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화. 잠식되는 공간 속에서
기억하냐는 그 물음에 나는 그대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아직까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기억, 못 하는구나.”]
그와 동시에 신도하의 생각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알고 있지만, 봤지만, 기억을 못 하는 게 맞았기 때문에.
“그래.”
들리는 목소리에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 이윽고 시선이 마주하자, 신도하는 언제나와 같이 웃는 얼굴을 보였다.
“꽃이 굉장히 예쁘네. 고마워.”
화제가 달라졌다.
달라진 분위기와 함께 화제 역시 어느새 다른 것으로 넘어가 있었다. 마치 언제 그랬냐는 양.
‘···하지만.’
이대로 넘어갈 순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신도하를 다시 한번 붙잡았다. 그때 그 기억을, 방금 전 내가 본 기억을 한 번 더 묻기 위해.
신도하의 기억이긴 했으나, 그건 내 기억이기도 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놀랐잖아, 세현아.”
그 순간, 눈앞에 있던 신도하가 다시금 웃어 보였다. 이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그런 신도하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
그렇게 서둘러 잡았던 손을 놓았다.
···급한 마음에 막 잡았다. 진짜 제대로 급발진이었다.
거기에 민망하게도 신도하는 여전히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그리고 예상외의 그 말에 나는 다시금 신도하와 마주했다. 놀란 나와는 다르게 신도하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콘서트가 모두 끝난 시점.
공연장 안엔 어느새 모두 불이 꺼져 있는 상태였다.
그에 따라 주변은 사람 하나 없이 고요했고, 조용했다. 콘서트의 인파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나는 홀로 차 안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익숙한 차량이 아닌 새삼 낯선 차량이었다.
신도하의 차량이었다.
그렇게 나는 차 안에서 신도하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늦는다고 얘기했고.’
멤버들에게도 이미 메시지를 보내 놓은 상태였다. 예정보다 좀 늦을 것 같다고.
어차피 간단하게 얘기만 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방금 전, 내가 봤던 그 장면에 대한 이야기.
그 기억에 관한 이야기만 조금.
느낌상 신도하가 앞서 물었던 질문, 기억하느냐의 그 ‘기억’은 아마도 내가 봤던 장면과 일치하는 것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본 기억도 일부분에 불과하니.’
아주, 아주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 난 대충 9살에서 10살 정도 되어 보였고···.
‘뭘 들고 있었는데.’
웬 다발 같은 걸 하나 들고 있었다.
장소 역시 꽤나 희미했고.
- 덜컹!
“미안, 오래 기다렸어?”
그리고 그때, 운전석의 문이 열리며 신도하가 들어왔다. 조금 전과는 다른 편한 사복 차림이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벨트 맸어?”
“예?”
“장소를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비록 인파가 빠졌다고 해도 위험 요소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잘하네, 벨트.”
“?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러자 신도하가 이내 입꼬리를 올린 채로 전방을 응시했다.
“그냥 아쉬워서 한 소리였어.”
그렇게 신도하 역시 벨트를 맨 뒤, 시동과 함께 이내 핸들을 돌렸다.
* * *
도착한 장소는 콘서트장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어느 공터였다. 한강 근처에 있는 공터.
그곳에 잠시 차를 세웠다.
예상대로 조용하고 한적했다.
“아까는 나도 모르게 물었던 거였어.”
그리고 신도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꽃다발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놀라서 말이야.”
“···꽃다발이요?”
“응. 꽃다발. 알지 모르겠는데, 꽃다발이랑 굉장히 잘 어울려.”
그건 뭔 뜬금없는 말이냐.
히죽거리는 걸 보니 이건 그냥 하는 말 같고.
“기억 못 하는 것 같지만, 예전에 너한테 꽃을 받은 적이 있었거든.”
“구체적으로 언제를 말씀하시는 건지···.”
“아마 10살···정도라고 생각하는데. 그때가 데뷔 3년 차쯤 되었을 때니까. 9살 때든 10살 때든 귀여웠는데. 그래서 헷갈리네.”
데뷔 3년 차.
그렇다면 10살이 아니라 11살이었을 거다. 10년 전이니까.
그리고 그때쯤이라면 분명 루트가 한창 월드 투어에 나섰던 때 아니었던가. 그것도 규모가 상당히 큰 투어.
‘그리고 나도 그 투어에 몇 번 간 적이 있었고.’
그 당시 북미, 유럽 등 여러 나라를 스타디움 규모로 돌던 루트였다. 그래서 나 역시 부모님과 함께 형의 투어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러니 신도하와 만났다면, 그때였을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그 순간, 어떠한 기억이 짧게 스쳤다. 어, 그러고 보니 관련 기억이 얼핏 나는 것 같기도···.
“내 인생 가장 소중한 기억 중 하나야.”
“예?”
“그래서 사실 이건 누구와도 공유할 생각이 없었는데. 그게 설령 기억의 당사자여도 말이야.”
신도하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아까 화제를 돌리려고 했던 건가.
그때도 느꼈지만, 만약 그때 내가 잡지 않았더라면 신도하는 끝까지 입을 다물었을 거다. 실제로 말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까 표정을 보니 그대로 입을 다무는 건 좀 마음이 그렇더라고.”
아, 잠깐. 표정?
···표정이 그렇게 나빴었나.
“그때 세현이 네가 되게 예쁜 꽃다발을 들고 있었는데.”
···뭐?
“지금도 잘 어울리지만, 그때도 굉장히 잘 어울렸거든. 꽃다발이 굉장히 예뻤어.”
동시에 신도하가 작게 웃었다.
* * *
데뷔 3년 차, 루트는 두 번째 월드투어에 나섰다.
투어의 규모는 이전보다 배로 커진 스타디움 규모의 공연으로, 약 한 달가량을 해외에서 보내야 할 일정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의 콘서트가 끝났다.
“도하 씨, 오늘 수고 많았어요.”
지나가던 공연 스텝 한 명이 신도하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에 신도하 역시 밝은 얼굴로 이에 화답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스텝이 지나간 뒤, 이내 신도하는 다시금 물병을 들어 목을 축였다. 무대 직후이기 때문인지 아직까지 몸에 열기가 맴돌았다.
데뷔 3년 차, 21살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신도하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슬럼프란 이름의 아주 긴 터널을.
커진 규모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넓어진 공연장 때문인지.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신도하는 공허한, 그러면서도 꽤 강한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충족이 안 돼.’
무대를 해도, 오히려 하면 할수록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만 받았다. 해냈다는 성취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확신이 사라졌다.
지금 자신이 한 이 무대에 과연 괜찮은 무대였는지, 이렇게 사람들이 열광할 정도의 노래였는지, 아무런 확신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오늘은 음이탈.’
그리고 그 탓인지 컨디션이 좋지 않은 오늘 같은 날엔 음이탈까지 나기 일쑤였다.
무대를 망쳤다.
그런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리고 그럴수록 그런 자신이 한없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얼마 남지 않은 물병을 붙잡은 채 계속해서 목만 축였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계속해서 채우듯이.
그런데 그때, 손에 있던 물병이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이에 고개를 드니 그대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물도 없는데.”
우도현이었다.
“아, 그새 다 마셨네.”
“빈 병 불고 있지 말고 새 거 마셔.”
동시에 우도현이 가지고 있던 물병을 그대로 신도하에게로 넘겼다. 그리고 이내 물병을 건네받은 신도하가 우도현을 향해 미소 지었다.
“고마워.”
건네받은 물이 시원했다.
느꼈던 갈증이 조금은 해소될 만큼.
하지만 그렇게나 물을 들이켜도 그 안에 있던 무력감은 여전히 잠식되지 않은 채였다.
그럼에도 신도하의 이러한 무력감은 바깥으로 전혀 표출되지 않았다. 그저 언제나처럼 무대에 서고, 노래할 뿐이었다.
슬럼프가 깊어질수록, 그리고 길어질수록 신도하는 더더욱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게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 중 하나였으니까.
‘머리 아프군.’
그렇지만 그 내면은 그저 끝없이 예민해져만 갔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잃은 사람은 결국 그 확신을 어떻게 채우는 걸까. 어떻게 해야 이 텅 빈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걸까.
그런 생각에 잠식되어 있었다. 그땐.
그렇게 하루하루 무대 위에 오르며 전 세계를 투어하고 있을 시점, 어느새 북미 투어에 접어들었다. 첫 공연지는 미국 LA.
“도현이, 오늘 기분 엄청 좋아 보이네.”
“오늘 세현이 왔잖아요. 객석에.”
“아, 오늘 세현이 왔어?”
이에 우도현이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시작 전부터 우도현은 유독 기분이 좋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동생이 온다고 했었지.’
몇 달 전부터 이야기하던 게 오늘이었군. 가족이, 동생이 공연장에 올 때면 우도현은 늘 눈에 띄게 컨디션이 좋았다.
그때가 되면, 평소엔 쉽게 보지 못하는 표정을 종종 보일 정도로.
‘노래 잘하는 동생이었지.’
분명.
그렇게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노래를 잘한다고.
물론 이전에도 대기실에서 몇 번 봤던 적이 있었다. 만난 적도 있고.
우도현과는 그리 닮지 않은 귀여운 아이였다. 그리고 꽤 조용한. 그 나이에 아이치고 꽤 말수가 적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형을 많이 좋아했다.
그게 눈에 보였다.
우도현이 그렇게나 아끼는 귀여운 동생.
‘···그래, 그랬었지.’
그러니 분명 평소라면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그러한 사실을 묵묵히 인지할 뿐이었다.
지금의 신도하는 그와 같은 것을 일일이 신경 쓸 정도로 여유가 있지 못 했다.
‘···하.’
그리고 오늘도 역시 무대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심지어 도중에 음정을 한번 놓칠 뻔한 적도 있었다. X친놈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신도하는 오늘도 역시 물을 하나 가져와 대기실 구석 어딘가에서 조용히 들이켰다.
여전히 갈증이 가시지 않았다.
대기실은 여전히 소란스러웠고, 어지러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신도하는 그렇게 홀로 공허하게 앉아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밝은 미소를 보이면서도 그렇게 공허하게. 그렇게 홀로.
그런데 그때, 그런 신도하의 눈앞으로 무언가가 불쑥 내밀어졌다.
‘······?’
사탕이었다.
예쁘게 포장된 막대가 긴 사탕.
“형아.”
그때, 다시 번 들리는 목소리에 신도하가 그대로 이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조금 낮아진 시선.
“이거 줄까요?”
그곳엔 우세현이 있었다.
* * *
신도하는 그렇게 눈앞에 내밀어진 긴 막대의 사탕을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사탕 꽃다발이야?”
“네.”
이제 보니 우세현은 품에 큰 다발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다발은 꽃이 아닌 사탕이 가득한 사탕 꽃다발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중 하나를 꺼내 자신에게 건네고 있었다. 그 작은 손으로.
“이거 하나 줘도 돼? 도현이 주려고 가져온 거 아니야?”
“······.”
그러자 잠시 고민하는 얼굴을 보였다. 품에 있던 사탕 꽃다발은 역시나 우도현에게 선물하기 위해 가져온 게 맞은 모양이었다.
“···형아한테는 내가 하나 먹었다고 하면 돼요.”
짧은 고민 끝에 나온 당당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 말에 신도하는 순간 웃음을 참지 못할뻔했다.
안 되지, 안 돼.
열심히 고심한 생각에 웃어선 안 됐다.
“근데 왜 사탕 꽃다발이야? 그냥 꽃다발도 아니고.”
“형아가 이거 좋아하거든요.”
“···도현이가?”
“네.”
그리고선 다시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우도현, 애한테 어디까지 뻥을 쳐놓은 건지.
우도현은 본래 단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나 사탕이라면 입에도 잘 안 댔다. 단 건 질색이라면서.
‘그런데도 굳이 사탕 꽃다발이 좋다고 한 건.’
아마도 그냥 세현이가 귀여워서가 아닐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탕이 가득 담긴 다발과 우세현은 정말로 잘 어울렸다.
“고마워, 그럼 잘 먹을게.”
그리고 그렇게 신도하는 환하게 웃음과 동시에 손에 있던 사탕을 받아들였다. 받아 든 그 사탕에 기분이 좋았다.
동시에 우세현이 뿌듯한 얼굴을 보였다. 그걸 보고 있으려니 괜히 더 기분이 좋아졌다.
나중에 우도현이 이 사실을 알기라도 하면 얼마나 노발대발할지 그것도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고.
“근데 이거 형 왜 주는 거야? 소중한 사탕이잖아.”
지금도 소중히 품에 안고 있는 꽃다발이었다. 형이 오기 전까지 마치 자신이 소중히 간직하겠다는 것처럼.
그런데 그 소중한 걸 지금 왜 자신에게 주겠다는 건지 궁금했다. 여기저기 주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단 하나만. 하나만 빼어서 자신에게 건넸으니까.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우세현은 그대로 짧게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힘들어 보여서요.”
“···뭐?”
순간 나온 예상 못 한 대답에 신도하는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리고 그런 신도하를 향해 우세현은 한 번 더 말했다.
“형아가 힘들어 보여서요. 그래서 주고 싶었어요.”
그 대답에 신도하는 이내 놀란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