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화. 첫판부터 딱 만나버렸네
촬영 스튜디오에 도착하자 그대로 준비된 고양이 귀 모양의 헤드셋을 착용했다. 듣자 하니 진실을 판별하는 귀라고도 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이거 내 능력이랑 비슷한 계열 아닌가.’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조금 달라질 순 있겠지만, 거짓 여부를 어느 정도 판명 가능하다는 선에서.
“귀엽네.”
도운이 형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도운이 형도 역시나 고양이 헤드셋을 착용하고 있었다.
“형도 잘 어울려요. 귀.”
“근데 이거 생각보다 크게 불편하진 않다.”
그리고선 신기한지 이리저리 살펴본다. 막상 보니 뇌파 감지기보단 그냥 동물 머리띠 같기도 했다.
와중에 헤드셋을 착용한 안지호가 보였다.
“귀엽네.”
“···그러냐?”
“응.”
그러자 민망한 건지 이내 시선을 살짝 돌린다. 언제 봐도 안지호는 고양이 머리띠가 잘 어울렸다. 고양이상이라서 그런가.
“너도 뭐, 괜찮···.”
“귀가 참 귀여워.”
그리고 그렇게 고양이 귀를 보고 있자 안지호의 표정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왠지 모르게 황당해하는 표정이다.
“야, 너 설마 이게 귀엽다는 소리였냐?”
“아니. 너 귀엽다는 소리였는데.”
“······.”
그러자 다시 한번 시선을 돌린다.
잘못 알아들은 게 티 나서 민망한 건가.
그렇다면 처음부터 주어를 명확하게 달아줄 걸 그랬다.
이왕이면 잘못 알아듣는 일이 없게 확실히 얼굴 보고.
“안지호, 귀여···.”
“그러네. 귀엽네. 안지호.”
그 순간, 옆에서 불쑥 익숙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예상대로 백은찬이었다. 고양이 귀를 단.
“역시 안지호는 고양이네.”
“응. 잘 어울리지?”
“엉.”
그러자 안지호가 다시 한번 이상한 표정으로 이번엔 백은찬을 쏘아 봤다.
“왱. 잘 어울린다니까?”
“어쩌라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동시에 백은찬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물어왔다. 덤으로 볼도 찌르면서. 어, 그래. 귀엽네. 왠지 말해주긴 싫지만.
“그래, 괜찮네.”
“귀엽다는 말이지?”
“어, 저기 선빈이가 보이네.”
“귀엽다는 말이징?”
그러더니 이젠 아주 어깨에 붙어서 난리다. 근데 솔직히 백은찬은 강아지 쪽을 닮았다. 고양이보단.
그리고 곧 촬영이 시작되었다.
뇌파 감지기를 이용한 앞으로 할 게임은 바로 진실게임이었다. 말 그대로 진실만을 말하는 게임.
물론 여기서 포인트는 진실 말하기보단 누가 더 상대방의 평정심을 무너뜨리는가였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더 많이 귀를 움직이게 만드는 쪽이 승리하는 게임이었다.
게임은 일 대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내 상대는 다름 아닌 백은찬.
“첫판부터 딱 만나버렸네.”
백은찬이 꽤나 호기로운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플레이어로 선택된 사람은 앞에 보이는 의자에 나란히 마주 보는 형태로 앉아야만 했다.
“은찬이 형이랑 세현이 형이면~”
“세현이가 이기지 않을까?”
“선빈이 형은 세현이 형?”
“근데 은찬이가 꽤나 자신만만해하는데. 나름 자신 있는 거 아니야?”
“우세현, 은근 못 할 것 같은데.”
다 들린다, 안지호.
솔직히 그렇게 자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런 건 원래 감정의 동요를 최대한으로 줄이고자 집중하면 나름 평온함 유지가 가능하다.
어디까지나 당황하지만 않으면 된다.
진실게임이라고 하나 실제로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당황하지만 않으면 결국 귀가 움직이는 일은 없다.
“순서는? 어떻게 할까? 니가 공격할래?”
“난 아무거나 상관없어.”
“오케이. 그럼 내가 먼저 한다.”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침착함. 침착함만 유지하면 된다.
동시에 백은찬이 달고 있는 귀가 여전히 눈에 띄었다. 솔직히 귀엽긴 귀여운···.
“세현아. 솔직히 말해봐.”
그리고 그때, 백은찬이 입을 열었다.
“나 지금 귀엽지?”
아.
잠깐.
나도 모르게 당황했다.
* * *
귀가 움직였다.
백은찬의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정말로 그 즉시 귀가 움직여버렸다.
“아, 이렇게 바로 대답이 나오나요!”
“세현이 방금 너무 투명했는데?”
정말로 나도 모르게 나온 반응이었다. 와, 이거 정말로 즉각 반영되는구나. 생각보다 바로 반응이 와서 놀랐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역시 귀엽다고 생각했었네~내가 또 딱 알았지~”
“······.”
“근데 너도 귀여워. 물론 나도 귀엽고~”
하여간 백은찬.
벌써부터 우쭐한 얼굴이다.
하필 질문을 해도 그 타이밍에 그런 질문을 해서는.
“은찬아.”
“응?”
그리고 이젠 내가 질문을 할 차례였다.
“그렇게 좋아?”
“어, 너무 좋아.”
와중에 백은찬의 귀가 빠르게 움직였다. ···야, 이거 평정심 유지 게임이라고. 대답도 반응도 너무 투명했다.
“우리 세현이, 당황했네. 귀엽게.”
백은찬이 실실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 젠장. 이거 왠지 제대로 말린 느낌이 든다.
“솔직히 나만 한 룸메 없지?”
“응. 근데 나만 한 룸메도 없지?”
그리고선 태연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아, 나도 모르게 귀가 또 움직였다. 이거 왜 이렇게 쉽게 움직여.
“오늘 오랜만에 같이 잘까?”
자긴 뭘 자.
언제는 같이 잔 것처럼 얘기를···.
“세현이 형 또 움직였어요!”
···하여간 이놈의 귀는 가만히 있을 생각을 안 했다.
와중에 그걸 본 백은찬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으로 실실 웃고 있었다. 더 열 받게!
“세현이는 귀가 너무 움직이는 거 아니야?”
“근데 귀가 많이 움직이니까 더 귀엽다.”
“선빈이 형은 뭘 또 감탄하고 있어요?”
“내가 우세현 은근 못 할 것 같다고 했잖아.”
여전히 다 들린다, 안지호.
···이거 사실 어디가 좀 고장 난 거 아냐?
그렇지만, 전원을 껐다 켜도 여전히 귀가 열심히 움직이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더불어 백은찬의 귀도 가끔씩 움직임을 보이긴 했으나 얼굴은 계속 태연했다. 왜 이렇게 잘하는데.
“이렇게 해서 은찬이의 승!”
“예쓰, 세현아. 수고했엉.”
백은찬이 한껏 신이 난 얼굴로 마치 달래듯 그대로 내 팔을 두드렸다. 그 사이 진이 다 빠졌다. 귀가 얼마나 움직였는지도 이젠 모르겠다.
“두근두근 많이 했어~? 내가 두근두근하게 해준다고 했잖아.”
“안 했는데.”
두근두근은 무슨.
뜨끔뜨끔은 좀 한 것 같다.
“그리고 언제 같이 잤어.”
“내가 너 재워 줬잖아. 종종.”
종종 같은 소리 하고 있다.
재워준 적이···있긴 하지만, 어쨌건 와전돼도 너무 와전됐다.
“귀 귀엽더라. 이거 그냥 계속하고 있어.”
“뺄 거거든.”
하지만 계속해서 착용하고 있어 달라는 제작진의 말에 결국 그대로 착용한 채로 다음 판을 이어갔다.
다음 판은 안지호와 하람이었다.
“지호 형. 솔직하게 말해 봐요.”
“뭘?”
“초코빵. 없으면 서운하죠?”
“······.”
그 순간, 안지호의 귀가 크게 요동쳤다. 뒤늦게 아니라는 대답이 나왔으니 벌써 답은 나온 거나 다름없었다.
“너 형들 중에서 나 제일 좋아하지?”
“네. 형이 제일 좋아요.”
“······.”
심지어 자기가 공격해놓고 자기가 타격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 게임을 하는 내내 안지호의 귀 역시 요란하게 움직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반면, 마지막 판은 앞선 판들과는 양상이 조금 달랐다. 도운이 형 대 차선빈.
“형, 전 항상 형 곡을 좋아했어요.”
“선빈아, 항상 생각하지만 넌 참 잘생겼어.”
“이번 마인드맵 곡도 너무 좋아서 매일 듣고 있어요.”
“그 곡에서 내일 제일 좋아하는 파트가 니가 한 랩 파트야.”
그야말로 앞선 분위기와는 다른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이렇게 화기애애할 수 없었다.
···이거 진실 게임이 아니라 칭찬 타임이었나?
“아, 이쪽은 이런 흐름으로 가는 모양인데.”
“그런데 귀는 또 열심히 움직이네요.”
근데 또 서로 그렇게 머쓱하게 칭찬하면서도 귀는 또 열심히 움직였다.
물론 도운이 형의 귀만.
그런 칭찬 속에서도 차선빈의 귀는 의외로 쉽게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평정심이 대단했다.
유일하게 움직임을 보였을 때가 바로 랩 칭찬을 할 때였다. 그것도 작게. 오히려 잘생겼다고 했을 땐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잘생겼다는 말은 예전부터 너무 많이 들은 말이라 감흥이 크게 없는 걸 수도 있겠다. 늘 잘생기긴 했으니까.
이내 게임을 마친 차선빈이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잘한다, 선빈아.”
“그래?”
그러자 차선빈이 머쓱하게 웃는 것과 동시에 차선빈의 고양이 귀가 크게 움직였다. 어, 움직였다. 잘한다는 말도 좋아했나?
그렇게 토너먼트식으로 진행된 게임의 최종 결승전은 백은찬과 하람이의 대결이었다.
중간에 차선빈과 백은찬이 겨뤄 백은찬이 승리, 하람이가 부전승으로 올라갔기 때문에.
“형, 솔직히 여기 있는 사람 중 본인이 제일 귀엽다고 생각하죠?”
“너 어제 내 바나나 먹었지?”
“안 먹었는데요? 형이야말로 내 비타민 하나 몰래 먹었죠?”
“그거 나 아니고 지호야.”
“지호 형은 먹고 말해요!”
“나도 먹고 말해!”
어느 쪽이든 일반적으로 먹기 전에 말해야 하는 거 아니냐. ···결승전다운 유치한 양상이었다.
* * *
“아, 오늘 재밌었다.”
백은찬이 카시트에 그대로 등을 기대며 말했다. 그것도 상당히 개운해 보이는 표정으로.
뇌파 기계를 이용한 진실 게임의 최종 승자는 백은찬이었다. 내가 볼 땐, 이 정도면 제대로 소질이 있는 듯했다.
“오늘 형 완전 날아다녔죠. 혼자 훨훨.”
“아, 너무 재밌었어~ 이거 다음에 또 해도 좋을 것 같은데~”
“누구 좋으라고 또 해.”
“나 좋으라고.”
백은찬이 그렇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이자 이내 안지호는 그런 백은찬을 보며 혀를 찼다.
오늘 예정된 스케줄은 모두 끝났으니 이제는 그대로 숙소로 직행이었다.
새벽부터 음악 방송에 저녁까지 자컨을 촬영하느라 다들 체력이 꽤 부쳤는지 얼마 안 지나 하나둘씩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떠들썩하던 차 안도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조용해지고 있었다.
“세현이, 안 피곤해?”
건희 형이 그대로 백미러를 슬쩍 보며 물었다. 어느새 나를 뺀 다른 멤버들은 모두 잠이 든 것 같았다.
“네. 전 괜찮아요.”
“그래도 조금씩 눈 붙여놔. 앞으로 계속 강행군일 텐데.”
“네. 그럴게요.”
그렇게 건희 형을 향해 웃어 보였다.
곧바로 건희 형은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대화가 끊기자 차 안으로 다시금 정적이 흘렀다.
‘애들은···확실히 자고 있군.’
그대로 한 번 둘러보니 다들 확실하게 잠에 빠진 듯했다. 그렇다면, 거리낄 게 없겠다.
“그런데요, 형.”
“응?”
이내 건희 형이 작게 반응했다.
“지금 붙은 거죠? 우리 차 뒤로.”
“뭐?”
그 순간, 건희 형이 놀란 눈으로 다시 백미러를 쳐다봤다. 어떻게 알았냐는 눈이었다.
“아까부터 눈에 띄어서요.”
“아, 음···.”
하지만 건희 형은 쉽사리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곤란하다는 것처럼. 아무래도 이런 걸 알려주고 싶지 않은 거겠지.
지금처럼 누가 우리 차량을 쫓아오고 있다는 그런 사실을. 혹여 그랬다간 괜한 혼란만 낳을 테니.
“괜찮아요. 알고 있었어요.”
“어, 근데 걱정할 거 없어. 이제 곧 도착이니까.”
“네. 걱정 안 해요.”
건희 형의 말대로 익숙한 풍경이 창밖 너머로 보였다. 정말로 이제 곧 도착이었다. 건희 형 운전 실력을 알고 있기도 하고.
촬영장 이후로 계속해서 따라오는 한 차량. 그 차량을 건희 형은 아마 사생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뒤따라오고 있는 저 차량은, 사생보단 다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