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화. 들려온 작은 한마디
신도하는 그렇게 잠시 말문이 막힌 채로 있다가 이내 다시 정신을 되찾았다.
“형이, 힘들어···보였어?”
이에 우세현은 말 없이 그대로 고개를 작게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신도하는 그런 우세현을 다시 한번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렇게 티가 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것도 이렇게 어린아이의 눈에까지.
오히려 주변 스텝들은 오늘따라 더 밝은 얼굴인 거 같다며 먼저 말을 걸 정도였다.
신도하는 늘 표정 관리에 탁월했다.
그것이 무대 위든 아니든.
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남에게 솔직하게 비추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서인지 때로는 속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하지만, 그게 신도하에게 있어선 그리 나쁜 의미가 되지 못했다.
“세현이는,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냥요. 그냥 그래 보였어요.”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았나.
이렇게 되면 급하게 모니터링을 다시 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었다. 설마 무대 위에서도 그랬을까 싶어서.
“근데요.”
그리고 그때,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신도하는 다시 자연스럽게 그런 우세현과 시선을 맞췄다.
“응.”
“노래 엄청 잘하는 것 같아요.”
“누가?”
“형아요.”
뭐?
이에 신도하는 또 한 번 당황했다.
“어, 세현이 눈엔 형이 노래 잘하는 것 같아?”
“네.”
“얼만큼?”
그러자 우세현은 잠시 고민하는 얼굴을 하더니 이내 단호한 모습으로 말했다.
“엄청요.”
새삼 진지한 표정으로.
이에 신도하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미소가 지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솔직하고도 정직한 그 대답에.
“형아가 제일 빛나요. 무대에서.”
하지만 다음에 온 그 말엔 곧바로 미소가 사라졌다. 가장 빛난다는 그 짧은 한마디에.
그리고 그런 신도하의 입에서 미소가 사라진 이유는 이번에도 역시 조금 놀랐기 때문이었다.
앞선 우세현의 말, 그 작은 한 마디는 신도하에게 어떠한 굉장한 울림을 주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그에게 크게 다가왔다.
이제껏 제 안에 있던 강한 의문,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을 대신해준 것 같은 그런 한마디였기 때문에.
잘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지금 내가 하는 방향이 옳은 방향인가.
루트의 무대를 내가 지금, 빛내고 있는가.
그런 수많은 의문들을 잠식시켜주는, 그런 한마디. 어쩌면 지금, 자신에게 가장 필요했던 한마디.
그리고 그 답을 우세현은 마치 신도하의 마음을 꿰뚫듯 말해주었다. 자신도 잘 몰랐던 그 답을 안겨주고 있었다.
“무대, 좋았어?”
한 번 더.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로 그랬냐고.
그리고 그런 신도하의 물음에 우세현이 고개를 크게 한번 끄덕였다. 여전히 흔들림 없는 대답이었다.
거짓 없이 투명한.
그리고 이를 본 신도하의 입가엔 다시금 미소가 번졌다. 어쩌면 그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일지도 몰랐다.
그것을 신도하는 오늘 비로소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의 무대를 본 이 작은 관객에 의해서.
마치 여지껏 내내 찾지 못했던 답 하나를 이제야 찾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도현이보다 더?”
동시에 조금 짓궂게 물었다.
우도현보다 내가 더 멋있었냐고.
그러자 우세현은 잠깐 놀라는 듯하더니 이내 얼굴을 찌푸린 채 말했다.
“우리 형아보다 멋있는 사람은 없어요.”
단호한 대답이었다.
이보다 더 단호할 수는 없을 정도로 단호한 대답. 그와 동시에 신도하가 다시금 미소 지었다.
“그럼 앞으로 도현이보다 멋있어지려 노력해야겠네.”
그러자 다시 한번 우세현이 표정을 찡그렸다. 그러면서 우리 형아보다는 멋있을 수 없다는 얘기를 또다시 작게 덧붙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 다시 웃었다.
우세현의 그 작은 한마디는 신도하에게 있어 어떠한 확신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신도하는 손에 잡은 그 확신을 놓치지 않았다.
길고도 길었던 어두운 터널.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을 때, 누군가의 손에 의해 신도하는 잃었던 방향을 되찾았다.
그리고 작은 빛을 발견했다.
아주 작은 손에 의해서.
목이 탈 것 같던 갈증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 * *
“그때 받았던 꽃은 아직까지도 집에 잘 보관하고 있어.”
신도하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꽃이라고는 이야기하지만, 실제는 사탕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랬었군요.”
“생각해보면 사탕이라서 다행이기도 해. 아니면 보관하기 참 힘들었을 테니까.”
···아무리 사탕이라고 하더라도 10년이 넘도록 보관하고 있다는 건 대단한 것 같은데.
“어때, 이젠 좀 기억이 나?”
신도하가 나를 향해 물었다.
방금 전, 신도하가 이야기했던 일은 내가 신도하의 기억 속에서 봤던 장면과 정확히 일치했다.
사탕이 담긴 꽃다발을 들고 있던 나.
그리고 그 앞에 있던 신도하.
동시에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당시의 일이 조금이지만 일부분 떠오르기도 했다.
형이 미국으로 월드 투어를 갔었을 때.
그때 부모님과 함께 꽃다발을 들고 응원을 갔던 일. 그리고 그곳에서 신도하를, 아니 루트의 무대를 봤던 일.
그리고 그때의 신도하의 표정 같은 것이 말이다.
그렇지만, 당시 신도하가 그런 상황이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바였다.
그저 생각이 무거워 보였다.
그날, 그곳에 있던 그 누구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다가갔다.
눈앞에서 들리는 그 무거운 생각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
“그 뒤로도 몇 번 만나기도 했었는데. 그때마다 노래 얘기도 같이하고.”
“그 뒤에요?”
“응. 대기실 같은 곳에서. 아, 너희 집에서도 있고.”
듣고 보니 신도하가 집으로 온 적도 있었던 것 같다. 형이랑 같이.
“언제나 노래 얘기를 하면 눈이 반짝반짝 빛났었는데. 그래서 노래를 굉장히 좋아하는구나 했었어.”
신도하가 그때를 회상하듯 말했다.
다른 건 얼핏 기억이 나는데, 노래 이야기를 한 것까지는 잘 안 났다.
그렇지만, 신도하의 말에 맞을 거다.
그때도 당연히 노래를 좋아했으니까.
“그리고선 연습은 싫어한다고도 하고.”
“···예?”
“도하 형처럼 노래를 잘하려면 늘상 열심히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더니 연습은 싫다고 하더라고.”
동시에 신도하가 그대로 웃었다.
아, 그건···아마 연습 싫어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엔 한창 ‘연습’을 싫어하던 때라.
정확히는 연습하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닌, ‘연습’ 그 자체를 싫어하는 거였다.
그놈의 연습 때문에 형을 못 만난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라.
그 당시 형이 연습 때문에 집에 오지 못한다, 연습 때문에 연락을 못 했다는 얘기를 자주 하던 때라 연습을 격하게 싫어하던 시절이 있었다.
연습의 ‘연’자만 나와도 싫어하던, 그런 때.
“그래서 연습을 게을리하는 건 아닐까 했는데. 전혀 아니더라고. 오히려 너무 열심히 해서 놀랄 정도였어.”
신도하가 그대로 낮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신도하와 처음 예능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런 얘기를 했던 것도 같다. 연습 어쩌고 했던 이야기.
예전 일에 비롯된 거였나.
물론 어디까지나 생각에 불과하긴 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 안 나지만.
“세현이 넌, 여전히 한결같아. 노래를 좋아하는 거나, 눈치가 좋은 거나. 그리고···.”
동시에 신도하와 눈이 마주쳤다.
“배려심이 많은 거나.”
진지하게 말하는 그 말에 왠지 좀 민망해져 그대로 시선을 조금 돌렸다.
다른 건 몰라도 배려심은 아니었다. 그걸 느끼는 신도하의 기준이 이상하게 너그러운 것뿐.
“그리고 내 마음에 든 것도 여전하지.”
···뭐라는 거냐.
와중에 뻔뻔하게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달라진 게 있긴 하군. 예를 들면 호칭.”
“예?”
“형아에서 선배님이 됐으니까 말이야.”
그건 당연한 변화인 거 아닌가.
선배님을 선배님이라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불러.
“그래서 세현이 네가 생각하기엔 어때.”
“뭐가 말이죠?”
“아직도 도현이보다 덜 멋있나?”
그런 얘기를 지금 시점에서 묻는다는 게 참, 여전히 뻔뻔했다. 오늘 그 무대들을 보고 온 시점에서 묻는다는 게.
솔직히 오늘 신도하의 무대는 좋지 않은 무대가 없었다.
신도하는 내가 변한 게 없다고 했지만, 내가 느끼기엔 신도하 역시 변한 게 없었다.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그때처럼,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
정말로 모든 무대를 다시 한번 보고 싶을 만큼. 인상 깊지 않았던 무대가 없었다.
그 무대 위란 장소는 신도하에게 정말로 잘 어울렸다.
분명 그렇지만.
“당연히 형이 더 멋있죠.”
이건 내게 있어 불변의 법칙이다.
무슨 있어도 절대로 바뀌지 않을.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내 대답에 신도하는 순간 너털웃음을 짓더니 이내 말했다.
“그렇다면 더욱 최선을 다해야겠네.”
새삼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거, 말하는 걸 보니 그렇다고 할 때까지 다시 물을 기세인데.
“생각이 바뀔 일은 없습니다만.”
“영원한 게 어디겠어. 뭐든 변하기 마련이지. 또 절대 바뀌지 않는 걸 바뀌게 하는 것도 재미가 있는 법이고.”
“···재밌는 것도 아니고, 의미도 없을 텐데요.”
“나한텐 꽤 의미 있어서 말이야.”
그렇게 한 번 웃는다.
아, 신도하. 은근 승부욕이 있었지.
쓸데없는 거에 승부욕이 발동한 모양이다.
근데 나한테 그걸 인정받는다고 해서 공신력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생각에 따라선 형보다 신도하의 무대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넘칠 거다.
그래도 역시 형이 제일···아무튼 그렇다.
“이렇게 되니 감상평이 꼭 듣고 싶은걸.”
아, 감상평.
그러고 보니 그게 남아 있었다.
“정말로 궁금하신 거예요?”
“당연하지. 난 세현이 네 의견은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거든. 물론 지금 당장 하라는 건 아니고.”
까마득한 후배의 감상평이 도움이 될까. 아니, 단순히 의견만 듣는 거라면 상관없긴 하겠지만···.
“일단은···알겠습니다.”
그렇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기억에 특히 남는 몇몇 부분들이···아니, 솔직히 그것도 좀 많긴 한데, 어쨌건 그런 것들을 토대로 대충 말하면 되지 않을까.
“근데 한줄평도 궁금하긴 한데.”
“원하시는 게 너무 많으신 거 같은데요.”
“세현이의 한 줄 의견에도 관심이 많아서.”
그럴 거면 그냥 감상평을 한줄평으로 퉁쳐 줬으면 하는데. 그러면서도 왠지 모를 기대가 실린 게 보였다.
“···당연히 좋았습니다.”
“어떤 게?”
“다요.”
그리고 그런 내 말에 신도하가 그대로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앞으로 더 최선을 다해야겠네.”
“예?”
그렇게 한 번 웃고는 다시 곧 정면을 응시한다. 왠지 능글맞은 미소였다.
···어째 좀 불길하기도 하고.
그리고는 그대로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늘도 세현이 네 도움을 많이 받았어.”
그리고 그 말에 다시금 시선을 들어 신도하를 바라봤다.
“무대가 꽤 넓더라고. 혼자 서 있기엔 참 넓었어.”
마치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이었다. 그런 신도하의 시선은 여전히 정면을 향해 있었다.
‘혼자 서 있기엔 넓었다.’
어쩌면 그 이야기는···.
“그러고 보니 사탕. 그 사탕은 안 궁금해?”
동시에 신도하와 다시 시선이 마주했다.
아, 사탕.
“사탕···말인가요?”
“응. 아까 말했듯이 집에 잘 보관하고 있는데. 원한다면 직접 보여줄게.”
“아뇨. 괜찮습니다.”
“정말?”
당연한 거 아니냐.
이에 단호하게 말했다.
“네. 사진으로 받겠습니다.”
그러자 신도하가 이내 알겠다며 낮게 웃었다. 요즘 같은 카메라 화소엔 사진도 실물로 본 것처럼 아주 잘 나온다.
그러니 사진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