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화. 그 시절의 잔상
벽에 기대고 있던 신도하가 그대로 나를 향해 한 번 웃었다. 좀 전에 그저 서 있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찾느라 힘들진 않았어?”
“아뇨. 그렇진 않았습니다.”
“사실 그냥 대기실로 오라고 할까도 했는데, 왠지 네가 불편해할 것 같아서.”
불편?
“아무래도 시작 전부터 대기실에 들르는 지인은 드무니까. 대개 끝났을 때 오는 편이라.”
아, 그 말이었군.
하긴 사실 나 역시도 무대가 끝난 이후 방문하려고 했으니.
“그렇다 보니 주목을 받을 게 분명하고, 여기에 넌 워낙 유명인이니까. 여러모로 불편한 상황이 연출되는 건 싫어서.”
“···저보단 선배님이 훨씬 유명인이시라 생각합니다만.”
“요즘 윈썸만큼 인기가 좋은 아이돌도 없잖아. 나보단 당연히 세현이 네가 유명인이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오바였다.
게다가 요즘 기세가 좋다고 해도 그건 우리 그룹이다, 내가 아니고.
“물론 사실 원래는 시작 전에 만나는 걸 그리 선호하지 않는 편이긴 해.”
신도하가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무대 전에 예민한 타입이었지. 신도하. 이전에 루트 리얼리티에서 얼핏 봤던 기억이 있었다.
근데 그럼 역시 굳이 지금 볼 필요가···.
“지금은 괜찮아.”
“예?”
“오히려 힘이 나서.”
그러더니 다시 한번 웃는다.
···대충 컨디션이 좋다는 얘기 같은데. 평소 루틴을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그럼 재밌게 봐. 아, 끝나고 나도 해줘.”
“? 뭘요?”
“감상평.”
한껏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감상평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와중에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인 게 느껴져 더 당황스러웠다.
“···한줄평도 괜찮은 거죠?”
“한줄평은 별로 안 좋아해서. 난 웬만하면 다 장문으로 쓰는 주의거든.”
저건 백퍼센트 거짓말이고.
결국 어떻게든 듣고 말겠다는 기세였다.
감상평은, 그다지 소질이 없는데.
“기대 많이 하고 있을게.”
그렇게 신도하가 아까보다 한층 더 밝아 보이는 얼굴로 웃었다.
···이 사람, 지금 재밌어하는 게 분명했다.
* * *
그렇게 신도하와 잠깐의 만남 이후, 다시 공연장으로 되돌아가는 길. 그 순간, 무심코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아, 꽃.’
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기껏 샀는데.
“세현아, 이거 여기 두고 갔었어.”
“네. 까먹었어요.”
하지만 다행히도 매니저 형이 꽃을 잘 보관해주고 있었다.
근데 어차피 꽃은 다 끝나고 수고했다는 의미로 주는 거니 상관없긴 하지. 시작부터 주는 것도 좀 이상하긴 하다.
‘나중에 주면 되지, 뭐.’
모로 가도 주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그 뒤로 짧은 기다림 끝에 마침내 콘서트가 시작됐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공연장엔 시작 전이 아닌 시작 후에나 입장했다.
막상 좌석에 가보니 관계자석인 건 분명한데, 어째 주변 좌석들이 텅 비어 있었다. 정확히는 내 양옆, 앞뒤만.
‘괜히 더 튀는 느낌인데.’
물론 어차피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제대로 눈에 띄지도 않을 터긴 했다.
초대석이다 보니 배정된 좌석은 무대에서 꽤나 가까운 자리였다. 그리고 그대로 무대 위 신도하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드넓은 무대 위, 그 무대 위에 홀로 서 있는 신도하가. 시작부터 익숙한 멜로디가 귓가를 울렸다.
‘데자뷔.’
이는 신도하의 1집 솔로 앨범 타이틀곡이었다. 물론 도중에 입장한지라 중간부터 듣게 됐지만.
[익숙한 이 광경]
[낯설지 않은 너의 모습]
[언제나 넌 늘 처음처럼]
[내게 다가오지]
‘···역시.’
잘했다. 노래를.
정말 다시 한번 놀랄 만큼.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와 같은 Dejavu]
[분명 이건 나의 Dejavu]
‘무섭게도 잘하는군.’
보면서 내내 그런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무대를 하면 할수록 더더욱 느껴졌다.
감정, 발성, 성량, 음색.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스킬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렇게 감탄은 다음 무대로, 또 그다음 무대로 계속 이어갔던 것 같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몇 곡이나 지나 있던 상태였으니까.
‘···여전하네.’
그러다 보니 문득 예전 생각이 나기도 했다. TV에서 한창 루트의 무대를 봤었을 때.
어렸을 때, 난 루트의 무대라면 닥치는 대로 보곤 했다. 가장 큰 이유는 형을 보기 위해서였지만, 다른 한 편으론 노래가 듣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늘 멋있었던 루트의 무대를, 좋았던 노래를.
그래서일까.
저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신도하의 목소리가 여전히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직관하게 될 줄은.’
형이 루트를 나오고 난 뒤에도 이렇게 다시 루트 멤버의 무대를 직관할 날이 올 거라곤 전혀 예상 못 했다.
그러고 보니 다른 루트 멤버는 오지 않는 건가. 일단 오늘은 권해진이나 박시겸과 같은 다른 멤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
‘아.’
그러던 도중, 다시금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The end of Winter’이었다.
무대 뒤 Led 배경에는 이에 맞춰 눈이 잔뜩 쌓인 나무 한 그루와 그 나무 주변으로 흩날리고 있는 눈송이들이 보였다.
이윽고 그레이색 마이크를 잡은 신도하가 이내 노래를 시작했다.
[The end of winter]
[겨울의 끝에서]
[하얀 비를 맞으며]
[순간을 기다릴게요]
그런 신도하의 목소리가 공연장 전체를 잔잔하게 울렸다. 잔잔하면서도 강하게. 여전히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하얀 하늘 아래서]
[회색의 우산을 들고]
[이곳에 서 있을게요]
[My love]
그 순간, 화면 속 희미하게 웃는 신도하와 실제로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그런 착각이 왠지 모르게 들기도 했다.
* * *
콘서트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와중에 라이브가 완벽했다.
완벽해도 너무 완벽해서 놀랄 정도였다.
이래서 다들 신도하 콘서트, 콘서트 하는 건가. 물론 루트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새삼 배워야 할 점이 많음을 다시 느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신도하의 실력은 그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보통 발성을 어떻게 연습하는지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물어볼까도 싶고.
노래뿐만 아니라 퍼포먼스적으로도 좋았다. 신도하는 메인 보컬을 맡고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춤 실력 역시 뛰어났다.
‘전체적인 구성도 직접 한 거겠지.’
콘서트에 선곡된 곡들의 유기성이 워낙 좋아 이것과 관련해서도 궁금해졌다.
어느덧 3시간의 무대가 끝나고, 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금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앵콜 무대가 궁금하긴 했지만, 그것까지는 보지 못할 듯했다.
“인사하고 갈 거지?”
“네.”
그리고 그 길로 대기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동시에 매니저 형이 내 품에 있던 꽃다발을 보며 웃었다.
“이번엔 까먹으면 안 된다. 잘 챙겨.”
이에 알겠다는 의미로 그대로 꽃다발을 한 번 들어 보였다. 이번엔 정말로 까먹으면 안 되긴 했다.
“맞다, 사진도 찍겠지?”
“어, 그럴 것 같긴 해요.”
지난번 우리 콘서트에 왔을 때도 사진을 찍었으니. 아마 이번에도 신도하와 사진을 찍지 않을까 했다.
우리 쪽 SNS는 아니고, 신도하의 SNS에 올라가게 되겠지만.
콘서트가 끝난 후에도 당연하게도 무대 뒤편은 여전히 혼잡했다.
여기에 오늘 초대받은 다른 인맥들도 있을 테니 간단한 수고 인사와 함께 꽃만 전달할 생각이었다.
‘감상평은···.’
일단은 한줄평으로 대신하고, 혹시나 불만 사항이 생긴다면 나중에 따로 전하든가 하면 되겠지.
애초에 장문을 요구한다는 게 양심이 없다.
그리고 이내 신도하의 대기실 앞에 도착했다. 역시나 사람이 많기는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스텝을 포함해 여러 사람이 섞여 있는 터라 일단 신도하가 어디 있는지를 찾아야만···.
“세현아.”
하지만 어느새 먼저 신도하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눈도 좋네.
복잡한 인파 속에서도 잘도 알아봤다.
무대에서 내려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그런 신도하의 이마엔 약간의 땀이 맺혀 있었다.
그렇게 신도하가 나를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윽고 내 앞에 선 순간, 밝았던 신도하의 표정이 천천히 변했다.
조금 멍해진 얼굴로.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표정이었다.
‘···뭐지?’
조금 놀란 것도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그저 멍한 표정인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일단 신도하를 불렀다.
“선배님.”
“···아, 응.”
그리고 그제서야 정신이 좀 든 얼굴을 한다. 혹시 어디가 안 좋은 건가. 그래도 일단은 가져온 꽃다발을 그대로 신도하에게로 건넸다.
“오늘 무대 잘 봤습니다.”
“그래, 고마워.”
그리고 그때서야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뭔가에 좀 놀라는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꽃, 고마워.”
“아, 네.”
그렇게 신도하에게 손에 든 꽃다발을 건네려 하는데, 찰나의 순간 신도하의 손과 맞닿았다.
- 번쩍!
[“────”]
[“─────”]
그리고 보였다.
아주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장면이 보였다. 마치 파노라마처럼 무언가 눈앞을 빠르게 스쳤다.
기억이었다.
‘신도하의 기억.’
신도하의 기억.
앞서 보인 것은 분명 신도하의 기억이었다.
순간 보인 기억에 그대로 잠시 혼란이 일었다. 지금, 기억이, 방금전 분명 기억이 보였다.
마치 조금 전 있었던 일인 마냥 선명하게.
‘근데 그렇다면 왜···.’
여기에 앞서 본 장면은 나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 기억 속엔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분명히 보였고, 있었다.
그 장소에, 그 공간에.
그러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그 기억은 내 기억 속에서는 완전히, 잊혀져 있던 기억이었으니까.
“세현아.”
그리고 그때, 다시 한번 들리는 신도하의 목소리에 그대로 고개를 들었다. 현실 속의 신도하가 여전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문득 그런 어이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신도하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었다.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억 속의 신도하와 지금의 신도하는 거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해?”
“···아뇨. 아닙니다.”
와중에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통에 조금 놀랐다. 하지만 그러한 중에도 역시나 조금 전 봤던 기억이 마치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또 부작용이···.’
그간 조금 잠잠한 것 같았던 부작용이 다시 번졌다. 다른 것보다 이렇게 기억을 보는 부작용은 역시나 달갑지 않았다.
더불어 한 번 발생하면 그때 봤던 잔상이 쉽게 사라지지 않은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눈앞의 감각이 아직까지 어지러웠다.
“세현아.”
그리고 그때, 신도하가 다시 나를 불렀다.
조금 전과 다르게 평소보다 살짝 가라앉은, 차분한 목소리였다.
“혹시 기억해?”
그리고는 내게 물었다.
하지만 그런 신도하의 물음에도 나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조금 전, 봤던 기억 속에서 있던 예상 못 했던 인물.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인물.
그건 바로 나였다.
신도하의 기억 속에서 봤던 장면엔 어린 시절의 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