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화. 비가 내리는 뉴욕
검색 결과, 정말로 이름이 나왔다.
그렇게 해서 나온 이름은 백뭉이.
생긴 대로 귀여운 이름이었다.
그나저나 역시 백은찬 인형이 맞았군.
“우리 애들 옆에 놓으면 딱이긴 하다. 좀 작긴 하지만.”
“우리 애들?”
“우리 애기들 있잖아.”
아아.
행운이랑 럭키.
그러기엔 사이즈가 좀 안 맞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같이 있으면 귀엽긴 하겠군.
“옆에 토끼도 한 마리 있으면 좋은데. 백뭉이 친구는 없나.”
“행운이가 어차피 토끼잖아.”
“그거랑은 또 다르지. 우토끼 같은 거 없나. 찾아보면 있을 것 같은데.”
동시에 백은찬이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그거랑 그거랑 어떻게 다른 건데?
그리고 그대로 창가를 바라봤다.
어느새 밖은 지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착했을 때부터 날씨가 그렇게 좋지만은 않더니, 결국 이렇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나마 실내라서 다행인가.’
일기 예보를 보니 공연 날까지도 비가 예정되어 있던데 하마터면 그대로 폭우 속에서 공연할 뻔했다.
야외무대에서 비가 내리면 고생하는 건 아티스트만이 아니다. 보시는 팬들 역시 고생이니까. 그것만큼은 사양하고 싶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예보가 맞지 않았으면 좋겠군.’
사실 지금도 지난 예보 상으론 폭우일 거라 예상했지만, 얇은 비만 내리고 있었다. 날씨는 여전히 우중충하지만.
그리고 얼마 안 가, 호텔에 도착했다.
이번 룸메이트는 안지호였다.
그런 안지호는 옆에서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서 있었다. 보아하니 방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눕겠네.
이어서 그대로 호텔 로비를 지나 중앙 엘리베이터를 향해 가고 있는데, 저 멀리 텅 빈 로비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곳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치장한,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홀로 앉아 있었다.
‘···뭐지.’
왠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남자를 보는 순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느껴지는 그 ‘기묘함’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남자의 시선이 움직였다.
‘아.’
그리고 마주쳤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눈이 마주쳤다.
창백하게 하얀 얼굴, 날카로운 눈매.
그런 남자를 보는 순간, 다시 한번 조금 전 느꼈던 기묘함이 느껴졌다.
이전보다 더욱 크고, 강하게.
“뭐 하냐?”
그런데 그때, 옆에서 안지호가 나를 툭 쳤다. 이에 고개를 돌리니 안지호가 정말로 뭐 하고 있냐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다 왔다.”
“어, 그래.”
그리고 다시 엘리베이터의 층수를 확인했다. 정말로 이제 곧 도착이었다.
그렇지만 굳이 다시 고개를 돌려 남자를 확인하진 않았다. 왠지 그래선 안 될 것 같은 직감에.
조금 전의 마주침은 어디까지나 우연한 마주침이라고 칭할 수 있었으나 여기서 한 번 더 확인하는 행위는 우연함을 가장 하기 어려웠다.
- 띵!
그렇게 엘리베이터가 왔다.
그리고 나는 평소와 같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때까지도 근처로부터 나를 향한 묘한 시선이 여전히 느껴졌으나 이에 굳이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로지 앞만을 응시했다.
* * *
방에 도착하자마자 안지호는 언제나처럼 짐부터 풀었다.
항상 침대에 누워있기를 좋아하는 안지호였지만, 피곤한 와중에도 외출복을 입은 채로는 눕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대로 근처에 있던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쩐지 피곤했다. 전날 잠을 못 자거나 장시간의 비행 탓도 있겠지만···.
‘그 후드.’
조금 전 마주했던 그 후드의 남성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 기묘함, 그건 분명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분명 일전에 다른 곳에서도 느껴 본 적 있는 것이었다.
“리허설, 언제라고 했었지?”
어느새 침대에 누운 안지호가 물었다.
“내일 오전.”
“<재생 (Replay)>, , 순이었지.”
“응.”
이번에 할 무대는 3곡이었다.
여기에 오랜만에 데뷔곡인 ‘재생 (Replay)’도 하게 되었다. 재생이 해외에서 반응이 꽤 괜찮았던 곡이라.
“근데 혹시 너 피곤하냐?”
“뭐?”
“아까부터 뭘 그렇게 멍때려.”
아, 그랬나.
솔직히 멍을 때렸다기보단 생각이 좀 많아진 거였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
“그냥 비행기를 오래 탔더니 피곤해서.”
“그럴 거면 눈 좀 붙이던지. 저녁 먹을 때까지 아직 시간 있어.”
이에 곧바로 시간을 확인했다.
안지호의 말대로 저녁을 먹을 때까진 아직 시간이 좀 있었다.
하지만 몸은 피곤할지언정 잠이 오진 않았다. 왠지 이대로 잠들면 안 될 것 같아서.
‘···괜히 지끈거리네.’
정말 수면 부족의 영향도 있긴 한 건지 두통이 조금 일었다. 이에 의자에 기댄 채 그대로 잠시 눈을 감았다.
─지이잉!
그런데 그때, 테이블 위에 두었던 폰이 진동했다. 확인해보니 백은찬이었다.
[은차닝]
: 편의점 갈 사람?
편의점.
이참에 바람이라도 쐴까.
“안지호. 갈 거야?”
“아니.”
“음료수?”
“하나 사···아니, 너 간다고?”
“응.”
그러자 안지호가 그대로 누워있던 몸을 반쯤 일으켰다.
“그냥 잠이나 자지.”
“잠보다 나갔다 오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음료수 사 오면 되지?”
그런 내 말에 안지호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떨떠름한 표정을 보였다.
안지호는 저녁에 군것질을 안 하는 편이라 보통 간단한 마실 거리였다. 특히나 해외에 오면 더 그렇고.
그리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두통이 좀 있긴 했는데, 아마 바람 좀 쐬고 나면 괜찮아질 듯했다.
“갔다 오면 바로 자라. 다른 곳으로 세지도 말고.”
“백은찬 방으로 안 세.”
“알았으면 바로 들어와.”
이에 알겠다고 전했다.
말하는 걸 보니 정말로 백은찬 방으로 셀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 너 우산도 챙겨라.”
“우산?”
그러고 보니 호텔로 들어올 때까진 비가 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오려나.
그리고 그대로 방을 나섰다.
한 손엔 이번에도 안지호가 챙겨준 우산이 들려 있었다.
[은차닝]
: 15층으로 와라 15층 건희 형도 간대
‘15층.’
매니저 형도 같이 가게 됐나 보다.
이어서 앞에 있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여기가 20층이니 조금만 내려가면 되겠군.
─띠링!
그렇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길로 15층의 버튼을 눌렀다.
[▼]
그렇게 엘리베이터 안은 아무런 소음도 없이 조용했다.
─띵!
그런데 그 순간, 잘 가던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동시에 고개를 들어 층수를 확인했다.
‘19층.’
보아하니 누군가 이 층에서 올라탈 예정인 듯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의 문이 눈앞에서 열리고, 그 순간 그 앞에 서 있던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
후드 쓴 남자였다.
* * *
검은색 후드의 검은색 바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치장한 남자가 이내 엘리베이터 안으로 올라탔다. 느리면서도 한편으론 여유로운 걸음으로.
‘······.’
여전히 날카로운 눈매였다.
그리고 남자가 이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가장 낮은 1층으로.
이어서 버튼을 누른 남자가 자연스럽게 내 옆으로 와 섰다. 침묵이 흘렀다.
좁지 않은 공간이었기에 그리 가까운 거리라고는 할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었다.
‘생각은···딱히 없군.’
혹시나 나와 마찬가지로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거나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남자의 생각에 잠시 집중해봤지만 들리는 생각은 없었다.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후드를 쓴 남자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앞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기억은 못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하지만 앞서 로비에서의 일이 아니더라도 원래 내 얼굴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니 이대로 조금 더 주의를···.’
─쿵!
그런데 그때, 엘리베이터가 다시 한번 멈췄다. 쿵! 하는 비정상적인 소리를 내며.
그리고 그 즉시 고개를 돌려 현재의 엘리베이터 층수를 확인했다. 17층.
‘멈췄다.’
엘리베이터가 17층에서 멈췄다.
이에 빠르게 비상 버튼이 없나 그대로 손을 들어 보이려던 순간,
─팟!
‘···X친.’
동시에 불이 나갔다.
그렇게 한순간에 어둠에 잠겼다.
* * *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멈춘 것뿐만 아니라 그대로 불까지 나갔다. 주변은 말 그대로 암흑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익숙해져야 해.’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 당황스러운 상황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일단은 빠르게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동시에 옆에 있던 엘리베이터의 바를 손으로 붙잡았다. 시야 확보가 불가능한 지금, 함부로 움직이는 것은 위험했다.
‘갑자기 뭐냐···이 상황은.’
그저 황당했다.
터무니없게 엘리베이터에 갇힌 이 상황이.
그와 동시에 한 번 더 집중했다.
옆에 있는 이의 생각에.
- 덜컹!
하지만 그 순간, 갑작스럽게 엘리베이터가 한 번 더 크게 움직였다. 동시에 다시 한번 몸이 크게 기울었다.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좋겠군.’
한 번씩 덜컹거리는 게 되도록 움직임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군.
동시에 알 수 없는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순전히 기분 탓인지 아니면 나간 전원 때문인지.
‘보인다.’
그 사이 눈이 익숙해졌다.
그에 따라 주변의 윤곽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이 상황은 엘리베이터 한정인 건가, 아니면 혹시 호텔 전체가 정전?’
하필 엘리베이터 안인 상황이라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만약 바깥까지 영향이 있는 거라면, 멤버들이나 매니저 형들이 걱정됐다.
‘젠장, 당연히 버튼도 안 먹히는군.’
급한 대로 ‘Help’라고 적힌 버튼을 눌러 보았으나 예상했던 대로 눌러봤자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면, 일단 휴대폰으로 연락을···.’
아, 휴대폰.
이내 주머니를 뒤져봤지만 폰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설마 테이블 위에 그대로 놓고 온 건가.
결국 지금 내 손에 있는 건 안지호가 준 우산 하나뿐이었다. 되는 일이 없었다. 이렇게 되면, 결국 기다리는 것밖에···.
“불이 안 들어오네요.”
그와 동시에 옆에서부터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도 그러면서 한없이 차분한 목소리.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렇게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나는 그대로 그런 남자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후드를 쓴 남자와 시선이 마주했다. 마주한 시선이 낯설지 않았다.
동시에 남자가 입꼬리를 올렸다.
“근데 그거 혹시 압니까?”
“···예?”
그리고는 뜬금없이 묻는다.
뭘, 아냐는 거지.
그리고 남자는 잠시 숨을 죽이는 듯하더니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호텔, 귀신이 나온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