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화. 사진 한 장 어때요?
눈앞의 최성윤은 그렇게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도현 씨한테 평소에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 번 꼭 만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또 만나게 되네요.”
그와 동시에 옆에 있던 형을 슬쩍 바라봤다. 여전히 특별할 것 없는 표정이었다.
“근데 정말 잘생기셨네요. 나중에 연기하셔도 되겠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최성윤은 다시 한번 웃어 보이더니 이내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 손을 움직였다.
“사진 한 장 어때요? 모처럼 세현 씨를 만났는데 사진 한 장 정도는 찍고 싶어서요.”
그러더니 곧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든다. 사진. 뭐, 일단은 형의 직장 동료이니.
이에 그런 최성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갑작스럽게 나타난 손이 최성윤의 폰을 막았다.
“저희가 지금부터 작가님을 만나러 가야 해서요.”
형의 손이었다.
그렇게 형은 최성윤이 들고 있던 폰을 자연스럽게 밀었다.
“아쉽지만 사진은 다음에 찍도록 하시죠.”
“아, 그런가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그 순간, 최성윤이 굉장히 아쉽다는 얼굴로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다음엔 꼭 한 번 찍어요, 세현 씨.”
동시에 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형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형이 나를 향해 고개를 한번 까딱했다.
“이리 와, 이쪽이야.”
이윽고 나는 최성윤을 뒤로한 채 그대로 자리를 벗어났다. 그때까지도 최성윤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최성윤을 향해 나 역시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이 안 좋네.’
형이랑 둘이.
* * *
“엄청 별로인가 봐.”
형을 향해 말했다.
이윽고 앞서 있던 자리와는 조금 더 떨어진 장소로 자리를 이동한 터였다.
“뭐가?”
“사이. 아까 그 배우랑.”
“아아.”
이내 형이 알겠다는 듯 반응했다.
그리고는 한마디 했다.
“굳이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렇게 한마디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하니 굳이 신경은 쓰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아직까지 서로 존댓말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최성윤이 몇 살이었지. 20대 중후반이었던 것 같은데.
기억하기론 형보다 확실히 어렸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뭐가 됐건 사이가 안 좋음의 원인은 당연히 저쪽에 있겠지. 형 쪽이 아니라.
“근데 형, 여기 계속 있어도 되는 거야?”
“어. 되는데.”
되긴 뭐가 돼.
여기저기 관계자들이랑 인사하고 다녀야 하는 거 다 안다. 출연 배우가 여기서 느긋하게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근데 여긴 지나가는 사람도 없네.
“나 신경 쓰지 말고, 해야 할 거 있으면 하고 와.”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해.”
─지이잉!
그런데 그때, 형의 폰이 작게 울렸다.
그리고 그걸 확인한 형은 이내 미간을 살짝 좁힌 채로 전화를 받았다.
“예, 형. 알겠어요.”
대충 듣고 있으니 매니저 형인 것 같았다. 통화는 그대로 짧게 끊겼다. 그와 동시에 형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갔다 올게.”
“응. 다녀와.”
“혹시 모르는 사람이 말 걸어도 따라가지 말고.”
당연히 안 따라가···.
그것보다 지금 상황에서 나올 만한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와중에 형은 굳이 이를 한 번 더 강조하고 갔다. 내가 무슨 10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심지어 주변엔 개미 한 마리 없다.
‘물론 북적북적한 것보단 이게 훨씬 낫지만.’
그래도 아는 얼굴이 있다면 먼저 인사를 하고 나서야 했다. 일단 나는 형의 인맥으로 왔다는 게 당연지사 되어 있으니까.
“어, 윈썸···아니에요?”
와중에 형이 떠난 지 얼마 안 된 시점, 아니나 다를까 아는 얼굴과 마주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인맥으로서가 아닌 누구나 아는 가요계 선배님.
“안녕하세요, 선배님.”
“세현 씨도 왔었구나. 시사회.”
이전에 라디오에서도 한 번 만난 적 있는 선배였다. 그룹 ‘Before’의 하인혁 선배.
“선배님···그러니까 도현 씨 초대로 온 거죠?”
“네. 맞아요.”
“이번에 되게 멋있게 나오시는 것 같더라고요. 펜싱 국가대표 역할이 엄청 잘 어울려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인혁 선배를 향해 웃어 보였다. 형이 이번 역할에 잘 어울리긴 한다. 포스터도 꽤 잘 나온 편이고.
“혹시 스포 듣거나 한 건 아니죠?”
“네. 아무래도 최대한 피하는 게 좋으니까요.”
이번 영화 <가족>은 추리물이 살짝 가미된 장르였다.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가족이 함께 찾는다는 내용이었으니.
“예고편부터 너무 심상치가 않아서. 왠지 엄청 재밌을 것 같아요.”
하인혁 선배가 그렇게 기대감이 묻어난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그 말을 듣고 있으려니 내가 괜히 뿌듯했다.
“안녕하세요, 인혁 씨.”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러던 도중, 내 등 뒤로 하인혁 선배를 알아본 누군가가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세현 씨.”
“네. 선배님.”
“음···.”
그런데 그 순간, 하인혁 선배가 잠시 말을 골랐다. 동시에 뭔가를 고민하는 얼굴이기도 했다. 뭐지, 뭔가 곤란한 거라도 있나.
이에 이내 다시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 하인혁 선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오늘 유명 기자 한 명이 여기 있는 것 같더라고요.”
“유명 기자요?”
“손명우 기자요. 요즘 말이 좀 많은.”
아, 그 기자.
그 기자라면 나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정말로 요새 좀 말이 많았으니까.
“알지 모르겠는데, 배우나 아이돌 구린 쪽으로 짜깁기 많이 하는 기자예요. 거의 짜깁기 전문?”
하인혁 선배의 말대로 여러 짜깁기를 통해 구설수를 있는 대로 투척하는 기자였다. 그런 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실 여부 따위는 확인하지 않은 채 그저 있는 대로 기사를 낸다고 하여 되도록 접촉하지 않는 게 좋다며 회사에서도 흘러가는 식으로 당부했었다.
“그 기자를 보신 건가요?”
“직접 본 건 아닌데, 건너 건너 듣기로는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또 그게 합법적으로 온 것 같지는 않다는 말도 있고.”
그렇다는 건 숨어 들어왔을 수도 있다는 얘기인가.
“아무튼 그렇다고 하니 세현 씨도 되도록 주의했으면 해서요. 혹시 정말로 마주하게 돼도 상대는 안 하는 게 좋고요.”
이에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근데 그럼 형은 이거 알고 있으려나.
다른 것보다 그쪽이 좀 걱정이었다.
‘아무래도 주연 배우니까.’
사실상 들어온 것도 출연 배우들을 목적으로 들어왔을 확률이 높을테고.
“그럼 영화 재밌게 봐요.”
그 뒤로 하인혁 선배와 다시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하인혁 선배의 모습이 눈앞에서 점차 멀어졌다.
‘짜깁기 기자라···.’
얼굴까진 모르지만, 능력을 이용한다면 이와 같은 사실이 정말인지 금방 판별할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를 직접 들쑤실 생각은 없었다. 기자인 이상 상대는 내 얼굴을 알고 있을 테고 이쪽은 모르니까.
그러니 형이 말한 대로 이대로 얌전히 있으면서 이따금씩 들려오는 정보를 듣고 있는 편이 훨씬 효율적···.
“어, 세현 씨?”
아.
그 순간, 또다시 아는 얼굴을 만났다.
하지만 조금 전과 달리 이번엔 별로 달갑지 않은 상대였다.
“또 만나네요?”
최성윤이었다.
* * *
최성윤이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웃는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여기에 반가워하는 기색이 묻어 있었다.
“네. 안녕하세요.”
일단은 인사하고 봤다.
그다지 달갑지는 않지만.
“혼자 있는 거예요?”
“네. 형이 잠깐 자릴 비워서요.”
그러자 최성윤이 곧 ‘아-’하는 반응을 보이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심심하겠네요. 근데 생각해보니 아까 통성명만 했지 제대로 못 물어봤는데, 세현 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죠?”
“올해 21살입니다.”
“아, 21살.”
[“어리네.”]
최성윤의 생각이었다.
“전 27살이에요. 제가 한참 형이네요.”
최성윤이 넉살 좋게 웃어 보였다.
27살이면, 형이랑 3살 차이인가.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앞에 있던 최성윤의 생각이 연이어 들려왔다.
[“21살이면···이 자식도 연차 좀 쌓이고 나면 연기한다고 설쳐대겠네.”]
[“딱 봐도 연기엔 재능 없게 생겼는데. 성격이야 우도현 동생이면 안 봐도 뻔하고.”]
[“안 봐도 X 같은 성격.”]
‘안 봐도 X 같은 성격.’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형에 관한 평가가 여간 안 좋은 게 아니었다. 굳이 더 듣지 않아도 형을 얼마나 꺼리는지 알 것 같고.
또 왜 형을 못마땅하게 보는지도···대충 알 것 같았고.
“사실 제가 나이에 비해 노안이라는 소리도 많이 듣거든요. 근데 그럼 말 편하게 해도 되나?”
“네. 편하게 하시죠.”
“하하. 그럼 편하게 할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을 놨다.
“근데 계속 여기 있는 거야? 좀 돌아다녀도 될 텐데.”
“일단은 다시 형이랑 보기로 해서요.”
“아아.”
그러더니 곧 어딘가를 보이지 않게 곁눈질한다.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생각.
[“그러고 보니 저 근방에서 봤던 거 같은데, 그 기자.”]
···기자?
그리고 찰나의 순간, 최성윤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호선을 그렸다.
“그래도 여기만 있지 말고 근방은 좀 둘러봐. 저쪽엔 통창도 크게 되어 있어서 경치도 좋더라고.”
그리고 이내 조금 전 곁눈질한 방향을 가리킨다. ···의도가 너무 투명한 거 아닌가. 이건 투명하다 못해 그냥 밝게 보이는 정도였다.
‘보아하니 그 기자를 말하는 것 같은데.’
방금 하인혁 선배가 말했던 그 짜깁기 기자. 이제보니 정말로 이곳에 와 있는 게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최성윤 역시 그 기자를 마주···한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위치는 대충 알고 있는 것 같았고.
‘이런 식으로 이용을 할 줄은 몰랐군.’
아무래도 나에 대한 인식 또한 굉장히 좋지 않은 듯했다. 근데 뭐, 그렇다고 해도 별로 상관없었다.
“그런가요? 그렇게 말하니 궁금하네요.”
“그렇지? 그럼 한 번 가보는 것도···.”
“아, 근데 생각해보니 저쪽은 이미 둘러본 곳이에요. 그 예쁜 통창, 저도 봤어요.”
“아···.”
그런 내 대답에 최성윤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런 척 연기하고 있었지만, 낚지 못해 아쉽다는 게 보였다.
이 사람, 정말 연기 좀 하는 거 맞나?
“그래, 그렇구나. 그럼 어쩔 수 없지.”
“네. 오히려 저쪽으로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앞서 최성윤이 말한 곳과는 정반대의 방향이었다. 이에 최성윤은 그런 내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런 최성윤을 향해 덧붙였다.
“아, 그리고 이제와서 말하긴 뭐하지만 영화, 굉장히 재밌을 것 같습니다.”
“어? 아, 영화.”
그러자 최성윤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는 게 보였다.
“네. 그리고 배역에 아주 잘 어울리시더라고요.”
“어, 나?”
“네.”
그렇게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아주 잘 어울린다.
정확히는 30대 후반의 셋째 아들.
“30대 후반의 변호사 아들이잖아요. 굉장히 잘 어울리세요. 그 역할에.”
너 자식, 정말로 10살은 늙어 보인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