좋다 그리고 약간 섹시한 느낌 (부끄)

- 위닝샷이랑 페이스 오프때도 좋았는데 이번엔 그때보다 노래가 서정적인 듯

- 아 근데 청량 아쉽다 청량 못잃어ㅜ

└ ㄴㄷ 청량 필승인데 아쉽 설마 청량은 이제 안 하는 거 아니겠지

└ 청량 해주겠지 계속 한 노선으로만 가진 않을 듯

└ 난 지금 컨셉도 너무 좋은데

└└ 222 난 지금도 ㅈㄴ 좋은데

예상과 다른 컨셉에 여전히 청량을 부르짖는 이들도 이따금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부에 불과했다.

컨셉 계열을 떠나서 앞서 나온 티저가 너무나도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 이번에 진짜 큰 거 하나 오는 듯

이건 된다!

정말로 그런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기대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윽고 찾아온 컴백 D-day.

금요일, 오후 1시 정각.

음원과 뮤직비디오가 동시 공개되었다.

[WINSOME (윈썸) - ‘Darkest’ MV]

장수연이 떨리는 마음으로 이를 클릭한 순간, 티저에 나왔던 것과 같은 장면이 다시 한번 눈앞으로 펼쳐졌다.

순백의 화면을 그대로 제 색으로 물들이는 검은 물감 한 방울.

거대한 체스판 위로 홀로 앉아 있는 차선빈. 그리고 차선빈이 공중에 자신의 흑색의 ‘킹’을 놓는 순간 잔잔한 파동과 함께 화면이 전환되었다.

그리고 그때 화면 속에는 푸른 꽃과 나무로 가득한 어느 풀숲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지만 빛 한 점 없는 어두운 풀숲.

그리고 그 풀숲에 홀로 누워 있는 핑크빛 머리의 우세현.

이윽고 희미한 한 줄기의 빛이 우세현에게 닿는 순간, 우세현이 곧 감았던 눈을 뜨며 이윽고 전주가 시작되었다.

* * *

우세현이 처음 눈을 뜬 곳은 빛 하나 없는 어두운 풀숲이었다. 머리 위로 존재하는 건 오로지 검은 하늘뿐.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우세현.

[흘러가던 시간은]

[어느새 검은 밤을 맞이해]

[내가 있는 이곳은]

[언제나 검은 밤]

살짝 헝클어진 분홍 머리, 새하얀 화이트 셔츠의 우세현이 그 순간 무표정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 캬 목소리

- ㅁㅊ 세현이 얼굴봐 대존잘

- 뭐야 분위기 뭐야 완전 나른해

- 핑머 세현이 개 예뻐(울음)

그리고 이어지는 화면, 이내 푸르렀던 풀숲이 서서히 흑과 백의 체스판으로 그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달칵. 달칵.

동시에 그 체스판 위를 걸어 나오는 한 사람. 차선빈이었다.

차선빈은 흑발펌 머리에 블랙 로브를 어깨에 걸친 채로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체스판 위를 천천히 걸었다.

그런 차선빈의 서늘하고도 선명한 시선이 그대로 화면 너머로까지 전해져왔다.

[Only you]

[Make me change]

[어떠한 후회도 없어]

[기꺼이 받아들일게]

- 와씨 눈빛 봐

- 존잘 존잘 존잘 존잘 대존잘

- 왕자 아니고 왕 같다 근데 흑화한 왕

- 목소리 섹시함

이내 차선빈은 한껏 여유로운 모습으로 책이 가득한 어느 서재로 발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검은색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테이블 위 작은 체스판을 응시했다.

체스판 위로는 5개의 흑색 체스말과 1개의 백색 체스말이 놓여 있었다.

이어서 차선빈이 옆에 있던 체스 클락의 버튼을 누르자 이윽고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시간이 멈추며 화면이 바뀌었다.

[그대로 내 눈을 맞춰줘]

그와 동시에 나타난 백은찬.

금발의 백은찬은 그대로 어깨의 휘장이 달린 제복을 입은 채로 서재의 책장을 등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백은찬의 손에는 ‘검’이 새겨진 검은색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너의 곁에 있기 위해]

[나 이대로 눈을 감아]

뒤이어 백은찬은 조금 전 우세현이 있었던 그 숲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백은찬의 손에는 체스말 중 하나인 흑색의 ‘나이트’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나이트’를 화면을 향해 느리게 기울였다.

그 순간, 흑색의 ‘나이트’가 백은찬의 한쪽 눈을 교묘하게 가렸다.

[내 눈이 어둠에 잠겨버리기 전에]

[한 번만 나를 바라봐줘]

은은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빛.

서늘하면서도 날카로움이 담겨 있었다.

- 은찬이 눈빛 봐ㅠㅠㅠㅠㅠㅠ

- 백은찬 ㅈㄴ 이런 컨셉 찰떡 제복 개 잘 어울린다ㅠㅠㅠㅠ

- 은찬이는 왕이 아닌 건가? 의상 보면 기사? 같네

그리고 새벽의 빛이 들어오는 어느 방 안 공간. 거대한 통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그 빛 아래에 안지호가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은은하게 안지호를 비추는 달빛.

블루 블랙의 머리를 한 안지호는 푸른색 렌즈, 거기에 귀에는 은색의 십자가 모양의 드롭 이어링을 끼고 있었다.

곧이어 안지호가 감았던 눈을 떴다.

[이제 내게는 이것이 익숙해]

[이대로 홀로 서 있는 게 내겐 안식이야]

[나만의 안식]

그리고 그런 안지호가 작은 몸짓을 보일 때마다 안지호의 귀에 있던 드롭 이어링이 작게 흔들거렸다.

동시에 안지호가 화면을 향해 입꼬리를 올리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 섹시하다 지호야

- 까리섹시의 표본 안지호

- 드롭 이어링 뭔데 표정은 또 뭔데 목소리도 좋네

[Darkest, Darkest]

[Stay in the dark]

[내 손을 잡아줘]

이를 부르던 우세현은 불빛 하나 없는 풀숲을 그대로 헤매며 다녔다. 그리고 그런 우세현의 손엔 흰색의 체스말 ‘룩’이 쥐어져 있었다.

그때, 화면이 바뀌며 다시 한번 체스판을 앞에 둔 차선빈이 등장했다.

그렇게 차선빈은 아직까지 홀로 하얀빛을 띠는 백색 ‘룩’을 응시하며 이를 손으로 한번 매만졌다.

그런데 그때, 옆에 있던 ‘퀸’이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화면이 교차 되며 윤도운 역시 침대 위로 툭하고 쓰러졌다.

[그대로 내게 닿을게]

[이대로 널 놓지 않을게]

윤도운은 자신의 빨간 머리 위로 쓰고 있던 검게 물든 왕관을 그대로 옆으로 벗어 던졌다.

동시에 반짝이는 로브가 눈앞에서 잠시 펄럭이더니 이내 그 로브를 걸치고 있던 윤도운이 뒤를 돌아 시선을 맞춰왔다.

[어떠한 공간 속에서도]

[네 손을 꽉 잡을게]

건조하면서도 공허한 시선이었다.

- 도운이도 왕인 거야? 아니면 퀸?

- 도운이 역시 음색 청아해ㅠ 와중에 근데 까리함ㅠ 울 애기들이 언제 이렇게ㅠ

- 보니까 도운이가 퀸인 듯 애들 포지션 안 겹칠 것 같아

- 눈빛 봐ㅠ 도운이 빨머 처음인 것 같은데 빨머도 잘 어울린다

이어서 다시 차선빈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다시금 서재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 순간, 그 서재에 있던 이는 차선빈 혼자가 아니었다.

체스판을 사이에 둔 채 한 명 더, 한 명이 더 있었다.

그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한 사람.

바로 신하람이었다.

[Darkest, Darkest]

[이대로 잠식되어도 좋아]

[네 손을 잡고 있을 수 있다면]

[이대로 손을 놓지 않을 수 있다면]

찰랑이는 갈색 머리에 짙은 검은색 제복, 그리고 어깨엔 하얀색 견장을 한 신하람은 그렇게 무표정한 얼굴로 차선빈을 응시했다.

그런 두 사람이 잠시 서로를 마주하고, 그 순간 신하람이 먼저 가지고 있던 체스말을 체스판 위에 두었다.

검은색 폰이었다.

- 으아 하람이가 폰이다!

- 하람이 제복 존멋ㅠㅠㅠㅠ우래기 성인되더니 너무 멋있어졌어ㅠㅠ

- 우래기 이제 으른이다 으른 벌써 으른미가 이렇게 나서 어떡하냐

그렇게 체스판 위엔 폰과 킹 두 가지 체스 말이 서로를 마주한 채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런 두 개의 체스말 사이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백색의 ‘룩’.

그 순간 우세현이 핑크빛 머리를 흩날리며 밤하늘을 향해 눈을 감았고, 동시에 음악이 잠시 멈추었다.

- 뭐야? 뭐야?

- 핑머 세현 존잘존예 분위기 너무 좋다

- 역시 세현이가 룩인가보다

그때, 뒤이어 다시금 흘러나오는 반복되는 강렬한 후렴구.

[Darkest, Darkest]

[Stay in the dark]

그리고 이내 중앙에 있던 백의 ‘룩’ 역시 다른 말들과 마찬가지로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등장한 검은색 제복을 입은 우세현의 모습. 동시에 잔잔하게 바람이 불었다.

위태로워 보이기도,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한 모습.

- ㅁㅊ 아련미 뭐야

- 핑머에 검은 제복이라니 그리고 표정은 뭔데 (눈물)

- 세현이도 결국 검은색 됐네 뭐지 혹시 원래 다 하얗던 거 아님?

그렇게 우세현은 더 이상 풀숲이 아닌 다른 멤버들과 같은 광활한 체스판 위에 몸을 뉜 채였다.

[너만 곁에 있다면]

[난 이대로 Resign]

그리고 이제는 백색이 없는, 흑색의 6개의 말들이 그대로 체스판을 지킨 채로 막을 내렸다.

그 안에서 체스 피스들은 여전히 검은빛을 띠고 있었지만, 그대로 작게 빛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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