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405화 (405/413)

405화. 때려 쳐, 온오프

형의 그 말에 순간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걸 알기에 더욱더 당황했다.

“분명히 말했어. 온오프고 뭐고 때려 쳐.”

“그게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거 알잖아! 지금 나보고 아이돌을 그만두란 소리야?”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여전히 하나야. 온오프, 그만둬.”

형은 물러서지 않았다.

애초에 물러설 생각 같은 건 하지 않고 있었다. 정말로 온오프를 관두라는, 그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여기 있어. 어디 갈 생각 하지 말고.”

그렇게 말하더니 더 이상 할 말은 없다는 듯이 이내 방을 나섰다.

“잠···!”

그리고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문을 가차 없이 닫아버렸다. 이에 나는 그렇게 닫힌 문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없다고, 그런 거···.’

하지만 이미 내겐 정리할 생각 따윈 없었다. 내 생각이 변할 일은 없었으니까.

오히려 생각의 정리가 필요한 건 형이었다. 그래서 그런 형을 붙잡지 못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형에게도 필요할 테니까.

방금 형이 했던 말은 정말로 진심으로 한 말이겠지만···그래도 일단 하루, 이틀 정도의 시간이라면 여기 머물 수 있었다.

“하아···.”

그리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풀린 다리 힘에 그대로 침대 위로 풀썩 주저앉았다.

맥이 풀렸다.

‘···활동기가 아니라 다행인가.’

그렇게 생각하자 순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 웃음은 얼마 안 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대로 침대에 몸을 뉘었다.

형이 가고 홀로 남은 방은 그 어느 때보다도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이윽고 이마에 팔을 올린 채 눈을 감았다. 주변은 소음 하나 없이 고요했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먹먹했다.

* * *

다음날은 정말로 하루 종일 형과 있었다.

다행히 난 예정된 스케줄이 없었지만, 형은 있을 법하다는 생각에 이를 물어봤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하지만 좋지 않은 건 표정뿐이었다.

“이것도 먹어.”

이내 밥을 먹던 도중, 형이 반찬 중 하나를 내 앞으로 기울였다.

행동은 평소와 같았다.

대화가 짧아지긴 했지만···.

중간엔 멤버들에게도 연락을 했다. 잠시 형의 집에서 묵고 오겠다는 연락이었다.

[은차닝]

: 왜? 무슨 일 있는 거냐?

[우세현]

: 형이랑 싸웠어

[은차닝]

: ㅇ0ㅇ!

강아지가 이상하게 놀라는 이모티콘이었다. 이런 건 어디서 산 건지. 그래도 자세히 보니 귀엽긴 귀여웠다.

[은차닝]

: 형님은 괜찮으시냐

그 말엔 웃음이 픽 새어 나왔다.

하지만 이마저도 곧 씁쓸해졌다.

[은차닝]

: 무사 화해 기원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확인한 것과 동시에 다시 눈을 감았다. 백은찬의 말처럼 무사히 화해하기 위해선 다시 형과의 대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고작 며칠 만에 형의 생각이 바뀔까.’

내가 바뀌게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입장 바꿔 생각한다면, 나 역시 형과 같은 반응이었을 거다.

어떠한 부작용이 형에게 지속된다는 걸 안다면, 그리고 그게 단순한 부작용 그 이상을 넘어서는 거라면 당연히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거였다.

형이 힘든 건 절대로 싫으니까.

그러니 지금 형의 마음이 어떤지는 잘 알고 있었다. 잘 알고 있었지만···.

“우세현.”

그리고 그때, 형이 내 앞에 와 섰다. 이에 들고 있던 폰을 곧바로 치운 채로 그대로 형을 바라봤다.

“예전에 한 번 말했었지. 사자랑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어, 응. 그랬었지.”

“어딘데?”

“···만나려고? 사자?”

“어.”

형이 답했다.

“만나서 어쩌려고?”

“말해야지. 당장 그 뭣 같은 온오프 풀라고.”

“형!”

그렇게 급하게 형을 불러봤지만, 형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니가 아무리 그래봤자 소용없어. 난 너 망가지는 꼴 못 봐. 아니, 그렇게 안 둬.”

“안 그래. 그럴 일 없어. 솔직히 말만 부작용이지 이제는 익숙해져서 생활에 그렇게 크게···.”

“정말 괜찮아?”

“···뭐?”

“원치 않은 기억이 보이고, 소리가 들리고, 그렇게 두통에 시달리는데도 정말 괜찮냐고.”

하나하나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정말로 괜찮은 거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괜찮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무대에만 오를 수 있었다면, 뭐든 상관없었으니까.

“···있잖아. 형. 온오프로 다시 무대에 서게 됐을 때. 나는 그때를 아직도 잊지를 못해.”

온오프 능력을 얻고 처음 섰던 그 무대.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했던 그 무대를 했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불렀던 곡이 루트의 라는 곡이었거든.”

그 순간, 형이 멈칫했다.

“근데 굉장히 좋았어. 루트의 노래를, 그 노래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

너무나도 좋았다.

사람들 앞에서, 아무런 방해 없이, 오로지 노래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그 순간이.

“그때뿐만이 아니야. 지금까지도 수많은 무대를 섰어. 그리고 그 무대들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고.”

무엇보다 소중한 무대들이었다.

항상 좋았던 무대들이었고.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온전히 남아 있는 무대들이었다.

“그러니 그 소중한 무대들을 단지 추억 속에만 두고 싶지 않아. 여기서 그만둔 채 평생 그 기억만으로 살고 싶진 않아.”

그렇게 형과 똑바로 마주한 채로 말했다.

그런 내 마음이, 형에게도 전달되었으면 싶었다. 형이 알아주었으면 했다.

이해를···해주었으면 했다.

분명 내 욕심인 걸 알지만, 그래도.

그리고 형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저 말없이 나를 보고 있는 듯하더니 이내 미간을 좁힌 채 고개를 숙였다.

“하···.”

그렇게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와 같은 한숨 소리에 나 역시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번 미안한 마음에.

그리고 그때였다.

형이 그대로 나를 안았다.

하지만 여전히 말은 없었다.

그저 아무 말 없이 그렇게, 그렇게 안겨 있었다.

그 안에서 형이 느낀 감정들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형의 마음이 어떤지, 너무나도 잘 느껴졌다.

“넌 진짜···.”

형이 그렇게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 또한 팔을 들어 그런 형을 안아주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슬퍼하는 형의 얼굴이 눈앞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미안했다.

그래서 얼굴을 더 보지 못했다.

이후로도 어떠한 말이 오가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기에.

그냥 그렇게, 그렇게 한참을 형과 부둥켜안은 채 있었다.

* * *

우도현은 지금, 그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는 와인잔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지난번 3월 20일, 그날 왔던 그 와인바였다. 동생을 데리러 왔던 그 와인바.

그곳은 평소와 같이 조용하고, 고요했다. 여전히 우도현을 제외하고선 손님 하나 있지 않았다.

그렇게 와인바 안으로는 대화 소리가 아닌 적막을 지워주는 음악만이 잔잔하게 흐를 뿐이었다.

그날, 우세현과 대화 이후 우도현은 결국 그렇게 동생을 제 손으로 숙소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물론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때 자신이 했던 말은 어디까지나 진심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결국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 소중한 무대들을 단지 추억 속에만 두고 싶지 않아. 여기서 그만둔 채 평생 그 기억만으로 살고 싶진 않아.]

그때, 그 말을 하던 동생의 표정이, 눈빛이 너무나도 단호했기 때문에.

그 눈이 너무나도 올곧고, 너무나도 간절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눈을 보는 순간, 우도현은 일단 한 발짝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마주하고 있으면, 결국 언제나처럼 져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동생에게 약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건 절대 변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

‘X 같은 부작용···.’

그리고 그 순간, 우도현이 제 주먹을 꽉 쥐었다. 이윽고 쥔 주먹이 그대로 작게 떨려왔다.

처음 부작용에 관해 들었을 땐, 정말로 눈앞에 아득해졌다. 동시에 자괴감이 몰려왔다.

여태껏 옆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눈치채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

‘멍청한 새X···.’

그리고 우도현은 그 말을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되뇌고 있었다.

그간 이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을 동생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한 욕을 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웃으며 지내왔던 지난날이 이제는 그저 후회로 물들고 있었다.

‘진작에 눈치를 챘었어야 했는데.’

애초에 대가 없는 호의는 없다.

그건 당연한 이치였다.

우세현에게 그런 능력이 생겼다면, 당연히 그에 따른 대가가 있었을 것을 생각했어야 했다.

안일했다.

그리고 그 안일함의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아니, 애초에 처음부터 허락해선 안 됐다. 막았어야 했다.

다치지 않게 막았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막아야만 했다.

이내 우도현은 다시금 잔을 쥐었고, 그렇게 담겨 있던 와인을 남김없이 들이켰다. 그렇게 홀로 들이켰다.

- 끼익!

그때였다.

누군가 발 소리를 내며 바 안으로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들리는 목소리.

“어라, 우연이네.”

꽤 익숙한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도현은 그쪽을 향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신도하였다.

그렇게 넉살 좋게 웃는 신도하에 우도현은 그저 말없이 잔을 들이킬 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신도하가 그런 우도현의 앞자리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렇게 신도하 역시 제 앞에 잔 하나를 놓았다.

“청승맞게 혼자 병나발 불고 있던 거야?”

“······.”

“표정을 보니 무슨 일이 있는 건 분명한데, 이건 또 보기 힘든 표정이고.”

그런 신도하의 말에 우도현은 또다시 말없이 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신도하는 그런 우도현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설마 기자 관련인가? 듣자 하니 기자가 붙었던 것 같은데.”

“그깟 기자 떨어져 나간 지가 언젠데.”

우도현이 피식 웃은 채로 중얼거렸다.

이전에 우도현에게 붙었던 그 기자.

그 기자는 곧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갔다. 건질 게 더 이상 없다는 걸 이제야 안 거다.

“그래, 그렇다면···결국 세현이 관련인가.”

그와 동시에 우도현이 고개를 들어 신도하와 시선을 마주했다. 이제껏 공허했던 우도현의 시선이 처음으로 움직인 순간이었다.

“역시.”

그리고 그런 우도현에 신도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세현이 일이야? 무슨 일인데?”

“···시덥지 않은 말 하지 말고 신경 꺼.”

“분위기로 봐선 세현이랑 싸우기라도 한 모양인데, 우리 세현이가 뭔가 일을 벌였나 보네.”

동시에 그런 신도하를 우도현이 날이 선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빼라고. 우리.”

“근데 세현이도 그런 표정일 텐데. 그렇다면 네 쪽에서 잘못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 말엔 또다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의 표정이 어떤지는 대충 예상이 갔기 때문에.

그리 좋지 않은 표정일 거라는 건 당연하게도 알고 있던 바였다. 그리고 우도현은 다시금 떠올렸다.

그때의 우세현의 표정을.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그 말을 하던 표정을.

그리고 그 순간, 우도현은 제 잔을 꽉 잡았고, 이내 잔을 쥔 손이 작게 떨려왔다.

무대 위의 우세현의 모습은 저 역시도 좋아하던 모습이었다. 그랬기에 처음 아이돌을 한다고 했을 때 허락한 것이기도 하니.

그 반짝임을, 무대 위 우세현의 모습을 우도현은 다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뭔진 모르겠지만 뭐가 됐건 세현이가 선택하게 해줘. 그게 세현이가 힘들어하는 것보단 낫잖아.”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말하네.”

“세현이와 관련해선 나름 좀 빠삭해서 말이야.”

“X랄.”

그러자 이를 들은 신도하가 이내 한번 웃어 보였다. 이에 그런 신도하를 보며 우도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했다.

“네가 좀 세현이를 과보호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

“그게 뭐.”

“아, 물론 그 마음엔 나도 공감해.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우도현이 다시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를 본 신도하가 다시 제 잔을 들었다.

“오랜만에 한잔할까.”

그렇게 신도하의 잔에도 마찬가지로 붉은색 와인이 흘렀다. 이에 다시 시선을 돌린 우도현은 여전히 그저 잔을 들이킬 뿐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클래식한 음악을 배경 삼아 조용히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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