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8화. 타이밍이 좋았을 뿐이에요
그대로 돌처럼 굳은 건희 형의 모습에 나는 급하게 그런 형의 상태를 확인했다. 일단 호흡이나 맥박 등은 정상인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그냥 기절시켰어.”
“형한테 무리가 가는 건 아니고요?”
“정신을 강제로 오프시켜 버렸으니 타격이 없을 순 없겠지.”
“타격이 있다고요?”
놀라서 묻자 이내 사자가 나와 쓰러진 건희 형에게로 다가왔다.
“기억이 끊기는 타격 정도야. 실제로 타격이 있는 건 아니고.”
그리고는 곧 무릎을 꿇더니 이내 건희 형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건희 형의 몸이 잠시 움찔거리더니 이내 다시 잠잠해졌다.
“끝났다.”
사자가 그대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힘이 쭉 빠져버렸다.
끝났다.
그 말은 곧 건희 형 몸에 붙어 있던 게 떨어져 나갔다는 걸 의미하는 걸 테니.
“···완전히 끝난 거예요?”
“맞아. 완전히 끝났지. 붙어 있던 건 완벽하게 소멸시켰어.”
거기서 한숨을 놓았다.
정말로 끝이 났다.
“형은 언제 일어나는 건데요?”
“지금은 그냥 수면 상태야. 아마 시간이 지나면 깨어나겠지.”
그렇다면 그 전에 옮겨놔야겠군.
마침 옆에 침대가 있으니 깨어나기 전에 옮기면 될 것 같았다.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건희 형.
“그보다 좀 놀랐어.”
“네?”
“그 상황에서 그런 걸 던질 줄이야. 전혀 예상 못 했거든.”
아, 쿠션 말하는 건가.
근데 뭐 그땐 그냥 그것밖에 보이는 게 없던 터라.
“반응만 보면 거의 미리 그럴 줄 알고 있었을 정도의 속도던데.”
그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촉도 좋다.
미리 알고 있었던 건 맞았다.
앞서 들리는 생각을 보면, 뭔가를 꾸며놨다는 게 분명했으니까.
“그냥 타이밍이 좋았을 뿐이에요.”
“아, 타이밍.”
“네. 타이밍이요.”
그와 동시에 사자와 잠시 시선을 마주했다. 그 사이로 묘한 정적 같은 게 흘렀다.
그렇지만 사자와 마주한 그 시선을 일부러 피하지는 않았다.
“···상황 판단력이 좋은가 보군. 그런 상황에서 전혀 당황하지 않는 것도 높이 살 일이고. 인간에게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답지않게 칭찬이 이어졌다.
이렇게 칭찬을 받을 만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러더니 곧 근처에 있던 나이프를 그대로 발로 밀어 치웠다.
“고작 이런 걸로 당할 일은 없었겠지만.”
뭐, 사자니까.
“그런 그 와중에 무모한 건 여전하군.”
“···그다지 무모한 건 없었던 것 같은데요.”
“위험 요소에게 대놓고 덤벼드는 것 자체가 무모한 거지. 특히 넌 휘청휘청하니까.”
휘청휘청 아니라니까 그러네.
덩치가 차이가 좀 있었을 뿐이지 그렇게까지 무모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 상황에서 지켜보고만 있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꽤 괜찮은 것 같아.”
“예?”
“남은 상황은 이쪽에서 정리를 하도록 하지. 귀찮긴 하지만 나름대로 도움을 받았으니까.”
아, 확실히.
주변 상황을 보면 꽤 귀찮은 상황인 건 맞았다. 꺼진 바닥에 그 영향으로 쓰러진 테이블하며.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사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주변을 정리했다. 정말로 언제 그랬냐는 듯 깔끔하게.
그로부터 얼마 뒤, 건희 형도 의식을 찾았다. 당연하게도 일전에 일어난 일들은 기억하지 못했다.
앞선 사자의 말에 따르면 마치 잠에서 깬 듯 자연스럽게 일어날 거라 했는데, 정말로 아무런 이상 없이 잠에서 깬 듯 의식을 찾았다.
이에 또 한 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KO-CON의 막이 올랐다.
[Welcome! KO-Concert!]
다행히 비가 그쳤다.
* * *
KO-CON이 열리는 당일.
하늘을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았다.
“와, 어제까지 우중충했던 게 거짓말 같네.”
“그러니까. 당장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비가 엄청 왔었잖아.”
도운이 형 말대로 어제 저녁, 아니 오늘 새벽까지만 해도 비가 왔었다. 하지만 아침이 되자 비가 그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아졌다.
“우세현. 안 잊었지?”
“뭘?”
“뭐긴 뭐야, 이거지.”
동시에 백은찬이 나를 향해 팔을 벌렸다.
“아.”
“내가 하고 싶을 때 한다?”
“무슨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왜? 그러기로 한 거 아니었어?”
백은찬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도대체 언제 그랬냐고.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거 아니다, 세현아.”
“너야말로 다른 말 하지 마.”
“뭘 하는데?”
옆에 있던 차선빈이 물었다.
그러자 백은찬이 한껏 신이 난 목소리로 수줍은 척하며 말했다.
“포옹.”
“포옹?”
동시에 차선빈이 눈이 마주쳤다.
어, 이거 왠지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인데.
“어제 세현이 형이 미션 한 그거요?”
“그거 미션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와중에 도운이 형과 하람이까지 대화에 합세했다.
그거 진짜 미션이 아니긴 한데···이쯤 되면 차라리 그냥 미션이었다고 하는 게 더 나을 뻔했다.
“그거 미션 아닐걸요.”
“뭐야, 은찬이 넌 어떻게 아는데?”
“우세현 보면 알죠. 딱 봐도 미션 아니던데.”
백은찬이 그 말과 함께 나를 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거짓말도 함부로 못 하겠군.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미션이니 포옹이니.”
“어, 안지호 넌 없었냐?”
“그러니까 뭐가.”
“세현이의 사랑을 담은 포옹.”
그러자 안지호가 그건 뭔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한 얼굴을 보였다. 그보다도 사랑을 담은···이란 말은 좀 빼줬으면 좋겠는데.
“너 뭐 미션 있었냐?”
“아니. 그런 거 아니라니까···.”
“난 왜 안 했는데?”
안지호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그게 음···.
이런 흐름은 예상치 못했는데, 지금이라도···해줘야 하나?
“아무튼 잊지 마라. 형이 언제 기습으로 할지 모른다.”
백은찬이 여전히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왠지 모르게 불안한 기운이 엄습해왔다. 저거 절반 이상은 진심인데.
“윈썸, 이제 올라가실 준비 할게요!”
그리고 타이밍에 맞춰 무대에 올라갈 시간이 되었다. 그러자 백은찬이 이동하는 내내 여전히 장난스러운 얼굴로 내 뒤에 딱 붙어 섰다.
그렇게 긴장감이 넘치는 이동은 처음이었다.
이어서 무대 아래에 도착했을 땐, 먼저 도착해 있던 낯설지 않은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체이스였다.
순서상 우리 다음 무대가 바로 체이스였기에. 하지만 그런 것치곤 꽤 빨리 나와 있었다. 반응이라도 볼 생각인지.
[Then, the Next Stage is very hot!]
그리고 얼마 안 가, 우릴 소개하는 스크립트가 시작되었다. 이에 멤버들과 함께 빠르게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 과정에서도 이곳저곳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마치 다음 순서를 알고 있다는 듯, 그룹의 이름 역시 간간이 들려왔다.
그렇게 조명이 꺼진 무대 위에서 앞으로 불릴 이름에 준비하고 있었다. 그 사이, 군데군데 여전히 들리는 함성 소리.
[─It’s WINSOME!]
이윽고 환호성이 극에 달했다.
* * *
어둠에 잠긴 무대.
그리고 그렇게 어둠이 깔린 공간 속에서 무대 위 큰 스크린이 곧 빛을 발하였다.
- 애들 오늘 셋리 어떻게 됨?
└ 나온 거 없음 셋리가 아예 공개가 안 돼서
└└ 아 셋리 공개가 안 됐음? 현장에 간 팬들도 모른대?
└ ㅇㅇ 전혀 알려진 게 없다던데
- 울 애들 오늘 셋리 예상 : 페이스오프, 블루 트래블, 다키스트
└ 블트? 블트는 좀 뜬금없는데
└ 차라리 블트말고 스트레이어가 더 말이 됨 계절감도 그게 더 맞고
점차 시작되는 무대에 공연장에 있던 관객들은 그야말로 숨을 죽인 채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모두가 집중하고 있는 스크린 속에 나타난 것은 로마숫자가 새겨진 금색의 회중시계.
─째깍째깍!
나타난 회중시계의 바늘은 그렇게 제소리를 내며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바늘이 12시에 멈췄을 때, 무대 위로 밝은 조명이 쏟아지며 음악이 흘러나왔다.
흘러나온 음악은 피아노 선율이 겹쳐진 잔잔하고도 리드미컬한 멜로디였다.
<재생 (Replay)>이었다.
─꺄아아아악!
그 누구도 예상 못 한 선곡에 공연장은 그야말로 혼돈의 장이 되었다.
<재생 (Replay)>이 이번 공연의 세트리스트에 있다는 건 공연 당일 날까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기 때문이었다.
- ㅁㅊ 윈썸 이번에 재생해?
- 아니 여기서 재생을 한다고?
- 아 미국을 내가 갔었어야ㅠㅠㅠㅠ
- 얼마만에 재생이야ㅠㅠㅠㅠㅠ
공연 리허설 때도 이것이 노출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신경을 썼기에 이러한 선곡은 지켜보던 멜로우들에게 더욱더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정지된 시간 속에]
[영원히 멈춘 바늘]
[움직이지 않는 바늘은]
[그렇게 조용히 숨을 쉬어]
동시에 블랙 수트를 입은 우세현이 그대로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여전히 밝게 빛나는 연한 핑크빛 머리에 그대로 부는 바람에 앞머리가 살짝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살짝 지어 보이는 미소.
그렇게 우세현 특유의 단단한 목소리가 공연장 전체를 울렸다.
- 미쳤네 재생 수트 버전ㅠ
전체적으로 멤버 모두 깔끔한 블랙 수트를 입어 이전의 청량 아련 컨셉의 <재생>과는 또 다른 느낌을 선사했다.
[너와 함께하는 이 시간을]
[나는 또다시 재생해보려 해]
이어지는 갈색 머리의 신하람이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음과 동시에 객석에서는 이에 맞춘 응원법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것도 상당히 크게.
─째깍째깍!
그렇게 다시 한번 울리는 초침 소리에 멤버들은 저마다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은 채로 주저앉았다.
─째깍째깍!
하지만 곡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멈추지 않는 초침 소리.
그와 동시에 앞에 앉아 있던 차선빈이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그런 차선빈의 손에 쥐어진 어느 검은색 가면 하나.
[FACE OFF]
다음 곡인 ‘FACE OFF’로의 연장선이었다. 동시에 차선빈은 손에 든 가면을 조용히 자신의 얼굴 위로 겹쳤다.
‘FACE OFF’가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백은찬과 차선빈의 페어 댄스였다. 각자 검은색과 흰색 가면을 든 채 마치 하나의 데칼코마니처럼 부드러운 페어를 선보였다.
손끝 하나, 발동작 하나 섬세하게 신경을 쓰면서도 그 안에서 어떠한 여유로움이 엿보였다.
[FACE OFF]
[그 속에 있는 진짜 모습을 드러내]
[그렇게 완벽해진 너와 나]
그대로 그루브가 강하게 들어간 비트에 따라 멤버들의 수트 자켓이 펄럭였다.
그 안에서 카메라를 향한 차선빈의 시선이 화면을 뚫듯 강하게 비춰졌다.
짙은 흑발에 귀에는 은색 K가 새겨진 은색 드롭링을 착용한 차선빈은 그대로 서늘한 분위기를 연출해내었다.
[어떤 모습이든지 너를 사랑해줄게]
[모습이 바뀌어도 너와 함께할 테니.]
동시에 그런 차선빈의 뒤로 나타난 윤도운이 카메라를 향해 차선빈과 상반되는 부드러운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 뒤로 두 사람을 이어 나온 안지호는 끼고 있던 검은색 장갑을 조금 고쳤다. 그런 안지호는 블랙 자켓에 단추가 몇 개 풀어진 화이트 셔츠를 입은 채였다.
그리고 이윽고 나오는 우세현과 안지호의 화음. 이것은 가히 현장 분위기를 최고조로 올려놓았다.
[FACE OFF]
그렇게 ‘FACE OFF’의 무대가 끝나자 무대 위로는 다시금 암전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암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바로 다음으로 연달아 이어지는 무대인 ‘Darkest’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Darkest, Darkest]
[Stay in the dark]
그리고 우세현의 애절한 목소리가 포함된 인트로가 무대 위로 흘렀을 땐, 공연장 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큰 함성에 둘러싸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