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화. 설마 취한 거냐
테이블 위로는 그렇게 많은 양의 와인병이 줄지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의 잔은 여전히 멈출 줄 모른 채 채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건데?”
박시겸이 물었다.
그런 두 사람이 있던 와인바에 방금 도착한 박시겸은 그대로 테이블 위에 늘어져 있는 와인들을 보며 이내 질색하는 표정을 했다.
“꽤 많이?”
“그런 것치곤 넌 멀쩡하네.”
“나보다 도현이가 훨씬 마셔서 말이야. 그리고 이 상황에서 내가 취할 수는 없어서.”
“그래서, 난 왜 불렀는데.”
박시겸이 그대로 못마땅한 얼굴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 박시겸을 이 자리로 부른 건 다름 아닌 신도하였다.
“아무래도 나 혼자 옮기기엔 힘들 것 같아서.”
“뭐?”
그와 동시에 우도현이 다시금 제 앞에 있던 잔을 들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손이 삐끗하며 허공으로 떨어졌다.
“···설마, 취한 거냐?”
그 모습을 보던 박시겸이 조금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이에 신도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우도현이 허공을 가르던 손을 멈춘 채 그대로 테이블 위로 고개를 숙였다.
“···우도현이 취한 건 처음 보는데.”
그런 우도현을 박시겸은 아직까지도 조금 놀랍다는 얼굴로 보고 있었다.
“나도 처음 봐.”
그리고 그렇게 흐트러진 우도현의 모습은 신도하 역시 처음 보는 것이었다.
당장 잔을 기울일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이렇게 취할 줄은.
“우세현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냐?”
박시겸이 물었다.
우도현을 이렇게 만들만 한 건 아무래도 한 가지밖에 없었다.
“있는 것 같긴 한데. 나도 자세히는 몰라. 도현이가 얘기해준 게 없어서.”
“왜. 혹시 죽을병이라도 걸린 거냐?”
“그렇게 되면 나도 여기 있는 거 다 비워야지.”
신도하가 테이블 위로 줄지어 있던 와인병들을 보며 말했다.
“···그건 다행이네.”
이내 박시겸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럼 그냥 싸운 거겠군. 근데 고작 싸운 걸로 저렇게 정신을 못 차린다고?”
“도현이라면 그럴 수 있긴 한데···.”
“뭐가 됐건 우도현이 오바하는 거겠지. 잘못의 지분도 우도현이 절대적으로 많을 테고. 그냥 내버려 둬.”
그렇게 말하던 박시겸이 이내 테이블 위에 있던 계산서를 가져갔다.
그리고 그런 박시겸을 보던 신도하는 자연스럽게 우도현의 앞에 있던 잔을 치웠다.
그때까지도 우도현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이윽고 계산을 마친 뒤, 세 사람은 와인바를 나왔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주변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좁은 골목에 있는 곳이라 그런지 인적이 더욱 뜸했다. 그렇게 박시겸의 차에 탄 두 사람은 그대로 자택으로 향했다.
“설마 너까지 데려다줘야 하는 거냐.”
“그러라고 너 부른 건데?”
“정신 박혀 있잖아. 알아서 대리 부르라고.”
“돈 들어.”
그런 신도하의 말에 박시겸은 그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잠시 실소했다.
* * *
목적지에 도착한 뒤, 신도하는 차에서 내려 그대로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곧 차량의 문을 잡은 채로 말했다.
“차렸지? 정신.”
“······.”
이에 우도현은 말없이 차량을 나왔다.
그리고 박시겸은 그런 우도현의 모습을 운전석 앉아 지켜봤다.
밖으로 나오자 곧바로 찬 바람이 불어왔다.
이에 우도현은 그대로 잠시 미간을 좁혔으나 그래도 바깥 공기를 쐰 덕인지 정신이 이전보다 조금 맑아졌다.
취기가 어느 정도 가신 듯했다.
이렇게 취한 게 얼마 만인지 모를 정도였다. 아니, 애초에 이렇게 취해 본 적이 있던가.
평소와 다르게 이상하게 오늘은 먹는 족족 와인이 쓰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쓴 와인을 마시면서 왠지 모르게 점점 더 취해갔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익숙한 길을 걷고 있는데, 그런 우도현의 몇 발짝 떨어진 거리에 신도하 역시 뒤따라 걷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도현의 눈엔 그런 신도하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공허한 얼굴로 오로지 앞을 향해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이 맑았다.
별 하나 없는 하늘이었지만, 그런 데로 맑았다. 동생이 좋아하던 하늘이었다.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얼굴에 우도현은 그대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왠지 생각나네.”
신도하가 말했다.
“생각하지 마.”
“부를까?”
이에 우도현이 그런 신도하를 서늘한 시선으로 노려봤다.
“그렇게 노려보지 마. 난 누구라고 말 안 했어. 그냥 생각이 나서.”
신도하가 그렇게 여유롭게 웃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그 답은 뻔했다. 그래서 우도현은 그 노려보던 시선을 여전히 거두지 않았다.
“어때, 술은 완전히 깼나?”
“진작 깬 지 오래야.”
“이제 더 확 깨게 될 텐데.”
“뭐?”
앞선 신도하의 목소리가 조금 신이나 있었다. 하지만 우도현은 그것을 이내 한 귀로 흘렸다. 뭔 X 소리냐는 심정이었다.
그렇지만, 신도하는 그런 우도현을 보며 여전히 웃었다. 그리고 그런 신도하가 다시 앞을 본 순간, 표정이 밝아졌다.
기다렸던 이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여기야, 세현아.”
이내 우도현이 걸음을 멈췄다.
* * *
늦은 밤, 신도하로부터 연락이 왔다.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놀랐지만, 그 내용엔 더욱 놀랐다.
형이 많이 취했다는 연락이었다.
‘형이 취했다고?’
이에 헐레벌떡 형을 데리러 갔다. 어디 가냐는 멤버들의 물음에도 그저 형을 데리러 간다는 얘기만 하고 나왔다.
괜히 한시가 급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가니 아니나 다를까 형과 신도하가 함께 걸어오는 게 보였다.
“형!”
그런 형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이윽고 형에게 다가가니 미세하게 술 냄새가 풍겨 왔다.
“얼마나 마셨어요?”
“꽤 많이? 사실 평소의 도현이 주량이면 문제없다고 보지만···오늘은 좀 달랐던 모양이야.”
반면, 신도하는 멀쩡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더불어 신도하에게서는 알콜향이 그리 나지 않았다.
“형이랑 같이하신 거예요?”
“내가 중간에 합석했지. 물론 그때 이미 꽤 마신 것 같았고.”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그럼.
그리고 그렇게 형을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 순간 형이 나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이에 일단 그런 형을 잘 붙잡고 봤다.
“감사합니다. 챙겨주셔서요.”
“좀 힘들긴 했지. 사실 나도 도현이를 이렇게 챙겨 본 적이 없어서 좀 놀라긴 했어. 도현이는 항상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거든.”
루트 때를 말하는 건가.
하긴, 평소 형의 주량을 생각하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을 테니.
“그런데 오늘은 아니었나 봐. 뭔가 슬픈 일이라도 있었던 건지.”
그 말엔 잠시 침묵했다.
당연하게도 찔리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꼭 연락 줘. 아무래도 걱정돼서 말이야.”
“아, 네. 당연히 연락을···.”
그런데 그때, 형이 몸을 작게 바둥거렸다. 덩치도 큰 데 바둥거리기까지 하니 감당이 안 됐다.
아무래도 제대로 취한 모양이다.
“아무튼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선배님은 다시 대리 부르신 거예요?”
“아, 난 전용 기사가 있어.”
“예?”
“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얘기야. 그런 것보다 연락 꼭 잊지 말아줘.”
와중에 신도하가 한 번 더 연락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이에 알겠다고 말하자 왠지 모르게 묘한 미소를 짓는다.
···경험상으로 볼 때, 저건 뭔가 재밌는 건수를 잡았을 때 나오는 웃음인데.
어쨌건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니 그대로 신도하가 다시 인사를 전한 뒤, 형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어째 휘청휘청 걷는 게 불안해서 아예 팔을 어깨에 걸었다.
아무래도 키 차이가 있는 터라 자세가 좀 불편하긴 했지만, 그런 건 어느 정도 감수했다.
“형, 많이 취했어?”
“······.”
대답이 없었다.
진짜 많이 취했나 보네.
여기에 자꾸만 붙어 오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게 형의 술버릇인가 보다. 취한 걸 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있어야지.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건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형이 왜 그렇게 마신 건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형의 어깨를 다시 고쳐잡았다.
콩나물국이라도 끓일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 * *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엔 콩나물국을 끓였다. 당연하게도 재료가 없어 급하게 사와야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만들어지긴 했다.
‘콩나물국은 안지호가 잘하는데.’
콩나물국을 보니 문득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매번 마시고 난 뒤, 콩나물국을 얻어먹었었지.
콩나물국과 더불어 숙취 해소제를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형은 점심이 다 된 시간에 일어나 내가 만든 콩나물국을 먹었다. 확실히 취한 게 맞았는지 평소보다 조금 얼굴색이 좋지 않았다.
“맛있네.”
형이 말했다.
평소보다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형, 어제 주정 부리더라. 옮기느라 힘들었어.”
“아, 그래.”
“나중에 신도하 선배한테도 연락해줘. 선배가 여기까지 데리고 와줬는데.”
“아, 그래.”
형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 내가 할 테니 넌 안 해도 돼.”
“뭘?”
“연락.”
그러더니 다시 콩나물국을 먹기 시작한다. 형만 하는 게 말이 되나. 당연히 나도 해야지.
어제 옮기면서 느낀 건데, 확실히 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았다. 신도하. 인사 정도는 제대로 해야 할 것 같다.
“얼른 먹어. 곧 가봐야 한다며.”
“응.”
그렇게 나 역시 형과 함께 아점을 먹었다. 콩나물국의 맛이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리고 형이 숙취 해소제까지 먹는 것을 보고 난 뒤, 그대로 형의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발이 안 떨어진다.’
어쩐지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런데 그때, 형이 그런 내 머리를 한번 헤집었다.
“다녀와. 스케줄 잘하고.”
그 목소리가 언제나와 같았다.
그래서 더 발이 안 떨어졌다.
마치 발이 그 자리에 붙은 듯 떨어지질 않았다.
“세현아.”
그때, 그대로 날 부르는 형의 목소리에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
“형은 여전히 반대야. 온오프.”
“···응.”
“일단 지금은 잠시 지켜보는 거지만, 마냥 지켜볼 생각은 없어.”
이에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다. 형의 마음은.
“그래.”
그렇게 형이 말했다.
“잘 다녀와.”
조금은 미소 짓는 얼굴로.
그리고 그런 형을 향해 나 역시 웃어 보였다. 형이 더 이상 걱정하지 않게끔.
“응. 다녀올게.”
그러자 곧 형이 작게 미소 지었다.
* * *
‘앞으로 더 자주 와야겠다.’
형 집에.
지난 일 이후로, 일단 형은 조금 더 생각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여전히 부작용에 관해서는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지금은 일단 한 발짝 물러서 주었다.
그렇지만 그게 곧 그냥 두고 보고 있겠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잠시 한 발짝 물러서 준 것뿐.
하지만 그 한 발짝 자체가 형으로서 얼마나 큰 결정을 한 것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지금 얼마나 참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굉장히 많이 미안했다.
‘온오프가 없어도 노래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게만 된다면, 형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온오프가 없어도 무대에 설 수 있는 방법, 없을까.’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사실 온오프를 얻기 전에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무대에서 능력이 증폭되는 걸 막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렇다 할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과거에도 결국 무대를 멀리하게 되었고.
“어어어어어?”
그런데 그때, 눈앞에서 누군가와 마주쳤다. 이에 갑작스럽게 들리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순간 흠칫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와 동시에 앞에 있던 이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네~?”
“아.”
다행히 아는 얼굴이었다.
사자였다.
“여긴 무슨 일인데요?”
“우연히 근처에 일이 있어서. 근데 여기서 널 만날 줄은 몰랐네.”
그렇게 말한 사자는 경찰복을 입고 있었다. 일. 그 일이 대충 어떤 일인지 알 것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
“그러고 보니 새로 하나 생겼어요.”
“뭐가?”
“부작용이요.”
이전에 생긴 새로운 부작용에 관해선 아직 사자에게 말하지 않은 바였다. 형 일로 인해 정신이 없던 터라.
“어떤 부작용인데?”
“말로 설명하기는 힘든데, 두통을 수반하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복합적이에요.”
“아, 그래?”
어떤 것이라고 정확히 설명하기 힘들었다. 워낙 정신이 없었고, 그때 이후로는 아직 같은 증상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언제 다시 그 증상이 나올지···.
[“새로운 부작용인가.”]
그런데 그때, 순간 다시 몸을 멈칫했다. 목소리가 들렸다. 따봉 사자의···목소리였다.
[“드디어 나온 건가. 역시 흥미로운데.”]