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화. 재밌는 목격담이 많네요
이번 라디오에는 중간 코너로 청취자로부터 게스트의 목격담을 받는 코너가 있었다.
“아, 가장 먼저 이런 목격담이 있네요. 선빈 씨, 한번 읽어주시죠.”
“얼마 전, 편의점에서 우연히 선빈 씨와 도운 씨를 봤어요. 두 분에서 되게 진중하게 우유를 고르고 계시던데, 보는 제가 다 훈훈해지더라고요.”
“두 분이 편의점에 가셨었나요?”
“네. 얼마 전에 잠깐 갔었습니다.”
“그런데 우유는 왜 그렇게 진중하게 고르셨던 건가요?”
“이제, 초코 우유를 살지 딸기 우유를 사야 할지 조금 고민하는 과정에서···.”
그대로 대답하던 차선빈이 작게 웃었다.
“그래서 결국 뭐로 사셨나요?”
“결국은 딸기 우유로 샀습니다.”
“아, 그렇죠. 딸기 우유가 진리죠.”
그렇게 하인혁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나니 언제였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때 꽤 고민을 오래 했다고 했었지.
“자, 그럼 다른 목격담도 계속 보겠습니다. 다음은 은찬 씨, 읽어주시죠.”
“네! 지난번에 은찬 씨가 길에서 호떡을 사 가시는 걸 봤습니다. 잘생겨서 눈길이 저도 모르게 가더라고요.”
동시에 백은찬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왜 웃는지 아주 잘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곧바로 옆에 있던 세현 씨에게 그대로 호떡 하나를 물려주시더라고요. 그거 보고 저도 그날 호떡 사 갔어요.”
“아, 이분도 결국 호떡을 사 가셨군요. 그때는 세현 씨랑 함께 나오신 건가요?”
“네. 맞아요. 저희 둘 다 겨울 간식을 좋아하거든요.”
동시에 시선이 마주한 백은찬이 그대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백은찬하고 같이 호떡을 사러 간 적이 종종 있었는데, 아마 그때인 듯했다.
“근데 직접 바로 먹여주신 건가요?”
“네. 원래 막 나왔을 때 먹는 게 맛있잖아요.”
“항상 은찬이는 본인이 들고 있어도 먼저 먹으라고 챙겨주는 편이에요.”
그리고 그런 내 말에 백은찬이 다시금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웃겨 나도 모르게 웃었다.
“아, 은찬 씨가 배려가 많으시군요.”
“하하. 그렇게는 아닙니다.”
그러면서 굳이 티 나게 아닌 척 손을 내저었다. 굉장히 좋아하는 거다, 저거.
“그리고 사실 세현이가 입이 좀 짧거든요. 그래서 많이, 빨리 먹여줘야 해요.”
“아하, 세현 씨가 입이 짧으시군요.”
짧은···가.
그렇게까지 짧진 않은 것 같은데.
나보다는 안지호가 짧은 편이다.
“하하. 재밌는 목격담이 많았네요. 그럼 다음은 2345님, 윈썸 분들 오늘의 TMI 하나 있을까요? 어때요. 오늘의 TMI 있으신가요?”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하인혁 선배의 시선이 어느 한쪽으로 향했다.
”먼저···하람 씨!”
“넵. 어, 뭐가 있을까요. 아, 저는 오늘 차에서 이동하면서 요즘 한창 인기 있는 <라이프 닥터>를 봤습니다!”
“와, <라이프 닥터>. 그거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죠~”
<라이프 닥터>는 요즘 한창 인기몰이 중인 온플릭스 제작 의학 드라마였다. 기본 의학물에 판타지에 적절하게 섞인.
“다른 분들은 안 보시나요? <라이프 닥터>.”
“저요. 전 봐요. 하람이랑 같이.”
“오, 은찬 씨도 같이 보시는군요. 지호 씨는요?”
“전 아직 안 봤습니다.”
“지호 형은 드라마를 그렇게 즐기는 편이 아니긴 해요.”
동시에 하람이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안지호가 원래 드라마를 챙겨 보는 스타일이 아니라.
“지호 씨는 드라마를 많이 보시는 편이 아니군요. 그럼 이건 어떤 가요, 혹시 다들 기억에 남는 드라마 있으세요?”
기억에 남는 드라마라.
일단 최근엔 드라마를 거의 안 봤다.
앞서 애들이 이야기했던 <라이프 닥터>도 나 역시 아직 안 본 상태고.
“세현 씨?”
그러한 와중에 하인혁 선배와 그대로 시선이 딱 마주쳤다. 이렇게 된 이상 뭐라도 말하고 봐야 했다.
어, 당장 생각 나는 게···.
“···전 <시간 감지자>요.”
“오! <시간 감지자>! 그것도 굉장히 재밌죠~”
동시에 하인혁 선배의 표정이 급격하게 밝아졌다. 반응을 보니 이 드라마를 상당히 재밌게 본 모양이었다.
“도현 씨가 나온 드라마잖아요. 저도 정말 재밌게 봤거든요. 지금도 가끔씩 생각날 때마다 다시 보기도 해요.”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도움을 받네.
고마워, 형.
순간 떠오른 게 작년에 형이 나왔던 <시간 감지자>뿐이라···.
“역시 세현 씨는 형이랑 사이가 좋으신가 봐요.”
“감사합니다.”
근데 역시가 들어가는 건···아, 그동안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나. 형이랑 찍힌 게 한두 개가 아니니.
“선빈 씨는요?”
“저는 <베이스> 재밌게 봤습니다.”
“아, <베이스>. 맞아요. 그것도 재밌죠.”
차선빈이 언급한 <베이스>는 야구를 소재로 한 스포츠 드라마였다. 스포츠 소재의 드라마임에도 최근, 꽤나 대중적으로 흥했던 인기 드라마였다.
“명드하면 <베이스>도 빠질 수 없죠. 그럼 선빈 씨는 어떤 역할을 제일 좋아하셨나요?”
“전 투수분을 좋아했습니다. 역할이 너무 멋있으셔서요.”
뒤늦게 차선빈이 한참 그 드라마에 빠졌었지. 차선빈이 이를 보기 시작한 건 종영한 지 이미 1년가량이 넘은 시점이었다.
보는 중엔 그저 조용해서 그렇게 재밌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마지막 회까지 다 본 이후에 추천이라며 이야기해주곤 했었다.
“그러고 보니 선빈 씨도 그런 역할 하시면 되게 잘 어울릴 것 같네요. 워낙 멋있으셔서.”
“감사합니다.”
차선빈이 작게 미소 지었다.
확실히 차선빈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 역할에. 워낙 피지컬도 좋고, 잘생겼으니.
“도운 씨는요?”
“저는 조금 지난 드라마긴 한데 <언컷>이라는 드라마를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잠깐의 드라마 이야기를 한 뒤, 이어지는 다음 질문으로 대화가 넘어갔다.
“자, 그럼 여기서 다시 한번 음악을 듣고 와야 할 것 같네요. 이번에 들을 음악 역시 귀를 녹이는 선곡이죠, 윈썸의 ‘Darkest’ 듣고 오겠습니다.”
* * *
“오늘 라디오 진짜 재밌었다.”
라디오를 끝내고 돌아가는 차 안.
백은찬이 그대로 만족스럽게 웃어 보였다.
“개인기가 생각보다 잘 통해서?”
“나름 괜찮지 않았냐?”
“오늘은 조금 비슷하긴 했어. 사이렌 소리.”
백은찬의 개인기 중 하나가 바로 여러 가지 소리내기라. 평소엔 별로 안 비슷한데 그래도 오늘 사이렌 소리는 좀 비슷했다.
“근데 우세현, 너도 같이 볼 생각 없어?”
“뭘?”
“<라이프 닥터>.”
아, 아까 말한 그 드라마.
“맞아요! 형들도 좀 보라고요. 이거 엄청 재밌다니까요?”
같은 시청자인 하람이까지 맞들고 나섰다.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정말 재밌나.
“관심 없어.”
“지호 형은 드라마 다 관심 없잖아요!”
“솔직히 말해봐, 안지호. 너 제일 최근에 본 드라마가 뭐냐?”
그러자 안지호가 이내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곧 다시 대답했다.
“<시간 감지자>.”
그러면서 내심 당당했다.
확실히 최근이긴 최근이네.
“우세현 따라서 본 거네.”
“그럼 그게 마지막이야?”
“어.”
이내 안지호가 대답했다.
이건 좀 고마운데.
정말로 첫 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같이 본방 사수 해줬으니까.
“뭘 그렇게 봐?”
그리고 그런 안지호를 향해 고마움의 시선을 보내고 있으려니 안지호가 이내 뭘 보냐는 듯 바라봤다.
“같이 볼래? <라이프 닥터>.”
“···생각해보고.”
어, 이건 확실한 긍정의 반응인데.
“와, 지호 형. 지금 생각해 보고래요! 나한테는 관심 없어. 이랬으면서!”
“오, 방금 성대모사 엄청 똑같다. 야, 앞으로 개인기 그걸로 밀어라.”
“아, 그래요? 이걸로 밀까.”
와중에 하람이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 비슷하긴 했다. 안지호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좁히고 있었지만.
“볼 때 불러라. 우세현.”
그리고 마치 확인하듯 다시 한번 말하는 안지호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응.”
이렇게 된 거 정말로 조만간 시간 내서 같이 봐야겠다. 이왕이면 재밌었으면 좋겠는데.
* * *
안지호랑 시간을 내서 같이 <라이프 닥터>를 보기로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거 아직 종영을 안 한 드라마다.
“형들, 앞에 빨리 보고 우리랑 같이 봐요.”
“너희 어디까지 봤는데?”
“11화요!”
완전 실시간으로 달리고 있었잖아.
하지만 이제 시작하는 거니 거기까지 가려면 한참 남은 셈이었다.
“그럼 그냥 지금부터 보면 되잖아?”
“안지호랑 같이 보기로 했어.”
“둘이 아주 견고하네. 질투 나게.”
“그럼 너도 1화로 오던지.”
“안 돼. 형은 미래만 보는 사람이라.”
그냥 12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럴 줄 알았다. 백은찬은 원래 재방송을 안 좋아한다.
“니가 11화로 와. 미래에서 기다린다.”
그렇게 갑자기 귓가에 속삭인다.
얼마 전에 그 애니메이션 영화를 봤다고 했었나.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그리고 그렇게 대기실은 화보 촬영 준비로 한창 바빴다. 오늘은 화보 촬영이 하나 있었다.
그래서 촬영 대기가 길어지는 만큼 그 사이 잠깐 서칭도 좀 했다.
커넥트도 들어가 보고, 모니터링도 다시 해보고. 여러 가지를···.
- 윈썸 선빈 연기하고 싶은데 IN 엔터에서 막고 있는 듯.jpg [342]
···?
이건 뭐야.
* * *
- 예전부터 차선빈이 IN에 연기 시켜달라고 요구했는데 매번 묵살 당한 거 맞는 거 같음 이번 라디오에서도 연기하고 싶다고 돌려 말하더라ㅋ
[DJ : 선빈 씨는 어떤 역할을 제일 좋아하셨나요?]
[선빈 : 전 투수분을 좋아했습니다. 역할이 너무 멋있으셔서요.]
[DJ : 선빈 씨도 그런 역할 하시면 되게 잘 어울릴 것 같네요.]
[선빈 : 감사합니다.]
└ 연기 욕심 있는 거 같네
└ 도대체 이걸 어디 봐서 연기하고 싶다는 말로 들림?
└ IN이 하도 안 시켜주니까 냅다 질러버린 듯ㅋㅋㅋㅋㅋ
└ 솔직히 저 얼굴로 연기 안하면 손해지
└ 선빈 오디션 보러 다닌다는 말 있던데
└ 이제 3년차인데 뭔 갠활?
차선빈이 연기와 관련된 개인 활동을 회사에 지속적으로 요구했다는 말도 안 되는 썰이었다.
‘이런 건 또 언제 나왔지.’
없는 얘기를 어떻게서든 짜 맞춘 기색이었다. 라디오 어쩌고 하는 말도 결국은 그냥 있는대로 갖다 붙인 것뿐이고.
하지만 어그로를 제대로 끈 건지 댓글이 한창 불타고 있었다.
‘젠장, 그새 렉카도 붙었잖아.’
와중에 이 글을 토대로 나온 사이버 렉카도 있었다.
[윈썸 선빈의 지속적인 연기 요구에도 IN 엔터테인먼트는 묵묵부답?]
심지어 조회수도 좀 있었다.
렉카가 붙은 탓인지 퍼지는 속도 역시 조금 빨라진 것 같았고.
‘어떻게 할까.’
이대로 가만히 있기엔 앞으로 뭐만 하면 연기 얘기가 엮여서 나올 터였다.
사실 이런 건 그저 무시하면 그만이긴 하지만, 벌써부터 개인 활동에 욕심내는 멤버로 이미지가 붙는다면 확실히 좋지 않다.
개인 활동 자체는 자연스러운 거라고 할 수 있지만, 지금 팀의 기세나 시점으로 봤을 때 나올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히 개인 활동으로만 이야기가 나온 게 아니다. 차선빈은 욕심을 내고 있고 회사는 이를 반대 하는 식의 루머다.
멤버와 회사가 의견 충돌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애초에 연기 요구라니.’
이제껏 차선빈의 입에서 연기의 ‘연’자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리고 그때, 문득 고개를 드는 순간.
앞에 있던 차선빈과 눈이 마주쳤다.
사전에 준비가 끝난 건지 차선빈은 앞머리를 살짝 깐 반깐 흑발머리에 깔끔한 블랙 자켓을 입고 있었다.
···아. 연기 얘기가 왜 나왔는지는 알 것도 같긴 한데.
동시에 차선빈이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라, 이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정말로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 그대로 차선빈이 내 앞에 섰다.
“불렀어?”
뭐?
그러더니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한다.
그리고 이내 그대로 있자 차선빈이 덧붙였다.
“부른 것 같아서.”
그렇게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을 하긴 했는데···텔레파시인가.
“아니, 부른 건 아니고.”
“그래?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더니 곧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는다.
“근데 물이 많이 빠졌다.”
“아, 머리?”
“응. 훨씬 연해졌어.”
이게 분홍색이라는 게 꽤나 관리가 어려웠다. 다른 색도 그렇지만, 물이 금방 빠져버려서.
하지만 멜로우들이 좋아하니 조금이라도 더 오래 유지하고 싶었다.
“아, 근데 세현아.”
“응.”
“아무래도 조만간 라이브를 할까 해.”
동시에 차선빈이 시선을 맞춰왔다.
“아, 라이브?”
“응.”
“혼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은 뭔데?”
“요즘 말이 도는 것 같아서.”
“뭐?”
“연기.”
뭐?
그 순간, 귀를 의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