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화. 말이 돌더라고요
앞선 남자의 말에 나는 그대로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귀신이 나온다고?
“얼마 전부터 말이 돌더군요. 이 호텔에서 종종 뭔가가 발견된다고 말이죠.”
“···뭔가라고요?”
“네. 십중팔구 귀신이겠죠.”
남자가 여전히 변조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런 남자의 표정 또한 변화가 없었다. 이런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 치곤.
‘지금 상황에서 굳이 이런 얘길 할 이유가 있나.’
멈춰진 엘리베이터에 설상가상으로 정전까지 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그런 얘기를 꺼내는 건.
“혹시나 하는 거죠. 지금 발생한 이 일이 그것과 관련된 게 아닌가 싶은.”
“······.”
···그것.
다시 말해 남자는 지금의 일이 앞서 나온다던 그 귀신 소동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 건가, 지금.’
하지만 그런 남자의 생각을 확인해보려 해도 여전히 들리는 게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해 진심이다. 방금 전 그 말은.
“···지금은 그런 것보다도 도움을 구할 생각부터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보통 무서워하는 편입니까?”
“뭐가···말이죠?”
“귀신이요.”
이제는 뜬금없는 물음이었다.
“화제를 돌리는 걸 보니 혹시나 무서워하는 건가 싶어서요.”
“···더 중요한 화제를 꺼낸 것뿐입니다만.”
“아마 곧 들어올 겁니다.”
뭐?
그리고 남자는 그대로 천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전등이 있는 곳이었다.
─깜빡!
그와 동시에 나갔던 등이 다시금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깜빡거림을 반복하던 등은 이내 다시 빛을 찾았다.
엘리베이터 안 공간이 다시 밝아졌다.
‘정말로 들어왔잖아.’
불이.
─덜컹!
그때였다.
움직임을 멈췄던 엘리베이터 역시 갑작스레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건.
─흔들!
‘젠장···!’
순간 몸이 그대로 기우뚱했다.
움직임과 동시에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엘리베이터에 그대로 옆에 있던 벽에 팔을 부딪쳤다.
이에 나도 모르게 그대로 미간을 찌푸렸다. 순간이지만 작게 고통이 느껴졌다.
─덜컹!
그럼에도 흔들거림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이에 순간이지만 다리 또한 휘청였다. 일단 뭔가를, 뭔가를 다시 붙잡아야만 했다.
그렇게 급하게 다시 옆에 있던 엘리베이터의 손잡이를 잡는 도중, 옆에 있던 남자와 다시 시선이 마주쳤다.
흔들리는 공간 속에서 남자는 그렇게 미동 하나 없는 모습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띵!
흔들림이 멈췄다.
이윽고 앞서 언제 그랬냐는 듯 엘리베이터가 정상 작동하기 시작했다. ···원래대로 돌아왔다.
“괜찮나요?”
남자가 물었다.
“휘청휘청거리길래.”
누가 휘청거렸다는 거냐.
엄연히 제대로 두 발로 서 있었다.
“···휘청휘청거리지는 않았습니다만.”
“아, 그럼 펄럭펄럭 일지도.”
동시에 남자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건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이에 한 번 더 반박하려던 순간, 안내음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우세현!”
그렇게 열리자마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 * *
“괜찮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백은찬이 나를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세상 놀란 눈으로.
이에 나는 그대로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후드 쓴 남자를 뒤로한 채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세현이 형! 괜찮아요?”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하람이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백은찬이나 하람이 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매니저 형들 역시 내게로 황급히 다가왔다.
“아, 괜찮아.”
“어디 다친 곳은?”
이에 고개를 저었다.
동시에 백은찬이 이마를 짚은 채 숨을 내쉬었다.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니가 그대로 엘리베이터에서 나와서···.”
“어떻게 된 건데?”
“호텔 전체가 정전이 됐었어요. 그거 때문인지 엘리베이터도 멈춘 게 보였는데, 혹시나 형이 타고 있을까 봐 내내 조마조마했어요.”
더불어 하람이 역시 한숨을 돌렸다.
듣자 하니 정말로 호텔 전체가 잠시 정전이 됐던 듯했다.
“매니저 형이 급하게 호텔 측에 연락을 해보려 하는데, 그 사이 일단 다시 불이 들어오더라.”
“안에 갇혀 있던 거죠, 형.”
“잠깐이었어. 잠깐.”
“하, 갑자기 웬 정전인지···이거 제대로 항의해야 할 것 같은데.”
백은찬이 미간을 좁힌 채 말했다.
“숨이 막혔다거나 어지럽다거나 그런 증상은?”
“어, 괜찮아. 없었어. 그런 거.”
동시에 백은찬이 한 번 더 숨을 내쉬었다.
“아까 보니까 사람 더 있던데.”
아, 그 사이 후드 쓴 남자를 본 모양이었다.
“어. 한 명 더 있었어.”
“안에서 대화하거나 하진 않았고?”
“서로 괜찮냐고 물은 게 다야. 안에 있던 시간이 그렇게 길지도 않았으니까.”
이에 백은찬이나 하람이나 누구랄 것도 없이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앞선 일로 인해 편의점 가기 당연하게도 취소되었다. 사실 굳이 취소할 것 없다고 얘기했지만, 이내 백은찬이 고개를 저었다.
동시에 매니저 형이 나와 멤버들을 향해 말했다.
“프런트 방문하러 갈 거니까 너희는 딴 데 가지 말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
이에 곧 고개를 끄덕였다.
“세현이는? 형이랑 가는 게 낫겠지?”
남아 있던 건희 형이 나를 향해 물었다. 사실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럴 새도 없이 백은찬이 나섰다.
“같이 가.”
“어차피 우리는 같이 가야 해요, 형.”
“아, 맞아. 옆 방이지.”
그런 백은찬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럼에도 방 앞까지 데려다준다며 백은찬이 그대로 앞장을 섰다.
“나보다 너희가 더 놀란 것 같은데.”
“놀랐어. 그것도 엄청. 그 와중에 전화도 안 받아서 더 놀랐다.”
“형, 폰은 어디에 뒀어요?”
“방에 놓고 왔나 봐.”
“빨리 원상복구 돼서 다행이지, 간 떨어질 뻔했어. 다음엔 다른 호텔로 잡자고 건의라도 해야지.”
그건 나 역시도 찬성이었다.
아무래도 좀 찜찜한 게 많아서.
갑작스러운 엘리베이터의 멈춤이나 정전. 모든 것이 찜찜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걸리는 건, 역시나 그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에 관한 것이었다.
그 남자에게서 느껴졌던 그 기묘함.
그건 분명 이전에도 느껴본 적 있는 기묘함이었다. 낯설지 않은 느낌.
분명 어디서···.
‘···아.’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앞서 느낀 그 기묘함의 정체를.
‘이걸, 왜 잊고 있었지.’
낯설지 않은 기묘함.
전에도 느껴 본 적 있는 느낌.
‘사자.’
그리고 그건 이전에 사자를 만났을 때 느꼈던 그 기묘함과 동일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 * *
지금까지 만났던 사자는 모두 2명이었다.
정기적인 만남을 갖는 따봉 사자.
그리고 이전에 우연히 만났던 그 ‘명’이라는 여성 사자. 그렇게 2명이었다.
따봉 사자를 만났을 땐 그렇지 않았지만, 그 ‘명’이라는 사자와 마주했을 때 느꼈던 기묘함만큼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묘함은 이번에 느낀 그 느낌과 어느 정도 일치했다. 물론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이것도 온오프의 영향인가.’
이전보다 더욱 민감하게 느껴지긴 하는데, 단순히 사자마다의 차이가 있는 건지 아니면 감각이 예민해진 건지 구분이 힘들었다.
어쨌건 그 후드를 쓴 남자가 사자, 혹은 사자와 관련된 그 무언가인 건 분명한데.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했었지.’
다른 사자와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일전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더 정확히는 능력을 들키지 않게, 였나.
사실 능력이건 뭐건 애초에 엮일 거리 자체를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제까지 얽혀서 좋은 꼴을 본 적이 없으니.
그러니 당연히 어떤 식으로든 마주치지 않도록 하겠지만.
‘사자가 여기 있다는 건 정말로 뭔가 있다는 거 아닌가.’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건 결국 여기 있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라는 거였다. 그게 뭐든.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조금 전 엘리베이터 안에서 말했던 그 ‘귀신’의 존재라는 것도 신빙성이 없지 않다는 거였다.
‘하필···.’
있어도 여기 있는 거냐.
그것보다 정말로 이 호텔에 있는 건가.
아니, 어쩌면 그건 그냥 해본 말일지도. 그보다 정말로 안 들킨 건 맞나?
내가 ‘사자’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걸.
사자와 내가 같은 시간에 같은 엘리베이터에 있던 게 단순히 그저 우연이기만 할까?
“우세현.”
“아, 응.”
“뭘 그렇게 멍때리고 있어?”
안지호였다.
어느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안지호가 그대로 미간을 좁힌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너 진짜 괜찮은 거 맞냐?”
“뭐?”
“엘리베이터. 갇혔던 거 괜찮은 거 맞냐고.”
바로 전까지도 백은찬과 하람이가 이 방에 있었던 터라 엘리베이터와 관련된 이야기는 이미 안지호에게도 전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지. 당연히.”
문제가 되는 건 엘리베이터가 아니었다. 그 엘리베이터에 있던 사자였지.
그런데 그때, 내내 침대에 있던 안지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내 이쪽으로 온다.
“왜? 배고파?”
“갑자기 배고프단 소리는 왜 나오냐?”
“배고파서 일어난 거 아니야?”
“왜 내 이미지가 그렇게 된 건데.”
그러더니 곧 그대로 가까이 다가온다.
뭐야, 갑자기 뭔데.
“이상은 없어 보이는데.”
“···무슨 이상이 있다고 생각해서 온 거였어?”
“어.”
그러더니 이번엔 얼굴을 빤히 본다.
그리고 그런 안지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도 모르게 몸을 조금 움직였다.
근데 본다고 알 수는 없을 것 같은···.
그런데 그렇게 움직이던 도중 순간적으로 팔이 옆에 있던 테이블에 부딪혔다.
“아!”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릴 내었다.
“···뭐 하냐.”
“나도 모르게 그랬어, 나도 모르게···.”
가볍게 부딪친 거치고는 팔이 좀 아팠다. 이에 무의식적으로 후드티의 팔을 한번 걷었다.
‘···어.’
이에 순간적으로 보이는 멍에 잠시 사고 회로가 정지됐다. 어, 여기에 멍이 왜···.
동시에 급하게 내 팔을 잡는 손이 있었다.
“뭐야, 너 이거 왜 이래.”
“어, 이거 아무래도 부딪···.”
아. 이거 혹시 엘리베이터 안에서 부딪힌 건가. 순간적으로 앞선 일이 떠올랐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부딪힐 때 생겼나 봐.”
“뭐 어떻게 부딪혔길래 멍이 이렇게 들어?”
그러더니 안지호가 그대로 미간을 구긴 채로 소매를 더욱 걷었다. 그 안에서 꽤나 힘이 느껴졌다.
“너 혹시 감각이 없냐? 이렇게 크게 멍이 들었는데도 몰랐어?”
“방금 부딪히고 알았어···.”
이에 안지호는 여전히 표정을 구긴 채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어디 가려고?”
“매니저 형한테. 얼음 좀 받아오려고. 기다려. 얼음찜질을 할 거니까.”
“어, 굳이···.”
“기다려.”
와중에 단호했다.
이에 나도 모르게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런 건 그냥 둬도 낫기는 한데···.
그리고 그렇게 안지호는 호텔 방의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더니 곧 다시 등을 돌려 이쪽을 본다.
“기다려.”
···알겠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