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402화 (402/413)

402화. 익숙한 얼굴들이 많다

앞선 내 말에 최성윤은 그대로 잠시 말이 없었다. 반응이 곧바로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앞선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그렇지. 배역 자체가 워낙 좋아서. 잘 어울린다니 다행이네. 하하.”

그렇게 태연한 웃음을 보였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이 자식!”]

실제론 굉장히 열을 받고 있었다.

눈치가 빨라서 다행이네.

그렇게 최성윤의 짜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증되더니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요.”

와중에 존댓말로 바뀌어 있었다.

역시나 그 말속에도 묘하게 짜증이 섞여 있는 게 보였다.

평소에 노안이라는 말을 어지간히도 싫어했나 보군. 그럴 것 같아서 한 말이긴 하지만.

그리고 나는 그런 최성윤을 향해 웃어 보였다.

“네. 들어가세요.”

아마 이 이후로는 말을 걸어오는 일 따위 없을 듯했다.

* * *

최성윤이 자리를 떠나자 주변은 곧바로 원래 그렇듯 조용해졌다. 형이 자리 하나는 참 잘 잡았다.

앞선 두 사람을 제외하면, 정말로 돌아다니는 사람 한 명 보지 못했다. 이쪽이 꽤 구석 이긴 구석인 모양이다.

‘그나저나 언제 오려나.’

형이 그렇게 간 뒤로 그래도 조금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어째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려나.

‘근데 이대로 안 온다고 해도 어차피 다시 보는 건 영화가 끝난 후일 것 같은데···.’

아, 뒤풀이를 갈지도 모르겠군.

제작진과 출연 배우들끼리 뒤풀이를 할 테니.

그렇다면 역시 이대로 상영 전까지 혼자 시간을 죽이는 것도 괜찮은 방법···.

“······?”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순간 눈앞으로 아는 얼굴이 보였다.

그렇지만 단순히 아는 얼굴이라고는 뭐하고 조금 익숙한 얼굴이었다.

이에 그대로 잠시 두 눈을 의심했다.

여기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해서.

설상가상으로 그 익숙한 얼굴은 자연스럽게 내가 있는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건 마치 처음부터 목적지가 여기라는 듯이 걷는 걸음과 같았다. 그리고 이내 그 아는 얼굴이 내 앞에 섰다.

그리고 뻔뻔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이런 우연이.”

신도하였다.

눈앞의 신도하가 그렇게 애써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여기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네.”

동시에 나를 향해 웃었다.

···역시 이 사람이 연기를 안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 * *

마주한 신도하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내 앞에 있던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그런 신도하를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초대받으신 건가요? 시사회.”

“응. 아는 인맥이 있어서. <가족>의 주연 배우 중 한 명인 권무혁 선배님이랑 어느 정도 안 면이 있는 사이거든.”

···아, 그랬군.

상당히 의외의 인맥이었다.

그 배우가 아마 40대 후반이셨지.

솔직히 말해 여기서 신도하를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물론 여기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긴 한데, 그래도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다.

“그런데 혼자야?”

“형은 잠시 일이 있어서요.”

“아하.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꽁꽁 숨겨두고 있었구나.”

신도하가 알겠다는 듯 그대로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숨겨? 뭘 숨겨?

“오면서 올라온 사진 봤는데. 잘 나왔더라고. 볼 하트.”

“아···.”

그걸 본 거냐.

갑자기 숨고 싶어지는 것 같기도···.

“나중에 한 번 더 하면 좋겠는걸. 다음엔 같이 찍을까?”

“···진심으로 하는 소리신가요.”

“당연하지.”

신도하가 그렇게 뻔뻔한 얼굴로 답했다.

그렇게 찍을 일은 두 번 다시 없었다.

“근데 내가 볼 땐 도현이는 꽤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아무래도 주연 배우니까. 한 곳에만 머무르기 힘들잖아.”

“그렇겠죠.”

아무래도.

“그런 의미에서 참 아쉬워하고 있겠어.”

신도하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말했다.

이것도 이해가 잘 안 갔다.

뭐가 아쉽다는 건지.

“그런데 좌석은 어떻게 돼?”

이에 곧바로 형에게서 받은 좌석을 확인해보았다. 기억하기로는 분명 I열쯤이었던 것 같은데.

“I열이요.”

그리고 기억했던 대로 I열이 맞았다.

그와 동시에 이를 들은 신도하가 다시 한번 입꼬리를 올렸다.

“와, 나도 I열인데.”

“네?”

“자리가 꽤 가깝겠는데.”

어, 이건 좀 놀랍기는 한데···정말로 우연 맞는 거겠지.

“근데 상영 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 언제쯤 출발할 생각이야?”

이에 시간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상영 시작 시각까지 얼마 남지 않아 있었다. 따로 들은 게 없긴 한데 아마 형이 영화를 같이 보진 않을 듯했다.

그사이에 인터뷰나 무대 인사 등 준비할 게 많을 테니까. 무엇보다 영화는 이미 기술 시사회에서 먼저 봤다고 들었다.

‘그러니 먼저 입장해도 딱히 상관없겠지.’

그리고 그대로 폰을 열어 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먼저 들어간다고 얘기를 해둘 참이었다.

[우세현]

: 형 나 먼저 영화 보러 갈게

그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말은 전해뒀으니 괜찮겠지.

“선배님은 언제 보러 가실 예정이신데요?”

“나야 지금 당장 가도 문제없지. 들어가려고?”

“네. 그냥 지금 천천히 들어갈 생각입니다만···.”

“그거 좋네. 그럼 같이 들어갈까?”

그리고 곧 신도하가 주저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어차피 나도 갈 참이었으니.

그렇게 의도치 않게 신도하와 같이 상영관까지 들어가게 된 상황이 됐다. 근데 어차피 들어가고 나면 자연스럽게 떨어지게 될 터였다.

“그런데 혼자 기다리면서는 뭐 했어? 심심하진 않았고?”

“네. 중간중간 아는 얼굴도 좀 봐서요.”

“아는 얼굴?”

동시에 신도하가 나를 봤다.

“누구?”

“Before의 하인혁 선배님이랑 최성윤···씨요.”

생각해보니 최성윤은 데뷔가 언제였지.

윈썸이랑 그다지 차이 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으흠.”

그리고 그런 내 말은 들은 신도하가 이내 알겠다는 듯 반응했다.

“근데 그건 왜 물어보시는데요?”

“그냥. 이름 정도는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동시에 신도하가 그대로 묘한 미소를 보였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 묘한 미소였다.

* * *

이윽고 살짝 이른 시간에 정해진 상영관으로 입장했다.

아직 시작 전까지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좌석이 차 있는 상태였다.

“딱 옆자리네.”

신도하가 웃으며 말했다.

···신도하와는 바로 옆 좌석이었다.

‘바로 옆에서 볼 줄은 몰랐는데.’

입장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떨어질 줄 알았건만. 우연치고 자리 배치가 상당히 절묘했다.

“그러고 보니 시작 전에 잠깐 무대 인사가 있다던데.”

“네. 있다고 들었습니다.”

“도현이 인사, 기대되네.”

그런 신도하는 왠지 모르게 조금 신나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상영 시간이 되었다. 여기에 시작 전엔 앞서 말한 대로 주연 배우들의 짧은 무대 인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형 나왔다!’

···아, 나도 모르게 조금 흥분했다.

가장 최고참 배우인 김철우 배우부터 시작하여 앞서 신도하가 말했던 권무혁 배우와 바로 옆엔 최성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엔 형도 있었다.

우리 형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형은 그중에서도 단연코 눈에 띄었다.

···진짜 객관적으로.

주관적 아니다.

“안녕하십니까, 배우 김철우입니다.”

그렇게 배우들의 간단한 인사가 시작되었고, 이내 형의 차례를 기다렸다.

“오늘 도현이 힘 좀 줬는데?”

신도하가 말했다.

그 말엔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였다.

‘아까랑 헤어가 좀 달라진 것 같은데. 그새 수정을 좀 본 건가.’

조금 전보다 머리가 훨씬 깔끔해진 모습이었다. 하긴, 그사이 수정도 하고 했겠지.

‘최성윤이 확실히 노안이긴 하네.’

와중에 바로 옆에 있던 터라 자연스럽게 같이 시야에 걸렸다. 근데 사실 형도 그렇게 동안은 아니다.

처음 데뷔를 했을 때도 그룹에서 막내를 찾아보라는 문제엔 거의 90% 이상이 맞추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괜히 그때 생각나네.

그런데 그때, 순간적으로 형과 눈이 마주쳤다. 어, 여기를 봤···는데.

‘왜 저렇게 무섭게 쳐다보고 있는 건데.’

분명 나를 보긴 봤는데, 꽤나 살벌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설마, 방금 노안이라고 생각한 걸 들킨 건 아니겠지?

“도현이가 여길 본 모양인데.”

신도하가 작게 속삭였다.

이전보다 조금 가까워진 거리에 그대로 살짝 몸을 뒤로 빼려던 찰나, 다시금 신도하가 말을 이었다.

“역시 재밌을 것 같아. 영화.”

그러더니 곧 다시 싱글벙글하게 웃는다. 당연히 재밌겠지. 근데 그 얘기를 굳이 이렇게 가까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나.

그리고 다시 형을 향해 시선을 돌렸는데, 동시에 형의 생각이 들려왔다.

[“그 자식은 왜 있는 건데.”]

[“그 자식은 왜 있는 건데.”]

[“그 자식은 왜 있는 건데.”]

한 번만 말해···.

이거 내가 들을 때까지 말하고 있을 생각이었나보다. 그나저나 그 자식···아. 어떤 자식인지 알겠군.

그리고 형이 말하는 그 자식은 그런 형의 생각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여전히 옆에서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내 탓이 아니야.

자리가 이렇게 되어 있는 걸 어떡하라고.

이후엔 형은 마이크를 잡을 때까지도 간간이 내가 있을 쪽을 바라보곤 했다.

물론 와중에 표정 관리나 시선 처리는 완벽해서 주변에서 보기엔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극 중에서 막내아들 역할을 맡은 문은후 역의 우도현입니다.”

그리고 이내 형이 마이크를 잡았다.

“지난 몇 개월간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찍은 작품이니만큼 보시는 분들도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형은 준비한 멘트를 차분하게 이어 나갔다.

마지막 순서였기에 시간 관계상 그렇게 길지 않았던 게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깔끔하게 잘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형의 마지막 인사말과 동시에 박수가 들려왔다. 나 역시 그런 형을 향해 작게 박수쳤다.

“굉장히 열심히 보던데?”

“예?”

신도하가 다시금 내 옆으로 몸을 기울인 채로 말했다.

“방금 도현이 인사. 형 얼굴만 굉장히 뚫어져라 보던데.”

“아, 그랬나요.”

“응. 그랬어.”

신도하가 즉답했다.

···잘 모르겠는데. 그랬었나.

“너무 집중하는 눈이라 말을 못 걸었어.”

이에 조금 뻘쭘해지는 느낌에 그대로 시선을 살짝 돌렸다. 어, 그 정도였었나.

물론 집중하기에 집중했다.

형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니까.

“하지만 확실히 도현이는 사람의 시선을 끄는 뭔가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 말에 나는 다시 시선을 옮겨 신도하를 바라보았다. 그런 신도하는 어느새 무대를 바라본 채 작게 웃고 있었다.

‘근데 정말 그렇지.’

앞서 신도하가 말한 대로 형은 확실히 사람의 시선을 끄는 뭔가가 있었다.

단지 외모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저절로 눈이 가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반짝반짝한 뭔가가.

그리고 그건 무대에 섰을 때, 특히 더 잘 보였다. 그래서 항상 좋아했다. 무대에 서 있는 형을.

형은 정말로 늘 멋있었다.

“근데 세현이 너도 그래.”

그와 동시에 신도하와 다시 시선이 마주쳤다. 이내 신도하가 시선을 맞춘 채로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 팟!

“이제 시작하려나 보다.”

그렇게 상영관 안의 불이 꺼졌다.

이제 곧 영화가 시작할 모양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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