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화. 기자가 하나 붙었어요
근래 사생이 늘었다.
안이나 밖 구분 없이 어딜 가나 쫓아다니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숙소의 보안이 꽤 철저한 곳이라는 사실이었다.
형이 살고 있는 바로 옆 아파트의 경우 최상위권의 보안을 자랑하고 있지만, 우리 숙소 역시 크게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다.
물론 그 외의 장소의 경우 어느 정도 노출이 되어있었지만.
그래서인지 형이 자꾸 자기 쪽으로 넘어오는 건 어떠냐고 이따금 장난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내가 숙소 두고 어딜 가.’
그리고 우리 숙소도 좋은 편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붙은 게 사생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기자였다.
며칠 전부터 연예부 기자 한 명이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BN 일보 기자군.’
해당 기자의 신상을 아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간간이 들리는 생각만으로도 신상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직접적으로 마주한 건 아니었지만, 주변에서 흘러오는 정보들이 꽤 있었으니.
‘안 좋은데.’
기자가 붙었다는 자체가 좋지 않기도 했지만 그게 BN 일보라는 것도 문제였다.
BN 일보는 연예인 뒤를 밟아 가십이 될만한 기사들을 종종 내는 걸로 유명한 언론사였다.
파파라치라는 거다.
그리고 그 기자는 언젠가부터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우리 차량을 뒤따라왔던 차량도 마찬가지로 그 기자였다.
“야, 세현아. 편의점 갈 건데, 갈래?”
백은찬이 모자를 쓰며 물었다.
“급해?”
“응? 뭐가?”
“급하게 필요한 거 있어?”
“어···그건 아닌데?”
“그럼 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 나 오늘 설거지 당번이라서.”
그러자 백은찬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타이밍이 별로 좋지 않았다. 가장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시점이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저쪽에서.
‘함부로 찍게 둘 순 없지.’
그렇게 두지도 않을 거고.
더불어 이와 같은 상황을 회사에도 빠르게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회사에서 먼저 나와 멤버들을 소집했다.
“기자 하나가 붙은 거 같아요.”
정서준 이사가 말했다.
크게 변조 있지 않았지만, 그 안엔 약간의 짜증이 섞여 있었다.
동시에 이를 듣던 멤버들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아졌다.
“파악한 바로는 BN 일보의 기자가 붙은 것 같은데, 그런 거라면 아마 노리는 게 분명할 거예요. 논란이 될 만한 사진. 이를테면 열애설 같은 거겠죠.”
열애설이나 혹은 사생활의 이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것.
하지만 그게 뭐든 우리 멤버들에겐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것들이었다.
한 마디로 괜한 짓이다.
“아무래도 앞으론 신경을 좀 써야 할 것 같아요. 불필요한 외출은 되도록 자제하는 편이 좋고요.”
괜한 사진이 찍히지 않도록 웬만하면 숙소에 붙어 있는 게 좋다는 말이었다. 여기에 앞으론 회사가 더욱 케어에 신경 쓰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애초에 숙소-집-회사가 이미 일상인 지라 더 붙어 있고 말 것도 없긴 한데.
“앞으론 편의점도 좀 조심해야겠다.”
“편의점에서 소세지 먹는 게 낙이었는데.”
“형, 소세지만 안 먹잖아요. 콜라에 오징어구이도 먹잖아요.”
“그래도 오징어는 바로 안 뜯었어. 아, 편의점에서 먹는 소세지 맛있는데.”
“원래 바로 뜯어서 먹는 맛이 있긴 하지.”
“그래도 소세지 뜯다가 사진 찍히고 싶진 않아요. 후, 이젠 숙소 가서 뜯어야지.”
그렇게 백은찬이 눈물을 삼켰다.
그러고 보니 겨울엔 종종 붕어빵도 멤버들이랑 밖에서 나가 사 먹었는데. 이제는 봄이라 차라리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아, 그러고 보니 형.’
형이랑 만나는 것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나마 지금이 활동기라 다행인가. 바쁜 만큼 만날 짬을 내기 어려웠다.
형도 바쁘긴 마찬가지고.
그래도 형에게도 사전에 이야기 해둬야겠군. 걱정할 것 같긴 하지만, 나 때문에 형이 괜한 사진 찍히는 것보단 나았다.
우도현 사진이라고 하면 분명, 마치 원한이라도 있듯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사람들이 있으니.
그렇게 둘 순 없었다.
그러한 생각 도중, 문득 옆을 보니 그대로 차선빈이 조금 아쉬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딸기 라떼도···카페에서 먹기 힘들어지겠지.”]
아, 딸기 라떼.
가끔씩 차선빈과 둘이서 시간이 나면 숙소 근처에 있는 사람 없는 카페에 가곤 했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쉬웠던 모양이다.
아마 차선빈 나름의 소소한 힐링이었던 것 같은데. 일상 속 소소한 행복 같은 거.
“그래도 카페는 가끔씩 같이 가자.”
“어?”
그러자 차선빈이 놀란 눈으로 날 봤다.
“딸기 라떼 먹으러. 철 지나기 전에 먹어야지. 라떼는. 죄지은 것도 아닌데 카페도 못 갈 거 없잖아.”
“아, 응. 좋아.”
동시에 차선빈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그래, 그런 것 때문에 굳이 일상을 놓칠 필요는 없다.
저렇게 좋아하는 걸 봐서일까, 더 놓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니 더 짜증 나는데.’
멤버들이 불편을 겪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앞으로의 여러모로 불편한 상황이 따라올 게 분명했다.
─붕!
타고 있던 밴의 속도가 갑작스럽게 느려짐과 동시에 급하게 몸이 앞으로 쏠렸다. 잠시나마 위험했던 순간이었다.
“괜찮아?”
매니저 형이 나와 멤버들을 향해 급하게 물어왔다. 그러면서도 표정은 여전히 경직되어 있었다.
불편을 겪는 건 단순 일상만이 아니었다.
매번 꼬리처럼 붙어 다니는 BN 기자의 차량으로 인해 위험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괜찮아?”
그대로 멤버들을 향해 다시 물었다.
다행히 다친 멤버는 없는 것 같았다.
“넌 괜찮냐?”
“아, 응.”
“와, 진짜 깜짝 놀랐어요.”
하람이가 그대로 놀란 얼굴을 했다.
‘이거, 마냥 손 놓고 있을 순 없겠는데.’
이대로 그저 멋대로 두기엔 이미 너무 많은 걸 침범하고 있었다. 조치가 필요했다.
* * *
BN 일보의 기자는 예상했듯이 늘상 주변을 배회했다. 회사 앞은 물론이고, 숙소 근처, 잘 가는 편의점까지.
물론 그 존재를 눈치챘을 때부터 회사나 숙소, 방송국으로 이루어진 동선을 벗어난 적은 없었다.
[“오늘도 숙소네.”]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였다.
이따금 불쑥 튀어나오는 목소리가 종종 머릿속을 울렸다. 아마 그럴 때마다 셔터를 누르는 거겠고.
하지만 당연하게도 의미 있는 사진은 없을 거다.
저 기자가 얼마나 끈질긴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기자가 한 번 붙을 경우 길면 몇 개월까지도 붙곤 했다.
그래서 결국 수를 쓰기로 했다.
그리고 난, 그대로 회사로 향했다.
정확히는 보컬룸 404호실로.
“아무래도 당분간 오기 힘들 것 같아요.”
“뭐?”
그러자 사자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놀란 얼굴을 보였다.
“지난번에 말했듯이 기자가 더 심하게 붙기 시작했어요. 이젠 정말 숙소에만 붙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기자가 막 붙기 시작할 무렵, 사자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전해둔 바가 있었다. 혹시나 움직이기 힘들 때 연락이 온다면 골치 아파지니까.
“···그래도 회사는 괜찮지 않나?”
“외출 자체를 자제하는 게 좋죠. 자꾸 생각이 들리는 것도 불편하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당분간은 오기 힘들 것 같아요.”
“흠···.”
동시에 사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상당히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나름의 낙이었는데···.”
“낙이요?”
“너랑 대화하는 거. 나름의 낙이었다고. 원래 이 일은 좀 그렇거든. 기본적으로 솔플이라 심심할 때가 많아.”
“아, 그래요?”
“그래. 그렇다고 사자씩이나 돼서 귀들이랑 오순도순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리고선 작게 한숨을 한번 내쉰다.
반응만 봐선 마치 세상이 무너졌다는 반응이다.
애초에 그렇게 많이 얼굴을 마주하는 사이도 아니건만.
그렇지만 그건, 예상대로의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상당히 많이···심심하겠네요.”
“그래. 그렇다니까. 그러니 이런 안쓰러운 날 생각해서라도 짬을 좀 내는 게 어때?”
“그건 안 되죠.”
“아아···.”
“하지만 정 그렇게 곤란하다면, 손 좀 빌려주시죠.”
그 즉시 사자가 숙였던 고개를 빠르게 들었다. 반응 한번 빠르군.
“손? 무슨 손?”
“일을 빠르게 해결하기 위한 도움이요.”
“도움?”
아니나 다를까, 사자는 꽤나 솔깃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상대로 관심을 갖는다.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사자의 도움을 일정 부분 받을 계획에 있었다.
* * *
이번 일을 원활하게 해결하기 위해선 일단 일정 부분 사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기자를 직접 상대하고 나서는 건 아무래도 위험 요소가 있으니.’
직접 만나봤자 좋을 것도 얻을 것도 없었다. 특히나 이런 경우 잘못하면 되레 협박받을 확률이 다분했다.
그룹에게 해가 되는 식의 기사를 낸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러니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이는 편이 좋다.
멤버들이 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그런 의미에서 사자의 힘을 빌리기로 한 거다.
하지만 무턱대고 사자의 도움을 구할 순 없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일의 범위니까.
그런 만큼 무슨 대가를 요구할지 모른다는 거고. 그러니 애초에 사자가 먼저 이쪽의 요구를 들어줄 의향이 있도록 의도했다.
그렇게 흘러갈 수 있도록.
정기적인 대화의 시간이 사라지면, 사자는 아쉬워할 게 분명했다.
종종 대화의 시간을 즐긴다고 말했던 바가 있었으니.
“무슨 도움을 원하는 건데?”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아, 그 전에 가능할지 그게 좀 걱정이 되긴 하네요.”
“뭔데? 사자의 힘을 너무 얕보진 말라고.”
사자가 꽤나 자신감 있는 표정을 보였다.
그렇다면, 다행이겠지만.
“운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것도 아주. 굉장히, 많이요.”
“운? 아, 그 기자?”
“네. 그 기자의 운이요.”
그토록 믿는 운이라는 걸, 아예 싹을 없애버릴 계획이었다. 단, 그건 어디까지나 윈썸의 주변을 배회할 때만 해당이 되도록.
그것도 아주 크게 말이다.
BN 기자의 생각은 언제나 거슬리고 방해되는 것이긴 했으나 그게 꼭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생각들로 인해 어느 정도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기자의 이름은 오성혁.
오성혁 기자는 어째서인지 매번 그날의 운세에 관한 생각을 떠올리곤 했다.
[“오늘의 운세가 어땠더라. 나름 뭔가 수확이 있다고 했었는데. 다시 확인해볼까.”]
여기서 말하는 오늘의 운세란, 인터넷에서 흔히 확인할 수 있는 그 운세를 말하는 것 같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만, 항상 운세 어쩌고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알 수 있었다.
대체적으로 미신을 잘 믿는 타입이라는 걸. 그리고 동시에 겁이 많다.
그러니 이러한 점을 잘만 이용한다면, 굳이 직접적인 접촉 없이도 일을 잘 해결할 수 있을 듯했다.
“가능, 해요?”
“당연히 가능하지. 말했지. 예전부터 나는 다른 것들과 같은 영역이 아니라고. 그 정도는 아주 쉬운 정도지.”
그렇게 사자가 여전히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사자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럼 잘 부탁할게요.”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