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화. 뭐든 잡고 본다
오성혁 기자에게는 버릇이 하나 있었다.
항상 습관적으로 오늘의 운세를 확인하는 버릇이었다.
사실 평소엔 그렇게 자주 확인하는 편은 아닌데, 일과 관련된 것이 있다면 무조건적으로 확인하곤 했다.
처음엔 그저 길고 긴 취재 시간을 떼우기 위한 일환 중 하나였지만, 언젠가 크게 한번 도움을 받고 나선 맹신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 운세라는 것을.
그는 평소 미신을 잘 믿는 편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떠냐···.’
그리고 그건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확인 결과, 오늘의 운세 역시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오늘은 좀 뭘 건질 수 있으려나.’
윈썸과 관련해서.
오성혁은 현재 일주일 넘게 윈썸을 따라다니며 그 행적을 좇고 있던 참이었다.
명백한 n세대 대표 주자로 급부상하며 요새 가장 핫한 그룹이 누구냐면 나오는 이름이 바로 윈썸이다.
최근 컴백을 하면서 그 화제성은 더욱더 상승했다. 국내, 해외랄 것도 없이.
그만큼 뭔가를 잡기만 한다면 화제성은 이미 다 먹고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근데 문제는···.’
그 뭔가가 전혀 없는 것 같단 말이지.
그런 목적을 가지고 밤낮을 따라다녔으나 건진 건 제로였다. 정말로 제로.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나 뭐가 없을 수가 없나 할 정도로 없었다. 이제껏 수많은 아이돌 그룹을 쫓아다녔지만, 이렇게나 투명한 그룹은 또 처음이다.
열애? 불편한 사생활?
그런 거 없이 그저 일의 연속이다. 그냥 자기들끼리만 논다. 정말로 자기들끼리 잘 논다.
얘들은 몸에 자석이라도 달린 건지 한 명이 어딜 가면 그대로 줄지어 같이 간다.
더불어 친구도 없는 것 같다.
외출도 잘 안 하는데, 어쩌다가 아주 가끔, 정말 가끔 한 번 외출한다고 하면 고작 카페다.
숙소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그냥 음료 몇 잔 사서 가는 게 전부다. 어디로 세지도 않는다.
한 번은 카페에서 테이크아웃이 아닌 먹고 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길래 혹시 누가 또 오는 건가, 하고 기대를 걸었건만.
전혀 아니었다.
우세현과 차선빈은 단둘이 그대로 딸기 라떼만 신나게 먹고 갔다. 차선빈이 그렇게 밝게 웃는 건 또 처음 봤다.
앞에 있던 사람이 우세현이 아니었더라면 자기도 모르게 착각할 뻔했다.
요즘 애들은 커피보다 이런 딸기 종류 음료를 먹는 게 유행인가?
카페인 중독자의 삶을 살고 있는 오성혁으로선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선택이었다.
‘그 말이 진짜였나···.’
간간이 업계엔 그런 말이 떠돌고 있었다. 아무래도 윈썸은 뭐가 없는 것 같다는 말. 그리고 굉장히 성실하다는 말.
아마 사전에 윈썸을 쫓았던 기자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그런 말들이 흘러나온 듯했다.
그리고 그때의 그 말이 사실이었음을 새삼 이렇게 실감하고 있었다.
‘아니야. 이대로 몇 개월 붙다 보면, 뭐가 더 나오겠지.’
하지만 이대로 쉽게 포기할 순 없었다. 아직 초반이었다. 게다가 요즘은 한창 바쁜 활동기. 그러니 이대로 더 버티다 보면 뭔가 다른 게 나올지도 몰랐다.
자신은 무려 지겹게 끈질기기로 유명한 그 BN일보의 기자였다. 그만둘 생각은 절대 없었다.
그렇게 오성혁은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여자 연예인, 여자 연예인 안 만나나. 아이돌이든 배우든 상관없는데.
툭!
“아씨, 뭐야!”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옆에 두었던 커피가 오성혁을 향해 쏟아졌다.
그리고 놀란 오성혁이 그대로 짜증스럽게 이마를 좁혔다. 분명 건드린 적도 없는 커피가 저절로 저를 향해 쏟아졌다.
혹여 따뜻한 커피였다면 그대로 식겁할 뻔했지만, 다행히도 아이스였다.
“아, 짜증 나네.”
아침부터 일진이 좋지 않았다.
쏟아진 커피는 그렇게 오성혁의 옷을 흥건하게 적셨다.
하지만 일진이 좋지 않았던 건 그때만이 아니었다.
화장실에서 미끄러질 뻔했다던가, 문에 머리를 박을 뻔했다던가, 심지어 뜬금없이 보이스피싱에 걸리기도 했다.
“아아···!”
그 순간 터지는 탄식과 함께 오성혁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여기에 오늘은 하루 종일 달리는 족족 신호에 걸렸다.
“아, 진짜 왜 이렇게 걸리는 거야?”
뭔가 좀 따라가려 하면 걸리고, 좀 나아가려고 하면 또 걸리고. 여기에 끼어들기를 당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일진이, 일진이 안 좋아.’
방금전 종이에 손이 베인 오성혁은 이윽고 오늘 자신의 일진을 확신했다.
동시에 느낌이 왔다.
오늘은 밖에 오래 있으면 안 되는 날이라는 걸. 그래서 일단 오늘은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접기로 했다.
‘내일 하면 돼, 내일.’
그렇게 오성혁은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윈썸의 숙소 근처로부터 차를 돌렸다.
하지만 그다음 날도 일진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윈썸 주변을 배회하는 와중, 잠깐 먹은 빵 때문에 체하지를 않나 오늘도 역시 가는 족족 신호에 걸렸다.
‘이상하다.’
분명 뭔가가 이상했다.
여기서 가장 이상한 건 이상하게 카메라를 들려고 할 때마다 이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뭐지?’
그와 동시에 불길한 예감 같은 것이 들었다.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불길한 예감.
그리고 그런 이상한 일과 불길한 예감의 콤보가 3일 정도 계속되는 순간, 오성혁은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어느 불안을 감지했다.
그와 동시에 오성혁은 급하게 휴대폰을 들어 무언가를 확인했다. 바로 오늘의 운세였다.
[오늘의 운세]
: 하는 일마다 한숨이 푹푹
계속되는 꼬임에 지친 당신.
바로 지금 하는 일 때문입니다.
현재 하는 일은 당신에게 수확도 보람도 없는 일일 확률이 높습니다. 계속되는 꼬임을 풀고 싶다면, 하루빨리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아악!”
이에 오성혁은 곧바로 제 머리를 쥐었다. 예상대로의 결과였다. 오성혁은 그렇게 자신의 머리를 한참동안이나 쥐고 있었다.
‘불길하다.’
거듭되는 불행, 그리고 앞으로도 그 불행의 지속될 것을 예고하는 운세. 이에 오성혁은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거 지금, 제대로 삽질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윈썸의 뒤를 계속 캔다고 해도 뭔가를 얻을 것 같지 않았다.
처음 뒤를 쫓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건 허탕일 거란 감이 강하게 왔지만, 오로지 의지만으로 강행했던 일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온갖 불행을 겪고 있으려니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건 어차피 안 될 건 아닌가?
그런 생각.
툭!
그때, 옆에 두었던 카메라가 갑작스럽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와중에 제대로 떨어진 건지 그대로 렌즈가 나갔다.
“······.”
그와 동시에 오성혁은 다시금 오늘의 운세를 확인했다. 역시나 같은 내용.
‘···후.’
그래.
그리고 그는 끝내 결심했다.
이만큼이나 했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던 건 정말로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하는 것일 거라고, 그러한 사실을 오성혁은 결국 인정했다.
“그래, 하하. 새로운 건이나 찾아보자.”
그는 미신을 잘 믿었다.
더불어 겁이 많았다.
운세에 맞지 않은 일을 하며 계속해서 불운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건 안 될 일이다.
그렇게 오성혁은 이제껏 들고 있던 제 카메라를 이윽고 거두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아쉬움보다는 마음이 편했다.
평소라면 한번 문 상대에 관해 물러서는 일 따위는 없었겠지만, 이번엔 왠지 그래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동시에 오성혁은 이제껏 찍었던 윈썸의 사진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숙소, 회사, 방송국의 향연.
처음과 다른 건 없었다.
“하하. 괜히 시간만 낭비했어. 하하.”
동시에 오성혁은 그대로 몸을 떨었다.
왠지 모르게 한기가 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오성혁은 방금 전까지도 쫓던 윈썸의 차량을 자연스럽게 놓쳤다. 윈썸 추적을 그만두겠다는 신호였다.
* * *
오성혁이 윈썸을 쫓는 것을 두었다는 것은 곧 BN일보 전체에 전해졌다. 그리고 이를 들은 선배 기자는 곧 의문을 표했다.
“네가? 웬일로? 이렇게 빨리?”
“왜겠어요. 뭐가 없어도 너무 없어서죠.”
오성혁이 작게 한숨 쉬었다.
“그렇게 없었어? 아무것도?”
“예. 그렇더라고요. 그놈의 딸기라떼만 매일 먹는데···.”
“딸기라떼?”
“거의 숙소 앞, 아니면 회사 사진뿐이에요. 방송국 갔다가 연습하다가 그대로 숙소, 그 루트가 전부에요.”
동시에 이를 듣던 선배 기자가 놀란 표정을 보였다.
“윈썸이 이제 3년 차지? 막 데뷔한 신인도 아닌데 신기하네. 원래 이맘때쯤엔 슬슬 딴 길로도 세고 그러지 않나?”
“나도 그럴 줄 알았죠. 근데 없어요, 없어. 딴 길이 아예. 이 정도면 그냥 차단 수준이야.”
오성혁이 마치 질린다는 듯 그대로 고개를 내저었다.
“진짜 성실한가 보네, 윈썸. 근데 여기 세현도 있잖아. 우도현 사진은 없어?”
“안 그래도 형제 사이가 좋다길래 한 번쯤 찍을까 싶었는데, 그것도 물 건너갔어요.”
“들켰구나?”
이에 오성혁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세현이랑 둘이 있길래 찍으려고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우도현이 먼저 무섭게 눈치채더라고요. 별명이 카메라 레이더잖아요.”
“원래 우도현이 카메라 포착 능력이 대단하다고 루트 때부터 소문이 자자했지.”
그나마 찍힌 사진이라곤 카메라를 발견한 우도현이 그대로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지은 채 동생을 제 뒤로 감싸는 사진뿐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등골이 오싹했다.
카메라 부실 것 같은 표정으로 다가오는데···이에 오성혁은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물론 카메라 레이더가 달린 것 같은 건 우도현만이 아니었지만···.’
우세현 역시 꽤나 카메라 포착 능력이 좋았다. 윈썸 멤버 중 제일. 어떻게 보면 우도현보다 더 하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마치 자신이 찍는 위치를 알고 있다는 듯. 그 탓에 식은땀을 흘렸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집안 내력인가?
그리고 그런 BN 일보 기자의 윈썸 포기 소식은 얼마 안 되어 여러 언론사에 마치 썰과 같은 형태로 퍼지고 있었다.
그렇게 질기기로 유명한 BN 일보 역시 윈썸의 구설수는 잡을 수 없었다면서.
“어지간히도 성실한가 보다, 윈썸.”
“원래도 유명했잖아. 애들이 착하고 성실하다고.”
“그랬었지. 근데 BN 일보에서도 허탕을 칠 정도면.”
그리고 이를 들은 타 언론사 기자들은 그저 놀라움을 표현할 뿐이었다.
* * *
BN 일보의 추적이 멈추었다.
들리던 소리가 멈췄을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했지만, 이로써 더욱 확실해졌다.
“형, 요즘 따라오는 차 없어진 거 같죠?”
“응. 근래는 따라붙는 차 없더라.”
“포기한 걸까요?”
매일 같이 뒤쫓던 차량도 더 이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멤버들 역시 이를 하나둘씩 눈치챈 듯했고.
‘의도했던 대로 잘 풀린 모양이네.’
아무래도 사자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한 모양이었다.
이전에 말했던 불운 작전.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상했던 대로 그 기자에게 잘 먹힌 듯했다.
“근데 생각보다 포기가 빠르네. BN 일보라고 해서 이대로 몇 달 쫓아다니는 거 아닌가 걱정 많았는데.”
“그러게요. 저기가 원래 질기기로 그렇게 유명했잖아요.”
하람이 말대로 질긴 걸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BN 일보다. 어지간히도 겁을 먹은 모양이네.
솔직히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시도하려고 했던 여타 다른 방법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서 다행이군.
아마도 다음에 404호실에 갈 때면, 상당히 자만해하고 있을 사자의 모습이 벌써부터 그려졌다.
그래도 빠르게 일을 해결할 수 있었으니 그거면 됐다. 사자의 기분이야 대충 맞춰주면 되는 거고.
불필요한 손해 없이 일을 해결했으니 이만큼 좋은 일도 없었다.
“아무튼 떨어진 거면 경사네요. 이렇게 겹경사가!”
“겹경사?”
“빌보드요. 저희 이번에 빌보드 200 1위 했잖아요.”
하람이가 한껏 신이 난 얼굴로 말했다.
그랬었지. 감사하게도 이번에 나온 앨범 역시 빌보드 200에 차트인을 했다.
그것도 1위로.
- 윈썸, 美 빌보드 200 차트 1위!
지난 앨범이었던 ‘Face off’의 빌보드 200 차트 기록은 5위. 그런데 이제는 1위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경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